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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의 광장’에서 ‘나라’의 씨앗을 보다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진짜 ‘나라’를 만들자
등록일 [ 2016년12월12일 16시08분 ]
지난 12월 3일 낮에 잠시 광화문을 들렀다. 저녁에 다른 일정이 있어서 오래 있지는 못하고 광화문 지하 해치마당에 앉아 끊임없이 몰려드는 인파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봤다.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흥분된 발걸음을 재촉하는 가족도 눈에 띄었고, 광장에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행운을 누린 사람도 있었다. 이 엄청난 인파 속에는 물론 혼자 온 사람도 있었겠지만 누구도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난 아직까지 보지 못했지만, 집회솔로족을 위한 ‘혼자 온 사람들’이라 적힌 깃발도 등장했다 하지 않는가.

광장이 주는 경이로움의 백미는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단지 200만 인파가 함께 ‘박근혜 퇴진’을 외쳐서라기보다는, 누구도 혼자이게 하지 않는 이 광장의 너른 품. 집회에 참여한 이들 중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배제하는 발언이 아니라면, 어떤 이의 분노와 슬픔, 한숨이라도 기꺼이 들어주고 박수를 쳐주는 따뜻함.

ⓒ 참세상 김용욱 기자

나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이 차려놓은 서명 테이블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집회에 빈손으로 온 사람들이 이 서명 테이블에 들러 손피켓을 하나씩 받아갔다. 손피켓의 한 쪽 면에는 “박근혜 즉각 퇴진”이라고 쓰여 있었고, 다른 쪽 면에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라고 적혀 있었다. 손피켓을 가져가는 사람 중에는 한 장만 쓱 빼서 가져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피켓의 반대쪽 면을 뒤집어보는 사람도 간간히 있었다. 옆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나는 사람들이 피켓의 반대쪽 면을 뒤집어 볼 때마다 살짝 겁이 났다. 혹시나 나에게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이게 무슨 말이에요?”라고 묻거나 “박근혜 퇴진 외쳐야 할 집회에서 이런 쓸데없는 구호는 왜 적어놓는 거에요?”라고 다그치면 어쩌나 싶었다. 한산한 분위기에서라면 찬찬히 설명해 드릴 수 있었겠지만 이날의 분위기에서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 그런 질문을 던지는 분은 없었다. 그보다는 테이블 앞에 서서 당당히 목청을 높이며 서명을 독려하는 활동가들의 목소리에 이끌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서명대로 사람들이 줄지 않고 모여들었다.

이날 밤 늦게 SNS에는 ‘랩하는 장애인 할아버지’라는 제목의 영상이 돌기 시작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촛불집회 무대에 올라, 평소에 즐겨 부르던 민중가수 젠(ZEN)의 ‘공간이동’이라는 노래의 한 구절을 부른 장면을 담은 영상이었다.

“내 모습 지옥 같은 세상에 갇혀버린 내 모습, 그 모순! 자유, 평등, 지키지도 않을 거짓 약속 흥~ 닥치라고 그래. 언제나 우린 소외받아왔고 방구석의 폐기물로 살아왔고. 그딴 식으로 쳐다보는 차별의 시선 속에 동정 받는 병신인줄 아나? 닥쳐 닥쳐라! 우린 병신이 아냐!”

박근혜 정권 4년 동안, 정부의 외면 속에 복지 사각지대로 내몰려 죽어가야 했던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다 이 노래로 자연스레 넘어간 박경석 대표의 목소리를 떨리는 듯 했다. 그러나 랩이 끝나자마자 터져 나온 촛불인파의 함성이 그 떨림마저 보듬어 안았다. 그의 랩은 지난 4년간 광화문역 지하보도에서, 복지 사각지대로 내몰려 죽어간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영정을 끌어안고 풍찬노숙하며 외롭게 불러야만 했던 노래였다. 그 외로운 노래가 200만 촛불의 따뜻한 온기에 안기는 모습은 이번 촛불정국 속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명장면으로 기억될 것 같았다.

광장을 향한 이런 찬사를 두고 너무 섣부르다 타이르는 목소리도 있을 것이다. 장애인들이 수년간 생존권을 걸고 싸우는 현장에는 외면하고 때로는 욕설을 퍼붓기도 했을 사람들이, 잠시 광장의 열기에 기대어 이들의 싸움에 박수를 쳐줬다 하여 우리의 현실이 그리 달라진 것은 없다고, 여전히 광장은 소수자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분위기가 작지 않다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선 이 섬광처럼 다가온 ‘환대의 광장’을 향해 작은 낙관론을 펼쳐보고 싶은 바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지배권력의 폭력적 민낯은 반대로 그간 수많은 대중이 외면했던 사회 곳곳의 아픔과 고통의 면면까지 드러나게 했다. 사람들은 정유라에게 수억 원의 말을 갖다 바치면서 국민의 노후를 갈취한 삼성이, 반대로 정유라와 비슷한 나이에 백혈병에 걸려 죽어간 故황유미를 어떻게 짓밟았는지를 다시금 환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권력자가 평일 대낮에 뻔뻔하게 머리손질이나 하고 있던 와중에 300여 명의 생명이 고스란히 바다에 갇혀버린 진실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그 엄연한 진실을 그동안 외면했던 미안함을 사람들은 광장의 자유발언 속에서 속죄했다.

이런 ‘속죄’는 그간 우리가 접해왔던 ‘국가의 명령’과는 다른 것이었다. 사실 대한민국은 한번도 ‘나라’라는 말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래 전 함석헌 선생이 말한 것처럼 ‘나라’라는 말은 “너도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공동체가 형성되었을 때 성립할 수 있는 말이다. “너의 고통도 나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 ‘나라’에 살고 있다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난 역사 속의 대한민국은 언제나 “너는 너라”고만, “너의 고통은 오직 너라”고 단언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 앞에서 국가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으며, 남일인 듯 그저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그렇게 구하기가 힘듭니까”라는 엉뚱한 말이나 늘어놨다. 그뿐인가. 2014년 2월 송파 세모녀의 죽음 직후, 정부는 “복지제도를 알지 못한 세모녀가 급여신청을 하지 않는 것”이 사건의 원인이었다고 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삶을 향해 ‘지푸라기라도 잡았어야지 왜 그것도 안 했냐’고 다그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오직 ‘외면하는 국가’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는 스펙터클의 맞은편에서 열린 광장을 통해 ‘응답하는 대중’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아직 그 목소리는 작지만 이들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너도 나라”고. ‘나’의 부름에 ‘네’가 응답하는 이 끝없이 연결된 대화 속에서 하나의 씨앗이 던져졌다. 우리가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나라’의 씨앗이.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탄핵은 그저 새로운 씨앗이 뿌려질 땅에 섞인 모래를 퍼내기 위한, 첫 삽을 뜬 것에 불과하다. 개간될 땅에 씨앗이 뿌려지고 마침내 열매를 맺게 될 때까지 서로에 대한 부름과 응답을 멈추지 말자. ‘환대의 광장’은 더 오래 지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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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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