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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 예산도 있는데...활동보조 24시간 ‘그림의 떡’
장애인 활동보조 24시간 지원 위해 예산 확보했지만
정부의 ‘사회보장사업 정비’ 때문에 2년째 미집행
등록일 [ 2016년10월31일 14시36분 ]
천안시가 장애인 활동보조 24시간 지원을 위한 예산을 책정했으나, 정부의 사회보장사업 정비 방침에 가로막혀 2년째 사업이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천안시는 지난 2015년부터 중증장애인 활동보조 24시간 지원 사업을 계획해왔다. 2015년에는 1억 7670만 원, 2016년에는 3억7464만 원 예산을 각각 배정했다. 매해 10명씩 지원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지난 2년동안 이 사업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정부가 사회보장사업 정비방안을 추진하며 지자체의 활동보조 추가지원을 중앙정부 사업과 중복된다며 천안시의 사업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5년부터 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를 근거로 지자체 복지 축소를 강제해왔는데, 천안시가 만약 이에 불복할 경우 교부세 삭감 등의 패널티를 감수해야 한다.
 
복지 정책에 집중적으로 칼날을 들이댄 중앙정부와, 패널티때문에 눈치만 보고 있는 지자체 때문에 고통은 고스란히 장애인의 몫이 되고 있다. 천안시에서는 2016년에만 중증장애인 두 명이 사망했다. 지난 6월에는 루게릭 장애 1급인 명 모 씨가 활동보조인과 남편이 없는 사이에 호흡기가 빠져 사망했다. 명 씨는 독거가 아니라는 이유로 한 달에 261시간을 지원받고 있었다. 활동보조인이 6시에 퇴근하고 남편이 귀가하기 전 몇 시간은 혼자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때 사고가 발생했다. 9월에도 뇌병변 장애 1급인 조 모 씨가 돌보는 사람이 없던 사이 뇌사상태로 사망했다. 그 역시 261시간을 지원받고 있었다.
 
장애인 활동보조 24시간 확보를 위한 서명운동에 참석한 박문희 씨. ©한뼘인권행동 페이스북 천안에 거주하는 지체장애 1급 박문희 씨는 지난 7월, 응급실에 실려 갔다. 소변줄이 막히는 바람에 '과반사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소변이 방광에 가득 차게 되면, 혈압이 심하게 오른다. 갑작스러운 혈압 상승은 뇌출혈을 일으키기 때문에, 즉각 방광을 비워야 한다. 하지만 박 씨같이 손을 쓸 수 없는 장애인은 소변줄이 막혀있는 것을 알아도 속수무책이다.
 
실제로, 박 씨는 "나와 같은 장애를 가진 친구 한 명이 소변줄이 막히는 바람에 사망했다"고 전했다. "그 친구도 나처럼 경추 손상으로 목 밑으로는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이었다. 하지만 친구를 돌봐주시던 어머니께서 암 투병 끝에 돌아가신 후 불과 몇 개월 만에 소변줄이 막혀 뇌출혈로 죽었다." 박 씨는 친구의 죽음이 "남 일 같지 않았다"며 "나도 소변줄이 막혀 응급실에 실려 갔다 와보니, 혼자 있다 죽을 가능성이 현실로 성큼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두렵다"고 털어놓았다.
 
박 씨는 활동보조를 521시간 지원받고 있다. 천안시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이다. 주말과 공휴일까지 고려하면, 하루 평균 약 12시간가량 활동보조를 받는 셈이다. 야간이나 주말에는 박 씨의 어머니가 오기도 한다. 그의 어머니는 69세로, 허리협착증에 골다공증까지 심각한 상황이다. 하지만 혼자 있는 아들이 걱정되어 "너무 아파 기어 다녀야 하는 때에도" 주말에는 그를 돌보러 집에 온다. 박 씨는 "어머니가 오히려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신 상황인데, 나 때문에 건강이 더 안 좋아지실까 봐 무척 걱정"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박 씨는 자비를 써서 개인보조인을 고용하기도 한다. 국가의 지원이 없는 시간에도 그는 활동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한 달에 20~30만 원 정도 자부담이 발생한다"며 "부담스러운 금액이지만,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니 어쩔 수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인들의 자발적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금액이다. 그는 "(시간이 부족한걸) 아는 활동보조인 선생님들이 보수 없이 몇 시간 더 있어 주시거나, 지인들이 밤에 와 주거나 해서 그나마 자부담이 이 정도지, 만약 부족한 시간을 돈으로 다 메운다면 100만 원 이 훌쩍 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재신 씨는 오는 11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시소'에 출연했다. 영화는 '앞만 못 보는' 시각장애인과 '앞만 보는' 지체장애인 임재신 씨의 제주도 여행기를 담았다. 임 씨는 "처음 영화 제안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걱정이 '일주일 동안의 여행에 동행할만한 활동보조인이 과연 있을까'였다 "라며 "이렇듯 장애인에게 활동보조는 아주 기본적인 필요이다. 활동보조인이 없으면 나와 같은 중증장애인은 말 그대로 '사회적 식물인간'이 된다"라고 밝혔다.
 
임 씨는 이어 한 장애 여성의 사례를 소개했다. "중학교 1학년인 딸과 함께 사시는데, 어느 날은 그 딸이 자기를 업으려고 시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뜻대로 안 되니까 눈물을 글썽이면서, '우리 집에 불이 나거나 지진이 나면 엄마는 누가 데리고 나가냐. 내가 업고 나가야 하는데 잘 안 돼서 속상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임 씨는 "장애인의 기본권이자 생존권인 활동보조 24시간 지원이 조속히 시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안시 장애인 활동지원 24시간 확보를 위한 시민연대(아래 시민연대)'를 구성했다. 시민연대는 10월 한 달간 매주 금요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천안시 버스터미널 인근에서 서명운동을 했다. 28일 끝난 서명운동에는 처음 목표했던 1천 명을 훌쩍 넘은 1446명이 참여하여 장애인 활동보조 24시간 지원에 지지를 표했다.

28일 천안시 야우리백화점 앞에서 진행된 "천안시 장애인 활동지원 24시간 확보를 위한 시민 캠페인 및 서명전"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한뼘인권행동 페이스북

또한 시민연대는 지난 26일, 예산까지 확보된 장애인 활동보조 24시간 지원 사업이 중앙 정부의 저지에 가로막혀 있는 현실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 모색하는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당사자들의 사례와 더불어 다른 지자체 사례가 소개되었다. 
 
그러나 간담회에 참석한 양승조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국정의 기본 철학 자체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어, 현 정권에서 '유사중복 사업 통폐합' 움직임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양 의원은 "내년도 복지부 예산이 57조 원가량 되는데, 법정 증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오르지 않은, 사실상 마이너스 예산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무자비하다'는 표현이 가능할 정도"라며 "이러한 정부의 태도를 뒤집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천안시도 강한 의지를 내비치지는 못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천안시 장애인복지과장은 "활동보조 24시간 지원의 필요성을 통감하여 예산을 세우긴 했지만, 중앙 정부의 지시를 무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난처함을 토로했다. 그는 "혹시 몰라 내년 예산도 산출해 두기는 했지만, 복지부와 정면충돌하며 진행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다른 방법은 없을지 고민해 보겠다"고 밝혔다.
 
이연경 시민연대 대표는 "간담회를 통해 국회 복지위원회 차원에서의 법 개정에 대한 의지와, 법 개정 전까지 천안시가 최소한의 안전망을 구축하겠다는 약속을 듣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속상하긴 했다"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에도 장애인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으니, 시민 캠페인을 통해 사업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알리는 등 후속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라며 의지를 밝혔다. 

지난 26일 진행된 '천안시 장애인 활동지원 24시간 확보를 위한 간담회' 모습.
간담회에 참석한 양승조 의원(왼쪽)과 이연경 대표(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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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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