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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닿지 않는 오체(五體)가 남아있다
장애인의 오체투지, 휠체어에서 내려온 평소의 움직임을 숨기지 않고 드러낼 뿐
등록일 [ 2018년05월29일 12시08분 ]

지난 4월 19일, 오체투지를 하는 김원영 씨.
 

탱탱하게 부푼 아킬레스건


이 글을 진작 쓰고 싶었음을 고백해야겠다. 나는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4월 19일에, 장애인들 70여 명이 바닥을 기어가며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오체투지에 참여했다. 장애등급제 완전 폐지,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 등이 주요 주장이었다. 나의 오체투지는 일종의 ‘체험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여러 중증장애인들이 온몸을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끌고 가며 세상을 바꿔왔던 그 실존적인 현장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는 마음으로 나선 것이다. 당연히 나는 조용히 참가하고, 사진도 찍히기를 거부하고, 끝난 후에는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바로 그렇기에 비마이너의 청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나는 쓰고 싶지 않은 척 쓰고 싶었다. 나는 휠체어에서 내려 바닥을 기어가고 싶지 않은 척 기어가고 싶었다. 바닥을 기는 모습은 얼마나 느리고 추한가.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제발 내려가서 기어보고 싶었다. 오체투지가 달성하려는 정치적 목표는, 솔직히 나에게 핵심적인 동기가 아니었다. 나는 기어가고 싶었고, 장애인운동의 현장을 바닥에서 지켜보고 싶었다. 

 

타인들은 별 관심도 없을 글쓰기에 대한 이 복잡한 마음은 오체투지 현장에서부터 이어졌다. 4월 19일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고 3시간여가 지난 후(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상소문을 장애인들 여럿이, 아주 길게 읽었다), 휠체어에서 바닥으로 내려앉아 기어갈 시간이 왔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바닥을 잘 기어 다녔다. 지금도 불이 나면 휠체어를 버리고 도망갈 준비가 되어있다. 막상 양팔로 바닥을 짚고 엉덩이를 살짝 들어 올리자, 오체투지를 ‘체험’하겠다는 마음이 휠체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물구나무를 반쯤 서는듯한 자세로 나의 짧은 다리와 작은 엉덩이를 튼튼한 두 팔로 끌어내리며 바닥에 앉았다. 주변에는 대부분 뇌병변 장애인들이었고, 이들 중 몇 명은 휠체어에서 그냥 점프하듯이 뛰어내렸다. 신체는 모두 늠름해 보였다. 바닥의 공기는 예상보다 훨씬 무거웠다. 장애자녀를 둔 한 어머니가 마이크를 잡고, 이날 오체투지에 나선 장애인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내가 이러는 건 역시 쇼하는 게 아닐까? 그냥 다시 휠체어를 타자”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조금 앞으로 움직였을 뿐인데, 해안에서 급격히 멀어지는 파도 위에 맨몸으로 몸을 맡긴 느낌이었다. 덩그러니 놓인 내 휠체어가 바다 위의 육지처럼 멀어졌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 휠체어가 사라졌다. 그만둘까 계속할까를 반복하던 생각이 의미를 잃고 멈췄다. 이제 바다 한가운데다.  

 

바닥을 기어가는 행진이 시작되자 나는 바닥의 아스팔트 구멍 모양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만 인식하고 앞으로 갔다. 구호 소리, 경찰과 몇몇 장애인들의 충돌 소리가 들렸지만 주의를 돌리지 않고 바닥만 보았다. 목장갑을 낀 내 손이 바닥에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아주 조금 시야를 넓히자, 바로 앞을 가는 뇌병변 장애인의 운동화와 발목이 보였다.

 

그를 따라갔다. 천천히, 그가 Y자로 벌린 다리로, 종아리와 발목의 힘만으로 온몸을 앞으로 밀어낼 때 나는 그의 아킬레스건이 탱탱하게 부풀었다가 펼쳐지는 모습을 보았다. 잠시 따라가다 다시 눈을 들어 올리자, 이번에는 바닥을 굴러가는 한 장애인의 바지가 반쯤 벗겨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엉덩이가 보일 것 같았다. 나는 솔직히 웃음이 나왔는데,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오른편으로 대학생들로 보이는 비장애인들이 진지한 얼굴, 약간은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우리를 내려다보는 듯 느껴졌다(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나는 창피했는데, 바닥을 기어간다는 사실이 창피한 것이 아니라 바닥에 누워있는 장애인들의 몸이 도로에 서 있는 “아름다운” 신체를 가진 인간들에게 얼마간 숭고의 감정을 불러낸다는 사실이 창피했다. 나는 그들이 탱탱한 아킬레스건과 반쯤 벗겨진 바지를 엉덩이에 걸치고 몸을 굴려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더 복합적으로 바라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4월 19일, 장애인 77명이 휠체어에서 내려 오체투지로 청와대까지 행진했다. 이들은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수용시설 폐지 등을 요구하며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울퉁불퉁한 수련

 

오체투지(五體投地)는 본래 티베트 불가의 오랜 수행법으로 알려져 있다. 청정한 마음가짐으로 자연에 온몸을 밀착시키는 이 종교적 의례이자 수련법은 어느 시점부터 권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권력에 맞서 자신의 의견을 호소하는 정치투쟁의 한 방법이 되었다. 2014년 기륭전자 노조부터 2017년 KTX 해고 여승무원들과 2018년 5월 금속노조 조합원들에 이르기까지, 절박한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이 오체투지를 한다. 이때의 오체투지는 평화와 지복(至福)을 바라는 종교적 헌신이 아니라 직면한 현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신체를 극한으로 몰아넣는 단식투쟁이나 고공농성에 가깝다. 장애인들의 오체투지는 누구보다 움직이기 힘든 사람들이 휠체어라는 보조기구 없이 맨땅에서 움직인다는 점에서, 이 “극한의” 효과가 더 선명해진다. 

 

실은 장애인들 중 누구도 ‘오체’를 바닥에 완전히 붙이고 앞으로 행진하는 전통적인 오체투지 수련법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체를 바닥에 대기 위해서는 모든 관절이 평평하게 펴져야 하고 척추는 휘어있지 않아야 하지만, 우리 중에 그런 사람이 거의 없었다. ‘울퉁불퉁한 몸’ 덕분에 아무리 바닥에 몸을 밀착시켜도 바닥과 몸에는 얼마간 공간이 유지되었다. 대부분 그래서 몸을 굽히고 그대로 나아갔다. 사실, 그렇게 움직이는 것 외에 우리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말하자면 “직립보행”하는 사람들의 오체투지는 온몸을 평소와 달리 움직여 자연과 합일하고자 하는 노력이라면, 장애인들의 오체투지는 (휠체어가 없다면) 평소에 원래 움직이는 그대로를, 다만 숨기지 않고 드러낼 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내가 어떻게 보일지를 계속 바라보면서 앞으로 나아갔는데,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무릎보호대 안으로 아스팔트의 ‘울퉁불퉁함’이 전달됐다. 통증이 커졌다. 누군가 달려와 물을 주었다. 초콜릿과 사탕을 가져다주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 경기도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으로 참여한 한 활동가를 만났다. 그는 나의 재활학교 시절 친구였다. 어쩐지 마음이 편해졌다. 힘을 내서 앞으로 갔다. 내 휠체어가 따라오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는 얼굴이 보이면 휠체어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날이 저물었고 행진이 멈췄다. 엄청나게 오랜 시간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움직인 거리는 100미터도 안되어 보였다. 휠체어가 없는 우리는 얼마나 느린가. 하지만 얼마나 다 같이 느린가.   

 

불가(佛家)에서는 오체투지를 하면 “정신이 집중되고 생각이 깊어지며 영감으로 가득하게 되어 몸과 세상이 달라진다”고 한다. “이 수행은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에게 발생하는 각종 질환을 대자연의 바탕인 땅과 합일하여 스스로 자정 능력이 생기고 치유의 에너지가 발생하게 한다”고도 말한다. 직립보행을 하지 않는 인간에게 오체투지는 울퉁불퉁한 아스팔트와 몸이 절대로 합일할 수 없음만을 깨닫게 해준다. 어깨와 무릎이 아프고, 스스로가 어떻게 보일지를 의식하느라 지쳐버린 정신만이 너덜너덜하게 남는다. 치유의 에너지는 땅에서 오지 않고, 바로 내 앞을 기어가는 한 인간의 아킬레스건에서 온다. 입에 넣어주는 초콜릿에서 온다. 상스러운 욕을 하며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지 함께 투덜거리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던 친구와의 시간에서 온다. 휠체어를 찾아 가져다준 이에게서 온다. 장애인이 단체로 바닥을 기어가던 이 날을 기억하고 이 ‘울퉁불퉁한’ 움직임이 가진 의미를 전달하려는 사람들로부터 온다.

 

내가 오체를 바닥에서 끌고 가면서도 결코 자의식을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 글의 결론이다. 나는 바닥에 오체를 밀착시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가 100미터를 움직인 것만은 사실이기를 바란다. 구르고, 기고, 앉은 채로 엉덩이를 끌면서 움직이던 사람들의 온몸은 사실 완전히 바닥에 밀착해 있었고, 그들은 우리가 (내가) 어떻게 지금 이 시간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해주었다.  

 

원영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

 

김원영. 서른 살이 넘었다. 장애, 연극, 법에 관심을 두고 산다. 골형성부전증으로 15년간 집에서만 살았으나 한국사회에서 태어난 장애인치고는 운이 좋아 가방끈이 길다. 친절하지 않은 편이나 친밀한 친구들은 몇 있다.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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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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