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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노동권, 30년 침묵의 시간을 깨다
[아듀2017-③] ‘장애인 노동권 보장’ 요구 장애인고용공단 농성의 의미
등록일 [ 2017년12월18일 13시21분 ]

김규성(26·서울경기지역 장애자단체연합회 사무총장)씨 등 신체장애자 5명은 2일 오후 2시 서울 강동구 신천동 11-7 교통회관 11층 장애자올림픽조직위(위원장 고귀남·50) 위원장실을 점거, 대통령·보사부장관·조직위원장 등의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이날 신나통 2개를 들고 위원장실에 들어가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근 뒤 유리창에 "보사부 장관·대통령·조직위원장은 즉각 면담에 응하라"는 구호를 써 붙이고 '조직위를 점거하며'라는 제목의 유인물 2백여 장을 창밖으로 뿌렸다.


이들은 유인물에서 "고도성장의 혜택에서 4백만 장애인을 소외시킨 채 탁상공론인 행정 올림픽을 치르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기만술책"이라고 주장하고 △장애자 올림픽 전면 거부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 등 6개항을 요구했다. (「‘장애자 올림픽’ 거부 농성」, 한겨레, 1988.07.03)

 

민주화의 바람이 온 나라를 휩쓸고 지나간 뒤인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온 나라가 흥분에 들썩였고, 올림픽 본 대회 직후 열리는 장애자올림픽 덕분에 장애인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높아져 갔지만, 정작 장애인 당사자들은 달갑지 않았다. 장애자올림픽이 당사자들의 삶과 무관한 ‘전시성 행사’에 불과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정통성이 결여되어 있던 전두환 정부는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해 장애인복지에 관심을 보이는 제스쳐를 취했지만, 이는 실질적인 제도 개선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에 수도권의 청년 장애인 단체들이 모여 88년 4월 16일 ‘장애인권익촉진 범국민결의대회’를 개최한다. 이들은 호기롭게 ‘장애인 권익 증진 등이 선행되지 않는 장애인 올림픽 거부’를 내걸고 두 가지 핵심 요구를 제시한다. 요식행위에 불과한 심신장애자복지법 개정, 그리고 장애인 의무고용 법제화를 담은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 이른바 ‘양대 법안 투쟁’이라 불리는 이 운동에 전국의 장애인단체가 결집했다. 이어 단식과 농성으로 이어지는 지난한 투쟁 끝에 장애계는 89년 12월,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장애인복지법’이라는 새 이름으로 개정하고 장애인고용촉진법의 제정을 이뤄내는 결실을 맺는다.


‘양대 법안 투쟁’은 한국 장애인 대중운동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전까지 장애인 문제 대응이 김순석 열사의 “서울 거리 턱을 없어주세요”와 같은 개인적 청원과 호소에 의지했다면, 이 투쟁은 조직된 장애인의 힘으로 장애 문제의 사회 구조적 성격을 폭로하면서 법률 제정까지 이뤄내는 최초의 성과를 이뤄냈다. 또한 장애인 고용 의제를 전면화하면서 장애인 문제를 복지의 차원을 넘어 노동권의 문제로 제기한 것이기도 했다.

 

1989년 11월, 장애인의무고용율의 하향담합을 거부하며 청년장애인 7명이 신민주공화당사를 점거한 채 단식 농성을 진행했다.

# 비장애인 중심의 효율성에 갇힌 의무고용 담론


그리고 지난 30년간 장애인운동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2000년대 들어 들불처럼 조직된 대중 투쟁 중심의 장애인단체의 힘을 기반으로, 이동권 확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탈시설과 자립생활운동의 확산,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이 모든 활동은 장애인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터전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존재를 인정받는 가장 결정적인 경로인 ‘노동’에 있어서만큼은, 사실상 30년 전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의 결실 이상의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장애인고용촉진법 최초 제정 당시 의무고용률은 공무원의 경우 2%, 민간 사업주는 1~5%로 규정되었다. 물론 민간의 의무고용률은 시행령에서 2%로 명시하긴 했지만, 경총을 비롯한 재계의 의무고용률 무력화 시도는 계속됐다. 이런 실태는 현재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2017년 기준 공공기관 의무고용률은 3.4%, 민간 사업주는 3.1%에 그친다. 이마저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을 통한 의무고용 법제화가 중요한 성과이기는 하나, 애초에 이는 시작부터 시장경제와 효율성의 논리에 종속된 것이었다. 현재 기업들이 장애인 의무고용을 준수하지 않았을 경우 부담해야 하는 장애인고용부담금은 최저임금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노동 능력이 떨어진다고 여겨지는 장애인을 고용하느니 차라리 고용부담금을 내는 쪽을 선택할 유인이 더 큰 것이다. 장애인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마련된 장애인고용장려금 또한 근속기간에 따라 차등지급하도록 되어 있어 근속기간이 길수록 장애인은 해고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게다가 장애인고용기금은 거의 전액 의무고용률을 준수하지 못한 기업들이 내는 고용부담금을 재원으로 하고 있어, 기업들이 의무고용률을 준수하지 않아야 기금이 마련되는 모순적 상황에 놓여 있다. 


이처럼 장애인을 노동시장으로 통합하기 위한 유인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와 기업은 그저 장애인 개인의 ‘노동능력 결여’만을 탓한다. 그래서 택하는 방식이 오로지 ‘훈련’이다. 장애인의 직업능력을 개발해 일반 노동시장에 진출시킨다는 희망에 찬 약속에 묶여 지금도 수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보호작업장 등에서 ‘노동’이 아닌 ‘훈련’을 받고 있지만, 최저임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받기 일쑤이며 노동시장 진출의 길은 곳곳에서 봉쇄되어 있다.


지난 30년간 장애인운동의 괄목할 만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노동권에 관해서는 이처럼 비장애인 중심의 속도와 효율성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노동능력이 결여된 장애인’을 착취해 먹고 사는 모순적 행태도 곳곳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염전노예’, ‘밥집노예’, ‘축사노예’ 등 자극적 표현을 달고 전해지는 사건을 보라. 장애인은 애초에 노동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져 내쳐지거나, 노동을 하고 있어도 그 존재가 은폐되고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전근대적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 ‘공공일자리’라는 새 패러다임, 장애인운동의 새로운 비약


지난달 21일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들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제외 폐지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중 최소 1만개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공공일자리로 확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중증장애인에게 희망고문만을 강요하는 장애인고용공단의 운영방식을, 장애인을 노동시장에 선배치하고 지원하는 형태로 대대적으로 개편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21일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들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를 점거하고 장애인노동권 보장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이는 공공기관과 일부 기업체에 한해 시혜적으로 2~3% 정도의 의무고용만을 부과하고 그마저도 이리저리 회피할 여지를 주고 있는 현재의 장애인 고용 관련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혁신을 요구하는 것이다. 기존 제도의 논리에서는 장애인이 제한된 노동시장 내에라도 들어오려면 비장애인 중심의 노동구조에 스스로를 맞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요구하는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는 중증장애인의 특성과 권리, 그들의 요구에 걸맞는 활동(권익옹호, 문화활동, 동료상담 등)을 노동으로 인정하고 이를 공공에서 지원해 최소한 최저임금은 지급하라는 것이다. 또한, 장애인에게 기존 노동시장의 속도에 맞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선배치 후지원’을 통해 장애인의 특성에 맞게 노동현장 운영 방식을 재구조화 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제32조)에서 노동(근로)은 권리이면서 동시에 의무다. 그것이 권리이기만 하다면 개인의 선택에 따라 행사할 수도 행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의무라면 의무를 다할 기회가 반드시 주어져야 한다. 따라서 이 국가공동체의 성원인 장애인에게도 노동의 의무를 다할 기회가 ‘공적으로’ 주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즉, 이번 점거농성에 장애인들이 요구하는 내용들은 지금까지 시혜적으로 주어졌던 ‘장애인 의무고용’ 패러다임을 뒤바꾸는 것이면서, 동시에 헌법에 담겨 있는 원칙을 비로소 장애인에게 실현하자는 것이다. 비장애인의 속도와 효율성이라는 기준에 장애인을 욱여넣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속도와 삶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노동으로 이 사회의 온전한 성원이 될 수 있도록 노동의 기준 자체를 바꾸자는 호소다. 30년 전 장애인 의무고용 도입을 요구하며 비로소 첫 발을 뗐던 장애인운동의 역사가, 한 세대를 지나 이제는 노동의 패러다임 자체에 도전하는 운동으로 비약한 것이다. 


정부는 여전히 이들의 호소에 어떤 공식적인 대답도 내놓고 있지 않다. 이대로라면 장애인들의 점거농성이 해를 넘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이 농성은 장애인운동 역사의 새로운 장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다음 장을 이어받아 노동의 역사가 다시 쓰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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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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