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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건강주치의제도, 첫 단추부터 틀어졌다
시범사업에서 ‘주치의’ 표현 빠지고 ‘주장애관리의사’ 이름으로 재활영역 포괄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지역사회 다양한 자원 연계도 필요”
등록일 [ 2018년04월09일 19시08분 ]

올해 5월부터 장애인건강주치의제도 시행을 앞둔 상황에서, 이 제도의 문제점과 향후 과제를 짚어보는 토론회가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그간 장애인 건강 및 의료 분야는 ‘재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전체 장애인 중 중도장애인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과 이들의 안정적인 사회복귀를 지원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재활’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는 장애인의 만성질환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될 수 없다. 실제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만성질환 유병률은 2011년 70%에서 2014년 77.2%로 늘어났는데, 이는 비장애인의 만성질환 유병률 34.9%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따라서 장애인의 만성질환을 관리하고 2차 장애 또는 합병증 등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으로 ‘장애인건강주치의제도’ 도입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이에 2015년 12월 29일 주치의제도를 포함한 ‘장애인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건강권법)이 국회를 통과해 올해부터 시행된다. 정부는 올해 5월부터 1년간 진행될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장애인건강주치의제도를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시범사업의 방향이 이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이 정춘숙·김상희 의원(더불어민주당)과 함께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는 이제 첫발을 뗀 장애인건강주치의제도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쓴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고병수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 회장은 주치의의 역할에 대해 “장애인의 건강 문제를 잘 이해하면서, 다른 보건의료전문기관들과 함께 연계해 이들의 건강문제를 꾸준히 돌보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지역사회 중심 돌봄, 통합적인 서비스, 다학제적 접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정부가 5월부터 시행하는 시범사업의 명칭은 ‘장애인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이지만, 실제 의사에게 부여된 이름은 ‘장애인건강관리의사’다. 이에 대해 고 회장은 “주치의라는 말을 붙이니까 기존 의사집단에서 반대해서 이런 초라한 이름으로 시작되었다”라고 꼬집었다.

 

장애인 건강 주치의 개요 (사진=보건복지부)

더 큰 문제는 장애인건강관리의사가 ‘일반건강관리의사’와 ‘주장애관리의사’로 나누어져 있는 부분이다. ‘주장애관리의사’는 특정 장애에 대한 전문적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로서 기존의 재활의학전문의 등이 맡게 된다. 고 회장은 “이들은 장애인이 사회로 복귀했을 때 가지는 건강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 이런 전문의를 주치의라는 한 묶음 안에 넣어버렸다. 전 세계에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모델”이라고 비판했다.


2014년 복지부 장애인실태조사에서도 보면, 장애인의 병원 이용률 중 재활병의·원 이용률은 전체의 1.9%에 불과하고, 장애인이 정기적 혹은 지속해서 의료기관을 찾는 이유도 재활은 9%에 그친다. 일상적인 치료와 건강관리가 장애인의 의료 욕구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장애인주치의제도가 마련되었지만 실제 시행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 회장은 따라서 “장애인주치의와 주장애전문의를 명확히 분리하지 않으면 배가 엉뚱한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병수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 회장 주치의제도가 여전히 의사 중심으로 설계된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주치의제도와 같은 1차 의료는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지역사회의 다양한 자원과 연계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인데, 이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고 회장은 특히 간호사 부족 문제를 지적하며 “대부분 동네의원이 1인 원장으로 운영되는데, 이러면 전화상담, 방문진료 등을 할 수 없다”면서 “‘지역사회 간호센터’와 같은 별도의 센터를 통해 동네병원들이 간호 인력을 지원받는 방안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치의 사업 참여하려는 의사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이번 시범사업에 신청한 의사는 총 396명인데, 일반건강관리의사는 138명에 불과하고 주장애관리의사는 216명이다. 게다가 울산과 세종은 일반건강관리의사에 신청자가 한 명도 없다. 고 회장은 “인프라를 확대하고 의료인 및 시민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의사계도 이런 지적에 동조했다. 이은경 청년한의사회 정책국장은 “주장애관리의사가 하게 될 역할은 주치의가 (치료를) 의뢰해서 해결하면 되는 부분”이라며 “주치의는 말 그대로 일상적인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 주장애관리의사를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정책국장은 또 그간 주치의제도 논의에서 한의사계가 배제된 것도 문제 삼으며 “이미 몇몇 한의사 중심으로 장애인주치의 사업을 진행한 바 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성과도 있었다”면서 “한의사들은 오히려 일차의료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의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한의사의 장애인주치의 참여를 ‘19년 상반기로 잡고 올해 하반기부터 관련 논의를 진행하기로 한 상황이다.


김정애 인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는 ‘건강=의료’, ‘주치의=의사’라는 틀을 깨고 통합적인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우리가 건강하게 산다고 할 때 의료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30% 정도고, 나머지 더 큰 부분은 직장, 안전한 주거, 가족 관계, 지역 주민들과의 원활한 소통 등이 차지한다고 생각한다”며 “1차 의료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는 전통적으로 해온 의료적 관점의 치료를 넘어 건강행동을 촉진하기 위한 상담과 교육 등에 대한 특별한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특히 김 교수는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 등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노인은 눕혀놓고 가사지원 위주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돌봄제공자도 사례회의에 참여하고 지역 중심 의료서비스 제공자의 일원으로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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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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