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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권은 왜 당신에게만 ‘일상’이어야 하는가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 17년 만에 반복된 절박한 이동권 투쟁, 그 현장에서 만난 ‘폭력’

등록일 [ 2018년06월18일 18시13분 ]

지난 5월 23일, 신길역에서 리프트 추락참사에 대한 사과와 책임을 촉구하며 선전전을 하는 모습.
 

리프트 추락사고 피해자는 나일 수도 있었다.

 

2017년 10월 20일, 1호선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는 신길역에서 한 장애인이 휠체어 리프트를 작동하려다 추락했다. 그리고 98일간 사경을 헤매다 결국 돌아가셨다. 이 분은 오른손만 사용 가능한 분이었는데 리프트 호출 버튼이 왼쪽 계단 난간 벽 쪽에 부착되어 있어서 계단을 등진 채 호출 버튼을 오른손으로 누르려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 죽음에 대해 서울시도, 서울교통공사에도 책임 있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 

 

이 소식을 접했을 때, 내가 리프트에서 추락하는 장면이 자꾸 상상이 됐다. 돌아가신 분의 영정사진에 내가 겹쳐 보였다. 나 역시 오른손만 사용할 수 있는 중증장애인이고 비슷한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계단 난간과 밀착된 호출 버튼을 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경직이 와서 계단 아래로 추락할 뻔했다. 나는 1센티미터 차이로 추락을 모면했고, 그분은 억울하게 돌아가셨다. 

 

사실 휠체어 리프트 사고는 호출 버튼 위치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휠체어 리프트 사고는 수도 없이 이어져 왔고 리프트를 타다가 추락해서 사망한 사건 또한 여러 차례 보도되었다. 몇 년 전부터 리프트를 전동휠체어용으로 바꿨다고는 하지만, 사람 몸무게에 전동휠체어 무게까지 합쳐서 150킬로가 넘는 무게를 버티려면 허술하기 짝이 없는 리프트 철판 바닥으로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150킬로가 넘는 무게로 흔들거리는 철판에 올라탈 때마다 나는 극도의 불안감을 느낀다. 그 흔들거리는 철판 위에 올라탄 채 수십 개의 계단을 오르고 내려야 한다. 마치 100미터 넘는 낭떠러지 사이에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널빤지로 만든 다리를 매일 오가는 기분이다. 

 

만약 이 다리가 시민이 매일 이용하는 곳에 설치되어 있다면 정부는 그대로 방치할 수 있을까? 애초에 이런 다리는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죽음의 다리가 장애인에게는 허용되고 있다. 휠체어 리프트는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다리와 다를 바 없고, 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일상적으로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나에게 이동은 죽음을 각오한 절박함이었다

 

 2000년대 초반, 장애인에게 대중교통은 지옥의 이동수단이었다. 지하철역에는 살인 기계 리프트조차 없는 역이 허다했고 장애인 콜택시는 꿈도 못 꿨던 시절이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은 마음씨 좋은 자원봉사자를 만날 때나 어쩌다 한 번씩 바깥바람을 쐬는 게 전부였다. 혼자서는 이동할 방법이 없었다. 바로 이런 시절에 나는 전동휠체어를 지원받게 되었다. 단 한 번도 남의 도움 없이 한 반짝도 움직이지 못하던 나에게 전동휠체어는 마치 날개옷처럼 몸의 자유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나 내가 살던 동네는 전동휠체어가 자유롭게 다니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다. 인근 지하철엔 리프트조차 설치가 안 되어 있었고 급경사 언덕이 계속 이어지는 곳이었다. 그래도 나는 전동휠체어를 포기할 수 없었다. 당시 상근 활동하던 곳에 출근해야 했고, 친구를 만나러 약속 장소에도 가야 했다. 

 

나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지하철역을 간신히 찾아냈다. 전동휠체어로 지하철 3~4개 정거장 정도의 거리를 2시간 가까이 달렸다. 전동휠체어가 줄줄 미끄러지는 가파른 언덕을 넘어다녔다. 그러다가 음주운전 차량에 교통사고를 당해 한동안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고생도 했다. 지금 나에게 그렇게 다니라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겠지만, 그때 나에게 ‘이동’은 어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이었다. 이동은 내 삶에서 가장 절박하고 절대적인 부분이었다. 

 

그래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나의 삶의 투쟁이었다. 이동권 투쟁을 주도했던 다른 활동가들에 비해 뒤늦게 합류했지만, 나 역시 지하철을 멈추고 버스를 점거하는 투쟁을 했었다. 투쟁이라곤 집에서 이따금 뉴스에서 경찰이 대학생들을 진압하는 장면을 본 것이 전부였던 내게 투쟁현장은 두려운 공간이기도 했으나, 이동수단이 없어 집에 갇혀 있던 시간이 더 큰 공포였다. 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겐 욕을 내뱉을 수 있는 권력이 있다.

 

지난 15일, 신길역부터 시청역까지 '지하철 연착 투쟁'에 참여한 장애인에게 한 승객이 주먹을 휘두르자 활동가가 이를 제지하고 있다.
 

사실 투쟁현장에서 두려웠던 대상은 폭력적으로 진압하던 경찰이 아니었다. 집회 참여자를 향한 시민들의 삿대질이었고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설이었다.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온갖 욕설을 무시할 만큼 단단하지 못했다. “병신들이 육갑 떨고 있네!!” “니네들이 뭔데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고 지랄이야!” “몸이 병신이면 동정이라도 받아!” 욕이 내 귓속에 폭력을 가했고 오랫동안 귓속을 맴돌았다. 이 ‘폭력’은 나의 인격을 난도질하고, 장애가 있는 내 몸이 벌거벗겨진 것 같은 치욕을 느끼게 했다.

 

그들 눈에는 절박함으로 목숨 걸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안 보이는 것 같았다. 그저 본인들의 시간적 손해와 불편함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들에겐 장애인, 아니 한 ‘사람’이 아예 이동할 수 없거나, 이동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죽음을 맞이할 만큼 안전하지 못하다고 외치는 절규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삶에서 장애인은 늘 타자화되고 있어,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닌 무생물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본인들이 내뱉는 욕설이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없는 말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만 같아 보였으니 말이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말을 할 수 있는 건 때로는 용기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엄청난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누군가를 향해 큰 소리로 욕설을 내뱉는 것은 그 공간에서 ‘그렇게 해도 되는’ 권력을 갖고 있기에 가능하다. 투쟁 현장에서도 활동가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사람 대부분이 중년 이상 연령대의 남성들이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건장한 중년 남성의 큰 목소리는 공포를 조성하고, 자신이 상황을 통제하는 데 쓰인다. 이런 문화 속에서 살아온 중년 남성들은 집회 현장도 자신이 제압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마치 이 공간을 지배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된 것처럼.

 

2018년, 다시 뜨거운 이동권 투쟁 현장에 서다

 

2018년 6월 14일, 리프트 추락사고가 발생한 신길역에서 다시 이동권 투쟁을 시작하였다. 한 사람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다 죽었는데 이 죽음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 없이 그저 ‘유감이다’라는 말로 끝맺게 할 순 없었다. 그래서 거의 17년 만에 지하철 연착 투쟁을 하게 되었다. 신길역에서 시청역까지 6구간을 한 줄로 타서 한 줄로 내리는 반복 승하차 투쟁을 하였다. 

 

투쟁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7년 전에 들었던 욕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없는 욕설이 점차 커졌다. 한 중년 남성이 욕을 내뱉더니 다른 중년 남성들도 전염된 듯 욕설을 내뱉었다. 때리려고 하는 남성도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들의 눈이 총과 같이 보였고 입이 식칼처럼 보였다. 그들은 그렇게 나와 나의 동료들에게 무참히 총과 칼을 휘둘렀다. 귓속에서, 마음 안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칼질’은 계속됐다. 

 

이동에 제약을 받는 상황과 답답한 심정은 아마도 그날 집회에 참여한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장애인에겐 그 답답한 심정이 일상이지만, 이동에 제약을 받아 본 적 없는 그들에게는 2시간의 제약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일으킬만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날 지하철이 지연되어 너무나 불편하고 화가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부정적인 감정은 억울한 죽음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죽음을 방관하고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에 항의하는 것으로 표출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시민의 권리이자, 같은 ‘인간’으로서의 예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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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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