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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왜 그곳에 끌려갔나’ …선감학원, 진상규명 위한 첫 발걸음 떼다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 위한 특별법 제정 필요성 제기돼
법적 근거 없이 ‘경기도 조례’만으로 운영돼, 사회복지시설도 아냐
등록일 [ 2017년05월28일 11시46분 ]

아이들은 섬에 갇혔고 죽었다… 도대체 ‘왜?’ 
 

부모 심부름을 가다가, 친척 집에 가다가, 아이는 길거리를 단속하던 공무원에게 붙잡혔다.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시작한 신문 배달 중 잡히기도 했으며, 입은 옷이 남루하다는 이유로 붙잡히기도 했다. 아이들은 배에 태워져 한 섬에 보내졌다. 그 섬에서 한겨울에 고무신을 신고 갯벌에서 굴을 캐고, 밭일하고, 누에를 길렀다. 학교 가는 아이들은 드물었다. 아무리 먹어도 고픈 배는 뱀을 잡아먹고 쥐를 잡아먹고 주민들이 버린 조개껍데기에 붙은 말라비틀어진 살을 떼어 먹으며 채웠다. 나머지 일상은 기합과 구타로 채워졌다. 탈출을 시도한 몇몇 아이들은 섬을 둘러싼 거친 물살에 휩쓸려 뭍에 다다르지 못한 채, 몸에 낙지와 소라를 붙이고 시체로 돌아왔다. 도망치던 아이들, 섬 안에서 맞아 죽은 아이들이 인근 야산에 비석도 없이 여기저기 묻혔다. 1982년까지 경기도가 운영한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도 선감학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선감학원의 역사는 일제시대로 올라간다. 1923년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감화령을 근거로 1942년에 세워졌다. 소년들을 ‘감화’시켜 ‘황국신민’으로 만들고자 했던 이 시설은 일제시대를 지나 해방 이후에도 존재했다. 해방 후 1946년, 운영권이 경기도로 이관됐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전략 요충지인 섬은 미군에게 넘어간다. 1954년 4월, 주한 미1군단의 원조사업(AFAK)으로 사무실, 교사, 아동과 직원관사, 병원, 목욕탕, 식당 등 건물 41동이 신축된다. 미군이 철수한 뒤 경기도가 다시 운영을 시작한다. 1982년 폐쇄된 시설의 존재를 다시 꺼내든 이는 일제시대 때 선감학원 부원장이던 아버지와 함께 선감도에 살았던 이하라 히로미쓰 씨였다. 그는 소설 <아! 선감도>를 통해 참상을 알리고, 9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 찾아와 진실규명과 위령 사업을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당시 이하라 히로미쓰 씨를 통해 선감학원 실상을 들은 정진각 안산지역사연구소 소장이 이후 이 문제를 집중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노력의 결실로 지난해 초, 경기도의회는 마침내 '선감학원 피해자 지원 조례'를 만들고, 지난해 3월부터는 선감학원 진상조사 및 지원대책 마련 특별위원회(아래 특위)를 구성해 진상조사와 지원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특위는 최종보고서 제출을 앞두고, 26일 오후 3시 경기도의회 소회의실에서 선감학원 사건 진상조사 및 지원방안을 위한 학술회의를 열었다.

경기도의회는 지난해 3월부터는 선감학원 진상조사 및 지원대책 마련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진상조사와 지원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특위는 최종보고서 제출을 앞두고, 26일 오후 3시 경기도의회 소회의실에서 선감학원 사건 진상조사 및 지원방안을 위한 학술회의를 열었다. 이번 특위에서 선감학원 실태조사를 한 정진각 안산지역사연구소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법적 근거 없이 ‘경기도 조례’만으로 운영돼, 사회복지시설도 아냐
 

해방 후 경기도가 이관받아 운영할 당시에도 선감학원 운영에 관한 중앙정부 차원의 법적 근거는 없었으며 ‘경기도 조례’만이 있었다. 선감학원 실태조사에 나섰던 정 소장은 “선감학원 조례 어디에도 이 시설의 법적 정체가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된 것이 없다. 부랑인 시설 대부분은 사회복지시설로 등록되어 운영되지만, 선감학원은 사회복지시설 목록에 없다”면서 “영구보존문서를 포함한 공문서 기록물조차 찾을 수 없어 일부 남아있는 선감학원 운영서류, 당시 국가 차원에서 실시한 부랑아 정책, 원생 등의 구술에 의존해야 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원생들 상당수는 단속 공무원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납치됐다. 1964년 10월 26일자 경향신문은 “선감학원생 427명 중 3분의 2가 부모나 연고자가 있는 소년들”이라며 “경찰과 당국이 연고자가 있는지를 성의있게 확인하지 않고 수용소에 인계할 뿐 아니라 단속 기간에 맹목적으로 건수만 올리기 위해 혈안이 된 나머지 연고자가 있는 선량한 아이들을 불량성 있는 아이들의 수용소로 넘”겼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이곳 아이들은 탈출 혹은 퇴소로 섬을 나간다고 하여도 오랜 시간이 지나 가족을 찾지 못하거나 집이 없어져 '국가가 만든 고아’가 되었다. 설령 가족을 만나도 어린 시절 7~8년을 학업과 단절된 채 공포 생활 속에 격리되어 살다 보니 기존 삶으로의 회복이 잘 되지 않았다. 선감학원에서 성인이 된 원생들에게 알선해준 일자리도 ‘머슴’ 같은 일에 불과했다.
 

현재 원생들의 기록이 비교적 정확하게 남아있는 것은 선감국민학교 생활기록부다. 1957년부터 1973년까지 ‘보호자’가 선감학원으로 기재된 중도 퇴학자는 703명이다. 이중 탈출로 추정되는 학생은 58명이고 사망으로 인한 퇴학은 3명이다. 퇴학처리의 경우, 1960년 8월 37명, 1961년 2월 21명, 1961년 11월 79명, 1962년 4월 35명, 1962년 6월 61명, 1962년 9월 72명, 1963년 3월 90명으로 한시기에 집중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이조차 원생들의 증언을 빌리면, 동시 탈출한 경우라도 각기 다른 날짜에 퇴학 처리가 되어 있고 사유도 탈출이 아닌 일반 퇴학으로 정리가 되어 있다.
 

정 소장은 “학교 생활기록부는 학원에서 통보한 사항으로 정리되었을 텐데 경기도가 원생 관리 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하여 학교 기록이 잘못된 원인을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선감학원의 경기도 기록물을 하루빨리 찾아 정리하는 것이 진상규명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생존자들은 여전히 납치에 대한 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정 소장은 “녹취나 녹화를 한다고 하면 자기 모습이 밝혀지는 건 좋지 않다며 거부하는 분들도 있었다. 나라 욕하다가 언제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면서 “트라우마로 자살 기도하는 사람도 많고 실제 자살한 분들도 있다. 이에 대한 치료가 가장 시급하다”고 전했다.
 

또한, “선감학원 수용으로 교육이 단절되어 생계유지를 못한 원생들의 연령이 이제 60세를 넘어서고 있다. 노후대책이 절실하다”면서 아무 이유 없이 섬에 수용되어 중범죄자로 오해받은 채 살아온 원생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사과 및 명예회복, 구타·기합에 의한 폭력으로 입은 상해 치료, 가족 찾기 등의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1956년 선감학원 건물 신축 및 재개원 후 시찰단이 방문한 모습 ⓒ경기창작센터

선감학원은 ‘아동 인권침해’가 아니라 ‘빈곤에 대한 제노사이드’ 

하금철 비마이너 편집장은 한국의 부랑아 수용소 역사를 짚으며 선감학원 문제는 ‘빈곤의 범죄화’라는 국가 폭력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선감학원의 최조 근거 법령이었던 조선감화령엔 수용 대상을 “연령 8세 이상 18세 미만의 자로 불량행위를 하거나 불량행동을 할 우려가 있고 적당한 친권을 행사하는 자가 없는 자”로 되어 있다. 하지만 ‘불량행위를 하거나 불량행동을 할 우려가 있는 자’란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수용 대상에 대한 모호한 정의는 해방 이후 대표적 부랑인 단속 근거 규정으로 형제복지원의 강제수용을 정당화한 ‘내무부 훈령 410호’ 또한 마찬가지다. 훈령은 “일정한 주거 없이 관광업소, 접객업소, 역, 버스정류소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이거나 통행하는 곳과 주택가를 배회하거나 좌정하여 구걸 또는 물품을 강매함으로써 통행인을 괴롭히는 걸인, 껌팔이, 앵벌이 등 건전한 사회 및 도시 질서를 저해하는” 사람을 ‘부랑인’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건전한 사회 및 도시 질서를 저해’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하 편집장은 “선감학원, 형제복지원 등의 명목상 명칭은 ‘부랑인(아) 수용소’였지만 이들은 연고자도 있었고, 집에 보내달라고 애원했음에도 끌려갔다”면서 “이 시설이 겨냥한 것은 ‘부랑’보다 더 광의의 차원인 ‘빈곤’이었다”고 말했다. 하 편집장은 “여기엔 우범소질자인 가난한 계층을 사회로부터 미연에 차단하는 게 국가 역할이라고 여긴 국가 권력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면서 “가난한 자들의 ‘부랑’ 행위는 경제적 궁핍 때문이 아니라 이들의 태생적인 불량성 때문이라고 보는 변형된 인종주의가 작동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수용소는 부랑아를 갱생시켜 사회복귀 시키는 게 목적이라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수용과 동시에 모든 인적·사회적 관계가 단절됨으로써 “이들의 사회적 존재를 완전히 소거시켰다”고 지적했다. 또한 “노역의 목적도 경제적 이윤 창출이 아니라 박해 자체가 목적”이었으며, “비정상적으로 보일 만큼 과잉된 폭력도 유대인 집단학살 수용소에서 보듯 고통을 양산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하 편집장은 “선감학원을 ‘아동 인권침해’, ‘소년 삼청교육대’라고 규정한다면 ‘선감학원 내에서 적절한 보호가 제공되었다면 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즉, 부랑아라고 지목된 이들을 어떤 식으로든 사회로부터 격리해 섬에 가두는 행위 자체는 문제 삼을 수 없게 되는 것”이라면서 “애초 선감학원의 본질적 문제는 ‘부랑아’라 지목된 가난한 소년들을 범죄의 원천으로 여겨 사회에서 격리해 사실상 절멸시키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서 자행된 잔혹한 폭력은 단순히 선량한 아동에 대한 인권침해를 넘어 ‘빈곤층에 대한 제노사이드’ 또는 조용한 학살이라 불러야 마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영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

선감학원 진상규명 위한 특별법 제정 필요 

형제복지원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의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조영선 변호사는 형제복지원과 마찬가지로 선감학원 또한 당시 헌법 및 형사소송법, 아동복리법 등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변호사는 “기본권 제한은 조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당시 법률에 의해서도 할 수 없었고 당시 유신헌법 10조 등에도 위반됐다”라고 밝혔다. 조 변호사는 “아동을 아동복리시설에 입소시킬 수 있는 근거는 아동복리법인데, 이는 아동이 보호자로부터 유실, 유기, 이탈되었을 경우 등에 한한다”라면서 “그러나 1980년 선감학원 현황에 따르면 부모가 생존해 있는 경우가 상당수며 생존자들 또한 집 밖에서 놀다가 또는 길을 잃어 집 주소를 이야기했음에도 강제로 끌려왔다고 진술하고 있다”며 아동복리법에도 위반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거주이전의 자유, 신체의 자유, 학업의 자유를 제한한 것 등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되며, 조례의 부랑아 개념은 명확성 원칙에도 위반된다고 밝혔다.
 

또한 “설령 조례, 아동복지법에 근거한다고 하더라도 당시 선감학원 공무원들이 아동을 감금, 폭행, 강제노동시킨 등의 행위는 국가 및 경기도의 ‘고의’에 의한 불법행위 책임을 구성한다”며 이는 국가 폭력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선감학원 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등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선감학원 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회를 결성하여 진상규명 및 피해자들에 대한 생활지원과 피해보상이 이뤄져야 하며,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홍보와 교육사업이 시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현재 선감도에 있는 유해발굴과 위령 사업 등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선감학원 피해생존자가 “피해자라고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어떻게 찾나.”라고 질문하고 있다.

이날 학술회의에 참석한 피해생존자 한일영 씨는 “피해자들끼리는 서로 알지만 피해자라는 법적 근거가 없다. 자료가 다 없어졌다고 하는데 이걸 어떻게 찾나.”라고 물었다.
 

이에 정 소장은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선감학원 운영 시, 원아들이 어떻게 들어왔고 나왔는지를 기록한 원아대장이다. 이게 전체적으로 없어졌다고 하는 데 없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영구보존의 문제이기에 인위적으로 없앨 수 없다. 어디엔가 있는데 기록물이 워낙 많아 못 찾는 것일 뿐”이라면서 “경기도가 행정력을 동원하여 찾으면 반드시 찾을 수 있다고 본다”며 진상규명을 위한 경기도의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했다.


김달수 특위 위원장은 “원생들에 대한 공식적인 문서들은 행정력을 최대한 동원해 자료를 찾고 대안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면서 “특위 활동은 최종보고서를 끝으로 마감하지만, 이후 결과에 대한 지원방안과 경기도 책임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이후 사업으로 남겨두고 열심히 책임을 다하도록 하겠다. 안산시에도 선감학원 문제에 많은 관심과 활동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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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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