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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참정권] 쉬운 글·그림으로 투표 설명만하면 ‘발달장애인용’인가요?
종로구 선관위X노들장애인야학 발달장애인 모의투표 현장 동행
“‘쉬운 글 = 발달장애인용’ 아냐” 참정권 보장 위해 삶 자체를 고민해야
등록일 [ 2018년06월05일 18시04분 ]

지난 5월 21일, 종로구 선거관리위원회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발달장애인 유권자를 대상으로 모의투표를 진행했다.
 

“신분증 보여주시고요. 이 장부에 쓰인 생년월일과 이름이 맞나 확인하고 옆에 사인하시면 돼요. 먼저, 이 세 장의 투표용지를 가져가시면 됩니다.”

 

시각장애와 발달장애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이 투표용지를 받고 기표소에 들어가 용지를 아주 가까이서 한참이나 쳐다봤다. 1번을 찍고 싶은데 도장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지예 야학 교사가 설명을 했다.

 

“도장을 똑바로 위에서 꾹 눌러서 찍어야 해요. 칸이 총 7개가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처럼 칸과 칸 사이에 찍으면 무효표가 돼요. 네모 칸 안에 찍으면 돼요. 한 번만요. 딱 한 번.”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있는 노들장애인야학은 평일 낮시간에 성인 발달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한 수업을 운영한다. 낮수업 반 학생들 대부분이 ‘선거’라는 것이 낯설다. 특히나 투표용지가 7장이나 되는 이번 6·13 지방선거는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는 1차(3장)로 교육감, 시도지사, 구시군장을 투표한 뒤, 2차(4장)로 시도의원, 구시군의원, 광역비례, 기초비례를 투표하게 된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행사해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는 선거에서 발달장애인이라고 해서 배제될 수는 없다. 이에 지난 5월 21일 낮수업 반 학생 16명은 종로구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서 준비한 모의투표장에서 선거 과정을 미리 체험해 봤다. 이날 모의투표를 마치고 낮수업 교사들은 발달장애인의 온전한 투표권 보장을 위해 보완되어야 할 지점이 여전히 많다고 지적했다.

 

- 발달장애인 모의투표 동행… 모든 기표칸에 도장 찍고 투표함 입구 작아 헤매기도

 

“다들 투표해봤어요?”
“저번에 대통령 투표해봤어요.”

 
모의투표를 하기 전, 교사들은 학생들과 서로 개인적 경험을 간단히 나눈 후, 투표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이들은 선거란 무엇인지, 선거의 종류, 정치인의 임기, 투표 방법, 도움받는 법 등을 안내하며, 중간에 학생들이 내용을 잘 따라오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투표용지에 도장을 몇 번 찍어야 하나요?” “투표칸이 아닌 곳에다가 도장을 찍어도 될까요?” “투표용지 3장 다 찍고 나면 집에 가면 될까요?” 학생들은 질문에 맞게 대답하기도, 틀리게 대답하기도 했다. 옆에 앉은 사람의 대답을 따라하기도 했다.
 
한 시간가량의 설명이 끝나고 모의투표가 시작됐다. 학생들의 투표는 각양각색이었다. 모든 기표칸에 도장을 찍거나, ‘OO구청장선거투표’라는 글씨 위에만 도장을 찍기도 했다. 도장을 오랫동안 투표용지에 짓이겨 찍고는 잘 찍혔는지 확인 한 뒤, 같은 자리에 또 찍기도 했다. 기자가 조력한 한 당사자는 도장을 어디에 찍어야 할 지부터 헷갈려 했다. 그리고 모든 투표용지에 기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까먹었는지, 한 장의 투표용지에만 기표하고 기표소를 나가려고도 했다. “나머지에다가도 기표해야 한다”고 말하자 두 번째 투표용지에 기표를 하고는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눈빛으로 기자를 쳐다봤다.

 

모의투표에서 발달장애인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으려고 했지만 입구가 작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손을 쓰는 것이 어려워 투표용지 접기를 힘들어하는 학생도 있었다. 투표함에 용지를 넣으려고 했지만 입구가 너무 좁아 제대로 들어가지 않자 신경질을 내기도 했다. 한 학생은 용지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자 조력했던 선생님에게 투표용지를 대신 넣어달라며 건넸다. 투표장 동선이 어려워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3장의 투표를 마치고 끝난 줄 알았던 한 학생은 “4장이 남았다”는 말에 “아휴, 힘들다”를 연발하면서도 “계속하니까 재밌다”고도 했다. 이 날, 기자와 교사들, 선관위 관계자들 모두가 학생들을 조력했다.
 

- “가족도 선거에 영향 미칠 수 있는 존재… 공적 조력인 배치해야”

 

모의투표가 끝나고, 교사들은 기표된 용지를 들고 와서 투표 방법을 다시 한 번 설명했다.

 

“이 투표용지는 기표칸에 도장을 찍지는 않았지만 후보자 이름에 찍어서 유효표에요. 투표자의 의견을 폭넓게 해석해 ‘이 사람을 찍었구나’하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면서 김진수 야학 교사는 “혹시 투표가 어렵고 힘들더라도, 잘못 찍더라도 일단 투표장에 가보셨으면 좋겠어요”라고 권유했다. 그는 “투표는 살면서 여러 번 경험하게 되니까 몇 번씩 찍어보고 틀려도 봐야 잘 할 수 있어요. 지금은 그 마음을 먹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오늘 연습했으니까 자신감이 생겼을 거예요”라고 학생들을 독려했다.

 

공직선거법 제157조 6항에 따르면,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하여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하여 투표를 보조받을 수 있다. 중앙선관위는 ‘신체장애’의 종류를 폭넓게 해석해 지적·자폐성 장애도 포함시켜 발달장애인 역시 해당 조항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발달장애인 당사자를 포함해 최대 3인이 기표소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기표소에 누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투표소 사무원의 보조 여부가 달라진다. 가족이 들어가면 투표 사무원이 의무적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가족이 아닌 사람이 기표소에 들어가면 사무원이 의무적으로 들어가야 한다. 손민하 중앙선관위 공보과 주무관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서 가족관계에서는 본인 의사가 담보된다고 보기 때문에 투표 사무관이 반드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가족 이외의 사람이 들어가면, 당사자가 본인 의사와 다르게 기표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봐 감시를 위해 투표 사무원이 반드시 동행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족’이라고 해서 당사자의 의사를 모두 담보한다고 볼 수 없다. 발달장애인 자기권리 옹호 단체인 한국피플퍼스트는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이야기할 때 “가족, 사회복지사, 거주시설 생활교사들이 찍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말고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찍고 싶은 사람에게 투표하고 싶다”고 말한다. 발달장애인 조력자로 활동 중인 ㄱ 씨 역시 “현재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함께 기표소에 들어가는 조력자는 이미 서로 권력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발달장애인 본인이 원하는 후보를 선택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한국피플퍼스트가 “공적 조력인 배치를 통해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비밀투표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발달장애인 유권자가 선관위 직원 안내에 따라 투표용지를 받고 기표장에 들어가고 있다.

 

- “‘쉬운 글로 쓴 정보 = 발달장애인용’ 아냐” 발달장애인 일상까지 고민해야
 
현재 중앙 선관위와 시·도 선관위는 선거가 시작되기 전, 장애인 유권자를 대상으로 모의투표소를 차려놓고 선거서비스에 대한 점검을 한다. 올해도 장애인 거주 시설, 복지관 등에 모의투표소를 설치해 투표 편의를 위한 각종 보조용구, 투표안내 전문요원 배치 등의 서비스를 안내했다. 선관위는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해 투표 절차 등을 그림·확대문자를 이용해 설명하는 투표가이드북 등을 투표소에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날의 모의투표소 설치 또한 이러한 차원에서 마련된 자리였다.

 

이에 대해 오하나 교사는 “모의투표소를 차려놓고 투표 연습하는 것은 기회가 없는 것 보다 훨씬 좋다. ‘우리는 투표로 정치적 의사를 나타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도 현재 시스템에서 발달장애인은 투표에 ‘동원’되는 대상이 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발달장애인들이 선거 정보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실제 투표장에서 기표만을 제대로 해 ‘유효표’가 된다면 그것이 더 문제라는 것이다.

 

김지예 교사 또한 현재 선거 시스템은 비장애인 중심으로 글과 숫자를 읽을 줄 아는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모의투표에 참관한 종로구 선관위 직원은 자꾸 ‘칸 하나에만 정확히 찍으면 된다’고 이야기하는데, 글씨와 숫자도 모르는 사람에게 ‘제대로 찍으라’고만 설명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선관위 직원들은 발달장애인들이 숫자와 글자를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너무 놀라워 했다.”고 전했다.

 

올해 지방선거에서 중앙 선관위는 발달장애인 등이 투표과정과 방법을 이해하기 쉽도록 어려운 말을 쉬운 말로 풀고 그림을 넣은 책자를 발간했다. (사진출처=쉽게 설명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 안내)
 

즉, 참정권 보장을 위해선 물리적 지원만큼이나 사전에 충실한 정보 제공이 되어야 한다. 선거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자신의 신념을 대리할 사람을 ‘투표’라는 형식을 통해 선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6·13지방선거에서 중앙선관위는 발달장애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설명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 안내’ 책자와 에니메이션을 제작했다. 책자는 어려운 말을 쉬운 말로 풀고 그림을 넣었다. 가령 정당이라는 용어를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나라와 사회를 위해 일을(정치를) 하는 단체입니다’라고 풀어놓은 식이다. 기표소, 거소투표, 군수 등 일부 단어는 ‘정당’처럼 용어를 풀어 쓰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다. 애니메이션은 해당 책자의 내용을 아들과 어머니의 대화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들은 “발달장애인을 위해 추상적인 언어, 어려운 단어들을 풀어쓰고, 그림 넣는 것만이 해결책이 아니”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김지예 교사는 “구청장, 시장 등의 단어는 그대로 써야 한다. 이 단어들을 설명한다고 풀기 시작하면 그 ‘설명’에 쓰인 단어들을 또 설명해야 해서 오히려 꼬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쉬운 설명’도 누군가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며 쉽게 쓰인 정보만을 일회적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방면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단어들을 일상에서 경험함으로써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도록 발달장애인의 삶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텔레비전, 엘리베이터 등은 영어지만 일상적으로 접하기에 따로 개념 설명할 필요가 없는 단어다. 따라서 단지 경험의 빈틈으로 ‘어렵다’고 느껴지는 단어를 보다 덜어내기 위해 필요한 건 ‘경험’ 그 자체다. 애초에 삶은 ‘설명’되어지는 게 아니라 경험되어지는 것 아닌가. 선거를 둘러싼 수많은 단어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박임당 교사 말한다.

 

“대다수의 발달장애인 학생들은 구의원, 시의원, 교육감 등의 단어와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어요. 이들을 실제로 자주 만나거나 TV에서 많이 보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이해’ 하라고 하면 쉽지 않죠. 자신의 상황이나 삶의 맥락에 이 ‘단어’들이 들어와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그림만 많이 넣은 이 책자를 ‘발달장애인용’이라고 부를 순 없지 않아요?”
 
하나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선 다른 개념들이 동원될 수밖에 없는데, 이때 언어는 그 사람의 경험의 영역 안에서 빌려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경험을 기반으로 한 앎의 영역이 한없이 작다면? 설명해야 할 개념은 많은데 정작 그 설명은 빈약해진다. 선거는 삶에서 외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라 삶의 연장선에 있는 하나의 이벤트다. 발달장애인이 기표용지에 도장을 찍는 행위 하나에 그들 삶 전체에 대한 고민이 호출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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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기자 hyemikim@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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