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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자립, ‘가족도’ 변해야 한다
부모연대 ‘가족중심의 발달장애인 자립생활 전환지원’ 결과보고대회 열어
“선진국 발달장애인도 대부분 가족과 함께 살아, 자립에서 가족의 역할 적극 고민해야”
등록일 [ 2018년07월31일 19시17분 ]

이제 성인기에 접어든 자폐1급의 아들을 둔 어머니 이진숙 씨는, 아이가 갈수록 덩치가 커지는데 통제는 안 되고, 힘으로 이기려하는 태도를 보이니까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아이를 보낼 시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100군데의 시설을 알아봤지만 연락이 오는 곳이 없었다. 결국 자포자기 심정으로 시설 입소마저 포기했다.


그러다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온 안내문을 통해 전국장애인부모연대(아래 부모연대)가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가족중심 발달장애인 자립생활 전환지원’ 사업(아래 ‘가족중심 전환지원 사업’)을 알게 됐다. ‘어차피 어디 보낼 데도 없으니까’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이 프로그램에 맡겼다. 그런데 아이를 돌보느라 고단해진 가족들이 여유를 가지려고 보낸 프로그램인데, 오히려 더 피곤하게 했다. “예전에 했던 다른 프로그램의 선생님들은 다 알아서 해주셨는데, 여기는 가족들에게 뭘 하라는 요구사항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왜 우리한테 이런 거 시키냐고 항의도 많이 했습니다.”

 

'가족중심의 발달장애인 자립생활 전환지원' 사업 참여 경험을 발표하고 있는 이진숙 씨.

‘가족중심 전환지원 사업’은 성인기에 접어든 발달장애인 자립을 지원하는 데 있어서, 발달장애인 한 명만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가족을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 사업이다. 부모연대가 아산사회복지재단으로부터 3년간 지원을 받아 창원, 전주, 거제 지역 16명의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사업을 수행했다. 때로는 가족을 귀찮게 만들기도 했던 이 사업, 그 성과는 어땠을까? 부모연대는 31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사업 보고대회를 열고, 그 성과와 가족중심 발달장애인 자립생활 전환지원의 중요성을 점검하는 자리를 가졌다.

 

보통 자립생활을 이야기할 때에는 장애인 당사자의 욕구와 자기결정권을 가장 중시한다. 반면 가족은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 행사와 자기 욕구 실현의 걸림돌로 여겨지곤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자립생활의 목적을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중심 전환지원 사업’은 접근을 달리했다. 발달장애인도 가족의 한 구성원이기에, 가족을 바꿔야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자립지원에 우호적인 토양을 만들 수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리나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국제협력국장 이리나 부모연대 국제협력국장은 “복지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을 가 봐도 상당수 발달장애인들이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우리는 이 상황을 무시하지 말고 받아들이자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우리의 목적이 가족과 함께 살자는 것은 아니다. 발달장애인의 자립전환을 이야기할 때는 그 사람이 서 있는 환경, 특히 때로는 친절하기도 하고 때로는 밉기도 한 형제, 자매, 부모들을 다 포괄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이 사업은 그 초점을 ‘상대적 자립’과 ‘지원생활’에 맞췄다. 이리나 국장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라면을 혼자 끓일 줄 알아야만 자립인 것이 아니다. 내가 진라면을 먹을지 신라면을 먹을지, 언제 라면을 먹을지 등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이를 위한 적절한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물리적 독립 그 자체보다는 본인 스스로 선택과 통제를 가능케 하고, 분절적인 서비스에서 탈피하여 고용과 주거, 의료, 복지, 행동지원 등의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이 협업을 해 전인적 지원을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족의 문제를 발견해 치료하는 전통적 가족중심실천모델을 탈피해, 가족의 숨겨진 강점을 발견해 이를 활성화시키는 ‘가족강점관점’을 택했다. 사회복지사 등 전문가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가족의 관심과 요구가 발달장애인의 성장을 주도하게끔 만들고자 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발달장애인 자립생활 전환지원에 대한 가족의 역량에 따라 의존-준비 단계, 협력-체험 단계, 주도-자립 단계로 가족별 유형을 세분화했고, 의존-준비 단계에서 협력-체험 단계로 나아가는 프로그램 유형을 ‘가족협력형’(I유형)으로, 협력-체험 단계에서 주도-자립 단계로 나아가는 프로그램 유형을 ‘가족주도형’(II유형)으로 프로그램을 세분화했다. 이에 따라 I유형은 가족의 욕구인식, 가족의 관계회복과 각자의 역량강화, 전문가와의 협력에 초점을 두었고, II유형은 다양한 형태의 자조모임 참여, 발달장애인 자기결정적 환경 조성, 자녀의 미래설계 계획 등에 중점을 뒀다.


이 사업에 참여한 결과 변화된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모습에 대해 참여자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앞서 자신의 아이를 시설에 보내려고 100군데를 알아봤다고 밝힌 이진숙 씨는 “이제 우리 아이를 더 이상 시설에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씨는 “그동안 내가 우리 아이에 대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라며 “항상 우리 아이는 사회성도 부족한 자폐1급이라 할 수 있는 게 없다고만 생각했는데, 여러 선생님들이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설득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어느 날부터 우리 아이가 (혼자) 버스 타기가 되더라. 자기 혼자 쇼핑도 하고, 이마트 가서 자기가 좋아하는 레고를 사오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점점 늘어났다”라며 “나는 아이가 성인이 되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고 여겼는데, 많이 달라졌고 앞으로도 점점 성장해 갈 것 같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창원에서 이 사업에 참여한 발달장애자녀의 어머니 박선영 씨는, 만약 부모가 없을 때 자녀가 스스로 생활하고 누구든지 자녀를 이해하고 보살펴 줄 수 있게 하기 위한 ‘마이스토리’ 정리 작업을 한 것이 큰 의미였다고 밝혔다. 박 씨는 “아이가 어떻게 살았으면 좋을까를 생각해 보면서 취업, 결혼, 주택 문제 등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면서 “이것들이 나중에 부모가 곁에 없을 때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생각하니 앞으로 더 잘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도 직접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것 등을 정리하면서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고 전했다.


부모연대의 '가족중심 발달장애인 자립생활 전환지원' 사업의 성과에 대해 전문가들이 조언하고 있다.

이 사업에 대한 전문가들의 조언도 이어졌다. 백은령 총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선진국이라고 해도 요즘은 장애인 예산이 삭감되는 등 어려운 실정에 처해있다. 그렇다면 우리와 결정적 차이는 뭘까?”라고 물으며 “영국의 한 복지기관을 방문했는데, 청소년임에도 돌봄자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지원하는 펀드를 6년 동안 지원하는 것을 봤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장애형제자매 프로그램을 지원해도 1회로 그치곤 한다”면서, 지속적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윤경 중앙장애아동·발달장애인지원센터 팀장은 “발달장애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도 ‘성숙’과 ‘쇠퇴’라는 생애주기를 경험한다. 그중 핵심이 자녀의 성장인데, 그때마다 부부도 역할을 달리해야 하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가족중심 자립생활 전환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팀장은 이어 “우리가 언제나 자기결정권 존중을 말하지만, 이는 당사자 입장을 무조건 받아들인다는 것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과 동의와 협의를 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이 사업 참여한 발달장애인분 중에서 ‘조력자가 보모 같았다’라고 했는데, 조력자는 사실 그림자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조력자의 역할을 최소로 하고 자조모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부모연대는 이번 사업의 결과를 바탕으로 ‘가족중심의 발달장애인 자립생활 전환지원’ 매뉴얼을 제작했으며, 여러 복지기관·부모회·단체 등에서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가족중심 발달장애인 자립생활 전환지원' 사업 보고대회에 전국 약 100여명의 발달장애인 가족과 관계자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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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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