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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혐오에 무릎 꿇지 않을 권리
[홍성훈의 난장판]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논란을 바라보며 생각하다
등록일 [ 2017년09월22일 14시51분 ]

오랜만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겠다. 일반 초중고를 다니는 내내 항상 나의 학교생활은 교장실에서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전초전을 방불케 했는데, 추운 겨울 아직 길거리의 눈이 채 녹지도 않았을 때 어머니는 나를 휠체어에 태우고는 내가 입학할 초등학교로 향했다. 우리가 제일 먼저 찾아든 곳은 교장실이었다. 기습적인 방문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어머니는 잠깐 들어가서 말씀드릴 게 있다며 교장실로 나를 태운 휠체어를 밀고 불쑥 들어갔고 차마 내칠 수 없게 된 교장 선생님은 손님용 소파로 안내했다. 정적이 몇 초간 흐르고, 탁자 위의 차에서 김만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을 때 먼저 입을 연 쪽은 역시 어머니였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교장 선생님께 소개도 안 드렸네요. 저는 이 아이 엄마이고요. 이 아이는 홍성훈이라 합니다. 성훈아, 교장 선생님께 인사드려야지.”


나는 얼떨결에 인사했고 교장 선생님도 얼떨결에 인사를 받았다. 어머니는 입을 가리고 한 번 헛기침을 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단 제스처였다. 교장 선생님은 침을 삼켰다. 어머니는 능수능란하게 출생에서 약 8여 년 동안 진행된 나의 서사를 빈틈없이 읊었다. 그 서사에서 어머니가 특히 강조했던 부분은 내가 1년간 ‘일반유치원’을 다녔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5, 6살에 특수유치원을 다녔고 7살에는 교회 옆에 딸린 일반유치원을 다녔다. 어머니는 장애를 가진 자신의 아이가 비장애인 아이들과 함께 놀고 공부한 것을 아주 높게 평가했다. 그것이 곧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는 징표라도 된다는 양.


어머니는 고개를 한층 높이 쳐들었다. 묵묵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교장 선생님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언어장애도 있고 제 손으로 글씨도 쓸 수 없고 말 그대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저 아이가 어떻게 일반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어머니는 이를 눈치 챘는지 교장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가 겉보기에는 암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얘는 이미 한글도 뗐구요. 집에 있는 컴퓨터로 글자 연습까지 해요.”


교장선생님이 그래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어머니는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아 그리고 우리 아이가 2년 동안 특수유치원을 다녔는데요. 이 학교에 입학하면 그 특수유치원 선생님이 일주일에 한 번씩 여기로 오셔서 통합교육을 해주시기로 했어요.”


그랬다. 내가 다녔던 특수 유치원에서는 졸업한 아이가 일반 학교에 진학하게 될 경우 ‘통합교육’의 차원에서 유치원 교사가 일주일에 한 번씩 학교를 찾아가는 제도를 갖추고 있었다. 그 ‘통합교육’이란 장애 학생이 비장애 학생들과 어울릴 수 있게 도와주거나 다른 방법으로 형평성에 맞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이끄는 교육이었다. 그제야 교장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고 비로소 나의 학창시절이 시작되었다. 말하자면 나는 일반학교에서 특수학교와 맞먹는 교육 서비스를 받은 셈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노트북이 귀한 시절이었는데 특수 유치원 선생님이 개인용 노트북을 갖고 나오셨다. 특수 유치원 선생님이 나오시는 날이면 그동안 교실에서는 못했던 받아쓰기 시험이나 수학 경시대회 시험을 보았다. 여러 시험에서 이러저러한 평가에서 준수한 성적을 받자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그 통합교육으로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진학할 수 있었고 일반 학교의 시스템에 어찌어찌 적응하기 시작했다.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나는 ‘말도 못하고 하루 종일 교실에 앉아만 있다 가는’ 장애 학생에 불과했을 것이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자 어머니는 또다시 나를 끌고 학교로 데려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류가 좀 달랐다. 어머니는 도합 13년으로 늘어난 자식의 성장서사를 들려주었는데, 역시 중학교 교장선생님은 굳은 표정으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교장선생님은 우리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그 중학교 옆에는 ‘우진 학교’라는 특수학교가 있었는데 굳이 여기로 오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 때 어머니와 나는 꽤나 당황했다. 우리 모자에게 특수학교는 선택지에 없었던 항목이었다.


중학교 교장선생님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전에 근무했던 다른 학교에서 장애 학생을 입학시킨 경험이 있었는데 그 학생과 어머니는 학교에 계속 요구를 했단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해달라거나 경사로를 설치해달라는 둥 요구사항이 많아 학교 측에서 골치를 앓았단다. 중학교 교장선생님은 이야기를 멈추고 우리를 넌지시 쳐다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으나 ‘당신들도 요구했다가는 바로 특수학교에 전학시켜 버릴 거야’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충분히 전해졌다. 우리는 위협 아닌 위협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마냥 고개 숙이고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초등학교 6년을 다닌 경험은 나의 자존감에 큰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세월이 갈수록 느는 건 능청과 여유였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하면 친구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고 말을 틀 수 있는지 노하우가 점점 쌓여갔다. 친구들 또한 나에게 호기심을 가졌고(느린 타자로 욕설과 농담을 지껄여대는 장애인을 접하긴 어려웠을 테니까) 나 또한 기민하게 친구들의 관심사를 ‘공부’했다. 허나 3년 내내 일반 학교를 다니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다.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도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어머니에게 업혀 다녀야 했고 수학여행을 비롯한 현장학습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일반학교를 다니는 장애학생들이 많지 않아 어떻게 해야 장애학생들이 교실 밖 환경에서도 교육권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는 고려조차 되지 못했다. 나는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떠난 빈 교실에서 외롭게 책을 읽어야 했다. 어머니는 나를 위로한답시고 이렇게 말했다.


“억울해도 좀 참아라. 언젠가는 네 일을 교훈삼아 휠체어 탄 친구들도 수학여행 갈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네가 진짜로 억울하다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야 해. 사람들은 네가 가만있어도 네게 관심을 가져줄 만큼 여유가 넘치진 않거든.”


사실 그때에는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설령 그런 날이 온다손 치더라도 내가 느꼈던 박탈감과 억울함은 씻어내진 못할 것 같았다. 내가 더 억울했던 것은 장애학생이 일반학교에 재학하는 사례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왜 이런 불합리를 겪는가에서였다. 장애학생 수가 많건 적건 교육제도는 장애학생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체계를 갖춰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야 일반학교에 장애학생의 수가 많아지는 때가 오면 시행착오 없이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들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선 학교에 다니는 장애학생 수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위성만으로 어떤 권리를 주장하는 것보다 많은 이들이 삶의 현장에서 부딪치고 목소리를 낼 때야 비로소 들리고 이들의 존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때로는 쪽수로 밀어붙이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가 왕왕 있다.

 

지난 9월 5일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 토론회. 장애학생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하고 있다.


다행인지 내 졸업 이후 장애학생들이 모교에 입학했고 후배들은 그 불합리를 겪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물론 그 후배들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겠고 앞으로 개선되어야 할 사항들이 많겠지만 내가 겪었던 불편만큼은 경험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자랑거리 중 하나이다.


현재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싸고 일어난 문제들을 보면서 복잡한 심경이었다. 그중 내 심기를 가장 불편하게 한 것은 무릎 꿇은 장애학생 어머니들의 모습이었다. 여러 언론에서는 그 모습만을 확대해 내보내는 등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보도들만이 연이어 나왔다. 더 이상 뜬소리가 나오기 전에 아주 기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해보자. 그 어머니들은 어떤 연유로 무릎을 꿇어야 했는가? 그리고 강서구의 장애학생들은 정말로 특수학교가 아니면 교육을 받을 수 없는가? 정말로 우리나라의 교육청은 특수학교가 아니면 장애학생들을 교육시킬 수 없는 ‘멍청한’ 행정기관인가? 교육개발을 위한 표본이 없다면 나를 비롯해서 일반학교 혹은 특수학교를 나온 장애인 선배들의 사례를 참고해서 장애학생들의 교육체계를 다시 짜면 된다. 나는 기꺼이 협력할 의지가 있다. 어쩌면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문제는 한국 장애학생들의 교육의 새 판을 짤 수 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겠다.


나는 ‘보편타당하게 주어지는’ 강서구 장애학생들의 교육권을 주장하지 않겠다. 어차피 저들에게 장애학생 또한 비장애학생과 같이 교육권이 있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보았자 씨알도 안 먹힌다. 나는 존재를 드러내고 차별과 배제의 선을 넘을 수 있는 교육권이 그들에게 또는 우리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또 나는 우리에게는 차별과 혐오에 무릎을 꿇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면 된다. 중국의 근대 문학가 루쉰이 말한 것처럼,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은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나는 강서구 장애학생들의 ‘공부’에 기꺼이 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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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훈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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