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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 대리권' 제도, 성년후견제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의사능력 상실 이전에 특정인에게 대리권 부여...자기결정권 보장 가능성 높아
"현행 성년후견제와 큰 차이 없어" 반론도 나와
등록일 [ 2018년02월23일 12시19분 ]

2013년 7월에 제정된 성년후견제는 질병, 장애, 고령 등으로 의사 행위능력을 상실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 법원이 후견인을 지정해 의사결정을 대리하는 제도다. 하지만 성년후견제도는 당사자가 아닌 법원이 후견인을 지정하고,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약혼, 결혼, 입양, 수술, 입원 등의 개인의 중요한 법률적 결정까지 대리해 당사자들의 법적 권리를 박탈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2014년 UN장애인권리위원회도 성년후견제도와 같은 ‘대행의사결정제도’가 피후견인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임무를 벗어났다고 지적하며 이를 폐지하고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의사결정지원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에 의사결정지원제도 중 하나인 ‘지속적 대리제도’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의 ‘성년후견제도’가 의사능력 상실 후 후견인을 지정하고 국가가 개입해 후견인을 선임하는 구조였다면 ‘지속적 대리제도’는 의사상실 이전에 본인의 의사에 따라 특정인에게 특정업무의 대리권을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자기결정권이 존중된다.


22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은 이 지속적 대리제도를 시행중인 홍콩, 싱가포르 등 해외의 제도 운영현황과 이의 국내 도입을 위한 과제 등을 살피는 ‘고령자-장애인을 위한 의사결정지원제도 도입을 위한 국제포럼’을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장애인단체들은 22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의사결정지원제도 도입을 위한 국제포럼'을 열었다.


홍콩은 97년 지속적 대리권제도를 제정한 뒤 지난해 12월 법안 개정을 추진 중이다. 추진 중인 개정법안에는 기존에 있던 당사자의 재정관리에 대한 대리권 행사에 신상돌봄을 추가했다. 재정관리의 대리권은 서류 작성 등이 완료 됐을 때 일체의 제약 없이 행사가 가능하다. 하지만 신상보호는 당사자의 의사무능력이 확정되고 지속적 대리권을 법원에 등록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신상보호와 관련된 대리권은 주거, 교육, 훈련, 근로, 휴가에 대한 결정, 치료 관련 법률 문제 등 광범위한 권리를 대리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기증, 불임 수술, 정신병원 입원, 의학적 연구에 참여, 전기치료, 인공수정절차 참여 등 당사자의 인권과 자유권을 현격하게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대리권 행사가 불가능하다. 또한, 대리인은 당사자의 최선의 이익에 따라 활동하며 당사자가 상의하도록 지정한 개인과 반드시 상의해야 한다. 또 다른 특징은 후견위원회에 사법적 권한이 이양돼 효율적으로 업무처리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제도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루지나 호 홍콩대 교수는 “법률에서 말하는 ‘지원된 의사결정(supported decision making)’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아일랜드, 호주는 이것이 무엇인지 나와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후견위원회가 등록을 관할하게 되면 민감한 부분에 대해 잘못된 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대리인에 대한 안내와 지원도 부족하다. 만약 가족들이 당사자의 자산을 관리 할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명백하게 설명이 되어 있지 않다. 이 제도가 시행된다면 조금 더 명확한 설명, 기준 등이 추가되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의 경우, 의사능력을 상실하기 전 당사자가 대리인에게 신상관련 업무, 재산관련 업무를 대리한다. 의사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대리인을 선임하기 위해 법원에 지원을 요청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사, 정신과 전문의 혹은 변호사에 의한 확인절차가 필요하며 ‘공공후견청’에 필수로 등록해야 한다. 홍콩이 양식과 절차를 간소화 한 점에 비하면 복잡한 신청절차다.


하지만 싱가포르의 지속적 대리권도 문제점이 있다. 변호사 선임비용이다. 단순한 대리인 선임에만 드는 비용이 최소 3000달러에서 7500달러까지다. 탕 싱가폴 교수는 “이 때문에 정작 필요한 사람이 이 정책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유명한 BKR 사건, Chung의 사건처럼 부유한 가족들이 재산을 노리고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해 지속적 대리권을 두고 법정다툼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현재 싱가포르 정부는 사회복지사들이 정신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재정관리 등을 하는 ‘Community Kin Service’를 시범운영하고 있는 상태다.


해외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지속적 대리권을 한국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제철웅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장은 정부가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가 지속적 대리권 양식서를 개발해 등록하게 함으로써 대리권의 존재를 쉽게 증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대리인의 활동을 국가가 직접 또는 민간에 위탁해 관리하게 함으로써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한 장애인의 역량을 보충해 정당한 편의제공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 그는 “영국의 영속적 대리권 등록제도, 독일의 장래 대리권 등록제도, 싱가폴의 영속적 대리권 등록제도 등을 참고 할 만하다. 영국과 싱가폴의 공공후견인청 등이 바로 이런 관리감독을 하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속적 대리제도가 성년 후견제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길준 한국장애인부모회 사무총장은 “지속적 대리제도와 후견제도의 큰 차이점은 계약의 유무, 사회적 비용의 추가, 절차의 복잡성 등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속적 대리제도는 의사소통능력을 상실하기 이전에 대리자를 선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치매 환자에게는 좋을 것 같다."면서도 "후견제도는 본인의사 존중의 원칙, 자기결정의 존중의 원칙 등에 따라 운영된다. 당사자의 의견을 아예 배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의 핵심은 당사자의 의사를 제대로 파악해서 실현하느냐 아니냐다. 제도탓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후견제도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반론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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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기자 hyemikim@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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