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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여행 앞에서 나의 ‘존재’가 지워졌다
[김상희 칼럼] 여행을 가지 못한 '서운함'이 아니라 가벼워진 나의 '존재'에 대한 분노
등록일 [ 2018년02월12일 18시19분 ]

당신에게 장애인 동생이 있다면?


나에게 여섯 명의 언니들이 있으며 나는 일곱 번째 막내로 자랐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부모님과 언니들 틈에서 번번이 나의 의견이 무시당하고 신체에 대한 결정권(머리카락 길이 등)을 행사하지 못했던 경험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울분을 삼키며 가족 안에서 나만 장애인이란 게 억울했던 적도 있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아질수록 나는 주장이 강해졌고 고집이 굉장히 쎈 아이로 변해갔다.


장애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가족은 나를 이해할 수 없었고 무엇 하나 나의 장애에 맞춰진 것이 없었다. 부모님은 집 안에서 휠체어도 못 타게 했다. 처음에는 휠체어에 타고 다니면 걷지 못하게 될 것이란 엄마의 우려 때문이었고, 또 다른 이유는 휠체어 바퀴 자국이 방바닥에 흠집을 남기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어릴 때는 언니들이 나를 업거나 안고 이동하는데 어려움이 없어서 불편함은 덜 느꼈다. 그런데 장애가 점차 진행되고 몸이 성장해가면서 언니들은 나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이미 언니들만큼 성장한 나를 방바닥에서 들어 올려서 안고 이동해야 하는 집 안 구조는 어느 누구라도 버거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버거움을 집 구조 문제로 생각하지 못하고 혼자 이동할 수 없는 나의 중증장애만 탓했었다. 버거움이 일상이 되면서 점점 보조를 요청하는 것이 많아지는 나에게 언니들도 짜증내는 횟수가 많아졌고 그런 언니들에게 나는 불평과 불신이 커져갔다.


사실 한 때 가족이 변하고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를 품은 적도 있었다, 내가 사회적인 역할을 하고 가족의 도움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면 가족도 나의 장애를 다르게 봐주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독립을 하고 나름의 사회적인 역할 속에 자리를 잡으며 살고 있어도 여전히 나는 친척들이 모이는 행사에 초대받지 못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결론을 내렸다. 어떤 두터운 껍질이 가족을 에워싸고 있고 나는 그 껍질을 벗겨낼 수 없을 것이라고, 이제 그만 포기하고 내가 세운 경계선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야 차별이 불쑥 불쑥 덮치는 사회 안에서 나의 자존감을 지키며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테니까.


나는 투명인간이 아니야!!


몇 해 전부터 일곱 자매들만 있는 톡방을 만들어서 가끔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한다. 얼마 전 톡방에 올해 아버지 팔순 잔치 관련 이야기가 올라왔다. 언니들은 잔치를 생략하고 일본 여행을 가자고 의견을 모으고 있었다. 나는 내가 있는 톡방에서 논의를 하기에 당연히 나도 같이 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언니들과 있으면 거의 말을 안 하거나(관심사가 다르고 할 얘기가 없다..;;;) 듣는 쪽이라서 같이 있으면 재미가 없다. 따라서 여행에 합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장애인과 다니는 여행이 자유롭거나 색다른 재미를 추구할 수 없을 것이 뻔하기에 이럴 땐 많은 장애인이 그러하듯 알아서 빠져주는 게 눈치 있는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즐겁자고 여행가서 짐이 되어버리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바쁘다는 이유로 못 간다고 메시지를 보내려던 찰나에 “막내야 미안하다 같이 가고 싶은데 못 가서.. 말 안 하고 우리끼리 갔다 오는 것보다 너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알린다. 5월에 아버지와 식사하는 날에 와라”라는 메시지가 먼저 올라왔다.


순간 멍했다. 그리고 내 마음은 가족에게 배제되었던 수많은 날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때의 그 날들은 나란 사람의 존재가 지워지고 삭제되었던 날들이었다. 나는 유령도 귀신도 아닌데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려야 했을까. 마치 내가 투명인간이 되어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되어 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화가 났었다. 언니들에게 아직도 나는 너무나도 쉽게 배제해도 되는 사람, 마음을 살피지 않아도 되는 사람으로 읽히는 게 분노스러웠다. 하지만 나의 분노를 표현할 수 없었다. 그 전에도 여러 불편한 상황에 대해서 그건 차별이고 부당한 것이라고 언니들한테 말했을 때 그렇게 말하는 내가 이기적이고 철부지라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만 같아서 침묵을 선택했다. 그러자 나의 침묵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한두 명씩 언니들한테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고민을 했다. 아무렇지 않는 것처럼 연락을 받아야 할까. 아니면 내가 느낀 이 분노를 표현해야 할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결국 나는 언니들한테 나의 불편한 감정과 화가 난 사실을 알렸다. 내가 화가 난 것은 여행 동행 여부가 아니라 왜 처음부터 나는 갈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와 나의 의견은 묻지도 않았는지에 대해 물었고, 나는 당연히 배제해도 되는 사람으로 되고 싶지 않다고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조금은 신랄한 분노를 담아 보냈다. 나는 더 이상 가족 안에서도 사회 안에서도 차별받아도 되는 사람, 먼지만큼 가벼운 존재로 남고 싶지 않기에 내가 느낀 절망에 대해 말을 한 것이다. 메시지를 받은 언니들은 나에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나를 동행한 여행계획을 세워 보자고 했다. 잘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굳이 언니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한 편으로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성하는데 으뜸으로 기여하지만 장애인과 대등한 관계로서 함께 소통하고 살아갈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이러한 사회 편견을 넘어 편견 바깥에서 생각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나와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 세상을 본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도 아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내가 존중받지 못한 세상은 다른 사람도 존중받지 못할 것이란 생각으로 언니들에게 말을 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일로 나에게 서운하겠다고 위로를 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이번 일에서 서운함의 감정을 느낀 것이 아니었다. 서운함은 여행에 가고 싶은데 못 가게 해서 드는 감정이고 나의 감정은 그게 아니다. 내가 느낀 감정은 분노였고, 그 분노는 나의 존재에 대해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볍게 여겨졌다는 점에서 기인 한 것이다. 언니들한테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았기에 마음은 풀렸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만일 내가 계속 가족한테 얹혀살고 버거운 존재였다면 지금처럼 사과를 받을 수 있었을까? 가족 안에서 존중받으며 살고 있는 장애인도 있겠지만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살고 장애인도 많을 것이다. 나는 그 가족에게 말하고 싶다. 세상에 존중 받지 못할 존재는 없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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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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