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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복지국가’를 탄핵하라! 복지를 ‘민주화’하라!
[비마이너 7주년 토론회 토론문③] 박근혜가 계승한 육영수의 복지 이념, 그 ‘제왕적 복지’와 결별해야
등록일 [ 2017년02월20일 14시44분 ]

지난 2월 14일 진행된 비마이너 7주년 기념 토론회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이 원하는 새로운 나라, 어떻게 만들까?>에서 발표된 토론문을 필자들의 허락을 얻어 순서대로 게재한다. 현재의 촛불항쟁이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이 원하는 나라를 만드는데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고민과 실천이 필요한지에 대해 독자들과 더욱 활발한 토론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 이전 토론문 보기 >>

▷ 역사 속 도시하층민 항쟁이 오늘에 던지는 메시지 (하금철 비마이너 편집장)
▷ 촛불시위, 민주주의는 어디에?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작년 10월 29일부터 토요일마다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든 촛불시민의 일원으로서 나는 박근혜의 무엇에 분노했는가? 언제부터인가 광장의 분노가 ‘정신 나간 아녀자들’에 대한 분노로 젠더화 되고, ‘이성적인 남자’ 대통령에 대한 열망으로 대체되면서 솔직히 ‘나는 왜 계속 촛불집회에 나가고 있나? 어차피 헌재에 의해 탄핵될 텐데....’ 하는 회의가 들었다. 그러나 설 지나 2월 4일 다시 찾은 광장의 함성에서 나는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우려한 것과 달리 촛불은 사그라들지 않고 새로운 활력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애초 1백만, 2백만 명이 한꺼번에 광장에 쏟아져 나올 때 단지 최순실의 국정농단 때문만은 아니었다. ‘울고 싶은 놈 뺨 때린다’고 숨막힐 것 같은 ‘헬조선’에 대한 분노가 최순실 ‘게이트’로 분출한 것이다. ‘박근혜 퇴진’으로 모아졌지만 그것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는 분노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는 박근혜의 무엇에 화가 났던가? 더 이상 무엇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인가?

역사 속에서 우리 촛불시민은 누구인가?

2차 촛불집회로 기억한다. 사람들이 광화문 네거리로 끝없이 모여들고, 연단에 선 김용옥 교수는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다. 우리는 혁명을 해야 한다”며 사자후를 토하고 있었다. ‘좀 오버한다’는 느낌에 웃었지만, 여기 저기 산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사람들의 외침에 ‘아, 나는 지금 역사 속에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3차 촛불집회부터 곳곳에 마련된 자유발언대에서 “우리는 지금 역사적인 순간에 있고, 내가 촛불집회에 나온 건 훗날 내 자식이 아버지는 그때 뭐했어? 라고 물을 때 당당하게 대답하기 위해서” 라는 말들이 들려 왔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이었지만, 광장의 촛불이 역사적 의미를 가질 거라는 확신을 느낄 수 있었다. 

2월 14일 열린 제16차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범국민행동 집회 모습 ⓒ박근혜정권 퇴진을 위한 비상국민행동


대학사회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성명서가 조직되면서, 나는 1987년 6월 ‘독재타도’를 외치는 시위대와 지금의 촛불시위가 오버랩 되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지금의 촛불시위는 87년 민주화시위를 반복하면서, 87년 체제를 끝내는 데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하야’라는 단어가 튀어나오고 대통령 퇴진이 당연시되는 분위기 속에서 촛불시위는 4.19 혁명을 반복하면서, 박정희 체제를 끝내는 역사 속에 있었다. 그러나 “5천만이 시위해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어느 늙은 정치인의 말처럼 박근혜는 완강히 버텼고, 촛불시민은 탄핵이라는 법적 절차를 국회에 요구했다. 새누리당의 분열과 야권의 분열 속에서 탄핵소추안 통과가 불투명해진 12월 2일, 200만이 넘는 시민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촛불은 국회를 태워버리고, 곧바로 제헌 혁명 상황으로 치달을 기세였다. 이에 겁먹은 여당 국회의원 다수가 탄핵 찬성으로 돌아와 결국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미국의 격월간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는 이 상황을 '한국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이 분노한 신이다(In Korean democracy the people are a wrathful god)'라는 제목으로 타전했다. 촛불집회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나는 ‘민주주의의 분노한 신’이라는 표현에서 매주 ‘오늘도 그게 있을까?’ 하며 기다리던 것의 정체를 알게 됐다. 그건 민주주의 분노한 신이었다. ‘존재’와 ‘행위’가 구분되지 않으며, 존재의 과시만으로 절대적인 힘(벤야민이 ‘신적 폭력’이라고 부른)을 행사하는 주권자 말이다. 광장의 촛불은 헌법 전문에 추상적으로만 존재해온 민주주의의 주권자, 국민의 물리적 현현이었다. 우리는 매주 그 주권자를 만나러, 주권자를 이루러 광장에 나간 것이다. 12월 2일 나는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국민이 신이다. 왕의 목을 쳐라!”라고 외친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역사를 주파하고 있는 촛불시위를 볼 수 있었다.


박근혜는 자신을 왕이라 생각했다. 촛불은 왕에 대한 분노다.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의 분노는 ‘왕’에 대한 분노였다. 박근혜는 자신을 왕이라고 생각했다. 박근혜에게 공화국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게 아니라 부모로부터 (박정희를 나랏님으로, 육영수를 여왕으로, 박근혜를 가련한 공주로 여기는 유권자들의 투표로) 상속받은 것이었다. 그녀는 청와대를 자기 ‘집’으로 생각했다. 박근혜는 대부분의 업무를 사적 공간인 ‘관저’에서 보았다. “국가와 결혼했다”는 말도 ‘짐이 곧 국가다’는 루이 14세의 말과 같다. 박근혜는 자신의 사생활이 곧 국정이라 여겼다. 그래서 아무런 공적 지위가 없는, 사적 관계의 최순실과 국가권력을 공유한 것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세월호 사건 때 보여준 충격적인 무책임함, ‘위신’과 ‘의전’에 대한 과도한 집착, 비판에 대한 히스테릭한 반응, 연설, 토론 등 언어능력에서의 비의적(제왕적) 무능력 등은 모두 자신을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선실세 최순실이 라스푸틴에, 그 아버지 최태민이 신돈에 비교되고, 비선모임이 ‘십상시’로 불려지고, 세월호 7시간의 공백이 마리 앙뚜아네트 풍 궁중비화로 채워지고, 그래서 광장에 단두대가 등장하고,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주제가가 불려지고, 전봉준 투쟁단이 상경하는 등 광장의 분노가 타락한 왕에 대한 민중의 반란으로 표상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촛불시위는 지금 왕정주의를 폐지하고 민주공화정을 수립한 근대 시민혁명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광장의 촛불은 지금 근대 시민혁명 이후 끝없이 되돌아온 질문, 공화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런데, 촛불 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박근혜의 왕정주의적 적폐를 반복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치민다. 유력 대선후보 문재인의 부인 김정숙 씨의 발언에 화가 난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1월 16일 김정숙 씨는 언론사 기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출산은 “인류가 번성하게 되는 기반”이며, 양육은 “애랑 나랑 육체적으로 젖 물리면서 교류하고 하면서 책임감과 사랑도 느끼게 되는 것”으로, 누리과정으로 국가가 맡아 기른 아이들은 정서가 불안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도대체 지금이 어느 때인데 모성 본능 운운하는가? 여자의 사랑과 책임이 집에서 애한테 젖 물리는 거라니?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맞벌이 부부의 노동현실을 무시하는 데 화가 났고, 더 이상 그 따위 모성 본능에 자기 삶을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여성주의적 욕망의 현실을 무시하는 데 화가 치밀었다.


사실, 김정숙 씨의 발언에 화가 난 더 큰 이유는 그 발언의 맥락에서 느껴지는 ‘영부인’ 역할 때문이다. 김정숙 씨의 발언은 박근혜 탄핵 후 치러질 조기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문재인의 부인, 즉 ‘영부인’이 될 가능성이 가장 많은 이의 사전 선거운동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고, 그렇기에 언론이 주목한 것이다. 어떤 신문기사는 “배우자가 없는 대통령이 취임 이후 4년 간 '소통 부재'로 정치·사회와 갈등을 빚었고 끝내 최순실 게이트로 자리에서 물러나야할 위기까지 겪고 있는 점에서, 대통령의 부인, 즉 영부인은 그래서 중요하다.”는 놀라운 시사평을 깐 뒤 예비 ‘퍼스트 레이디’들의 행보를 비교하기까지 했다.1)
 

촛불의 명령이다. 폴리스에서 왕의 오이코스를 몰아내자!


화가 치밀었다. 광장의 분노가 무시되다 못해 우롱당한 느낌이다. 사람들이 광장으로 뛰쳐나온 것은 무엇 때문인가? 박근혜가 사적 관계에 있는 최순실과 대통령의 공적 권한을 공유했기 때문이 아닌가? ‘폴리스’(police: 공적 정치영역)에서 왕의 ‘오이코스’(oikos: 가정, 집)를 몰아낸 것이 근대 시민혁명의 공화주의 정신이고, 또한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국민들이 분개하여 광장으로 뛰쳐나온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근대 시민혁명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왕정제의 유산인 대통령제2)를 근본적으로 반성하면서 인민주권이 ‘퍼블릭(public)’ 하게, ‘민주적’으로 대의될 수 있는 시스템을 모색해야 마땅하지 하지 않은가?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은 차차 하더라도, 이참에 왕정제의 가족주의적 유산인 ‘영부인’(퍼스트레이디) 제도만큼은 없애자고 제안하는 게 합당하지 않은가? 박근혜가 독신이어서 이 사단이 났다고? 거꾸로다. 문제의 원인은 가족의 결핍이 아니라 가족의 과잉이다. 박근혜는 7,80년대부터 최태민과 그의 딸 최순득, 최순실과 확장된 가족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어떤 가족보다 더 가족같은, 사적으로 친밀하고, 폐쇄적인 경제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문재인 예비후보도 집권 후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로 옮기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는가? 그런 마당에 ‘영부인’ 행보가 가당키나 한가? 촛불시민혁명으로 쓸어내야 할 ‘적폐’ 1호는 민주공화제 안에 남아 있는 왕정주의의 잔재이다. 대통령제를 없애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대통령을 왕처럼 생각하면서 그의 매력, 그의 가족, 그의 내면에 동일시 기제를 발동시키는 왕정주의적 정치 문화를 일소해야 한다. 대통령은 선출된 공직자일 뿐이다. 그에게 요구되는 건 사적인 매력이나 인격이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공적 임무에 대한 책임감과 자질, 실천의지, 그리고 시민적 윤리일 뿐이다.
 

누가, 왜 ‘꽃동네’를 방문하는가?

대선 행보 와중에 꽃동네를 방문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YTN 뉴스 화면 갈무리


‘영부인’ 행차와 비슷한 이유로 나는 지난 1월 14일 반기문의 ‘꽃동네’ 행차에 화가 났다. 누워 있는 사람에게 죽을 떠먹이고, 떠 먹이는 이가 턱받이를 하는 건 사실 부차적인 문제다. 대통령 후보 행차랍시고 ‘꽃동네’를 찾아 무방비 상태의 와상 장애인을 굽어 돌보는 퍼포먼스를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영부인 행차의 단골메뉴였던 그것은 본질적으로 왕의 주권적 행차였다. 삶의 끝자락에서 죽음만 기다리는 이들을 구제하는 주권자의 행차 말이다. 중세 기독교는 주권자-신의 통치를 가시화하기 위해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모아 돌보는 ‘구빈원’을 만들었다. 2014년 8월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애인 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꽃동네’를 방문한 것도 오웅진 신부의 ‘꽃동네’가 현대판 ‘구빈원’이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구빈원이 ‘꽃동네’ 같은 복지시설, 즉 부랑인, 장애인 수용시설로 전환된 것은 17세기 들어서이다. 17세기에 구빈원은 주권자-왕의 칙령에 의해 왕의 직속 명령을 받는 통치기구로 전환되었다. 그곳은 광인, 부랑인, 불구자, 무의탁 노인, 걸인, 범죄자, 성병환자, 방탕아 등을 집단 수용함으로써 ‘비이성’의 전시장으로 기능했으며, 또한 인간적(이성적), 시민적(법률적) 삶의 제 형식들이 박탈된 인간 생명체에 대한 주권자-왕의 돌봄(통치) 능력을 보여주는 기능을 했다.


흥미롭게도, 중세 기독교 신학에서 법 바깥의 인간 생명에 대한 주권자-신의 돌봄을 ‘오이코노미아’(oikonomia, economy경제의 어원)라고 불렀다. 고대 그리스에서 오이코노미아란 오이코스(가정)와 노미아(질서nomos를 부여하는 행위)의 합성어로 가정(집)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 남자 시민이 가장(despotes)으로서 가정에 속한 이들(자식, 아내, 노예 및 식솔)을 낳고, 돌보고, 처벌하는 ‘가정관리’를 가리켰다. 그것이 중세 기독교에서 신은 마치 가장이 가정을 돌보듯 세상을 돌본다는 의미로 신의 ‘통치’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16세기에는 왕이 단지 군림할 뿐만 아니라 신을 대리하여 인민을 통치해야 한다는 생각이 형성되었고, 왕이 국가기구를 이용해 인민을 통치하는 행위를 ‘오이코노미아’라 부르기도 했다. 국민을 위한 ‘이코노미economy’, 즉 국민경제의 의미가 출현한 것이다. 17세기에는 그런 국가(왕)의 통치활동을 주로 ‘폴리스police’라고 불렀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날카롭게 분리되었던 오이코스와 폴리스, 오이코노미아와 폴리테이아(politeia폴리스에 질서를 부여하는 활동, 정체政體)가 중세 기독교를 경유하여 절대군주제 하의 근대국가에서 통합된 것이다. 


18세기, 왕정제가 폐지되고 19세기, 자본주의와 시민사회가 확산되면서 오이코노미아는 폴리스로부터 시장의 ‘경제economy’로, 시민사회의 개별 가정들로 분리돼 나왔다. 그러나 왕정제가 폐지되어도 오이코노미아는 여전히 근대 국가 속에 남아 있었다. 왜냐하면 국가는 국민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는 ‘통치하는 국가’, 즉 통치(government) 국가의 이념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그 통치국가 이념은 독재자(despot)가 집안의 가장처럼 국가를 오이코노미아의 원리로 통치하는 것을 허용하게 만들었다. 절대군주의 구빈원을 반복하는 스탈린의 굴락과 히틀러의 아우슈비츠는 국민의 생명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통치 국가의 극단적 모습이다. 스탈린과 히틀러의 오이코노미아적 통치국가와 서구 민주공화국의 통치국가 이념인 ‘복지국가’는 어떤 점에서 다르며, 달라야 하는가? 그것은 2012년 대선 때 ‘복지국가’의 기치를 내걸고 당선된 박근혜를 끌어내리는 촛불시민에게 던져진 질문이기도 하다. 어떻게 오이코노미아가 아닌, 공화주의, 민주주의 원리로 복지국가를 실현할 것인가?


박근혜의 통치 이념은 육영수의 복지 이념에서 왔다.


박근혜에게 ‘복지국가’란 뭘까? 어쩌면 그것은 국가를 복지재단, 복지시설처럼 운영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도 오이코노미아(가족경영)의 원리로. 박근혜는 이런 시대착오적인 통치술을 언제, 누구한테 배웠을까? 자신의 공적 권한을 유사-가족관계에 있는 최순실 일가와 공유한 경험과 노하우는 30년 전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있을 때 얻은 것이다. 육영재단은 1969년 육영수가 기업으로부터 출연한 돈으로 설립한 아동 복지재단이다.3) 박근혜와 육영재단의 관계는 육영재단의 설립자 육영수와 박근혜의 영적 관계에 아로새겨져 있다. 박근혜의 올림머리, 박근혜의 의상 스타일, 박근혜의 외양에 현혹되어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 즉 박근혜의 통치 이념이 육영수로부터 물려받은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의 경제공동체가 최태민이 육영수와 영적으로 소통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잊어선 안 된다. 2012년 대선 때 사람들은 박정희라는 이름에 현혹되어 박근혜가 육영수의 혈연적, 젠더적, 이미지 정치적 후계자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가 내세운 것은 박정희의 ‘경제성장’이 아니라 육영수의 ‘온화한 복지’ 이미지이다. 기억하는가? 이명박의 경제성장 담론의 실상(4대강 사업)에 분노한 대중이 왜 같은 당의 박근혜를 찍었는지? 당시는 전국에 무상급식 돌풍이 불어 바야흐로 ‘복지국가’의 열망이 최고조에 오른 때였다. 사람들은 박근혜에게서 육영수를, 경제성장의 이면에서 병들고 가난한 이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내민 육영수, 한국적 복지의 어머니를 본 것이다.


1965년 2월 25일 대구 고아원을 방문한 육영수 여사 ⓒe-영상역사관

박근혜는 2011년부터 대선 핵심화두이자 기본철학으로 ‘필요한 사람에, 필요한 때, 필요한 곳에 작동하는 복지체계’라는 개념으로 ‘맞춤형 복지’를 내세웠다. 그러면서 그런 복지철학을 어머니 육영수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2011년 8월 15일 육영수 추도회에서 “어머니는 어렵고 힘든 분들 도와주시면서 자립과 자활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면서, 육영수가 지방 방문 시 시골청년으로부터 사육할 돼지 몇 마리를 부탁받자 “돼지 사료 값이 비싸니 번식력 강하고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토끼를 길러보라”고 해 도움을 준 일화를 소개했다.4) 가난한 청년이 돼지를 지원해 달라니까 비용이 덜 드는 토끼를 줬다는 일화를 소개할 때 알아챘어야 했다. 말은 번지르르한 자립과 자활, 맞춤형 복지가 뭘 뜻하는지. 집권 후 일관된 복지축소, 복지구조조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자립과 자활은 국가에 의존할 생각하지 말고 각자 알아서 살라는 뜻이고, ‘맞춤형’ 복지는 보편적 복지에 반하여,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꼭 필요한 때만, 꼭 필요한 곳이라고 중앙정부가 선별한 곳에만 복지예산을 지원하겠다는 뜻이다. 


박근혜가 소개한 일화에서 육영수가 방문한 지방은 평범한 농촌이 아니라 국토개척단이 만든 오지의 정착촌 중 하나였을 것이고, 육영수에게 돼지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한 시골청년은 그 정착촌에 수용된 부랑아, 고아, 음성나환자 등 가정과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박정희 군부세력의 복지사업 중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1950년대의 아동 후생사업을 종합하여 상세히 규정한 아동복지법과 부랑아, 연장고아, 음성나환자들을 거리에서 없애고 국토개발 인력으로 동원하기 위해 대규모 정착사업을 벌인 것이다.5) 이에 대해 육영수가 한 일은 아동복지사업을 위해 육영재단을 만들고, 정착촌을 위문 방문하는 것이었다. 육영수의 정착촌 방문 중 가장 드라마틱한 곳은 한센인 정착촌, 현애원(현애마을)이다. 육영수는 1966년에 현애원을 첫 방문해 마을 주민들의 숙원사업이던 공동목욕탕 건립 기금을 지원했고, 1971년에는 한센인 한하운과 함께 두 번째 방문하여 의류, 책, 그리고 종돈 20두를 위문품으로 전달한 바 있다. 이런 인연으로 한센인들은 육영수 사후에도 박근혜의 육영수 추모사업과 육영재단에 각별한 충성심을 보였다. 2007년 11월 28일 한빛복지협회(전국 한센인들의 모임) 임두성 회장(한나라당 18대 국회의원)은 한센인과 조직폭력배 100여명을 이끌고 1시간 만에 집무 중이던 박근령 이사장을 강제로 끌어내고, 근무 중이던 간부 25여명을 폭력으로 쫒아냈다.


오이코노미아(가정관리) 형 ‘복지국가’를 탄핵하라!


내가 반기문의 꽃동네 방문에서 박근혜의 적폐를 느낀 것은 바로 거기서 육영수의 현애원 방문을, 육영수의 복지 관념을 보았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일본의 메이지 천황을 본받아 ‘유신’(근대화)을 했듯이 육영수는 메이지 천황가가 은사금을 내려 제생원(濟生院)6)을 만든 것을 본받아 육영재단을 만들고, 복지시설의 자활을 지원했다. 그것은 ‘제왕적 복지’이다. 거기서 왕의 주권을 드러내는 복지는 ‘濟生’, 즉 ‘생명을 구제하는’ 것이다. 왕에 의해 구제될 생명은 어떤 생명일까? 그것은 생물학적인 의미의 생명, 단지 살아 있음으로만 정의되는 삶이고, 오웅진 신부가 말한 “구걸할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인 꽃동네 거주인들의 삶이고, 안희정 예비대선후보가 말한 “침몰하는 타이타닉 호에서 구명보트에 탈 순서를 기다리는” 삶이다. 폴리스에서의 시민적 삶의 제 형식들이 박탈된 채 오이코스에만 예속된 생명을 구제하는 것(濟生)이 제왕적 복지의 본질이다. 육영수는 메이지 천황가로부터 그 ‘제생’의 복지 관념을 배웠으며, 박근혜는 육영수로부터 그 복지 관념을 물려받았다. 그래서 박근혜는 맞춤형 복지라는 미명 하에 복지가 꼭 필요한 사람, 꼭 필요한 때, 꼭 필요한 곳에 대한 심사를 중앙정부로 일원화했으며(사회보장기본법), 필요에 대한 심사를 감시와 처벌로 경찰화 했으며(복지부정 신고센터), 복지가 필요한 것을 비정상으로, 부끄러움으로, 죄악으로 도덕화 했다.(비정상의 정상화)

2010년 12월 당시 박근혜 의원이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안을 제시하며 자신의 복지국가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촛불시민혁명의 과제는 박근혜 통치의 본질인 왕정주의를 척결하는 것이다. 그 과제의 핵심에 제왕적 복지, 오이코노미아적 복지를 척결하고 복지에 민주주의, 공화주의 원칙을 도입하는 것이 있다. 복지는 죽음과 마주한 벌거벗은 인간생명을 구제하는 사업이 아니다. 복지는 폴리스에서 배제된 채 오이코스에만 속한 인간 생명체를 돌보는 것이 아니다. 복지에 공화주의적 원리를 도입하는 것은 복지를 ‘오이코스’가 아니라 ‘폴리스’의 ‘공적인’ 사업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인의 삶을 오이코스의 생명체, 즉 생물학적 생명체로 보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며, ‘부양의무제 폐지’는 복지가 가족(오이코스)의 일이 아니라 공공의 사업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복지에 민주주의를 도입해야 한다. 복지는 오이코스의 피부양자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폴리스의 시민, 즉 자유롭고 평등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가진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다. 이동권 싸움과 탈시설 운동이 지닌 의미도 장애인을 오이코스(가정과 시설)에서 안전하게 보호받는 피부양자가 아니라 폴리스의 주체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살게 하는 싸움이다. 활동보조서비스 제도 역시 단순히 거동을 돌보는 게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활동권’을 획득하는 싸움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박근혜의 복지를 탄핵하라’는 구호는 촛불시민의 광장에서 부차적인 구호가 아니다.


* 각주

1) 매일경제,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 퍼스트레이디 레이스 시작됐다」, 2017.01.26


2) 세계 최초의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유럽 각국의 군주에 대응하기 위해 ‘선출된 왕’으로, 미국인들은 유럽의 왕과 미국의 대통령이 어떻게 다른지 구별하지 못했다. 마치 박근혜 지지자들이 이승만과 박정희를 ‘국부’, 혹은 ‘나랏님’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3) 육영재단은 어린이회관과 어린이대공원을 운영하고 어깨동무·꿈나라·보물섬 등 교육·출판·문화 사업을 벌였다. 80년대는 비록 박정희의 후광은 사라졌어도 자체 수익사업과 기업 후원 등으로 운영됐다. 당시 직원들은 “최태민이 86년 고문격으로 등장한 이후 근화원 공사를 추진하면서 기업의 협찬을 받아내기 위해 직원들을 많이 괴롭혔다”고 말했다. 최씨는 재단의 주요 업무와 자금 지출까지 모두 관리했다. 육영재단 부설 유치원 원장을 맡은 딸 최순실은 어린이회관의 전시시설을 철거하고 유치원을 확장하려다 직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직원용 숙소였던 정수아파트는 직원들을 쫓아낸 뒤 팔렸다. 최순실 일가의 농단으로 육영재단은 경영 위기를 겪었다. (국민일보, 「“30여년 전 ‘육영재단 농단’ 지금의 국정농단과 판박이”」, 2017.01.16)


4) 헤럴드경제, 「박근혜 “개인상황 맞춘 지원이 복지”」, 2011.08.15


5) 김아람, ‘5.16 군정기 사회정책: 아동복지와 부랑아 대책의 성격’, <역사와 현실>, 82호. 참조.


6) 주윤정, ‘자선과 자혜의 결합: 식민지 ’맹인‘ 사회사업과 타자화 과정’, <사회와 역사>, 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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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lizom@hanmail.net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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