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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진지(陣地)’, 청와대 앞 농성장
[폭염 속 거리농성장②] 청와대 앞 ‘3대 적폐 폐지 공동행동’ 농성장
“광화문 농성에 이은 두 번째 농성, 많은 것이 변했죠”
등록일 [ 2018년08월24일 19시04분 ]

청와대 인근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는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3대적폐폐지공동행동'이 세운 농성장이 있다.
 

“날씨 때문에 농성장에 있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의 말이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청와대 근처 종로장애인복지관 앞 농성장 안을 가득 메웠다. 지난 13일(농성 141일 차), 이곳의 온도는 36도였다. 이 더운 날씨에는 선풍기가 소용없다는 사실을 다들 알았는지 그 누구도 ‘선풍기 켜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은 간이 냉장고에 있는 차가운 물을 마시며 버텼다. 냉장고 속에 있는 물은 금방 빠르게 사라졌고 사람들은 목이 마를 때면 농성장 앞에 있는 복지관 내 정수기를 이용했다.

 

현재 복지관 앞에는 흰색의 천막이 높게 솟은 농성장이 차려져 있다. 지난 3월 26일,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3대적폐폐지공동행동’은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을 옥죄는 3대 적폐인 ‘장애등급제·부양의무자 기준·장애인거주시설’을 폐지하고 이를 위한 예산을 확보하라”는 내용을 걸고 농성을 ‘다시’ 시작했다. 광화문 농성장에 이은 두 번째 농성이었다.

 

지난 5년간(2012.8.21~2017.9.5) 광화문역 지하도에서 농성을 이어온 장애계의 요구는 명확했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자 기준·장애인거주시설 ‘완전 폐지.’ 이유는 간단했다. 장애인도 지역사회에 같이 살자는 거였다. 가족들은 장애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나(장애인)’를 장애인수용시설에 밀어 넣었다. 이 사회에 ‘내’가 이용할 수 있는 복지서비스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있는 것조차도 장애등급에 따라 주어졌는데, 내게 필요한 서비스는 ‘등급’에 가로막혀 받을 수 없었다(장애등급제). 그렇기에, 나는 나의 필요에 따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삶의 선택권을 쥐고 싶었다. 장애가 있는 내겐 일할 기회 역시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는 ‘나의 빈곤’을 판단하기 전에, 내 부모·자식이 가진 소득과 재산(부양의무자 기준)을 보았고, 그리하여 나는 일할 수 없어 가난한데도 기초생활수급비조차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장애인수용시설에 갇혔고, 그곳을 벗어날 수 없었으며, 끝내 그곳에서 죽었다. 그렇기에 지난 5년간의 농성은 “장애와 가난 때문에 죽고 싶지 않다”는 수많은 ‘나’들의 비명이었다.

 

농성이 만 5년을 막 넘긴 2017년 8월 25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농성장에 찾아왔다. 그는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자 기준 단계적 폐지, 탈시설’을 약속하며 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을 이야기했다. 그 약속을 믿으며 그해 9월 5일, 장애계는 1842일간의 광화문 농성을 중단한다. 이후 장애계와 정부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현재까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등을 논의하고 있으나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예산확보가 필수적임에도 정부는 ‘예산 증액이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청와대가 바로 보이는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 다시 농성장을 세웠다.

 

농성장을 지키기 위해 모여있는 사람들.


김상희 활동가는 박능후 장관이 왔을 때 무언가 바뀔 줄 알았지만 이내 실망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광화문 농성을 접던 날, 기대가 높았다. 획기적으로 바뀔 것 같았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요구안을 어느 정도 수용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시행하려는 정책들을 보니 생각만큼 달라지지 않았다.”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기대가 점점 낮아졌고 ‘그럼 그렇지’하고 생각하는 날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농성장에서는 ‘그럼 그렇지’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인내를 가지고 열심히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활동가도 거들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하는 일의 속도를 봤을 때 아직까지도 우리의 요구안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약속은 했지만 실행되는 것이 없다. 우리의 의제가 뒤로 밀렸다”라고 말하면서 “기우제를 지내는 마음으로 싸워나가야 한다”며 웃었다.

 

- “싸움의 시작과 끝이 되는 공간, 귀하고 존엄하죠”

 

사실, 이들이 말하는 ‘싸우다’라는 동사에는 지루함을 견디는 일도 포함된다. 정체된 상황, 듣지 않는 자들로 인해 멈춰진 행진대열 속에서 자신의 발등을 바라보고 있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성장은 ‘싸움터’ 이미지와 달리 고요함과 기다림으로 채워지기도 한다. 고요함이 쌓이면 농성장은 순식간에 지루함을 견뎌야 하는 장소가 된다.

 

이 지루함을 농성장 지킴이는 시간마다 해야 하는 과제가 적힌 ‘농성장의 하루’ 일정을 소화하며 이겨낸다. 오전 8시에는 아침 선전전을, 이어 11시에는 장애계 사안들을 짚어보는 교양시간을, 오후 5시부턴 두 시간가량 퇴근 선전전을 한다. 하지만 농성장은 이 일정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 일정이 있어서 허겁지겁 가야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매번 해내는 일정이 있다면, ‘농성장을 비워두지 않는 것’이다.

 

“사실 농성장은 아무도 오지 않아도 굴러가긴 해요. 하지만 이곳엔 사람들이 계속 있어요. 신기하죠. 워낙 농성을 많이 한 사람들이라 한시라도 이 공간을 비워두면 안 된다는 걸 아는 것 같아요. 비어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누구든 달려와요. 광화문 농성장도 그랬지만 여기도 훔쳐 갈 게 없어서, 어떻게 보면 사실 밤엔 안 지켜도 되거든요. 그래도 우리는 ‘농성장의 24시간’을 지켜내요. 이곳엔 우리의 요구가 있으니깐. 시간이 지날수록 광화문 농성장처럼 이 농성장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는 것 같아요.” (양유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농성장 주변 바닥에는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등이 적힌 그래피티가 횡단보도처럼 농성장을 향해 있다.


이형숙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도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이 농성장을 ‘진지’라고 표현했다. 이곳을 기점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우리는 (여러 여건상) 모이는 것에도 애로사항이 있다. 하지만 쉽게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농성장에는 반드시 온다.”면서 “이곳 농성을 시작한 이후엔 시위를 하건 추모제를 하건, 여기에서부터 출발하고 이 ‘진지’에서 마무리한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이 싸움터를 도리어 ‘집’이라고 했다. 힘들 때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에너지를 충전하듯 농성장은 쉬면서 새로운 일도 기획하는 공간이라는 거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이야기하는 동안 농성장을 “귀하고 존엄한 곳”이라고 표현했다.

 

- 광화문 농성에 이은 두 번째 농성, 많은 것이 변했다

 

이 농성장은 광화문 농성장을 이어가는 두 번째 농성장이다. 5년 동안 싸웠음에도 ‘같은 요구안’을 정부에게 또 내밀고 있다. 혹여나 사람들은 실망하지 않았을까.

 

이형숙 소장은 고개를 저었다. 이 소장은 “‘물리적 거리’만 해도 청와대와 더 가까워졌다. 사실 청와대 분수대 앞으로 가고 싶었는데 장애인 화장실 등 여러 문제가 겹쳐 못 갔다”며 소리내 웃었다. 이어 민관협의체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정부는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정책을 고민조차 하지 못한다. 그런 정부와의 협상테이블을 만들어냈다. 그 테이블에서 활동지원 24시간이 무엇이고 장애등급제 문제가 무엇인지 이야기하게 됐다”며 큰 틀을 보면 변한 것이 없을지라도 세세한 부분에서 많은 것들이 변화됐다고 이야기했다.

 

양유진 활동가 또한 당사자들의 힘으로 소통의 고리를 만들어 낸 것이 변화 지점이라고 짚었다. 또한, 지난 5년간의 광화문 농성이 정부와의 협상 테이블을 만들어냈다면, 이번 청와대 농성은 그 자리에 들어간 이들을 든든하게 받치는 뒷배가 되고 있다고 했다.

 

“사실 이 농성장으로 판을 뒤집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이 공간이 있기 때문에 민관협의체에 들어간 장애계 위원들이 힘있게 싸울 수 있어요. 이 농성장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3대 적폐’ 폐지 요구를 걸고 끊임없이 논쟁하고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물리적 공간이거든요.”

 

농성장은 대다수의 시간을 한산함으로 채운다. 더구나 이 곳은 유동인구가 거의 없어 사람들의 서명을 받는 것도 힘들다.
 

- 복지관은 나가라는데… “눈치 줘도 버텨야죠.”

 

하지만 농성 134일째를 맞이하던 지난 6일, 종로장애인복지관이 농성장 철수를 요청했다. 그날 복지관은 1층 전기를 끊었고, 농성장 야간 지킴이들은 실내에서 열대야를 버티며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사람들은 농성장 야간 사수를 더 늘렸다. 사람들의 항의가 있은 후에야 복지관은 다시 전기를 공급했으나, 에어컨은 여전히 틀어주지 않고 있다. 습한 열대야를 선풍기로 버틴다. 잠잘 때 체위 변경을 하기 힘든 중증장애인들에게 더위는 욕창을 유발하는 위험요인 중 하나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은 욕창이 생기면 안 돼요. 복지관에 이 이야기하면서 ‘전기 끊지 말라’고 했더니 복지관 관장이 ‘다른 사람하고 교대하라’는 거예요. 전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장애인의 삶은 항상 다른 사람이 대신 살아줘야 하는 건가? 나는 주체적인 삶이 가능하지 못한 존잰가?” (이형숙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그래서 더욱 오기가 생긴다. 이 소장은 이날 대화가 끝날 때마다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말을 꼭 붙였다.

 

갈등이 생기니 복지관 직원들도 농성장을 곱게 볼 리 없다. 이날 점심 먹고 들어오는 복지관 직원들이 농성장을 향해 궁시렁대며 한마디씩 하고 간다. 그들의 낮은 읊조림에 최재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무던하게 응답한다.

 

“눈치 줘도 버텨야지. 뭐 어쩔 거야.”

 

농성장 천막 안에 고요함이 퍼지면 이곳은 생동감을 잃고 다른 건물처럼 거리의 풍경이 된다. 움직임이 없다. 그리고 이 천막 안에는 ‘사회의 풍경이 돼라’고 명령받은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거부했고 농성장을 차렸다. 그곳이 여기,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 세운 농성장이다. 여기,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거리는 청와대와 더 가까워진, 가난한 사람들과 장애인의 농성장이 있다. 풍경이 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여기, 종로 장애인복지관 앞에 모여있다.

 

[폭염 속 거리농성장]

① 420대구장애인연대 농성장

_ 폭염 속 농성하는 대구 장애인들 “권영진 시장님, 얘기 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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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기자 hyemikim@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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