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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공론장의 유리천장을 깨는 언론이 되겠습니다
미디어공공성포럼 언론상을 수상하며, 독자분들께 전하는 다짐의 편지
등록일 [ 2018년01월16일 09시22분 ]

 


 

지난 12일 비마이너 선감학원 기획취재팀은 200여명의 언론학자들로 구성된 미디어공공성포럼이 시상하는 제8회 언론상을 받았습니다. 처음 저희가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땐 조금 어리둥절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비마이너의 선감학원 보도가 최초 보도도 아니었고(이미 주요 방송사의 시사보도 프로그램에서도 몇 차례 다뤄진 적이 있었습니다), 피해자의 구술기록을 담은 기사도 비슷한 시기에 오마이뉴스 이민선 기자님이 열정적으로 보도하신 바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의 보도가 단순히 선감학원 피해자의 경험 자체만을 다루는 것을 넘어, 한국현대사 전반의 맥락에서 부랑인 강제수용의 기원을 짚어보고 각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이 큰 역사의 조망 속에서 이해하기 위한 작업과 함께 이뤄졌다는 점에서는 나름 자부심을 갖지만, 그것이 우리의 독자적인 취재의 성과라 말하기에는 민망한 점이 많습니다. 사실 미디어공공성포럼 언론상이 어떤 무게감을 갖는 상인지도 잘 몰랐는데, 이번에 함께 수상한 언론사들의 면면을 보니 우리가 이룬 성과에 비해 분에 넘치는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닌지 부끄러운 생각도 듭니다. 군소매체의 분투에 후한 평가를 해주신 미디어공공성포럼 심사위원회에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약 1년 전, JTBC의 한 기자가 정유라 도피처를 덴마크 경찰에 신고해 체포되게 한 후 이를 보도한 일로 한창 논쟁이 일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당시 많은 이들이 언론이 사건에 개입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가지고 갑론을박을 벌였지요. 선감학원 취재를 진행하면서 그 논쟁이 여러 차례 생각났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비마이너는 (적어도 이 취재를 총괄했던 저는) 때로는 의도적으로, 또 때로는 의도치 않게, 사건에 적극 개입하게 되었으니까요.


사실 돌아보면, 선감학원 사건을 대하는 비마이너의 활동은 ‘언론’이기보다는 ‘민원창구’나 ‘인권센터’와 닮았던 적이 많았습니다. 피해자분들이 자신의 선감학원 원아대장을 찾기 위해 정보공개청구 하는 것을 도와드리고, 선감학원에 보내지기 직전까지 살았던 서울시립아동보호소 기록을 찾기 위해 서울시 꿈나무마을에 함께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피해자 예닐곱 분이 인천에 모여 대책위 결성을 논의할 때, 제가 엉겁결에 서기 같은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지난해 11월 국회 정론관에서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진상규명 요구 기자회견을 할 때에는 제가 보도자료를 쓰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다 보니 취재 윤리니 뭐니하는 이야기는 둘째치고, 솔직히 “나는 기자인데... 왜 내가 보도자료를 쓰고 있지?”라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적어도 선감학원과 관련해서는 이런 태도가 아니라면 이 사건을 의미 있게 보도할 수 없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선감학원과 같은 부랑인 시설의 비인간성이 이 땅에서 최초로 폭로되었던 시점은 형제복지원 비리와 인권침해 관련 수사가 시작되었던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바로 직전입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그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 조사에 따르면, 12년간 513명의 사람이 죽어나갔고, 경찰이 무고한 시민에게 부랑인 딱지를 붙여 형제복지원에 보내면 벌을 받는 게 아니라 승진 가산점을 받았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독재정권의 비호 속에 악행을 벌여온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은 결국 재판정에 섰음에도, 끝내 ‘특수감금죄’에 대해서는 무죄가 나오고 고작 2년 6개월형을 산 후 천수를 누리다 제작년 사망했습니다. 사건의 비극성, 반인권성, 권력의 범죄적 성격과의 연관성, 그 어떤 면에서도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1988년 민주화운동진영의 기록을 담은 『민추사』에서는 독재정권이 저지른 대표적인 비인간적 악행 세 가지로, 부천서 성고문사건, 박종철 군 고문 살인사건과 함께 형제복지원 사건을 들었습니다. 그 정도로 당시 정국을 강타한 중요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개봉된 영화 <1987>에서 박종철 사망 사건과 부천서 성고문사건은 중요하게 다뤄지는 반면, 형제복지원 사건은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앞의 두 사건은 민주화운동을 촉발시킨 주요한 사건으로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끊임없이 재평가되는 반면, 형제복지원 사건은 끝없는 망각과 은폐의 시도 속에서 역사의 무덤에 수장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비단 국가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민주화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수많은 학계와 언론, 시민단체들은 하나 같이 박종철과 이한열은 말하지만, 형제복지원에서 사망한 513명의 사람들은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선감도에서 탈출하려다 불어난 바닷물에 휩쓸려 사라진 아이들에 대해선 알지도 못합니다. 사회의 ‘잉여’ 또는 ‘쓰레기’로 취급되어 버려졌던 사람들은 역사의 기억에서도 그저 찌꺼기로 남아 망각될 뿐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 인권의 성적표입니다. 


그 망각과 은폐의 시간 속에서 피해자들은 홀로 신음하다 죽어가거나, 산송장처럼 입이 틀어 막혀진 채 살았습니다. 지난 30년간 그들의 외침은 시민의 정당한 몫을 가진 목소리가 아니라, 끝내 해석되지 못한 잡음에 불과했습니다. 즉, 이들의 존재가 한국사회 공론장의 유리천장이 얼마나 두터운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론으로서 우리의 역할은, 아니 ‘동료 시민’으로서 우리의 역할은 저 두터운 유리천장을 깨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일은 단지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것을 넘어, 피해자들과 함께 대화하고 거리로 나서고, 더 많은 동료시민을 모으는 ‘활동가’의 일이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다짐합니다. 우리가 가슴 속에 새겨야 할 어떤 ‘~ism’이 있다면 그것은 ‘저널리즘(journalism)’이기보다는 ‘액티비즘(activism)’이라고 말입니다.


저는 한 국가/사회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본질을 볼 수 있는 지점은 중앙이 아니라 변두리라고 믿습니다. 변두리가 권력이 작동하는 핵심 지점입니다. 그곳에 누가 내몰리고 누가 신음하고 있는지를 들어야, 우리를 지배하는 권력의 폭력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감학원 보도를 통해서 저 또한 이제서야 비로소 우리 사회의 진실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민주화는 ‘변두리에서 작동하는 국가의 폭력성’을 극복할 때라야만 오는 것이라 믿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위한 하나의 길로 ‘포괄적 과거사 청산’을 내걸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 개정을 약속했지만, 개정안 통과는 해를 넘기고 말았습니다. 세상은 아직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보도가 바꾼 것도 아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제라도 진정한 변화를 위해, 이 글을 읽는 모두가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피해자의 ‘동료 시민’이 되어 주십시오. 야만과 폭력의 역사를 넘어, 진정한 민주화를 ‘변두리’에서부터 실현하는 길에 비마이너도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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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편집장 rollingston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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