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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뉴스홈 > 기고ㆍ칼럼 > 칼럼 > 유기훈의 의학이 장애학에 건네는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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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멈춘 자리에 피어나는 것들
[유기훈 칼럼] 청력 소실(Hearing loss)에서 농 획득(Deaf gain)으로
등록일 [ 2018년06월26일 19시16분 ]

이비인후과 수술실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막 달팽이관의 원형공(Round window) 속으로 인공와우를 삽입한 직후였다. 긴 센서가 달팽이관의 2.5바퀴를 휘감고 돌아간 자리에 16개 채널의 신호가 차례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지막 16번째 채널의 신호가 작동한 순간, 모두의 굳은 얼굴이 풀어졌다. 수술 성공이다. 이제 이 아이는 '청력 소실(hearing loss)'로 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잃어버린 청력을 찾아서

 

1961년 세상의 첫 인공와우 수술이 진행된 이후, 수많은 아이가 '잃어버린 소리(hearing loss)'를 찾아서 수술장으로 향했다. 세상은 잃어버린 소리들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에 들떠있었고, 전설적인 이비인후과 의사 하우스(Dr. William F. House)가 수술한 한 환자는 “소리 없는 움직임(Soundless movement)과 목소리 없는 얼굴(Voiceless faces)의 세상에서 더 이상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감사를 표했다.1) 진보와 희망의 시대였다. 과학의 진보는 ‘잃어버린’ 청력의 남은 부분도 남김없이 찾아줄 것을 보증하는 듯했다.

 

이처럼 의학은 청각장애인들이 '잃어버렸을 것이라' 생각했던 청력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하지만 청력은 정말 '소실되는(Losing)' 것일까? 우리는 어떻게든 잃어버린 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찾아오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는 것일까? 소리가 멈춘 자리, 현대의학은 그곳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것들을 관찰하고 있다.

 

소리가 멈춘 자리에 피어나는 것들

 

2001년, 과학잡지 네이처(Nature)에 흥미로운 논문이 소개되었다. 논문의 연구 질문은 간단했다. 일반적으로 더 일찍 인공와우 수술을 받을수록 ‘더 잘 듣는다’는 것이 알려져 왔는데, 이는 뇌의 활성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이에 연구진은 인공와우를 이식받은 농인들을 대상으로, 이식을 받은 시점에 따라 뇌의 청각 영역이 활성화되는 정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았다.2)

 

Lee 외(2001)의 논문 갈무리

 

그 결과, 아주 어려서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사람과 20세 즈음에 받은 사람 사이에는 소리에 대한 뇌의 반응에 큰 차이가 있음이 밝혀졌다. 인공와우 수술을 늦게 받을수록, 소리에 대해 반응하는 뇌의 영역의 활성도가 줄어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연구진이 주장하였던 것은 ”인공와우를 이른 시기에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이 연구는 하나의 의문을 남겼다. 농인에서는 인공와우를 통해 소리를 주어도 뇌의 청각영역이 잘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청인들이 소리를 듣기 위해 쓰고 있는 그 영역을 농인들은 대체 어떤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눈으로 ‘듣는다’

 

같은 연도,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에 앞선 의문에 대한 해답이 제시되었다. 연구진은 농인들을 대상으로 여러 시각 자극을 주며 뇌의 어느 부분이 시각을 처리하는지 확인하고자 하였다. 연구진은 이를 위해 화면 위를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검은 점들을 농인 시험자들에게 보여주었고, 시각 자극을 주는 동안의 뇌의 활성도를 fMRI(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e)로 확인하였다.3)

 

Finney 외(2001)의 논문 갈무리
 

 

결과는 놀라웠다.농인의 시각처리는 청인이 청각을 처리하는 바로 그 자리(Brodmann's area 42, 22, 41)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소리 자극이 들어오지 않자, 청인의 경우엔 소리를 담당하는 뇌의 부분이 시각 자극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신경생물학의 새로운 발견을 의과학자들은 ‘교차감각 신경가소성(Cross-modal Neuroplasticity)'라는 이름으로 명명했다. 단어가 무척 복잡해 보이지만, 그 핵심은 청인의 뇌가 소리를 통해 ‘듣는’ 동안 농인의 뇌는 시각을 통해 ‘듣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2012년에는 농인이 촉각 자극을 수용할 때 청인이 소리를 처리하는 뇌의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사실 또한 드러났다.4)

 

즉, 농인의 뇌는 청인의 뇌에서 무언가를 ‘뺀’, 혹은 무언가가 ‘적은’ 것이 아니었다. 청각이 사라진 자리, 그곳에서는 무수한 신경세포가 공명하며 시각과 촉각, 후각과 미각을 새롭게 발명해내고 있었다. 농인의 감각은 ‘오감’에서 1이 빠진 ‘4감’이 아니라, ‘전혀 다른 뇌’를 통해 기능하며 세상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청력 소실(Hearing loss)에서 농 획득(Deaf gain)으로

 

이러한 과학적 발견은 우리가 이제까지 써왔던 ‘청력 소실’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농인은 ‘듣는 것’을 정말 잃어버렸는가? 소리가 사라진 자리는 의미 없는 공백만이 자리하고 있고, 우리는 잃어버린 소리를 되찾아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것일까?

 

위 연구들처럼, 소리가 멈춘 자리에는 새로운 공감각이 피어난다. 청력은 ‘소실되는(losing)' 것이 아니라 새롭게 발명되는 것이었고, 우리의 뇌를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 즉, 획득되는(Gain) 것이었다. 농인은 청인보다 단지 ‘더 잘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상’을 보며 살아간다. 농인의 봄은, 쓰다듬음은, 맛봄은 청인의 그것과 다른 차원인 것이다. 그들은 시각적 세상을 ‘들으며’ 살아간다.

 

해외의 장애운동계에서는 ‘청력소실(Hearing loss)'이 아닌, ’농 획득(Deaf Gain)'이라고 표현하자는 사회적 움직임이 있어왔다. 농인이 사회에서 무언가 ‘결핍된’ 존재로 인식되고 살아가게 되는 것은 ‘청인 문화’로 강하게 규율된 사회 속에 있기 때문이라는 ‘장애의 사회적 모델’의 메시지처럼, 청력은 소실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청력 소실’이라는 의료화된(medicalized) 단어를 만들었던 얄궂은 의학은, 이제 ‘농 획득’이라는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는 동반자가 되어준다. 청력 소실에서 농 획득으로,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유기훈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 공학, 인류학, 의학 등을 떠돌다가 노들장애인야학에 입성하였다. 야학과 병원의 언저리에 머물며, 억압하는 의학이 아닌 위로하는 의학을 꿈꾸고 있다. 노들장애인야학 바로 앞에 사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며 산다.

 

*각주

1) ‘Dr. William F. House, Inventor of Pioneering Ear-Implant Device, Dies at 89’ New York Times 

2) Lee, Dong Soo, et al. "Deafness: cross-modal plasticity and cochlear implants." Nature 409.6817 (2001): 149.

3) Finney, Eva M., Ione Fine, and Karen R. Dobkins. "Visual stimuli activate auditory cortex in the deaf." Nature neuroscience 4.12 (2001): 1171.

4) Karns, Christina M., Mark W. Dow, and Helen J. Neville. "Altered cross-modal processing in the primary auditory cortex of congenitally deaf adults: a visual-somatosensory fMRI study with a double-flash illusion." Journal of Neuroscience 32.28 (2012): 9626-9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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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훈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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