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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때 엘리베이터 타지 말라고 하는데, 그럼 휠체어 탄 사람은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재난 워크샵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 열려
"장애인-비장애인 포괄 매뉴얼 만들고, 실전 반복 훈련이 필수"
등록일 [ 2018년07월05일 19시29분 ]

4일,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열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재난 워크샵에서 박은선 리슨투더시티 총괄 디렉터는 포항 지진을 겪은 장애인들과 활동지원사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한국에는 장애인의 대피를 돕는 사람, 대피 기구, 대피 매뉴얼 등이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보통 ‘자연재난이 모든 것을 쓸어간다’고 표현한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울부짖는 사람들, 망가진 집들, 처참한 광경을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반만 맞는 이야기다. 자연재난은 '취약계층'의 모든 것을 쓸어간다. 일본 고베 지진의 경우 70~80대의 노인이 가장 많이 사망했고 인도양 쓰나미는 아기와 여성을 가장 많이 쓸어갔다. 미국의 카트리나 재해에서 흑인이 가장 많이 죽었다. 심지어 당시 응급 구조대는 흑인 거주지역에 가지도 않았다. 현재 복구작업도 가장 느려 이곳에서 살던 흑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있다. 재난은 공평하지 않다.

 

재난의 피해 정도는 우리 사회가 이 자연재해(위험요소)를 관리하고 예방하며 취약계층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나가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이것이 정부의 책무다. 하지만 정부는 형식적인 재난대피 훈련과 유용하지 않은 매뉴얼만 제공하고 있다. 그러니 재난에 취약한 사람들은 무얼 할 수 있을까. 2017년 8월 15일 발생한 포항지진을 겪었던 한 장애인의 그때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이 무너지면 ‘여기서 죽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안에 있었다. 나갈 수 없었고 나갈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한국은 더 이상 재난 안전지대가 아니다. 2017년만 해도, 포항지진을 시작으로 충북 스포츠센터 화재, 강릉 삼척 산불 등 큰 재난들이 이어졌다. 재난 약자들 중 특히 장애인은 재난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4일, 리슨투더시티와 노들장애인야학의 주최로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재난 워크숍이 열렸다. 리슨투더시티는 한국의 개발문화를 비판하고 느리고 낮은 시각으로 도시를 재구성하는 단체로, 노들야학 워크숍에 이어 두 차례 더 재난 워크숍을 진행한다. 그리고 이 세 차례의 워크숍을 바탕으로 9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날, 박은선 리슨투더시티 총괄 디렉터는 포항지진을 겪었던 장애인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현재 한국의 장애인 재난 매뉴얼을 소개했다. 그리고 참여자들과 함께 대피를 위한 대응능력을 향상하기 위해서 사회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질문하며 답을 찾는 시간을 가졌다.

 

박 디렉터는 포항 지진을 겪은 장애인들과 활동지원사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한국에는 장애인의 대피 기구, 대피 매뉴얼, 무엇보다 대피를 지원하는 사람이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보통 재난이 발생하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말라는 지침을 가장 먼저 교육받는다. 하지만 장애인에게는 오히려 엘리베이터가 ‘대피 기구’이다.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기 위한 선택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 디렉터가 포항에서 만난 한 장애인은 ‘죽을 각오’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결국 이래 죽으나 저리 죽으나 같으니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고 했어요.”

 

대피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적 지원이다. 특히, 장애인이 혼자 힘으로 대피할 수 있는 기구가 없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재난 상황에서 공적이든 사적이든 비장애인의 지원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박 디렉터는 "포항 지진 당시 장애인들은 무대책 상황에 놓여 있었다. 한 분은 119에 전화를 했더니 '다친 경우가 아니면 출동이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또한, 뉴스에서는 '대피하라'는 말을 했지만 정작 그들의 대피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한 사람은 동생이 도와서 겨우 1층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2013년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와 국립재활원이 내놓은 ‘장애인 재난위기관리 매뉴얼’을 보면 장애인 당사자나 활동지원인이 재난 발생 시 가장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관리자 또는 도우미의 도움을 적극 요청(화재 알림벨 울리기 등)’ 이다. 2013년 보건복지부 장애인 정책국이 장애인 거주시설을 대상으로 펴낸 ‘장애인을 위한 피난 매뉴얼’도 비슷하다. ‘사고 발생 시 안전벨을 누르고 도움을 줄 사람(소방공무원, 활동보조인)을 기다릴 것.’ 재난의 종류와 관계없이 쓰여 있는 '비장애인을 기다릴 것'이라는 매뉴얼에 대해 박 디렉터는 “도움을 요청해도 재난 상황에서는 곧바로 올 수 없다. 그런데도 매뉴얼에 이렇게 담아놓은 것 자체가 장애인들이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지를 모른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박 디렉터는 "현실성 있는 매뉴얼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모두 포괄하는 재난 대피 매뉴얼과 훈련이지만 아직도 전무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매뉴얼을 개발하는 교수들도 하는 이야기가 ‘멀쩡한 사람도 대피를 못 하는데 무슨 장애인 대피를 이야기하느냐’고 말하며 장애인 포괄 매뉴얼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6.8 강도의 지진이 발생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이형숙 노들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결론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시스템'이 없다 보니 워크숍에 참석한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 6.8 규모의 지진이 일어난 경우 대피 방법'을 물었을 때도 '각자 탈출하거나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시각장애인인 곽남희씨는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비장애인 손을 붙잡고 밖으로 뛰어나갈 것 같다. 과거에 집에서 대피해야 했던 적이 있는데 집에 아무도 없어서 곤란했던 적이 있다”며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이형숙 노들자립생활센터 소장은 “ 아무리 생각해도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결론뿐이다. 엘리베이터가 이 정도 지진이면 엘리베이터는 아예 작동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계단을 이용할 수 없는 휠체어 이용자는 책상 밑에서 기다리는 것 이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그러면서 “일하는 사무실에 완강기가 있기는 하지만 비장애인 두 세 명이 도와주지 않으면 기구를 이용하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유리창을 깨야 하고 깨더라도 완강기를 내 몸에 묶는 것 등 제약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대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박 디렉터는 사람들 간의 곁에 있는 사람들의 역할 분담이 가장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보통 비장애인 3명과 장애인 한 명이 많이 움직인다. 이 조를 미리 짜야 당황하지 않는다. 그 외에 건물 전체를 통솔하는 안전반장, 휠체어 동선 교통정리를 하는 사람, 재난 상황을 방송하는 사람,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사람 등이 필요하다. 포항 지진을 겪은 장애인들 역시 들어보면 주민, 친구 등의 역할이 절실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평상시 재난 훈련이 생존율을 높이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포항 지진 당시 한동대 기숙사 학생들의 경우 큰 사고가 없었는데 이는, 재난 대피 훈련을 매번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재난대피를 위한 전문장비를 갖추고 시각장애, 청각장애인을 위한 재난 방송, 경보기 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 재난 대피 매뉴얼이 가장 잘 되어 있는 영국의 사례를 소개했다. 영국은 어떤 장애인이라도 안전하게 건물 밖으로 이동하기 위해 필요한 계획을 갖추는 것을 우선 사항으로 삼고 있다. 그 일환으로 모든 건물에는 비상용 엘리베이터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비상용 엘리베이터는 비상시를 대비해 별도의 전원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하고 화재 등에 안전하게 설계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비상 대피 계단도 필수로 설치해야 하는데 이 계단의 넓이는 3인이 비상 대피 의자(계단에서 움직일 수 있는 휠체어)를 들고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척추 손상 등의 우려로 비상 대피 의자는 훈련된 사람만이 들 수 있게 되어 있다.

 

박은선 리슨투더시티 총괄 디렉터가 소개한 영국의 재난 대피 시스템 사례. 워크숍 자료 갈무리.

 

재난에는 재난 예방, 재난 대비, 대응, 복구 4단계가 있다. 위기 요인을 사전에 파악해 감소시킨다. 이를 위해 위기가 닥쳤을 때 행동방법, 대응능력을 평상시에 강화하고 재해가 닥쳤을 때 공동체는 자원을 활용해 피해를 최소화한다. 그런데도 피해가 발생한 부분은 다음에 제도 운용과 운영 체계 점검을 통해 위기관리 능력을 보완한다. 하지만 한국은 이 4단계 중 어느 부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취약계층에게 자연재해는 통제 할 수 있는 ‘위기’가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이 돼 재연재난이 된다. 결국 남는 것은 각자도생이거나 포기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는 대피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매뉴얼을 만들고 평소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대피할 수 있도록 훈련 체계를 구축하면 된다. 그러면 재난이 발생했을 때 누구도 남겨두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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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기자 hyemikim@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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