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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센터, 이대로 괜찮을까?
[김상의 삐딱한 시선] IL센터 내에 만연한 익숙함과 평범함 되짚어 보기
등록일 [ 2018년03월28일 11시08분 ]

IL센터 활동 10년


나는 자립(독립)생활센터(Independent Living Center 이하 IL센터)에서 활동한지 10년이 넘었다. 중간에 IL센터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 일을 그만두고 다시 IL센터로 돌아왔을 때, 나는 한동안 적응을 할 수 없었다.


예전에는 장애가 있고 어느 정도 운동성만 있으면 센터 상근활동가로 진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 자기 위치에서 고민의 확장 없이 장애란 정체성 하나로 활동가로 불러지는 것은 불편하다. 활동가는 인권의 민감성을 가지고 조금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자기 전망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활동가로서 가져야할 전망보다는 다른 자격조건들이 하나 둘씩 붙기 시작하였다. 그 조건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거나 문서 활용 능력 등이 있는 실무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국가 보조금 지원을 받는 센터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한다. 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점점 우리의 목을 조여 오고 있어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사실 국가 보조금 지원 덕분에 안정적인 센터 운영과 활동가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게 된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안정은 역설적이게도 위험 요소를 동반한다. 안정이 위험하다는 것은 그 안정감에 매료되어 안정 밖의 상태를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정은 종속된 관계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정부 보조금 지원을 받는 지금의 IL센터는 안정된 운영을 하게 되었지만 제도화로 들어서게 되면서 벌어지게 되는 부작용 대해서는 눈을 감게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익숙한 표현 뒤에 숨어있는 차별


며칠 전, 아는 지인이 **IL센터에서 SNS에 기재한 사업 홍보 링크주소를 보내줬다. 링크를 열었더니 ***재단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장애인 이성교제 지원사업의 웹자보가 있었다. 그리고 홍보 문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장애’, ‘사랑에는 장애가 없다’. ‘무장애’라는 말은 여러 장애인 단체나 정부기관에서도 자주 쓰는 단어이다. 주로 지역사회 장벽을 없애자는 표현으로 많이 쓰이는 단어 중에 하나이다. 사랑에는 장애가 없다는 표현은 사랑에 장애가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의미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개인 SNS 통해 또 다른 **IL센터 사업홍보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홍보 문구에는 ‘이제는 장애인이 아닌 나를 발견하며 살아가고 싶다’라는 문구가 적혀져 있었다.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장애는 없어져야 할 것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홍보 문구 하나에 뭘 그렇게 민감하게 생각하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익숙하게 쓰는 단어나 표현에는 차별과 혐오가 담겨져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나 표현에도 장애 비하 표현이 숨어져 있다는 것이다. 글이란 혼자 보는 일기장이 아닌 모두가 읽는 글에는 사회 현상을 품고 있고 그에 상이한 정치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장애’인이 중심이 되는 IL센터에서 장애란 용어를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가 없으면 IL센터도 존재할 수 없다. 또한 비장애중심의 사회에서 장애는 늘 제거되어야할 무엇이었고 사회 어느 부분에서도 장애는 긍정적으로 쓰이지 않았다. 언제나 불행의 아이콘으로 장애는 표현되고 작동되었다.

 

평범성에 저항하기


그리고 홍보문구와 더불어 이성교제 지원사업에 대해 나는 한 가지 더 고민 가지게 되었다. IL센터에서 과연 장애남녀 커플 매칭 사업은 어떤 의미의 활동일까? 장애인이 연애가 어려운 이유는 단순히 장애 때문일까? 그렇다면 주변에 수많은 장애인 커플들은 어떻게 봐야할까? 나 역시 IL센터에서 장애여성의 연애와 섹슈얼리티 관한 사업을 기획했었고, 발달장애인 커플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을 기획하고 진행도 했었다. 그리고 작년에는 개별자립생활기술훈련으로 탈시설 중증장애인 커플 상대로 데이트 프로그램도 함께 계획했었다. 이런 연애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마다 사실 신경이 많이 쓰였다. 가장 평범한 주제이기 때문에 쉽게 비장애중심의 사고로 보기 쉬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IL센터는 사회적 운동을 지향하며 지역사회 변화를 위한 활동도 하지만 장애인 일상과 밀접한 사업을 기획하며 장애인 당사자 욕구에 부합된 활동도 해야 한다. 그리고 장애인 당사자들 중에 “비장애인처럼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요즘 같이 각자 개성을 돋보이고 싶어 하는 시대에 장애인은 평범성을 추구한다. 장애가 이미 사회가 추구하는 평범성에 벗어났으므로 더욱더 평범해지고 싶은 욕구를 가지게 되는 것인가. 평범한 비장애인 같은 삶은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든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늘 갈등한다. 장애인 당사자 욕구가 기존 사회가 추구하는 불평등한 요소를 부추기는 활동을 원할 때나 성별 고정 관념에 해당하는 활동을 원할 때, 나는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실행에 옮겨야할지 반대의견을 내야할지 고민이 들 때가 많다. 지속되었던 이 고민을 IL센터에서 10년 동안 활동을 하면서 나름대로 정리하게 되었고 원칙을 가지게 되었다. IL센터는 장애인 당사자가 중심이고 당사자 욕구가 최우선 되어야 하지만 IL센터이기 때문에 장애인 당사자와 협상하며 다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IL센터에서 장애인은 단순히 프로그램 대상자가 아니다. 함께 삶을 이끌어갈 동지이다. 프로그램 대상자는 어느 한 쪽이든 일방적인 참여를 독려하지만 협상이 가능한 동지는 함께 방향을 잡아갈 수 있다. 지극히 평범한 욕구를 가진 장애인 동지를 만났을 때, 나는 용기를 내어 말해 본다. 평범하지 않아도 된다고,  함께 나쁜 장애인이 되어보자고 속삭인다.


IL센터 사업과 활동 점검해보기


나는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IL센터 홈페이지를 여러 군데 둘러봤다. 전국적으로 170여 개소(협의회/연합회 포함)가 넘는 IL센터가 존재하고 있는데 과연 어떤 활동과 사업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비록 전부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정부 지원을 받던 안 받던 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 **센터에서는 장애/비장애 활동가 지망하는 이들을 상대로 ‘서바이벌 활동가 오디션’을 보는 곳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활동가 오디션 홍보 포스터를 본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경쟁과 효율 중심인 비장애중심의 사회를 바꾸고자 IL센터를 세웠는데 그 안에서 경쟁을 부추기는 생존게임이 펼쳐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모니터를 다시 봤다. 내가 포스터를 잘 못 본 게 아니었을까 기대감을 갖고 말이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었다. 버젓이 활동가 양성 오디션 프로그램 포스터가 띄워져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IL센터들 프로그램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건 천연비누 만들기와 비즈공예, 네일아트, 손바느질 등 장애여성 참여자 중심의 프로그램이다. 장애여성 프로그램을 안 하는 것보다 낫지 않냐라고 반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젠더적 이분법으로 나눠져 있는 가부장제 한국사회에서 장신구를 만들고 외모를 가꾸는 것은 여성스러움으로 대표되는 영역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이것을 집단프로그램화 한다면 젠더 고정관념을 확고히 다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장애여성 참여자가 원해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사회는 계속해서 장애여성에게 여성임을 증명해 보라고 요구한다. 이 분위기 속에 어느 장애여성이든 탈젠더적인 욕구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나 역시 선호하는 스타일이 사회젠더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것인지 헷갈리고 갈등할 때가 많다. 하지만 개인이 선호하는 것과 집단적으로 만들어지고 실행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집단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선동의 의미를 내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IL센터에서 성별고정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개개인의 욕구를 넘어 가부장제 사회를 더욱더 견고하게 다지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IL센터에서 활동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앞으로 IL센터는 지역마다 더 많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IL센터 끼리 정부는 경쟁을 더욱더 부추길 것이다. 그래서 더 유능한 활동가(직원이란 용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를 뽑게 될 것이고 지금은 한 IL센터에서 진행했던 활동가 오디션이 더 추가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한 편에서는 활동가로서 전망을 세우지 못하거나 실무력이 부족한 장애/비장애 활동가들은 더 큰 좌절과 절망을 느끼게 될 것이다.


지금 이대로 가도 좋은 걸까? 만약 이 순간에도 본인은 유능하기 때문에 해당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지금은 유능할 수 있지만 경쟁이 심화되면 지금의 유능함이 무능함으로 탈바꿈 될 수 있다. 나 역시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장애가 심해지고 더 이상 활동가로 고민이 확장되지 못하고 멈춘다면 지금처럼 IL센터에서 활동하는 것이 매우 불편해질 것이고 불편함에 못 이겨 스스로 물러남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IL센터는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특히 중증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혁명적인 공간이었다. 이 사회에서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받았던 중증장애인들이 IL센터 기반으로 세상을 바꾸어냈다. 그리고 아직도 장애는 없어져야 할 존재로 여기는 사회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안에서 IL센터는 이제 어떤 역할과 활동을 해야 할까. 치열한 논쟁과 고민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저 그런 복지관이 되느냐 아니면 혁명의 공간으로 계속 변화해 나가느냐 지금 우리는 갈림길에 도착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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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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