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10월17일wed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기고ㆍ칼럼 > 기자칼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장애인 77인의 오체투지’가 문재인 정부에게 말하는 것
‘장애인의 날’ 앞두고 마주한 ‘시혜주의’의 광경
등록일 [ 2018년04월26일 11시40분 ]

지난 19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인 복지예산 확대를 촉구하며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오체투지를 했다.
 

지난 4월 20일은 정부가 정한 ‘장애인의 날’이었다. 이날을 앞두고 정부에서도 장애인 정책과 관련된 다양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장애인이 차별 속에 고통받고 있다며,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 향상을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꼭 필요하고 중요한 당부였다. 대통령의 입에서 ‘탈시설’이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것도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과 대비되는, 새 정부에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도 적지 않았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6~17일 이틀간,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교남 소망의 집’이라는 장애인 거주시설에 가서 ‘시설체험’을 한 것이 대표적이다. 박 장관은 이 자리에서 시설 원장과 종사자들이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복지를 위해 애쓰고 있다”며 격려했다고 한다. 분명 현 정부는 장애인의 탈시설과 자립지원을 제1의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오히려 시설 원장을 격려한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게다가 정치인들이 사진 몇 장 찍기 위해 장애인시설을 방문하는 행태가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것이라고 비판받아 왔음을 복지부도 모르지 않을 텐데,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입맛이 쓰다.

 

4월 20일 당일의 모습도 다소 의아스러웠다. 정부의 공식 ‘장애인의 날’ 행사엔 김정숙 여사가 참석해 축사를 했다. 축사에서는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 과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아 국정을 수행하는 사람은 대통령이지 대통령의 부인이 아니다. 따라서 장애인들 앞에서 정책 과제를 설명해야 했다면 대통령, 그도 아니면 국무총리가 와서 설명해야 했다. 지금도 청와대 앞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수용시설 폐지를 요구하며 농성하고 있는 장애인들이 바라는 것도 대통령과의 대화이니 말이다.

 

바로 전날인 19일, 김정숙 여사는 청와대 나들이에 나선 시설거주 장애인들을 배웅하고, 다음날엔 평창패럴림픽 대표선수단을 초청해 격려했다. 청와대 코앞에서 대통령과의 대화를 요구하며 장애인단체가 한달여 간 농성을 하고 있는데, 이들을 외면하고 위로와 격려의 대상이 될 장애인만을 골라 만난 것이다.

 

이처럼 영부인을 앞세우는 것은 ‘시혜주의’라는 한국 복지정치의 고질병의 핵심이다. 일본 천황은 조선을 지배하면서 은사금(恩賜金)을 베푸는 방식으로 사회사업을 폈는데, 이때 은사금을 전달해주는 자는 황비나 천황의 여동생이었다.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지원을 공적 권리 차원이 아니라 가족주의·여성성의 테두리에 가두고 사적인 시혜의 차원에서 집행한 것이다. 이런 관행을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가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래서 고아나 한센인 등에게 지원물품을 전달하는 자리엔 꼭 육영수 여사가 앞장섰다. (▷관련 기사 : 천황제와 기독교의 경합, 시혜주의 복지의 뿌리를 형성하다, 비마이너, 2016.01.04)

 

지금 정부의 모습은 이때로부터 얼마나 달라진 것일까? 대통령의 입으로 ‘탈시설’과 ‘장애등급제 폐지’를 말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 장애인 문제를 사적인 시혜가 아니라 공적 권리 보장 차원에서 접근하자는 게 장애인 당사자들의 요구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 장애인 지역사회 서비스를 위한 예산 증액은 찾아보기 어렵다. 탈시설을 하겠다 했지만, 1년에 100명씩 할 계획이라는 말도 들린다. 시설거주 장애인이 3만 명 정도이니 다 나오려면 꼬박 300년이 걸린다. 이런 상황에 복지부 장관은 시설체험을 나가고, 대통령이 아닌 영부인이 나서 장애인을 ‘자혜의 손길로 보듬는’ 모습만을 보게 될 때, 이 정부에 걸었던 기대의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결국 장애인들은 올해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장애인 활동가 77명은 19일 광화문 앞 도로를 기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기어가는 장애인’은 도심 번화가에 구걸하는 장애인의 경우 외엔 거의 없다. 이때 ‘기어간다’는 것은 신체의 결핍을 남김없이 노출하고 자신을 한없이 낮춰 타인의 동정을 구하기 위한 행위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장애인에게 이 멸시 섞인 동정을 적선하며 최소한의 생존만을 허락해왔다. 그러나 이날 77인의 ‘오체투지’는 이를 완전히 전복한다. 단식이나 삭발이 그러하듯, ‘가진 게 몸뚱아리 뿐’임을 보여주는 투쟁의 행위는 자신을 고통에 한 발짝 더 가깝게 내몰아서 역설적으로 자신이 처해있던 불합리한 상황을 보여준다. 비장애인의 걸음으로 5분이면 될 광화문부터 경복궁역까지의 거리를, 77명의 장애인은 쌩쌩 달리는 자동차를 바라보며 2시간 이상 기어갔다. 그렇게 이들은 비장애인 중심 사회가 자신들을 어떻게 소외·배제해 왔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줬다. 그것은 동정을 구하기 위한 비굴한 행위가 아닌, 자신이 권리의 주체임을 보여주는 가장 극대화된 주체적 행위였다.

 

그러나 이 광경을 많은 언론들이 보도했지만, ‘수용시설 폐지’와 ‘지역사회 서비스 확대’라는 이들의 요구안에 대한 자세한 소개 없이 대부분 사진 기사로 소비했다. 그들의 표현대로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온몸을 굴려 행진하는 모습은 충분히 ‘그림’이 될 만했겠지만, 그들이 단순한 ‘정물’이 아닌 이상 그들의 ‘말’을 보도할 책무도 따르는 법이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온전히 전달되지 못했다.

 

박능후와 김정숙, 그리고 광화문 거리를 기어간 77명의 장애인. ‘장애인의 날’을 맞은 지난주의 세 장면은 장애 인식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 여전히 좁히기 힘든 간극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장애인의 권리는 고위 관료와 영부인의 시혜적인 스킨십으로 채워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장애인들은 이제 그것을 장애인을 동등한 주체로 인정함을 통해 채워나가야 한다고, 무릎이 까지고 뼈가 상해가면서 호소했다. 아마도 이 ‘몸의 호소’를 이해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장애인 정책을 수행하는 데 있어 선결과제가 될 것이다.

올려 0 내려 0
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할 일 하는’ 예순네 살의 투사, 박명애
마냥 쓸모없던 내가, 장애운동으로 깨어났어요
관절 없는 몸이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리다
바닥에 닿지 않는 오체(五體)가 남아있다
다른 사람을 조직하기 위해 나 자신부터 조직해야 했어요
2018년 4월 19일 오체투지, 그날을 말하다
온몸으로 차별을 가르는 사람들, 사진으로 보는 장애인 오체투지
장애인의 속도로 기어서 청와대까지...420 앞두고 오체투지 행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사회복지법인의 기득권, 조금만 내려놓으면 새로운 길이 보인다 (2018-05-16 16:07:39)
안희정은 떠나도 인권조례는 지켜져야 한다 (2018-03-06 17:4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