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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한다면서 신규입소는 그대로?’ 장애인과 가족들, 인권위에 집단 진정
장애인 거주시설, 신규입소 없이 1년에 1천 명씩 탈시설해도 30년 걸려
“시설은 복지서비스 아닌 ‘인권침해’ 공간… 신규입소 금지해야”
등록일 [ 2018년08월16일 14시53분 ]

전국의 중증장애인과 장애 가족 73인이 장애인거주시설 신규 입소를 금지하는 정책 권고를 촉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집단 진정했다.

 

전국의 중증장애인과 장애 가족 73인이 장애인거주시설 신규 입소를 금지하는 정책 권고를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촉구하며 집단 진정했다.

 

집단 진정을 기획한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 장애인 당사자·가족 단체들은 16일 오전 11시, 인권위 1층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는 탈시설 정책을 약속했으나, 여전히 장애인 거주시설을 '복지서비스' 중 하나로 안내하고 있다"라며 "거주시설 신규입소를 금지하지 않는다면, 정부의 탈시설 정책은 기만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진정서를 통해 "국가는 장애인이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차별받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통합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정책과 예산에 관한 모든 지원을 마련하고 제공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라며 "그러나 국가는 장애인 거주시설을 '서비스'라며 중증장애인들에게 권유해왔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환경을 위한 정책확장에는 소극적인 태도로 임해왔다"라고 밝혔다.

 

이에 이들은 "'장애인 거주시설 신규입소금지'를 천명하고, 정부가 발표할 예정인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및 종합지원체계'의 돌봄 지원 영역에서 거주시설서비스를 삭제하는 시정조치를 통해 더는 시설입소를 가능케 하는 제도적 학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강력한 권고를 요청한다"고 인권위에 촉구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 8월 16일 현재 전국의 장애인 거주시설은 1389개소, 입소자는 총 2만8558명이다. 시설에서 15년을 살았던 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활동가는 "시설 입소자 약 3만 명이 1년에 500명씩 탈시설하면 60년이 걸리고, 1천 명씩 탈시설해도 30년이 걸린다"라며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여전히 장애인 거주시설 신규입소자를 받겠다고 한다"라고 지적했다. 추 활동가는 "시설에서 산 15년 동안 행복했던 시간은 한순간도 없었다"라며 "지옥 같은 삶이 싫어 탈시설을 촉구해왔는데, 시설에 신규입소한 사람들은 나와 같이 또 살아야 하지 않나.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비판했다.

 

양영희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역시 시설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 양 회장은 "시설에 스스로 들어간 사람은 극히 드물다. 자신의 활동을 지원할 사람이 없고, 살아갈 집이 없고, 먹고살기 어려워서 시설로 떠밀리듯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누군가는 좋은 시설에서 살면 안전하고 좋지 않냐고 하지만, 아무리 좋아도 시설의 본질은 '수용'"이라며 "인간으로서의 주체성과 자기선택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시설은 결국 사람을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행위가 반복되는 곳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 회장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을 정부도 동의했기 때문에 탈시설 정책을 약속하지 않았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진정인 중에는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감독이자 동명의 도서 저자인 장혜영 씨도 있다. 장 씨는 18년간 시설에서 살던 중증발달장애동생을 지역사회로 데리고 와서,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큐와 책으로 담았다. 장 씨는 "탈시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인권의 원칙이다. 그리고 탈시설이란 그저 시설 안에 있는 3만여 명의 사람들이 지역사회로 나오는 것만이 아니라, 그 누구도 시설로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환경의 구축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 번 시설에 들어가면 나오기 정말 어렵다. 내 동생은 18년이 걸렸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얼마나 더 오래 보호라는 핑계로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 씨는 "탈시설을 위해 필요한 일이 정말 많다. 오늘, 이 순간부터 시설로 들어가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정책권고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중증장애인도 지역에서 살 수 있는, 모두가 원한다면 24시간 활동지원 서비스 받고, 장애가 있다고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라며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우리의 인권이 진정한 의미에서 지켜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왼쪽부터 추경진 활동가, 양영희 회장, 장혜영 감독

인권위는 지난 2013년 '장애인 자립생활 기반 구축을 위한 정책권고'를 통해 국무총리 및 보건복지부 장관, 국토교통부 장관,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시설보호가 아닌 개별적 욕구, 환경 등을 고려한 장애인 자립생활 기반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2013년에 인권위가 권고안을 내놓긴 했지만, 지역사회 기반만 이야기했지 시설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권고한 것이 없다”라며 “시설 안에 인권지킴이단을 만들거나 인권교육을 하는 등의 노력을 하긴 했지만, 그것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다. 인권위가 시설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 고민을 가지고 정부에 권고안을 내놓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역시 인권위가 정책권고를 마련할 때 유의할 점을 제기했다. 박 대표는 “2019년 7월부터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가 실시될 텐데, 복지부 계획을 보면 여전히 장애인 거주시설이 '돌봄 지원 영역 서비스'로 들어가 있다”라며 “더이상 거주시설이 복지'서비스'가 아니라는 점을 권고를 통해 분명히 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진정인 대표단은 인권위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진정인 뒤에 다른 참석자가 '시설로 보내지 말라'는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16일 '장애인 거주시설 신규입소 금지 정책권고 인권위 집단 진정'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정훈 한국피플퍼스트 위원장이 인권위에 집단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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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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