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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품격의 나라
인간의 ‘존엄/존중’과 무관한 의전주의자들의 품격은 가라
등록일 [ 2017년03월08일 13시44분 ]

2009년 서울대 문화관 대강당에서 당시 여당 국회의원이었던 나경원 의원은 “품격있는 나라”라는 이름으로 강연회를 열었다. '국가의 품격'에 대한 강조는 당시 MB정부의 주요 레토릭(수사)이었다. 말에만 그친 것이 아니다. MB 정부때 설치된 '국가브랜드위원회'의 정책보고서 제목은 「신뢰받고 품격 있는 대한민국」이었는데, 국가브랜드위원회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사에서 강조한 '대한민국의 경제역량에 부합하는 국가이미지와 품격'을 갖추기 위해 설치한 국가기구였다(『2012년 국가브랜드백서: 품격있고 신뢰받는 대한민국』, 국가브랜드위원회, 17면). 품격(品格)이라는 단어를 이루는 한자어는 물건 품(品)과 격식 격(格)이고, 사전적으로도 "주변 형편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수나 품위"를 갖춘 모양새를 뜻한다. 명품백이나 자동차, 값비싼 정장 같은 상품의 가치를 표현하는 말로도 자주 사용되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품격은 어떤 자리에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형식'적 가치를 의미하는 말로 통용된다.


‘국가의 품격’ 이라는 수사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대통령 측 변호인들의 주장에서도 다시 한 번 빛난다. 이들은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출석하여 자신의 주장을 진술하는 일을 “국격이 떨어지지 않겠나”라고 묻는다. 우리는 한 사람의 내면적 본질까지 아우르는 말로도 ‘격’(인격)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적어도 국가의 품격을 이야기할 때의 격(格)은 MB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일관되게 이미지, 브랜드, 형식, 즉 ‘의전’으로 형성될 격이었다.


 의전(격식)이 중시되는 사회는 장애인에게는 대체로 최악의 삶의 조건이다. 엄격하게 정해진 제스쳐는 비표준적 신체들, 혹은 그 의례양식을 체화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스트레스만 준다. 앉고 일어서는 방법과 순서, 말과 움직임의 속도가 품격을 구성할 때, 몸과 말의 속도, 예측불가능성, 불균형, 불규칙을 동반하는 (물론 우리 몸은 나름의 규칙과 질서가 있지만) 우리 신체는 고전주의 시대 귀족들의 연회에 희극적으로 등장했던 장애인들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친다. 이토록 의전이 중시되는 국가에서 장애인은 공식적인 상징적 위치에서 일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비공식적인 일상에서도 기피대상이다. 우리는 때로 음식을 먹다 포크를 날리고, 와인이나 소주, 맥주에도 빨대를 꽂아 마시며, 전동휠체어로 주변을 들이받아 엄숙한 분위기에 흠집을 내도 “그러려니” 하는 공간이 좋다. 


‘그러려니’ 하는 공동체라고 하여, 일상이나 공식적 행사 모두에서 어떤 ‘의례적’ 요소가 부재한다는 말은 아니다. 상호작용의 ‘형식성’은 어느 공간에나 있다. 문제는 그 형식의 ‘목적’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이다. 지금 한국사회의 형식성이란 철저히 권력과 권위를 위해서, ‘의전’에 찌든 사람들의 권력을 떠받들기 위한 목적으로(그것도 목적일까?) 존재한다. 많은 사회적 비용이 윗사람을 모시는 의전에 소비된다.
 

의례적 요소란 본래 종교적 권위를 만들어내는 기능을 했지만, 인류학자 김현경이 뒤르캠과 고프만의 사회학 이론에서 얻은 통찰로 이야기하듯 현대의 우리들은 일상에서 일정한 상호작용 의례를 준수하여, 지위의 다양한 차이들을 넘어 존재하는 ‘인격’에 존중을 표하며, 이를 통해 인격의 보편적 존엄성을 구성한다. 익명의 공간에서는 청소노동자든 경기도지사이든 버스탑승 줄을 서고 서로 존칭으로 대한다(대해야한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은 권위만을 강조하는 과잉된 ‘의전’의 발전이 아니라(그만하면 됐다) 보편적 존엄을 만들어내는 수행의 형식을 발명, 발전, 확산시키는데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의 과잉 의전 문제를 다룬 JTBC '썰전' 화면 갈무리.


‘품격있는 나라’를 강연했던 나경원 의원은 얼마 후 한 장애인시설을 찾아가 이용자인 장애인을 알몸상태로 목욕시키는 장면을 언론에 노출했다. 장애인을 이해하고 싶다면 장애인 시설에 목욕봉사를 가서 해결될 일이 아니지만, 정 그러고 싶다면 당사자의 동의를 철저히 구하고, 주변에 카메라나 사람들의 시선을 배제하고, 동성을 원칙으로, 그의 나이나 의사소통능력, 지적장애가 있는지와 무관하게 그를 존중하는 표현으로 대해야 한다. 존엄성을 목표로 한 ‘의례’의 준수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복지관을 방문하자 복지관의 엘리베이터는 그의 전용이 되었고, 노인과 장애인들은 계단으로 걸어내려와야 했던 유명한 사례는, 존엄/존중과 무관한 의전만을 강조하는 품격주의자들의 사회를 보여주는 또 다른 거울이다.


MB정부 레토릭의 출발지로 추정되는 곳은 2005년 일본에서 출간되어 270만부를 판매한 일본의 수학자 후지와라 마사히코의『국가의 품격』이라는 책이다(2006년 우리말로 번역됐다). 그는 이 책에서 막강한 경제력을 보유하고도 세계질서에 끌려 다니는 일본을 한탄하며, 국가가 지녀야할 ‘품격’의 핵심으로 일본의 전통적 무사도를 꼽는다. 그는 무사도란 약자에 대한 배려도 포함한다고 쓰지만, 사무라이들이 할복이라는 ‘의례적’ 방식으로 목숨을 바치는 대상은 보편적 인간의 존엄이 아니라 쇼군의 권위다. 1970년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는 사무라이의 방식으로 할복하며 자위대의 궐기를 외치고 죽었다. 같은 시기 일본의 뇌병변 장애인들은 “사랑과 정의”는 물론 “비장애인의 문명” 까지도 부정한다고 외치면서 끈질기게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단체 <푸른잔디회>를 결정한다(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죽임을 당한 뇌병변장애아의 삶의 권리를 외치며 투쟁을 전국으로 확장한다). 사랑, 정의, 배려 같은 문명의 언어들 속에서 공허한 형식만을 본 푸른잔디회가, 음식을 마시다 때로 포크를 날리고, 소주 잔에 빨대를 꼽아 마시던 가장 중증의 뇌병변 장애인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은 우연일까? 2017년 의전에 중독된 품격주의자들이 이제 그만 자취를 감추기를 희망한다. 최고 권력자가 음식을 흘리고 포크를 떨어뜨리는 장애인 앞에서 빨대로 와인을 함께 마시는 인간이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인가?

 

원영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

김원영. 서른 살이 넘었다. 장애, 연극, 법에 관심을 두고 산다. 골형성부전증으로 15년간 집에서만 살았으나 한국사회에서 태어난 장애인치고는 운이 좋아 가방끈이 길다. 친절하지 않은 편이나 친밀한 친구들은 몇 있다.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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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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