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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노출된 여성의 얼굴에 관심 쏟는 관음증의 세계, 연상호의 ‘얼굴’
연상호의 그래픽노블 <얼굴> 비평
미투운동이 요구하는 것, “폭로하는 여성의 얼굴이 아니라 ‘권력의 얼굴’을 보라”
등록일 [ 2018년03월12일 17시07분 ]

미투운동이 촉발한 성폭력 가해 폭로가 연일 신문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러나 늘어난 보도량 만큼 언론의 성폭력 보도 관행이 나아졌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이 많다. 이는 미투 관련 폭로가 가장 많이 쏟아진 JTBC 뉴스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 언론사 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뉴스룸이 피해자의 실명과 얼굴 공개를 중심으로 폭로를 이어가는 방식은 굉장히 문제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오달수가 사실이 아니라 주장할 때, JTBC가 해야 했던 보도는 엄지영의 얼굴 공개가 아니라, 얼굴을 공개하지 않아도 당사자의 말을 신뢰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엄지영 씨에게 스피커를 주겠다고 하는 것이어야 했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보도 행태는 나아가 가해자들이 “사실이면 얼굴 실명 까고 나오시든지”라고 주장할 수 있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고 했다.


위 지적처럼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한편으로는 피해자의 용기와 결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양날의 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것은 “사실이면 얼굴 실명 까고 나오시든지”라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가해자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사태를 관음증적으로 바라보는 대중들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서지현 검사가 뉴스룸에 나와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을 폭로했을 때, 일부 네티즌들은 성폭력의 원인이 마치 그녀의 외모 때문이라는 듯, 서 검사의 외모를 가지고 찧고 까불어댔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안희정의 성폭행을 폭로한 김지은 씨를 두고 “슬픔을 극대화하려고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떤다”고 명백한 2차 가해를 쏟아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그녀가 전하고자 했던 말에 집중되었던 우리의 시선은 분산되고, 그녀에게 가해졌던 권력 위계를 바탕으로 한 폭력에 대한 비판도 흐려지고 만다.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당사자의 결단의 문제이고 또한 격려 받을 만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가 그녀들의 얼굴공개를 강요할 권한도 없고, 얼굴에 관심 가져야 할 이유도 없다. 중요한 건 그녀들의 얼굴이 아니라, 그녀들이 전한 ‘메시지’다. 미투운동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미투운동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말하기’의 권리를 지닌 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남성의 욕망이 투사되는 대상으로만 보는 폭력적 시선에 대한 문제제기다. 즉, 그녀들이 카메라 앞에 서서 감행한 ‘폭로’는 사실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 ‘말’을 듣고, 진지하게 성찰하라는 신호이기도 한 것이다.


미투운동이 우리 사회에 조금씩 파장을 낳기 시작하던 즈음, 한 여성에게 가해졌던 폭력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작품을 접하게 됐다. <부산행>으로 천만 감독 대열에 오른 연상호의 그래픽노블(작가주의 형식의 만화) <얼굴>(세미콜론, 2018)이 그것이다. 연상호는 최근 <염력>의 흥행 참패로 타격을 입긴 했지만, 전작 <돼지의왕>, <사이비> 등을 통해 선악구도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한국사회의 괴물성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독특한 묘사로 주목받아 왔다. 한국일보는 그의 <얼굴>을 소개하면서, 영화 <1987>이 말하지 않는 현대사의 어두운 측면에 주목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한국일보, 「못생긴 여자가 마주했던 현대사는 어떤 얼굴이었을까」, 2018.01.24.) 주제 자체도 흥미로운데다가 <1987>과의 대비도 눈길을 끄는 지점이라 바로 이 책을 구입했다.

 

연상호의 그래픽노블 <얼굴> ⓒ세미콜론

 

이 작품은 표지부터 의문을 자아내게 만든다. 얼굴이 까맣게 지워진 한 여인의 실루엣만 가득한 표지. 그리고 이야기의 시작부터 그 여인, 정영희는 ‘못생긴 여자’로 불린다. 못생겼기에 동네 사람들은 물론 가족들로부터 따돌림 당하고, 시다로 일하게 된 평화시장 공장에서도 괄시받고 폭력에 노출된다. 그러던 정영희는 시각장애인임에도 도장 파는 기술을 갖고 분투하며 살아가던 임영규를 만나 결혼을 한다. 그런데 갑자기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 30년 후, 경찰은 정영희의 시신이 한 야산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을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에게 전한다. 이후 줄거리는 그 죽음의 이유를 아들이 추적하며 숨겨져 있던 정영희의 이야기를 만나는 과정이다.


이 작품에 끌린 이유는 연상호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놓은 발언 때문이었다. “한국 현대사를 얘기할 때 너무 이데올로기 얘기만 하고, 정치 얘기만 한다. 그리고 ‘신분’ 비중이 크다. 거기에서 벗어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얼굴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의 말대로 <얼굴>은 7-80년대 불도저처럼 밀어닥친 산업화시기에 가정과 직장 곳곳에 만연했던 폭력에 고통 받았지만 그 고통의 이야기가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던 이들의 삶을 담았다. 평화시장 시다 여성과 도장 파는 시각장애인 남성의 이야기.


그런데 <얼굴>에는 정작 주인공 정영희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단 하나의 궁금증에 매달리게 만들 뿐이다. “그래서 정영희의 얼굴이 얼마나 못 생겼다는 건가?” 이야기 내내 정영희는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모습으로 나온다. 그런 그녀를 두고 사람들은 ‘괴물’ 같다고도 하고, ‘똥걸레’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에게는 변변한 사진 한 장 없다. 독자의 머릿속에는 ‘혹시 그녀에게 심각한 안면장애라도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스포일러가 될 위험을 무릎 쓰고 말하자면, 아들이 수소문 끝에 찾아낸 정영희의 유일한 사진 속 얼굴은 독자가 지금껏 품어왔던 의문 자체를 의미 없게 만들어버린다.(그 얼굴이 진짜로 못 생겼는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도 아니지만, 보는 사람 각자가 알아서 판단하면 될 문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스포일링을 하자면, 정영희를 죽인 건, 그녀가 예쁜 줄 알고 결혼했는데 주변 사람들의 ‘폭로’로 사실은 그녀가 ‘못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 임영규가, 그 분노와 모멸감을 견디지 못하고 저지른 일이었다. ‘시각장애인이 부인의 못생긴 얼굴에 분노한다’는 다소 아이러니한 상황을 <얼굴>은 임영규의 대사 하나로 해소하려 든다. "얼굴이... 괴물 같은 추녀라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듣는 순간에 난 알아버렸다. 그놈들이, 그놈들이 나를 놀려 먹으려고 했다는 걸. 어렸을 때부터 앞을 못 본다고 당했던 모멸감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걸 말이다!! 예쁜게, 추한 게 뭔지 내가 모를 것 같지?! 나도 알아!! 예쁜 건 존경받고... 추한 건 멸시된다는 걸!!"


평생을 주변 사람들의 모욕과 멸시 속에 살아왔던 시각장애인이, 자기 삶의 유일한 희망이라 여기고 결혼까지 했던 여성 또한 사람들에게 무시 받는 ‘못생긴 여자’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그녀를 죽임으로서 자신의 모멸감을 해소하고자 했다. 정영희가 ‘못생겼다’는 낙인(작품 마지막에 드러난 그녀의 사진을 통해 보면, 사실 ‘못생겼다’는 것은 그 실제적 의미를 갖는 것이라기보다는 여성에게 가해진 차별을 응축하는 하나의 기호라는 의미로 다가온다)을 떠안은 소수자로서 차별에 의해 괴물의 형상으로 내몰리는 경우로 묘사되고 있다면, 임영규 또한 차별을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부인을 살해하는 또 하나의 괴물로 묘사되고 있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그간 연상호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악구도를 뛰어넘는 ‘괴물화 되어가는 소수자의 형상’을 그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연상호의 그래픽노블 <얼굴> ⓒ세미콜론
 

그러나 이렇게 평가하고 끝낼 문제인가. <얼굴>은 마지막 장면에서 정영희의 사진을 공개함으로써 마치 그녀의 얼굴이 어떠한가는 의미 없는 문제였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지만, 작품 전반에 걸쳐 독자로 하여금 “그녀의 얼굴이 얼마나 못생겼길래”라는 관음증적 의문을 유발해 놓고는 이렇게 빠져나가 버리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다. 관음증이 해소되지 않은 독자에겐 결국 또 다른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얼굴이 문제가 아니라면 그녀에게 대체 무슨 문제가 있었길래?”


결국, 얼굴이 됐든 다른 무엇이 됐든, 이 작품이 독자로 하여금 그녀에게 가해진 폭력의 원인으로 사유되도록 만드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 자신일 뿐이다. 그녀를 ‘괴물’이라 부르며 괄시했던 가족도 아니고, ‘똥걸레’라 부르며 차별했던 공장의 간부와 사장도 아니고, 모든 문제가 그녀 자신에게 있었던 것처럼 상상되고 마는 것이다. 애초에 연상호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소수자가 차별을 받으며 ‘괴물’로 낙인화되는 과정을 그녀의 지워진 얼굴이라는 장치를 통해 그리고자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 시도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그녀를 ‘괴물’로 상상하게 만든 것은 이 사회 뿐만이 아니라, 차별받는 여성에 대한 재현에 실패한 <얼굴>이라는 작품 자체이기도 하다.


 <얼굴>의 이야기 전체를 통틀어, 정영희는 얼굴이 지워졌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독자들은 그녀의 얼굴에만 관심을 쏟는 관음증적 태도를 보이게 된다. 바로 그와 동시에 그녀는 차별과 멸시에 신음하는 피해자이자, 독자에게 어떠한 메시지도 전하지 못한 채 30년 동안 버려진 유골로만 다가올 뿐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호주의 역사학자이면서도 독특하게 한국 문학 속 여공들에 대한 연구를 한 루스 베러클러프가 자신의 저서 <여공문학>(후마니타스, 2017)에서 쏟아낸 지적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여공들이 일상과 공장 내에서 당하는 성폭력 문제에 주목한 진보적인 문학에서조차 성폭력 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즉 많은 문학작품들이 “공장 관리자들이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완벽히 지배하려 했는지를 보여 주면서도, 여성들을 종종 이 같은 폭력의 에로틱한 대상으로 전시”(105쪽)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독자의 관심이 ‘에로틱한 장면’에 집중되면서, 그녀들은 “희생양이라는 여성화된 지위”에 머물고 정치적 목소리가 부여되지 못했다. 이로써 성폭력에 대한 재현이 여공에 대한 재현을 잠식해버리고, “텍스트 내에서 수많은 공장들에 만연해 있던 여공들에 대한 성적 위협의 문화를 숨김없이 언급하는 것은, 얄궂게도 정작 그와 같은 폭력 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불투명하게 만들었다”(64쪽).


교묘하게 여성의 얼굴을 지워버리는 장치를 동원하긴 했지만, 연상호의 <얼굴> 또한 이런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얼굴>은 폭력에 노출된 구체적인 여성의 얼굴을 삭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독자 스스로 전형적인 피해자 여성의 얼굴을 상상하게끔(‘못생긴 여자’, ‘괴물’ 등...) 유도하는 우를 범했다. 이로 인해 이 작품 속에 간간히 등장했던 가부장적 가정 문화, 성억압적 공장 작업 환경 등은 줄거리의 초점에서 이탈해 버리고 만다.


지금껏 역사 속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해 말한다는 것에 있어서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정치적 과제는 그 폭력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또는 그 폭력에 노출된 여성이 어떤 외모나 태도를 지녔는지 따위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여성을 폭력적 상황으로 내몰아간 ‘권력의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며, 권력의 얼굴 앞에 직면한 여성의 목소리를 온전히 듣고 또 전하는 일이다.


미투운동이 폭로하고 있는 성폭력의 구체적 현상 앞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들이 드러낸 것은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 성폭력을 통해 나타난 ‘권력의 얼굴’이다. 우리는 그 ‘권력의 얼굴’과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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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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