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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확실하게, 물레로 빚어내는 ‘꿈’
물레 들여 본격적인 도예 작업 훈련 시작한 ‘통예나’
“여전히 과제 많지만 도예가 ‘취미’ 아닌 ‘직업’ 되길”
등록일 [ 2016년11월01일 14시40분 ]
네 학생이 물레를 이용해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신용섭, 정다한, 이호근, 양병창.

지난 취재(▶관련 기사: 흙으로 빚어내는 장애학생의 꿈, “도예강사 되고 싶어요”)  이후 1년 만에 찾은 통합예술나눔터(아래 통예나)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발달장애인 청소년 네 명이 도자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이 곳에 물레가 들어온 것이다. 덕분에 그동안 손으로 자기를 만들어왔던 이들은 10개월간 열심히 물레로 도자기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지난 29일, 10개월간 익힌 물레 기술을 후원자들 앞에서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했다.
 
선반마다 도자기가 빽빽이 들어선 통예나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서자 물레 네 대가 나란히 서 있었다. 호근과 병찬이 물받이(물레가 돌아갈 때 진흙이 사방으로 튀는 것을 방지해주는 틀)를 설치하고 있었다. 익숙하다는 듯 척척 물받이를 끼우더니 이번에는 흙을 뗀다. 흙을 저울에 재고, 물레에 흙덩이를 올려 가장자리를 얇게 펴가며 바닥에 잘 고정한다. 일련의 동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이윽고 도착한 다한과 용섭도 자기 자리에 앉아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우선은 중심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요, 흙을 올렸다 내렸다 하겠습니다."
"그 전에 물을 잘 묻혀야 해요."
 
물레를 처음 보는 기자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자 학생들이 앞다투어 물레로 도자기 만드는 과정을 설명했다. 하나하나 동작을 바꿀 때마다 설명을 하는 데다, 앞에 누군가 앉아서 도자기 만드는 과정을 보고 있다는 긴장감까지 더해졌기 때문인지, 성급하게 모양을 잡거나 힘을 잘못 주는 등 잔 실수가 났다. 그때마다 통예나 강사들이 "물레 속도를 좀 줄이자", "물이 너무 많으니 스펀지로 물을 좀 빼자" 등의 조언을 했다.
 
짧은 시연 시간에서 나온 작품들에서도 각자의 개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모양은 조금 불안정하지만 가장 얇고 섬세한 그릇은 용섭의 작품, 안정적이고 균형 잡혀있으면서도 가장 많은 개수를 만든 다한. 가장 적은 개수를 만들긴 했지만 긴 시간 높은 집중력을 보인 호근의 컵은 균형도 대칭도 완벽했다. 병창은 초반에는 아슬아슬했지만 이내 대범하고 투박한 형태의 그릇을 뚝 떼어냈다.

통예나 후원의 밤이자 '흙수다' 멤버들이 10개월간 다져온 물레 기술을 시연한 날, '물레는 뱅뱅 꿈은 활짝'.

이호정 통예나 대표는 도예가 중에서도 물레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아주 적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물레를 이용한 작업이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도예가들도 힘들어하는 물레 작업을 굳이 '흙수다'에 도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흙수다'에서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은 이들에게 적합한 직업을 찾아주는 것이니까요. 물레 작업은 처음에 익히기는 어렵지만, 막상 익숙해지고 나면 효율적이기도 하고, 작업의 범위도 크게 확장됩니다. 각자의 개성이 다른 만큼, 작가나 도예가, 혹은 생산자 등 자기에게 맞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물레 작업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흙수다 학생들이 물레 기술을 익히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사실, 물레로 도자기 만들기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중심을 잡기까지만 거의 5~6개월이 걸렸어요. 물레 사용법이 워낙 어렵기도 하거니와, 눈과 손과 발을 동시에 사용해서 속도와 힘을 조정하는 협응력을 기르기가 발달장애인 학생들의 경우 좀 더 어려워서죠."
 
그러나 이 대표는 오히려 이 지점에서 학생들의 가능성을 봤다고 전했다. 비장애인의 경우, '중심 잡기' 연습이 2~3개월로 길어지기만 해도 금방 포기하지만 흙수다 학생들은 '잘 안 되는 것'에 좀처럼 풀이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레로 작업하고 싶다'는 동기만으로 다들 지치지 않고 계속 연습했어요. 물레에 가장 늦게 적응한 병창이의 경우, 친구들보다 진행이 더딘 것을 답답해하면서도 친구들이 다 쉴 때도 연습 더 하겠다며 제일 열심히 했어요. 어느 순간 중심이 안 잡혀 이지러지던 흙이 중심을 잡고 모양이 나오기 시작했죠."


10개월 간의 노력이 엿보이는 도자기. 중심을 잡는 데만 6개월이 걸린 흙수다 멤버들이 처음으로 그릇의 형태를 빚은 것(위)과 최근 작품(아래). 아래 사진 맨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다한, 호근, 병창, 용섭의 작품이다.
 
그렇다면 이제 발달장애인 학생들이 도예를 단순히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삼을 수 있게 된 것일까. 이 대표는 그러기 위해서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했다. 작년 인터뷰에서 이 대표는 올해 스무 살이 된 용섭이 도예 '보조 강사'로 활동하면서 적어도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 계획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통예나'를 운영하면서 재정적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더구나 용섭이가 성인이 되면서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계속 공방에 오니까, 강사들이 용섭이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어요. 다른 아이들은 여전히 그렇지만, 용섭이도 토요일에만 왔었거든요. 그래서 주중에 저나 다른 선생님들이 돈을 벌고, 토요일에 아이들 연습할 재료비 등을 조달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용섭이가 공방에 거의 매일 오게 되지, 수익이 나는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졌어요."
 
대표 개인이 시작했던 프로젝트가 커져감에 따라, 재정적 압력도 자연스럽게 커졌다. '흙수다'는 아직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강사들이 흙수다에 필요한 재정도 조달하고, 교육을 하면서도 제대로 보수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학생들이 스스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도 미뤄지게 되었다. 운영에 대한 고민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단기적 프로젝트가 아니라,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싶다는 장기적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력자인 강사들이 '나가떨어지게' 되면 프로젝트의 생명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자체나 정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으려면 '장애인 단체'로 등록을 하거나 엄청난 서류작업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마저도 네 명밖에 되지 않는 흙수다는 미미한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뭐든 머릿수로 결과를 평가하는' 체제를 따라가느니, 다른 방안을 찾는 게 낫다는 결정을 내렸다.
 
"다들 '사람이 중요하다'라고 하면서 정작 인건비 지원은 굉장히 아까워해요. 눈에 보이는 재료 구매나 전시회 같은 행사만 요구하죠. 하지만 공모전만 해도, 정말 많은 사람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눈치 안 보고, 저희가 하는 일을 지속하려면 사회적 기업이나 장애인 단체 같은 형태가 아니라, '비영리 단체'가 되어서 후원을 받는 게 제일 좋다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통예나 작업실 한 쪽 벽에 '다르니까 가치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발달장애인이 기술을 익히고, 사회에서 이 기술을 활용해 가치를 창출하기까지는 비장애인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고스란히 개인의 몫으로 돌아간다. 이 대표는 통예나가 발달장애인이 그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되지 않길 바라며 이들이 3, 40대가 되었을 때 통예나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었다. 통예나는 내년부터 비영리단체로 운영될 예정이고, 흙수다 2기도 모집 하게 된다. 주 중에는 1기인 네 사람의 활동을, 토요일에는 도예 기초를 배우는 2기 학생들을 교육한다. “흙수다 시작한 이래 매해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다. 힘들면서도 설렌다”며 이 대표는 크게 웃었다.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물레 시연이 계속되고 있는 도예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초반에 산만했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네 학생은  말 한마디 없이 손가락의 미묘한 움직임에 모아졌다 퍼지는 흙에 집중하고 있었다. 조금 느리지만 확실하게 전진하는 청년들과 이들의 자립을 진심으로 지원하는 사람들이 함께 빚어내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 통예나 홈페이지 : http://tongyena.modoo.at
- 통예나 후원 신청 : http://goo.gl/forms/nsMjuOvy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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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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