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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자립생활 숨통 조이는 정부, 중증장애인들 ‘살기 위해’ 삭발하다
내년도 중증장애인 예산 확대 촉구하며 전국투쟁결의대회 열어
청와대 앞 종로복지관까지 행진, 예산 확대 촉구 점거 농성 4일 차 맞아
등록일 [ 2016년09월09일 19시54분 ]
2017년 중증장애인생존권예산쟁취공동행동은 9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내년도 중증장애인 예산 확대를 촉구하며 전국투쟁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날 장애인 활동가들은 10년 만의 삭발을 결행하며 장애인 자립생활의 숨통을 조이는 정부를 향한 대투쟁을 결의했다. 삭발하는 노금호 한자협 부회장
잘려나가는 머리카락들
삭발하는 양영희 한자협 회장
 
“2006년 처음 활동보조제도화 투쟁을 시작할 무렵, 아빠는 폐암 선고를 받고 4개월 만에 돌아가셨지요. 아빠가 병원에 있을 때, 난 길바닥에 있었지요. 시청 농성장에서 투쟁하면서 더 이상 가족의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욱 절실해졌어요. 남은 엄마, 남동생, 여동생에게도 부담 주기 싫었어요. 난 그때 자립하지 않으면 언젠가 시설에 가거나 평생 엄마와 동생들에게 짐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절실함 때문에 투쟁이 절박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빠에게 살아생전 효도는 못 할망정 걱정거리로 남고 싶지 않았어요. 평소 내 활동지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거로 아빠의 불안을 덜어드리고 싶었습니다. 혼자 자립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평생 장애가 있는 딸자식 걱정으로 평생을 보낸 아빠,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편히 보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활동보조 투쟁은 절실했고, 나의 생존이자 아빠에게 드릴 수 있는 마지막 효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다시 머리를 깎습니다. 활동보조 예산 때문에, 장애인 생존권 예산 때문에, 아니, 내가 정말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삭발을 또 해요. 내게 꿈이 있기에 머리를 깎습니다.”

- 양영희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삭발하는 양영희 한자협 회장
 

‘아빠를 사랑하는 딸 영희가’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께 보내는 편지가 낭독됐다. 그 순간, 갈색으로 물들인 곱슬한 긴 머리가 가위에 잘려나갔다. 잘린 머리카락이 수북해질 무렵, ‘바리깡’이 남은 머리마저 밀어버렸다.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졌다. 10년 만의 삭발이다. 2006년 4월에도 삭발을 했다. 활동지원서비스가 제도화되지 않았던 그때, 서울시에 활동보조인제도화를 요구하며 수십일을 농성하고 투쟁했다. 그렇게 양영희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한자협) 회장을 시작으로, 노금호·박대희 한자협 부회장이 삭발했다.

삭발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장애인 활동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삭발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중 장애인 활동가가 울음을 터뜨렸다.

지난 10년 동안 활동지원서비스는 제도화됐고 미약하게나마 이용 대상도 확대됐다. 그로 인해 중증장애인도 장애인거주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그러나 애초 ‘마이너스의 삶’에서 ‘제로(0)’에 가까워졌을 뿐이지, 제로를 넘어 인간답게 삶을 누릴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그런데 정부는 또다시 마이너스의 삶으로 이들을 끌어내리고 있다. 
 

2017년 중증장애인생존권예산쟁취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은 9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내년도 중증장애인 예산 확대를 촉구하며 전국투쟁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날 장애인 활동가들은 10년 만의 삭발을 결행하며 장애인 자립생활의 숨통을 조이는 정부를 향한 대투쟁을 결의했다.
 

박명애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야학 학생 중 활동보조 24시간이 안 돼서 이번 여름에 선풍기도 못 키고 지낸 사람이 있다. 고(故) 김주영 활동가처럼 집에 불나서 돌아갈까 봐, 그렇게 여름을 지낸 거다. 그걸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며 무거운 심정을 전했다. 


박 이사장은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는 만큼만 나라가 바뀐다.”면서 “앞에 나온 우리가 선구자다. 꼭 이겨서 예산 제자리로 돌려놓자”고 투쟁에 힘을 실었다.


민용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부회장은 “정부는 돈이 없다고 한다. 누가 그렇게 나라 살림을 그따위로 하라고 했나. 왜 그 짐을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떠넘기나”라면서 “발달장애인법이 시행됐는데, 예산이 없다고 한다. 법 제정하면 뭐하나.”라고 규탄했다.


투쟁결의는 다지는 참가자들
지난 2일 발표된 정부 예산안을 보면, 중증장애인의 생존권과 직결된 주요 예산은 사실상 삭감됐다. 자립생활의 핵심인 장애인활동지원 예산의 경우, 정부는 2016년 실제 이용자 수(6만 3322명)에도 못 미치는 숫자(63000명)를 목표로 세우고, 월평균 급여 수준도 월 109시간으로 동결했다. 2011년 이후 활동지원 이용자 수는 연평균 6000여 명씩 늘어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정부는 6만 1000명을 예상치로 잡았으나 7월 기준으로 이용자가 63000명이 넘어 긴급히 추경 예산을 편성해야 했다.
 
내년도 서비스 단가도 최저임금 인상분조차 반영되지 않은 시간당 9000원이라는 턱없이 낮은 수준으로 동결됐다. 시간당 수가 9000원에서 중개기관 수수료를 제외하면 활동보조인의 몫은 수가의 75%인 6800원에 불과하다.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주휴수당조차 받지 못하는 걸 고려하면 한 달 임금은 법정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 열악한 노동조건은 활동보조 일을 회피하는 직업군으로 만들고 서비스의 질 하락을 초래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증액되지 않은 중증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지원 예산도 5% 삭감됐고, 국고 지원 센터 수는 올해와 같은 62개소로 동결됐다. 장애인연금은 올해보다 고작 200원 올랐을 뿐이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예산은 삭감된 반면, ‘탈시설-자립생활’에 역행하는 장애인거주시설에 대한 운영 지원금은 늘어났다. 거주시설에 대한 총예산은 올해 4370억 원에서 4551억 원으로 181억 원 증액됐으며, 지원 시설 수도 올해보다 16곳 늘었다.

투쟁결의를 밝히는 박대희 한자협 부회장

삭발 후, 박대희 한자협 부회장은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이 정부의 작태에 대해 ‘정부가 하는 일이니깐 해결할 수 없어’, 이 생각이 동지들의 마음속에 퍼지는 순간일 것”이라면서 “인권탄압과 생존권 위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에 적응한다면 우린 죽을 것이다. 그러나 시설에 갇혀 인권유린 당하며, 골방에 갇혀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갈 바에야 길바닥에서 죽을 각오로 싸운다면 우린 살 것이다.”고 외쳤다.

노금호 한자협 부회장은 “우리의 투쟁은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투쟁이고, 헌신짝처럼 내버려진 사회적 약자를 다시 살리는 투쟁이다.”면서 “잘린 머리카락은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이라고 생각한다.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나는 시간이 빼앗겨버린 권리가 회복되고 이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공동행동은 “2017년 정부 예산의 총 지출 규모 400조 7000억 중 장애인복지예산은 0.48%에 불과하며, 복지부 예산안 내에서도 1.71%에 불과하다”면서 “2015년 기준 전체 인구 중 등록장애인 비율은 5%를 차지하지만 장애인복지 예산은 0.48%다. 이는 장애인복지 예산의 대대적인 증액이 필요하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는 장애인 예산을 늘리는 방법이 아닌, ‘등록 장애인의 수를 줄이는 방법을 쓰고 있다’고 공동행동은 밝혔다. 바로 장애등급제를 이용해 등급 하락을 시킴으로써 중증장애인의 수를 줄이는 것이다. 실제 지난 5월엔 장애등급 재심사로 수많은 장애인이 등급 하락을 당하면서, 등급별로 주어지는 활동보조서비스가 중단되기도 했다.
 

이에 공동행동은 지난 6일부터 청와대 앞 종로장애인복지관 옥상에서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내년도 장애인 예산 확대를 요구하며 무기한 점거 농성을 하고 있다. 결의대회 이후, 참가자 400여 명은 종로복지관 앞까지 행진하여 마무리 집회를 진행했다.


삭발한 세 사람을 선두로 참가자들이 청와대 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경찰이 길을 막아서자 양영희 한자협 회장이 항의하고 있다.
길을 막아선 경찰들
인도로 가고 있음에도 경찰이 길을 막자, 장애인 활동가가 항의하고 있다 청와대 앞 종로복지관에 도착한 사람들, 경찰이 에워싸자 항의하고 있다. 종로복지관 5층에서 내려다본 모습
종로복지관 5층에서 점거 중인 공동행동 측이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규탄하는 전단지를 뿌렸다.
종로복지관에 다시 걸린 대형 현수막 바닥에 떨어진 전단지들. 바닥에 떨어진 전단지들.
  바닥에 떨어진 전단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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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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