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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신이 있어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은 고통스러웠습니다
박근혜 국무위원 간담회 모두 발언 “취약계층, 각별하게 챙겨라”
지난 4년,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삶은 재난 그 자체였고, 국가는 없었다
등록일 [ 2016년12월10일 12시26분 ]

박근혜, 더는 당신을 ‘박근혜 대통령’이라 부르지 않겠습니다. 탄핵 가결 때문이 아닙니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에게 당신은 대통령 ‘자격’을 잃은 지 오래였습니다.
 

9일,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 불참 1표. 국민의 목소리를 국회가 받았습니다. 당신은 더는 직무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헌법재판소 심판이 남아있다만, 헌재도 인용 결정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탄핵 가결 직후, 당신은 국무위원 간담회를 통해 국회 결정에 대한 입장을 전했습니다. 당신은 “지금의 혼란이 잘 마무리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라면서 “앞으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특검 수사에 차분하고 담담한 마음가짐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지금의 혼란이 진심으로 잘 마무리되길 바란다니, 그 괄호 처진 주어는 박근혜 자신이겠지요. “‘내가 겪는’ 지금의 혼란이 잘 마무리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게 당신의 본심입니다. 그래서 마치 ‘잠시 집 비우는 사람처럼’ 각 부처 장관들에게 이것저것 ‘당부’한 거겠지요.


탄핵 가결 직후 열린 국무총리 및 부처장관 간담회에서의 박근혜 모두발언 모습. 청와대 영상 캡처
“특히 동절기는 홀로 사시는 어르신, 결식아동, 에너지 빈곤층을 비롯해서 저소득 취약계층의 고통이 더 큰 시기입니다. 과거를 돌아보아도 시국이 어수선하고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더욱 힘들어지는 것은 서민과 취약계층의 삶이었습니다. 국정에 어떤 공백도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특히 민생안정에는 단 한 곳의 사각지대도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하고 각별하게 챙겨봐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당신의 이 간담회 모두발언을 들으며, 일개 ‘서민’으로서 ‘대국민담화’를 들은 듯한 격한 ‘담’이 몰려왔습니다. 국정농단과 관련해 발표한 총 3차례 대국민담화가 온갖 ‘거짓말 대잔치’여서 국민들은 이를 ‘대국민담와’라고 불렀지요.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청와대를 마주한 광화문역은 얼마 전부터 ‘박근혜 즉각 퇴진역’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습니다. 그 역명을 바꾼 사람은 바로 4년 넘게 광화문역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며 농성하는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겨울이 와서 고통이 큰 게 아니라 당신이 대통령이어서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습니다. 날 고문한 사람이 날 염려한다니, 그 누가 믿겠습니까.


복지 사각지대 넓힌 주범이 바로 박근혜


지난 4년간 복지 사각지대를 망망대해처럼 가장 크게 벌린 주범이 바로 당신, 박근혜입니다. 그중 가장 최악은 ‘박근혜 복지법’이라 불리는 사회보장기본법 26조였지요. 이에 근거해 당신은 지방정부에서 시행하는 복지사업 대부분을 중앙정부와 유사·중복된다며 마구 삭감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중앙정부의 복지 공백을 채우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삭감의 칼부림이 장애인들에겐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중단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결과, 중증장애인의 일상은 반토막 났습니다. 밤에 체위 변경해줄 사람이 없어 욕창을 견디며 그대로 누워있어야 했고, 아침이 올 때까지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던 지난 시간, 활동보조인 없는 사이 일어난 화재로 김주영·송국현이 죽었습니다. 장애인들은 자신도 그처럼 죽을까 봐, 잠도 편히 잘 수 없었습니다. 글자 그대로 박근혜 당신은 ‘장애인이 두 발 뻗고 잠도 편히 잘 수 없게’ 고문한 겁니다.


그 바탕엔 장애를 1~6급으로 나눈 장애등급제가 있지요. 장애인의 실제 삶을 보지 않고 그저 행정적 편의에 따라 나눈 등급으로 서비스 자격에 제한을 두는, 그 악질적인 장애등급제 말입니다. 덕분에 정부는 등급 재심사로 중증장애인 수를 늘리고 줄이는 방식으로 장애인 복지예산을 조율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해왔습니다. 그래서 당신도 후보 시절 장애등급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것 아닙니까. 하지만 당선 후 역시나,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2014년 2월 26일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은 기억나십니까. 서울 송파구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 살던 세 모녀가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편지와 함께 70만 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삼십 대 두 딸은 신용불량 상태였고 예순의 어머니가 식당일로 번 150만 원으로 이들은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해 1월 어머니가 사고로 더는 일 할 수 없게 되자 이들은 죽음을 택했습니다. 이들은 그때까지 어떤 복지도 받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니, 받을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송파 세 모녀’는 박근혜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를 일컫는 고유명사였습니다. 그해 12월, 빈곤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정부는 일명 ‘송파 세모녀법’이란 이름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전면 개정했고, 시민사회단체는 ‘개악’이라며 반대했습니다. 왜냐면 이를 적용해도 송파 세 모녀는 여전히 기초생활수급비 한 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으로 새로운 빈곤 문제까지 더해졌습니다.
 

당신의 대표 공약, ‘모든 어르신께 20만 원’은 어떠했습니까. 박정희 시대의 향수를 지닌 어르신께 그 공약은 매력적이었지요. 당신을 당선으로 이끄는 발판이 됐습니다. 하지만 당선 후, ‘모든’은 ‘하위 70%’로 축소됐고, 이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기초생활수급자 노인은 제외됐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기초연금을 ‘수입’으로 보고 생계비에서 그만큼 차감하기 때문입니다. ‘줬다 뺏는’ 그 가장 치사한 짓을 지금 당신이 하고 있습니다.
 

지난 4년,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삶은 재난 그 자체… 국가는 없었다


그렇게 당신은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서 가장 많은 것을 착취했습니다. 당신은 ‘비정상의 정상화’ 제1호 과제로 복지 부정수급 근절을 꼽고, ‘정부 합동 복지부정 신고센터’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복지 수급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는 거였습니다. 가난과 장애는 그 자체로 ‘죄’가 됐고, 복지는 권리가 아니라 수치의 대가였습니다. 마른걸레 쥐어짜듯 가난을 쥐어짠 결과,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로 불과 1년 새 장애인, 노인, 저소득 등 취약계층 예산 3분의 1이 삭감됐습니다. 그 돈이 당신과 당신 측근, 재벌 주머니로 들어간 것을 이제야 확연히 알게 됐습니다.

박근혜 탄핵안 가결 결과를 전하는 JTBC 영상 캡처

지난 4년간 전국 방방곡곡 장애인의 삶은, 가난한 이들의 삶은 쓰나미에 휩쓸리는 듯한 총체적 재난 상황이었습니다. 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제 손으로 죽이고 자신도 따라 죽는 일은 너무 흔했습니다. 제아무리 가난해도 가족이 있으면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기초생활수급비 50만 원 받을 수 없는 게 ‘복지’였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앞둔 노인은 쪽방에서 하루 한 끼 겨우 먹고 기력 나는 데로 리어카 끌고 폐지 주우러 다녔습니다. 딱 마른 신체 누울 만큼의 쪽방이 그 노인의 관이 되곤 했습니다.
 

당신은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이 시나브로 죽어갈 때도 올림머리하고 옷값으로만 7억 원가량을 썼던 거지요. 2014년 4월 16일, 눈앞에서 거대한 선함이 침몰하고 있어도 당신에겐 시각적 스펙터클일 뿐, 무슨 감응이 있었겠습니까. 당신에겐 평범한 하루였던 겁니다.
 

당신이 퇴진한다고 한들,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삶의 문제가 해결되진 않습니다. 정작 내년도 장애인 예산만 해도 자연증가분조차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활동보조서비스 이용자는 올해 하반기 실 이용자 수가 63000명을 넘었음에도 복지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63000명 기준으로 잡았고, 국회는 이를 수용했습니다. 서비스 단가도 중개기관 수수료 25%를 제외하면 최저임금도 안 되는 9240원으로 책정됐습니다. 전년보다 고작 240원 오른 금액입니다. 송파 세 모녀 같은 위기 가구를 지원할 수 있는 긴급복지지원 예산은 대폭 삭감됐습니다. 올해의 고통은 내년에도 반복될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퇴진해야 합니다. 당신은 국정을 농단하고 각종 부정부패를 저지른 처벌받아야 할 범죄자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어 형사상 소추가 불가능하여 처벌이 유예됐을 뿐입니다. 그래서 당신도 끝까지 버티는 거겠지요. 하지만 고작 당신과 그 부역자들을 감옥에 보내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일 순 없습니다. 이는 ‘인간다운 삶’으로 가는 징검다리 하나 건너는 것에 불과합니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장애와 가난이 죄가 되지 않는 세상, 그 지극히 당연한 삶을 이젠 살아야겠습니다. 당신 손에 수갑을 채우고 수의를 입힐 것입니다. 가난으로 옥에 갇힌 이들이 나온 빈자리는 당신과 당신 친구들이 채우십시오. 당신이 대통령직에 있어 지난 4년간 시국은 어수선하고 사회는 극히 혼란스러웠습니다. 이제 그 혼란을 바로 잡으려 합니다. 우리가 받은 그 고통의 총량만큼, 이젠 당신네들이 이를 받길 바랍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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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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