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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 폐지] ‘파이 쟁탈전’은 누구의 삶도 배불리지 못한다
복지부가 공개한 종합조사표에 쏟아진 비판들… “등급제보다 후퇴”
최중증사지마비에 정신적 장애까지 있어야, 활동지원 ‘최대 시간’ 받을 수 있어
등록일 [ 2018년09월04일 21시34분 ]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복지서비스 제공 기준이 될 '종합조사도구'의 윤곽이 드디어 드러났다. 복지부는 3일 토론회를 열고 종합조사도구에 대한 장애인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장애 유형, 단체 성격을 불문하고 종합조사도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복지부가 공개한 '조사표'는 내년 7월부터 적용될 일상지원서비스 영역에 한정된 기준표이다. 일상지원영역엔 현재의 활동지원서비스, 거주시설 입소, 보조기기, 응급안전 서비스(야간순회, 응급알림e)로 총 4개의 서비스가 포함된다. 복지부는 이동지원은 2020년, 소득·고용 영역에 대한 조사표는 2022년까지 확정해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 선택할 수 있는 서비스, 현재와 똑같아… ‘거주시설 입소’까지 그대로

 

그러나 복지부가 내년 7월부터 종합조사표를 통해 제공하겠다는 4개의 서비스는 현재 등급제 체계에도 이미 있는 서비스이다. 장애계가 지속해서 요구해온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지원 등 다양한 공적 서비스는 여전히 없다. 장애인의 ‘다양한 욕구’를 흡수할 선택지가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 내년 7월에 장애등급제가 폐지된다고 해도 장애인 당사자 입장에선 체감상 변하는 게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는 복지부가 ‘시설 입소’를 장애인의 일상생활지원서비스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토론회에서 이상진 복지부 장애인정책과장 역시 "거주시설 입소가 제공 서비스에 포함된 것에 비판이 있는 것을 알지만, 현재 여건상 더 많은 논의와 의견수렴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라며 방어적 입장을 보였다.

 

이는 현재 '탈시설'을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과 충돌된다. 탈시설의 연장선에서 복지부는 '커뮤니티 케어', 즉 지역사회 내 지원 체계를 구상하고 있으며, 이미 내년에 시범사업 예산 81억 원도 잡아둔 상태다. 현재 복지부는 한쪽에선 탈시설을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시설 유지를 말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종합조사표는 여전히 의학적 평가를 중심에 두고 사회적 환경을 고려하진 않고 있다.
 

- 여전히 ’의학적 평가‘에 중심을 둔 종합조사표

 

복지부는 서비스 필요도를 종합조사표를 통해 책정하여 지원한다고 했으나 4가지 서비스 중 종합조사표로 급여량이 결정되는 서비스는 결국 ‘활동지원’밖에 없다. 이를 증명하듯, 종합조사표의 형태는 현재 활동지원 인정조사표와 매우 유사하다.(기사 하단 참고)

 

기존 활동지원 인정조사표는 일상생활 동작영역, 수단적 일상생활 수행능력, 장애특성 고려영역, 사회환경 고려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일상생활, 수단적 일상생활, 장애특성은 이번 종합조사표에 '기능 제한' 영역으로 포함되었고 가구환경 항목이 새로 생겼다.

 

복지부는 변경된 종합조사표에 사회활동에 대한 가중치가 높아지고 가구환경이 반영되었다며 “의학적 평가 중심에서 벗어나 개인의 욕구와 환경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서비스 필요도를 포괄적으로 평가”하는 도구라고 종합조사표를 설명한다.

 

그러나 항목별 점수 분포를 보면, 종합조사표가 여전히 의학적 평가에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기존 활동지원 인정조사표에서는 기능제한 영역이 445점, 사회환경 고려 영역이 25점이었다. 그러나 복지부가 발표한 종합조사표에서 기능제한은 최대 532점, 사회활동은 최대 24점, 가구환경은 최대 40점이다. 기능제한 배점이 오히려 커졌고, '가구환경' 역시 독거여부, 이동제한, 엘리베이터 유무 등을 지표로 삼고 있어 사실상 '기능제한'에 해당한다.

 

기존 활동지원 추가급여 요건에는 담겨있던 ‘출산에 의한 추가급여’와 ‘탈시설 장애인 추가급여’는 개편된 종합조사표에서 누락되었다. 사회적 환경을 고려한 활동지원 추가급여가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 최중증사지마비에 정신적 장애까지 있어야 ‘최고점수’ 받을 수 있어

 

그러나 종합조사표에서 596점으로 최고점수를 받아도, 지원받을 수 있는 활동지원 시간은 하루 16.84시간이 최대다. 즉, 활동지원 24시간은 새로 바뀐 복지 체계에서도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복지부는 아직도 야간순회서비스와 응급안전서비스를 ‘활동지원 24시간’의 대체 서비스로 제시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나마 '최대로' 받게 되는 16.84시간도 제공받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충격적인 결과도 드러났다.

 

종합조사표를 통해 최대 받을 수 있는 시간은 하루 16.84시간에 불과하다.
 

복지부는 ‘장애등급제 폐지 3차 시범사업’으로 2017년 4월부터 10월까지 기존 활동지원급여 수급자 1886명을 대상으로 종합조사표를 모의적용해봤다. 그 결과, 활동지원 급여량은 전체적으로 월평균 5.13시간(약 4.58%)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대상자 중 45.76%에 해당하는 860여 명은 급여가 감소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체의 13.52%(246명)는 급여가 탈락했다. 반면, 최대 급여량인 16.84시간을 받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최중증사지마비에 정신적 장애까지 있어야 ‘최고점수’를 받을 수 있으며, 시청각장애에 대한 고려는 부족하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결국 조사표 구성에 있다. 조사표에서 최고점수를 받아야지만 최대 급여량을 받게 되는데, 현재 조사표엔 신체장애와 정신적 장애(정신장애, 발달장애), 감각장애까지 혼재해있다. 즉, 최중증사지마비에 정신적 장애까지 동시에 있어야만 일일 최대 지원 시간인 16.84시간을 받게 되는 구조다.

 

또한, 기존 활동지원 인정조사표에서는 시각기능과 청각기능이 각각 분리되어 최대 60점까지 점수를 줬으나 종합조사표에서는 '시청각복합평가'로 최대 20점까지만 인정된다. 이러한 조사표 배점으로 인해 시각장애인의 활동지원 급여량은 감소한다. 이에 복지부는 시각장애와 같은 감각장애, 특히 사회활동하는 당사자의 경우에는 활동지원 급여 보전을 위한 방안을 별도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 장애유형별 기준표 만들어봤자 ‘파이 크기’는 한정되어 있어

 

이러한 문제점들 때문에 일각에서는 장애 유형별 조사표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조사표를 통해 실질적으로 받을 수 있는 복지서비스 종류는 활동지원 하나뿐이다. 그렇기에 유형별 기준표를 마련한다고 한들, 이는 이미 크기가 한정된 한 개의 파이를 N개의 조각(장애유형)으로 나눈 뒤, N분의 1의 작은 조각을 수천 개의 조각으로 또다시 나누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문제는 ‘이 파이를 어떻게 크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파이를 한 개가 아닌 여러 개로 만들 것인가’, 즉 ‘예산 문제’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장애계 내에서의 '파이 쟁탈전'만 예정되어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복지부가 제시한 조사표에 매몰되어 '어떻게 더 많은 점수를 따낼 수 있을까‘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 너머를 봐야 한다. 그것이 애초 장애계가 요구한 등급제 폐지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등급제 폐지를 주장해온 장애계의 일관된 요점은 "장애인이 자신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받을 수 있도록 복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복지부 역시 이러한 장애계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장애등급제 폐지 민관협의체'를 꾸려 지난 1년간 진행해왔다. 그러나 패러다임의 변화는커녕, 이번 종합조사표에도 복지 욕구 조사와 서비스 지원은 단절되어 있다.

 

종합조사표 상의 복지욕구 조사표
 

복지부는 서비스 제공을 위해 기초상담과 복지욕구조사도 진행할 것이라고 한다. '복지욕구조사'를 통해 "서비스 이용현황 및 희망하는 서비스 등을 조사해, 공공, 민간 서비스를 발굴하고 지원하며 사례관리"에 활용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복지부가 공개한 복지욕구조사표를 보면 ‘현재 이용 중인 공적·민간서비스’를 확인한 뒤, ‘이용하고 싶은 민간서비스’에 체크하는 수준이다. ‘공적서비스’에 대한 욕구 조사 칸은 없으며, 현재 상황에서 추가적인 복지 욕구가 있는 장애인에게는 (가용 자원이 있는 경우) 민간과 연계해주는 선에서 정부의 역할을 끝내겠다는, 공적 서비스는 여전히 ‘주는 대로 받으라’는 것이다.

 

복지부 계획안으로만 본다면, 활동지원 등 장애인에게 필요한 서비스 제공 기준은 '종합조사표'에 따라 조사원이 '평가한 점수'에 맞춰 주어진다. '등급'이 '점수'로 바뀐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으니, 공공영역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종류와 양은 현재 등급제에서 주어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야말로 '등급제 폐지'에서 장애등급만 폐지됐을 뿐, 장애인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무엇을 위한 장애등급제 폐지인가, 복지부에 되묻게 된다.

 

* [첨부] 아래는 현재의 ‘활동지원 인정조사표’내년 7월 도입될 ‘종합조사표(돌봄지원 필요도 평가)’입니다.  

 

①현재의 ‘활동지원 인정조사표’

②내년 7월 도입될 ‘종합조사표(돌봄지원 필요도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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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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