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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의무제가 지워버린 인천 네 모녀의 삶과 꿈
첫째 딸 성인이라는 이유로 지게 된 부양의무, 위기에 처한 네 모녀 이야기
등록일 [ 2017년03월16일 15시41분 ]

2014년 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송파 세 모녀가 있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이 절실히 필요했지만, 국가는 성인인 두 딸이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이유로 부양의무를 지우고 복지 사각지대에 두었다. 이 사건 이후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건 후 3년이 지난 지금도 또 다른 송파 세 모녀가 존재한다. 사는 모습은 다를지언정,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벼랑 끝 위기에 내몰렸다는 점은 같았다.
 

인천 서구에 거주하는 김현정 씨(척수장애 1급)와 세 딸 이미영, 미진, 미희 씨(모두 가명)도 그들 중 한 명이다. 갓 성인이 된 첫째 미영 씨에게 부양의무가 생기면서 네 모녀가 위기에 놓였다. 송파 세 모녀가 겪던 어려움은 어쩌면 인천 네 모녀가 앞으로 겪을 일일지도 모른다.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위기에 놓인 김현정 씨.

가난한 삶이라도 딸들은 꿈을 꾸었다
 

현정 씨 가족에게 가난의 그늘이 드리운 것은 2004년이었다. 갑자기 남편의 사업이 망했고, 살던 집이 빚쟁이들의 손에 넘어갔다. 당장 세 딸의 유치원비와 분유 값이 없었다. 남편과 별거하고 받은 수급비로 급한 불은 껐지만, 창피하고 자괴감이 들었다. 그녀는 영동대교에서 몸을 던졌고, 경추 손상으로 장애인이 됐다.
 

2004년 말 남편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면서 현정 씨는 수급비에 의존해 13년간 혼자 세 딸을 키워왔다. 현정 씨는 장애인이 되고 2009년에는 방광암 수술을 겪으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하지만 친권을 넘기고 자신이라도 편하게 살라는 시댁과 주변 사람들의 권유를 뿌리쳐왔다. 물론 네 가족이 130만 원 조금 넘는 생계급여, 20만 원가량의 주거급여를 받아 매달 월세로 50만 원, 병원비로 20만 원을 내면 생활비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도 그 부족한 돈을 쪼개서 딸들의 꿈을 지키고 싶었다.
 

“아이들이 평범하지 않아 큰 아이는 미술대학 진학, 둘째는 네일아트와 피부(관리) 배우기를 희망했어요. 셋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댄스, 보컬로 기획사 연습생을 하다가 지금은 사진 모델을 하고 있어요. 막내는 아직 전속 계약을 하지 못해서 제일 많은 돈을 쓰고 있어요. 차비나 밥값이 드는데 실질적으로 학원비나 마찬가지죠. 그래도 부모가 능력이 안 되니 다른 걸 하라고 하면 막내 아이는 정말 세상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을까요.”
 

갓 성인 된 첫째 딸에게 떠넘겨진 부양의무, 네 모녀의 미래가 사라졌다
 

그러나 기초생활보장 수급비가 현정 씨 가족이 살아가는 데 든든한 기둥이 된 것만은 아니었다. 지난해 10월 큰 딸 미영 씨가 미술대학 입학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독립했다. 병원 마케팅 부서에 취직한 미영 씨가 현정 씨에게 “수급에 영향이 있을 수도 있는데 직장 4대 보험에 가입해도 될까”를 물었다. 현정 씨는 그렇게 하라고 말했고, 동생들은 ‘언니가 돈 벌어서 월세라도 보태면 좋겠다’는 소망을 이야기했다.
 

큰 딸이 일을 시작하고 난 후 현정 씨는 딸에게서 몇 차례 전화를 받게 됐다. 수화기 너머로 ‘날 위해 해준 것도 없으면서 뭘 원하는 게 그렇게 많으냐’, ‘나 때문에 수급비 못 받는 거냐’, ‘내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나한테 30만 원씩이나 달라고 하느냐’는 하소연이 들려왔다. 큰 딸은 언젠가는 너무 힘들어서 우울증 치료도 받았다고 했다.
 

현정 씨는 몸이 불편해서 큰 딸이 어떻게 지내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던 터에, 지난해 12월 서구청 생활보장과 직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미영 씨의 월급 220만 원에 대해 소명하라는 것이었다. 미영 씨가 현정 씨의 직계 가족이므로, 부양의무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큰 딸이 걱정된다며 회사에 확인이라도 해달라고 호소했다. 구청 직원들은 연락이 안 되는 이유를 소명하라는 서류를 현정 씨가 입원한 병원까지 와서 전달했다. 현정 씨는 다짜고짜 돈 버는 것을 따지는 구청의 태도에 당황스럽고 화가 났다.
 

이후 구청 측이 확인한 결과 미영 씨는 입사 후 10일을 넘기지 못하고 퇴사했다. 비록 수급비가 삭감되진 않았지만, 현정 씨 가족에게는 이 사건이 큰 상처로 남았다. 지난 3월 미영 씨는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손목을 자해했고, 현정 씨도 우울증에 시달리다 약을 과다 복용해 응급실로 실려 왔다. 무엇보다 현정 씨 가족은 앞으로 수급과 가족의 미래 중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미진이가 보고 들은 게 있어서, ‘대학 다니고 자격증 따더라도 네일숍도 못 갖고 아르바이트해야 하느냐. 그러면 타산이 안 맞는데.’ 이런 계산이나 하고 있었어요. 미희도 전속 계약하고 계약금 받으면 수급비 잘릴지도 모르니까 계약금 안 받고 일해야 하느냐고 물어요. 이런 걸 왜 우리 아이들이 걱정해야 하는지…….”
 

19세인 둘째 딸, 17세인 막내 딸이 성인이 되면 또 미영 씨와 같은 벽에 부딪히게 된다. 현정 씨는 암 투병으로 몸이 나빠지는 상황에서 딸들에게 부양의무를 지우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려면 나는 시설에 들어가거나, 요양병원으로 들어가거나, 죽는 것밖에 할 수 없지 않나”라고 토로한다.
 

2014년 2월 송파 세 모녀가 자살 전에 집주인에게 남긴 월세 봉투. ⓒ서울지방경찰청


의료급여 2종으로 하락, 국가는 첫째 딸더러 동생들의 의료비까지 책임지라 한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현정 씨 가족의 미래에 시련을 던졌다면, 의료급여는 현재의 어려움을 더 키우고 있다. 기존에 현정 씨 가족들은 모두 의료급여 1종을 적용받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큰 딸이 독립하면서 현정 씨를 제외하고 큰 딸은 건강보험으로, 나머지 자녀들은 의료급여 2종으로 일괄적으로 내려갔다.
 

“미영 씨의 근로 능력이 있으니 보장가구원의 등급도 조정한 것”이 구청 측의 설명이었다. 의료급여법 시행령 3조에 따르면 가구원들이 모두 만 18세 미만으로 근로 능력이 없으면 의료급여 1종을 받는다. 가구원 중 한 명이라도 근로 능력이 있으면 나머지 가구원들의 의료비 일부를 부담하라는 점에서는 넓은 의미의 부양의무제인 셈이다.
 

다만 미영 씨는 별도로 독립되어 있으므로, 미영 씨가 근로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동생들의 의료급여 등급을 조정할 수는 없다. 현정 씨는 구청 측의 착오에 대해 항의했고, 두 딸의 의료급여 등급을 원상 복귀시켰다.
 

그러나 자해 후 손목 치료가 필요한 미영 씨를 다시 현정 씨의 가구로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다시 미진, 미희 씨의 의료급여 등급이 내려갔다. 손목 봉합 수술 이후 치료비가 많이 나온다며 재활 치료도 받지 않는 미영 씨를 위한 선택이었으나 현정 씨 가족에게는 추가적인 부담이 됐다.
 

치료에 대해 정해진 소액만 부담하면 되는 의료급여 1종에 비해 일정 비율만큼 의료비를 부담해야 하는 의료급여 2종의 부담이 훨씬 크다. 당장 현정 씨는 척추 측만증이 있는 미진 씨, 최근에 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미희 씨의 1회 병원비 부담이 적게는 7000원, 많게는 2만 원씩 뛰었다고 했다. 자체로는 적은 돈일지 모르지만, 병치레가 잦아 의료비만 월 20만 원씩 내는 현정 씨 가족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다.
 

다시 현정 씨가 구청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의료급여 1종을 받게 해달라고 호소했지만, 구청 직원은 규정을 그대로 읽기에 바빴다. 현정 씨에게는 구청 직원이 현재 손목을 다쳐 노동 능력이 없는 미영 씨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 불쾌했다. 게다가 이제 갓 사회 초년생인 미영 씨에게 동생들의 의료비까지 책임지라 하는 것도 가혹했다. 그녀는 “(동생들) 부양 의무를 지우는 거 아니냐”라고 항의했지만 직원은 제대로 해명하지 못했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인천 네 모녀의 소망

현정 씨의 상황은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해를 그대로 드러낸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가난한 사람을 복지 사각지대로 내모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당장 수급을 중단하지 않더라도 수급을 대가로 빈민들의 현재와 미래를 저당잡는다.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국민의 ‘최소 생활을 보장’해야 할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오히려 수급자들을 물질적, 정신적으로 힘들게 한다.
 

이에 최근 장애인·빈민단체들은 오는 5월 9일 조기 대선을 앞두고 유력 대선 주자와 정부에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할 것을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일부 대선 후보들은 동의했지만, 아직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다수의 대선 주자들은 별다른 응답이 없다. 그동안 수급권을 지키기 위해 홀로 동분서주해온 현정 씨도 같은 처지에 놓인 장애인, 빈민들과 함께 문 전 대표를 찾아가 자신의 절박한 심정을 알릴 예정이다.
 

현정 씨는 “부양의무제가 청년들 발목잡고 부모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하는 제도인 것 같다. 잘 될 수 있는 아이들이 부모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에 실의에 빠져서 두 손 놓고 어디 갈지 몰라 한다. 화목했던 가정도 부양의무 때문에 뿔뿔이 흩어지지 않느냐.”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문 전 대표, 그리고 국가의 대답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이기를 현정 씨는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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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홍식 기자 redspirits@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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