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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부랑아, ‘황국신민의 전사’로 내몰리다
[기획연재 - 부랑인 강제수용의 역사③] 전시동원체제와 감화원

등록일 [ 2017년07월24일 13시21분 ]

 

 

평양경찰서에서는 작년부터 불량소년배의 근절을 위하야 이미 적지 않은 불량소년을 검거하야 왔는바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무리들 중에는 특히 도벽 있는 불량소년배의 발호로 각 상점의 절도 피해는 역시 적지 않아서 크게 두통을 알튼 동서에서 지난 삼사 양일 밤에 사법형사들의 총출동으로 부내 각처에서 현행범 비현행을 물론하고 전부터 주목하야 오든 불량소년 김순기(16)외 열명을 인치하고 방금 언중 취조 중이라는데 이들은 동서에서 즉결처분도 하지 않코 취조를 마친 후 일건 서류와 함께 전부 검사국으로 송치하게 되리라함.  (동아일보, 「도벽잇는 불량소년검거 평양서에서」, 1928.8.8)


조선총독부는 사회 질서를 확립하고 소년범죄를 근절하겠다고 천명하면서 본격적으로 거리의 부랑아를 단속 대상으로 겨냥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제도로 1923년 「조선감화령」이 제정된다. 이 법령은 “연령 8세 이상 18세 미만의 자로 불량행위를 하고 또는 불량행위를 할 우려가 있으며 적당히 친권을 행할 자가 없는 자”에 대해서 감화원에 수용조치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불량행위’란 무엇이며, 더 나아가 ‘불량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지 없는지는 어떻게 판단하는가? 위 기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현행범 비현행을 물론하고 전부터 (평양경찰서가) 주목하야 오든 불량소년”. 대체 불량소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경찰이 주목하던 불량소년’이라는 동어반복이 돌아왔다.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경찰이 수상하다 여기면 그것으로 불량소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부랑아를 중심으로 한 소년범죄가 양적으로 사회에 큰 위협이 되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1909년부터 1942년까지의 조선총독부 통계연보를 바탕으로 수형자 연령별 변동 추이를 분석한 한 연구(노수빈, 2015)에 따르면, 전체 범죄자 중 미성년범죄자는 평균 10.257%를 차지하며, 증감비율도 급격한 변동을 보이지 않고 대체적으로 유사한 추이를 보인다.


범죄 유형별로 보면 남성의 경우 절도(88.894%)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중 상당수는 빈곤으로 인한 생계형 범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절도범의 경우 별도의 생계수단 없이 조직적 소매치기단을 구성해 활동하다 검거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총독부는 이를 직접적으로 도시 공동체를 위협하는 요소로 여겼다. 그런데 총독부가 이를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은 단순히 도시에 대한 위협을 넘어서 향후 제국주의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 중요한 인적자원이 되어야 할 조선의 신민들이 제국의 전사(戰士)로 충분히 육성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지표였기 때문이다.


반면, 여성의 경우 살인(44.176%), 간음중혼(18.352%), 방화(24.066%) 등 중범죄가 다수를 차지했다. 이에 대해 식민당국 뿐만 아니라 조선의 지식인들도 전근대적 조선의 ‘조혼 악습’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인식했다. 식민당국은 차세대 국민을 생산하고 바르게 양육해야 할 의무가 ‘어머니’에게 부여된다고 봤는데, 이는 일본 내지 뿐만 아니라 식민지 조선에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직 신체적·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여성이 조혼을 할 경우 차세대 국민 양성이라는 ‘어머니’ 역할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결국 어느 경우에나 소년범죄의 양상은 제국주의 일본의 대륙 팽창이라는 지상과제 실현이 방해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로써, 후진적 조선의 근대적 개조를 통해 예방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불량소년 담론은 말 안 듣는 조선인 즉 ‘불령선인(不逞鮮人)’을 ‘황국신민(皇國臣民)’으로 길들이고자 하는 식민권력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불량소년은 왜 발생하는 것인가? 조선어로 발행되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는 이에 대해 매우 ‘진지하고 상세한’ 설명을 전하고자 노력했다.

 

매일신보, 「불량소년소녀는 정신이 박약한 자」, 1931.06.16.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라이브러리
 

이 불량소년소녀에는 천치는 적고 정신박약자가 퍽 홉니다. 정신박약자라도 극도의 치우자(痴愚者)는 보호의 효과가 잇지마는 단지 한번 보호의 범위를 버서난 때에는 엽길로 드러가서 여러 가지 유혹에 빠지고 독립한 생활이 불능함으로 사회적 위험성을 생기게 합니다. 그러나 정신박약의 정도가 경한 즉 로둔자(魯鈍者)는 공연히 자기평가가 크고 또 판단을 나리는 방향이 불량함으로 한번 불량행위에 대한 최초의 저항력이 깨여저서 범죄를 하게 되면 그 지혜는 항상 도덕적 결함을 확장하는데만 응용이 되어서 범죄에 범죄를 거듭하며 감옥은 범죄대학이라는 말을 례사로 하게되는데 이러한 불량소년은 더욱 교활한 정도가 더하여서 선도로 옴길 가망이 업서집니다.  (매일신보, 「불량소년소녀는 정신이 박약한 자」, 1931.06.16)


塚本忠信(선감학원 원장) : 이 선감도에 와잇는 소년들은 대체로 어떤 애들이 오는가 하면, 이들은 전부 경성부내의 부랑아들로서 대부분은 쓰리(꾼), 거지, 절도를 겸한 소년들입니다. 이 소년들은 하나도 례외업시 모다 남의 것을 훔치는 버릇이 잇습니다. 엇째서 집에서 나오게 되엿나를 통계로서 보면 계모가 학대를 한다든가 아버지가 첫째둘째 부인을 어더가지고 친어머니를 학대함으로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집을 나왓다든가 그 외 가정의 불화 또는 가정안에서 부모들의 기우친 사랑 (...) 요컨대 소년이 불량해진다는 근본원인으로서는 선천적으로 유전이라든가 출산장해가튼 것으로 인하야 되는 수도 있겟지만 우리학원에는 소년들을 보면 태반은 가정교육의 결함이라든가 학교교육이 업다든가 기타 사회에서 조치못한 감화를 밧게되엿다든가 가튼 소위 후천적으로 그러케된 애가 만습니다.  (매일신보, 「가정불화가 큰 원인 - 소년보호좌담회③」, 1943.04.16)


요약하면, 불량소년은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정신이 박약한 자이거나 가정교육이 부실해서 못된 아동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대로 놔둬서는 이들을 황국신민으로 키워낼 수가 없다. 따라서 감화원(感化院)에 이들을 수용해 강도 높은 교육을 시키는 게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렇다면 감화원에서는 어떤 교육이 시행되었을까? 1939년 한 독지가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사립 감화원인 해주 백세숙의 경우 제2국민인 소년들을 “충량한 신민이 되도록 교화지도”하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41년 8월 기준 27명의 ‘불량소년’을 수용․교육했다. 백세숙은 원생들을 학교를 이미 마친 아이와 중도 퇴학한 아이를 특조로 편성하고, 나머지 아이들을 상조, 중조, 하조로 각각 편성해 학교 형태의 교육을 실시했는데, 그 일과는 다음과 같다.

 

< 백세숙 교내 일상생활 >

*자료 : 매일신보, 「불량소년소녀의 감화원 해주 백세숙을 찾아서」, 1941.08.26 ~ 30.
 

 

감화원에 수용된 부랑아를 탄광 등에 강제취업 시킨다는 내용의 기사. 매일신보, 「잘잇거라 선감도 이제부터 광업전사」, 1944.06.02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라이브러리

 

신문 기사에는 이곳에 수용된 원생들이 언제나 도망갈 기회만 엿보고 공부는 하지 않는 아이들이지만, 원장 및 종사자들의 사랑을 담은 교육이 점차 효과를 발휘해 착실한 아동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명백히 체제 선전의 목적이 드러나는 언급 속에서도 감화원의 참혹한 실상을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 적지 않다. 1942년에 경기도 부천군 소재 선감도에 개원한 선감학원(仙甘學園)을 직접 방문해 원생들의 생활을 미화하는 글을 쓴 기자도 수용원생 193명 중 9명이 도망쳐 184명이 남아있다고 밝혔는데, 도망친 원생 중 2명은 바다에 빠져 숨졌음을 정확히 밝히고 있다(매일신보, 42.10.15).


선감학원에서는 그 외에도 탈출을 기도하다가 구타로 죽은 경우, 영양실조로 죽은 경우, 굶주림을 참지 못해 초근목피(草根木皮)를 씹다가 독버섯류를 잘못 먹어 죽는 경우 등 수많은 희생이 있었고, 이들은 섬의 한 구석 야산에 암매장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끔찍한 일들이 빈발함에도 감화원 운영은 오로지 ‘전쟁동원’에만 매달려, 훈련된 소년을 탄광이나 금속제작소 등에 ‘취업’이란 이름으로 강제동원했다(매일신보, 41.07.03; 매일신보,  44.06.02).

 

당시 선감학원 부원장이던 아버지를 따라 선감도에 살았던 이하라 히로미쓰(井原宏光)가 일종의 참회록으로 쓴 소설 『아! 선감도』에는 그 실상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소설이기에 어느 정도 픽션이 가미되었겠지만, 이 사례가 저자 후기에도 언급되는 것을 봤을 때 실제 사건인 듯하다. 해방 직전이던 1945년 8월 초, 원생이던 조소국은 선감학원에서 도망쳐 대부도로 달아났다가 순사에게 붙들려 다시 끌려왔다. 섬 주민들이 선처해 줄 것을 호소했지만, 순사들은 그를 죽도(竹刀)로 무참하게 두들겨 팼다. 허벅지와 엉덩이에서 터져 나온 피가 마당을 적실 정도였지만, 조소국은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그 순간, 조소국은 갑자기 눈을 번쩍 치켜뜨더니 그를 둘러선 사람들을 쏘아보면서 절규한다. "나는 왜놈이 아니다! 조선 사람이다!" 그는 이 한 마디를 남기고 혀를 깨물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일제강점기 당시 선감학원 원생들의 야외교육 모습. 칠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천황폐하의 감사한 호의로 우리들도 군인이 될 수 있게 되었다. 명예로운 일본의 군인이 된다는 일은 더 없는 행복이다. 나는 몸을 단련하고 마음을 닦아서 훌륭한 청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원병이 되어 천황폐하의 고마운 은혜에 보답할 것이다.' ⓒ안산지역사연구소
 

(다음 연재부터는 해방 이후 부랑인 문제를 다룹니다.)

 

 

*참고문헌


- 노수빈(2015), 「식민지기 소년범죄와 감화사업의 전개 : 조선총독부 감화사업을 중심으로」, 국민대학교 석사논문
- 소현숙(2015), 「식민지시기 ‘불량소년’ 담론의 형성 - ‘민족/국민’ 만들기와 ‘협력’의 역학」, 사회와역사 107
- 井原宏光(이하라 히로미쓰)(1995). 『아! 선감도』, 김양식 옮김, 행림출판사
- 정진각(2011). 「선감학원의 설치와 운영」, 『안산시사』1권, 안산시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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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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