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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앞의 웃음’, 벽을 뚫어내는 최옥란의 투쟁
최옥란 열사 등 6인의 열사 초상화 전시하는 ‘보고 싶은 얼굴’전
“당신의 투쟁은 우리 가슴에 남아 지금도 뜨겁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등록일 [ 2018년10월14일 15시40분 ]

정정엽 작가의 '벽 앞의 웃음' (사진제공=이한열기념관)


11일 오후 6시, ‘보고 싶은 얼굴’ 전시회가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이한열 기념관’에서 열렸다. 올해로 네 번째 열리는 이 전시회에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열사들의 얼굴과 이름이 있다.

 

올해 전시에는 장애, 빈민운동에 몸담았던 최옥란, 제주 4·3 항쟁 유격대장 이덕구, 강도 높은 노동에 항의하며 팔뚝에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라는 유서를 새겼던 권미경, 도시 빈민 지역에 약국을 세우고 빈민운동을 했던 고미애, 경원대 학원자율화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학생운동을 하다 분신한 장현구, 최저임금 1만 원과 기본소득 등을 외치며 운동하다 심장마비로 죽은 권문석 등의 초상화가 걸렸다. 전시회 오프닝에는 올해 전시된 열사들의 친구, 부모 등이 참석해 고인들과 함께했던 이야기를 나눴다.

 

수급권과 행복,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국가에 저항했던 최옥란 열사의 삶

 

최옥란 열사는 1966년 6월 5일에 태어났다. 그는 장애문제연구회 ‘울림터(1986년)’, 뇌성마비연구회 ‘바롬(1993년)’을 만들었고 2001년에는 서울역 선로를 점거하는 이동권 투쟁에 앞장서는 등 장애 운동에 힘썼다. 최 열사는 청계천 근처에서 노점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2000년부터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당시 1인당 월 소득이 33만 원을 넘으면 수급자에서 탈락이 됐는데 최옥란이 노점상을 하며 벌던 돈도 재산으로 잡혔다. 장애로 인해 의료수급이 절실했던 최 열사는 노점을 중단해보기도 했으나, 당시 생계급여 26만 원(1인 가구 기준)으로는 도저히 삶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수급권과 노점상을 하며 버는 돈,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최옥란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단’을 제안하고 2001년 12월 3일 명동성당 앞에서 거리농성을 시작한다. 그는 보건복지부 장관의 집을 찾아가 생계급여가 턱없이 부족함을 알리기 위해 수급비 26만 원을 반납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2년 2월 21일, 최옥란은 자살을 시도한다. 전남편과 자신의 사이에 있던 아들의 양육권을 되찾아 오기 위해 일정한 기준 이상의 재산을 신고하려 모아둔 돈이 재산으로 잡힐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 돈이 재산이 되면 그는 수급권에서 제외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결국 2002년 3월 26일, 자살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36살이었던 최옥란의 죽음 이후 그가 참여했던 농성단은 2004년 ‘빈곤문제해결을 위한 사회연대(빈곤사회연대)’로 전환했고 장애계는 그의 기일에 맞춰 ‘전국장애인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보고 싶은 얼굴 전시회의 입구

 

뜨거운 투쟁가 최옥란의 ‘벽 앞의 웃음’
그리고 그의 투쟁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번 ‘보고 싶은 얼굴’전에 전시된 최옥란 열사 관련 물품은 그가 어버이날 부모에게 썼던 유서, 2001년 5월 가계부, 아들과 찍은 사진, 독사진, ‘시대를 울린 여자’라는 제목의 최옥란 평전이다. 최옥란의 얼굴을 그린 정정엽 작가의 작품 ‘벽 앞의 웃음’도 있다. 벽 앞의 웃음’을 그린 정정엽 작가가 최옥란 열사의 초상을 그리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2002년 최옥란이 죽었을 때 그의 사진을 신문에서 봤다. 명동성당에서 시위 할 때 무릎담요를 덮고 환하게 웃으며 박수치는 얼굴이었는데 언젠가 '작품으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진 스크랩도 해뒀다. 그리고 2006년에 ‘사라진 여자들’이라는 기획전에 참여했는데 그 당시에도 최옥란을 언급한 적이 있다. 이번 전시명단에 있는 최옥란의 이름을 또 보는 순간 그를 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벽 앞의 웃음’은 그림 한 점에 최옥란의 인생을 담았다. 그림을 시계방향으로 살펴보면 ‘보고 싶은 어머니, 안고 싶은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15.06.01 김준호’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최옥란의 납골당에 아들이 놓아둔 메모에 있는 말들이다. 그 아래에는 세로로 ‘뇌성마비 1급 장애 최옥란’이 쓰여 있고 옆에는 최옥란이 활동했던 장애인단체 ‘울림터’, ‘바롬’이 있다. 그림의 아래쪽에는 최옥란이 아들에게 보내는 유서 중 일부였던 “엄마는 이제 모든 것에 지쳤단다”가 쓰여 있다.

 

이 그림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최옥란의 웃음과 그의 귀 자리에 있는 나비다. 정 작가는 “작품에 그려진 최옥란의 웃음은 당시 신문에서 봤던 사진이 모티브다. 최옥란의 웃음은 아프게 다가오면서도 세상을 향한 절규와 통렬함 그리고 이 안에는 저항이 담겨 있다. '세상이라는 벽 앞의 웃음'처럼 보였다”며 작품 속 최옥란의 웃음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나비는 최옥란의 웃음과 열정이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나비를 통해 아들의 메모를 최옥란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최옥란을 그린 작품은 색색의 조각으로 채워져 몹시 화려하다. 정 작가는 “최옥란의 생애과정을 보면 열정과 적극성이 넘쳐난다. 그는 비록 죽음을 택했지만, 최옥란의 얼굴을 슬프게 그리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살다가 죽어간 '수동적인 인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최옥란의 오른쪽 얼굴은 조각들로 살짝 덮여 있고 왼쪽 얼굴에 있는 조각들은 얼굴의 뒤편에 그려져 있다. 이 형식으로 그의 웃음은 ‘벽 앞의 웃음’이면서도 ‘벽을 뚫기 위해 애쓰는 웃음’으로 보이기도 한다. '일그러지며'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은 현실에 순응하지 않았던 자신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최옥란을 그린 정정엽 작가

 

이날, 고 최옥란 열사의 지인으로 박경석 최옥란열사추모사업회 회장이 참석했다. 그는 “옥란이 때문에 투쟁하다가 내가 여기까지 왔다”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최옥란이 죽은 지 16년이 지났는데 그의 아직도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옥란은 투쟁을 열심히 했다. 2001년에 서울역 철로에 가장 먼저 뛰어들었던 사람도 옥란”이라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그가 함께 살고자 했던 세상을 향한 투쟁이 지금도 우리의 가슴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의 투쟁이 단지 가슴에만 남지 않고 우리가 이어서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어서 좋다”며 열사를 추모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씨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그는 “오늘은 고 최옥란 씨의 사연이 마음에 아프게 다가온다. 박경석 회장의 말을 들으며 ‘동지애’의 끈끈함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며 “이 세상에는 마음이 아픈 죽음과 다양한 죽음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같이 싸움을 했던 사람만이 이 죽음을 생각하고 기억한다. 이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우리가 발굴해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보고 싶은 얼굴’전은 올해 12월 31일까지 계속되며 주중 오전 10시부터 5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근무시간 외에 보고 싶은 관객들은 02) 325-7216로 전화해 예약하면 된다.

 

박경석 최옥란열사추모사업회 회장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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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기자 hyemikim@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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