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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씬 스틸러’, 수화통역사팀을 만나다
“통역 과정에 음악, 노래 있으니 그걸 통역하는 것뿐”
수화통역에 대한 인식 부족, 수화통역사 처우 개선 필요해
등록일 [ 2017년03월17일 18시33분 ]

촛불집회 씬 스틸러(‘독특한 개성으로 시선을 빼앗는 사람’이라는 뜻), 온몸으로 노래하는 수화통역사. 이런 제목의 영상이 SNS에서 수많은 사람에게 공유되며 회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된 다음 날인 11일 광화문 광장. 가수 조PD가 ‘친구여’ 2절을 부를 때, 화면 절반은 수화통역사의 모습으로 채워졌다. 그 순간 광장의 함성도 커졌다.
 

광화문 광장이 처음 열렸던 1차(10.29) 땐 수화통역이 없었다. 장애인단체의 요청으로 2차부터 수화통역은 제공됐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함께하는 수화통역사 수는 늘었고, 화면 오른쪽에 위치한 통역 화면도 조금씩 커졌다. 지난해 12월 31일 ‘송박영신’ 무대에선 농인이 수화로 자유발언을 했다. 13차(1.21) 촛불집회에서 박미애 수화통역사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발언할 땐 화면이 반전되기도 했다. 수화통역 화면이 전체 화면을 채우고 음성으로 말하는 박 통역사가 작은 화면에 나온 것이다. 수화통역사의 존재는 광장 어딘가에 있을 농인의 존재를 자연스레 상기시켰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 직후인 14일, 촛불집회의 숨은 주역 수화통역사팀을 만났다. 이번 촛불집회 때 함께한 통역사는 총 12명. 이중 박미애, 최황순, 황선희, 기명진 수화통역사가 인터뷰에 함께했다. 박 통역사는 장애인정보문화누리 간사로 촛불집회에 수화통역사 배치를 요구하고 수화통역사를 자원 모집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최·황 통역사는 노래 통역하는 모습 덕분에 ‘흥부자 수화통역사’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화면이 5:5 분할된 20차 집회에 대한 이야기부터 자연스레 시작됐다. 당시 수화통역은 최·황 통역사가 번갈아가며 했다.


촛불집회 재능기부 수화통역사팀. (왼쪽에서부터) 최황순, 황선희, 박미애, 기명진 수화통역사. ‘촛불’을 수화로 표현하고 있다.

박미애(아래 박) : 공연연출팀이 “오늘 큰 선물이 있다”며 조PD 때 수화화면이 절반으로 나갈 거라고 미리 이야기했어요. 그땐 차마 상상되지 않았죠. 이를 위해 연출팀에선 해보지 않은 화면 비율을 연구하고, 가수에게 사전 동의를 구해야 했을 텐데 쉽지 않았을 거예요.
 

기명진(아래 기) : 마지막 날 조PD는 그야말로 하이라이트였죠. 
 

여전히 촛불의 여운이 강하게 남아있었다. 하지만 수화통역이 처음부터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 사실 처음엔 연출부랑 욕하면서 엄청 싸웠어요. 뒤에 코러스 안 보이니 수화통역 빠져라, 뮤지컬 때 사람들 많이 올라가니 수화통역 빠져라, 했거든요. 처음엔 조명도 없어서 통역사끼리 핸드폰으로 자체 조명을 했어요. 자리 마킹도 없어서 저희가 표시하고. 이후엔 전용 조명 생기고 위치도 잡아주고. 나중엔 합이 잘 맞아서 마지막 날엔 같이 사진도 찍었죠. 수화통역이 이슈되고 관심받게 된 건 숨어있는 분들의 공이 크죠. 보이는 건 한 명의 수화통역사지만 그 밑엔 수많은 수화통역사들이 있거든요.

최황순(아래 최) : 밴드가 나오면 드럼, 베이스기타 같은 무거운 소리가 말소리를 먹어서 가사가 안 들려요. 그래서 밑에서 다른 수화통역사가 가사 보면서 수화를 쳐주는 거죠. 무대에선 그거 보면서 하고.
 

: 당일 현장에서 큐시트 받으면 누가 어떤 노래할지 역할 분담한 뒤 해당 노래를 가사 외울 때까지 계속 연습해요. 통역사들이 쪼르륵 앉아 이어폰 꽂고 자기 노래만 계속 연습하는 거예요. 가수 공연 어떻게 연출할지 통역사끼리도 계속 고민하고. 노동자들이 발언할 때도 기업, 대표 이름 같은 고유 명사가 잘 안 들릴 때가 있어요. 제대로 전달해줘야 하니깐 그것도 밑에서 통역사가 쳐줘요. 무대 위엔 한 명이 있지만 아래엔 늘 1~2명이 더 대기하는 거예요. 연출부도 이런 걸 봤겠죠. 선물이란 표현이 조금 불편하기도 했지만, 정말 준비를 해서 주신 것 같아요. 
 

그러나 수화통역사 내부엔 노래 통역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에 대한 조심스러움도 있다. 
 

: 시민들이 볼 땐 지금까지 얌전히 있던 사람이 지나치게 튀게 움직이니 신기하고 이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수화 ‘공연’으로 받아들여지면 저희 입장에선 애매하죠. 수화통역사는 공연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통역 과정에 음악, 노래가 있으니 그걸 통역하는 거지. 이런 통역 방식이 당연한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도 있고요.
 

- 농인분들 반응은 어땠나요?

 

: 극과 극이에요. 무대 위에서 기타 치는 사람을 내가 직접 볼 수 있는데 ‘통역사가 왜 굳이 똑같이 하지?’하는 분도 있고. 기타 치는 건 그냥 그림이야, 통역사가 어떤 의미인지 해석해줘서 듣진 못하지만 느낌 와서 좋다는 분도 있어요. 혹은, 농인 중엔 노래나 밴드 공연은 본인들과 상관없다고 아예 안 보는 분들도 있어요. 개인 성향이어서 이걸 통일하거나 일반화할 순 없어요.
 

: 수화통역사마다 수화통역에 대한 자기 철학이 있어요. 그에 따른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전부 다 이런 방식으로 통역하라고 획일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문제가 있을 수 있죠.
 

- 소리를 시각적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겪는 또 다른 어려움은 어떤 게 있나요?

 

황선희(아래 황) : 송박영신 콘서트 때 정말 하고 싶지 않은 공연이 딱 하나 있었어요. 신나는 섬 노래. 듣는 건 정말 좋은데 통역할 생각 하니 진짜 한숨 밖에 안 나왔어요. (신나는 섬 노래는 아코디언, 바이올린, 젬베 등 가사 없이 대부분 연주로만 이뤄져 있다.)
 

: 신중현 씨의 ‘아름다운 강산’이 8분짜리인데 20분으로 편곡했다고 하더라고요. 가사 있는 부분은 3분밖에 안 되고 15분 이상 연주가 나올 텐데 이걸 어떻게 할 것인가. 전통 사물놀이, 전자악기 등이 사용될 텐데 어떻게 표현할 건가. 통역사라면 많이 하는 고민인데 겉만 통역하는 게 아니라 내용을 어떻게 통역할 것인가. 음악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신대철 씨는 자기 아버지 노래가 친박집회에서 쓰인 거에 격분해서 나온 거잖아요. 이런 의미도 있으니 가사 내용뿐만 아니라 음성 언어 이외의 소리(음악, 분위기 등)를 어떻게 번역해서 통역하면 좋을까, 박 통역사랑 전화로 이야기했죠. 통·번역도 내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거여서 통역사가 느끼는 방식대로 전달해보면 어떨까, 박 통역사에게 제안했는데 당일 날 황 통역사가 맡게 되면서 못했죠. 한이 맺혔어요. (웃음)
 

: 헤비메탈, 랩 같은 거 나올 땐 진동에 맞춰 리듬을 타는데 다리를 고정하려니 힘들었어요. 공간 벗어나면 다시 돌아오고, 손이 삐져나가기도 하고. 저 같은 경우엔 가수에 빙의돼서 그 사람의 음악을 전달하자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근데 이번엔 내가 너무 날뛴 것 같아. (웃음)
 

- 횟수가 거듭되면서 농인들의 집회 참여도 변화가 있었나요?

 

: 수화통역 때문에 초반엔 세시에 다 함께 모여 무대 앞으로 이동하는 식이었어요. 그런데 ‘청각장애인이 왔으니 배려해주세요’라는 사회자 멘트에 불편함 느끼는 농인도 있고, 맨 앞에 앉으니 화장실 등 동선 제약이 크니깐 불편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중엔 같이 모여 움직이는 건 안 했어요.
 

: 우리는 듣고 싶을 때 듣고 가고 싶을 때 가잖아요. 농인들도 보고 싶을 때 봐야죠. 단, 그때가 언제인지 모르니깐 늘 수화통역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방송사마다 수화통역사 붙이면 농인은 자신이 원하는 수화 스타일대로 볼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게 어려우니깐 중앙에 수화 세우는 거죠. 수화통역은 본인들이 선택할 가짓수를 늘려주는 옵션이어야지 ‘당신들은 제한된 곳에서 특별한 서비스를 받아야 해’라는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 모바일 어플을 통해 자막 제공도 했다고 하던데요.

 

: 주최 측에서 구체적인 사용 방법에 대한 설명을 안 했어요. 그래서 제 주변 농인들은 사용법 몰라서 이용 못 했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분이 ‘농인 없는데 통역만 세우는 것 아니냐, 요식 행위 아니냐’ 이런 얘길 하셨어요. 농인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요. 누가 뒤에서 ‘비켜주세요’ 해도 농인은 못 들어요. 화장실 가고 싶으면 우린 물어보면 되잖아요. 가만히 있어도 들리는 정보에 쫓아갈 수 있지만 그들은 그 정보도 노력해서 봐야 해요. 전 광장에서 한 사람도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어디에 있든 수화통역을 볼 수 있게끔 장치를 해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정보가 아예 차단돼요.
 

광화문 광장의 수화통역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농인들 입장에선 여전히 부족했다. 하지만 지역으로 가면 기본적인 무대 통역마저도 제공되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20차(3.11) 촛불집회. 가수 조PD가 ‘친구여’ 2절을 부를 때, 화면 절반이 수화통역사 모습으로 채워졌다. 왼쪽은 최황순 수화통역사. 오마이티비 영상 캡처.
 

- 이번 촛불집회 수화통역사로서, 시민으로선 어땠나요?

 

: 탄핵 선고된 날, 박 통역사가 펑펑 울어서 못 하겠다길래 제가 눈물 싹 훔치고 올라갔어요. 그런데 제가 통역하면서 그렇게 펑펑 울어본 적은 처음이었어요. 세월호 아버님이 외치시는 거예요. ‘왜’라고 다섯 번 외치면서 ‘왜, 이건 안 되냐고. 내가 죽기 전에 얘네들 왜 죽어야 했는지 그 이유만이라도 알고 싶다’ 그 이야길 하시는데… 참, 그때 참… (목이 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최 통역사가 장난 섞인 목소리로 다그치듯 말한다. “수화통역사로 올라갔을 땐 울지 좀 말란 말이야!” 
 

: 통역사면 냉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월호 유가족이 이야기하거나 세월호 합창단 노래할 때, 아래 있는 사람들이 무대 올라가는 통역사한테 말해요. 눈물 흘릴 거 같으면 내려와. 울면 끌고 내려올 거야. 그런데 정작 자기네들이 다 울고 있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된 3월 10일, 헌법재판소 앞 무대에서 수화통역은 공식적으로는 제공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화통역사들은 여기 어딘가에 농인이 와 있을 수 있다며 발언자들이 서 있는 트럭 한쪽에 올라갔다. 또 다른 통역사가 페이스북 라이브 영상으로 찍어 온라인으로 공유했다. 
 

: 그래도 이번에 진짜 좋았던 건 내부에서 장애인․여성 혐오하지 말자, 차별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자발적으로 나온 거예요. 특히 무대 위에서 본 파도타기는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다들 탄성) ‘이게 나라냐’에서 ‘이게 나라다’로 오는 과정, 국민이 만든 거잖아요. 촛불파도 보며 정말 감동했어요.
 

: 촛불파도는 사회자랑 수화통역사, 무대에 단둘이 올라왔을 때만 이뤄지거든요. 수화통역사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죠. (웃음)
 

수화통역사는 국가 공인 자격증이다. ‘흥부자’로 알려진 최 씨의 경우, 평소엔 보험설계사로 일하지만 프리랜서 수화통역사로 공중파 방송 등에 선다. 그는 수화통역 20년의 베테랑이다. 대학 때 수화동아리 경험을 계기로 전문 수화통역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10년 전, 결혼하게 되면서 직업인으로서의 수화통역사는 접게 됐다.
 

수화통역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 수화를 언어로 보지 않는 인식과 함께 수화통역을 전문적 기술로 보지 않는 시선도 견고하다. 과거보단 대학, 방송, 장애인 단체 토론회 등 일할 자리는 많이 늘었지만 수화통역사 수도 그만큼 늘어나 개별 수화통역사가 체감하는 정도는 낮다. 이러한 환경을 개선하고자 지난 2월 11일, 마침내 수화통역사협회가 창립발기인 대회를 열었다. 현재 1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전국 수화통역사 인원은 1000여 명가량으로 추정된다. 수화통역사 처우에 관해 물으니 열악한 상황에 모두가 한숨을 쉰다. 
 

: 이번 촛불 수화통역도 자원봉사가 아니라 재능기부라고 했잖아요. 수화통역사는 참 좋은 사람들,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 바뀌어야 해요.
 

: 프리랜서로 10년 전 수입이, 대학 시간 강사 등 고정 수입 포함해 한 달에 200~250만 원이었어요. 그런데 프리랜서 중 이 정도 버는 사람이 전국 1%도 안 될 거예요. 지금도 프리로 한 달에 백만 원 벌면 결코 적게 버는 게 아니에요.
 

: 수화통역사는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노동자예요. 그런데 20년 동안 방송 통역비가 한 번도 오르지 않았어요. 우리도 20년 방송했으면 20년간 다른 이들은 얼마나 올랐고 내 노동의 대가는 어느 정도가 되는지 알 거란 말이에요. 이제 통역사 스스로 그 기준을 만들어야 해요.
 

지난해 8월, 수화 언어를 농인의 공용어로 인정하는 한국수화언어법이 시행됐다. 그러나 이를 체감하는 농인, 수화통역사는 드물다.  
 

“수화창 보실 때 불편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계시겠죠. 하지만 저 작은 수화창이 누군가에겐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 창이 작아질수록 세상과 단절되는, 숨통 조여오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2016.12.31. 송박영신 집회에서 농인 김세식 씨의 자유발언 일부)
 

그 창의 크기는 어쩌면 광장에 선 ‘소수자 권리’의 크기일지 모른다. 3월 25일, 다시 촛불집회가 열린다. 그날 우리는 다가올 새 시대를 얼마나 체감할 수 있을까. 수화통역사들도 다시 그 무대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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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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