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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언론은 ‘장애인 뉴스’를 왜 이렇게 다룰까?
[뉴스비평] 한국사회에서 주류 언론의 기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등록일 [ 2018년10월25일 16시14분 ]

- 이 글은 지난 11일, 장애여성공감 부설 성폭력상담소가 주관한 장애와 반성폭력 시민감시단 ‘새로고침’ 토론회에서 발표된 토론문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보도되는 장애 관련 기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관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주로 봉사활동, 바자회를 통한 ‘사랑 나눔’을 알리는 내용이다) 받아쓰기, 두 번째는 사회부 기자가 쓰는 사건·사고 기사다. 두 번째 기사의 경우, 경찰 브리핑을 받아 쓰거나 스스로 취재하여 쓰게 되는데 여기서 주류 언론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통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장애인 학대·성폭력 기사에 대해 자극적인 피해 정황만을 서술하거나, 피해당사자의 언어를 담기보다 가해자의 언어를 담아내고, 장애인은 무능력하거나 불쌍한 존재로 묘사하는 기사들 말이다.

 

이때 기자가 ‘잘못된 표현’을 사용할 경우 데스크가 수정할 수 있지만 최종 기사에 그러한 표현은 걸러지지 않고 보도된다. 데스크조차 무엇이 잘못됐는지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그러한 관점과 표현을 문제로 인지하지 못할까? 소위 장애 관련 ‘문제적 보도’들의 기저엔 언론의 주류성이 크게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를 추적해보자.

 

최근 정신장애/정신질환 관련 뉴스가 연일 언론을 달구고 있다. 포털사이트에 '정신장애'를 검색어로 했을 때 나오는 화면 캡처.
 

- 한국사회에서 주류 언론의 기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주류 언론사 기자가 되는 과정을 쫓아가 보면 이렇다. 수년간 치열한 언론고시(언론사 합격이 고시 합격만큼이나 어렵다고 하여 언론고시라고 표현한다) 공부를 통해 기자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다. 그 과정에서 언론고시생들은 전방위적인 시사·상식·역사 등을 공부하며 이를 바탕으로 논술·작문을 연습한다.

 

언론고시생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다는 인터넷 카페가 있다.1) 2003년 1월에 개설된 이곳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데, 이곳에서 사람들은 언론고시에서 주요하게 취급되는 상식과 핵심정보를 나누고, 각자 쓴 논술·작문을 올려 댓글을 통해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이곳에서 ‘장애’를 검색해봤다. 총 241건의 게시물이 검색된다(9월 30일 기준). 언론사 채용 공고를 알리는 게시물에서 ‘시스템 장애’를 표현할 때 주로 쓰였다. ‘장애여성’의 경우엔 총 31건의 게시물이 검색됐는데, ‘장애여성’이 붙여 쓰인 경우는 없었으며 하나의 글에서 ‘장애’와 ‘여성’이 함께 쓰인 글만이 검색되었다.

 

이들이 주요하게 공부하는 시사·상식이란 무엇일까. 예상되듯 주요 일간지 1면에 나오는 이슈들이다. 근래로 치자면 남북관계, 혹은 가짜뉴스 같은 이슈 말이다. 당연하게도 예비 언론인을 꿈꾸는 이들이 가장 먼저 습득해야 하는 것은 주류 미디어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이슈들이며, 주류 미디어의 문법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언론사에 입사한 뒤 수습기자 때 맞이하는 첫 관문은 사쓰마와리를 도는 것이다. “사쓰마와리는 각 경찰서를 중심으로 해당 지역을 돌며 취재하는 행위를 뜻하는 일본말로 사회부 사건팀(경찰팀) 기자를 지칭하는 용어다. 종로, 강남, 영등포, 관악, 혜화, 마포 라인 등을 담당하는 1진들은 각 경찰서를 거점 삼아 해당 지역을 바닥까지 샅샅이 훑으며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취재한다.”2)

 

수습기자들은 각 라인에 소속되어 오전 6~7시 첫 보고를 시작으로 다음 날인 새벽 1~2시까지 한두 시간 단위로 선배에게 자신이 취재한 사안을 보고한다. 그러나 수습기자에게 정보를 주는 취재원은 없으니, 이들은 이 경찰서에서 저 경찰서로, 경찰서에 없으면 파출소라도 찾아가 경찰들에게 애걸복걸하며 온몸으로 부딪혀 어떻게든 보고할만한 자잘한 사건 거리라도 찾기 위해 ‘노오력’ 한다. 시간이 없으니 이동은 주로 택시로 하며, 커피 마실 시간은커녕 식사할 시간도 없다. 그야말로 극한 직업이다. 여기엔 기자 세계의 상명하복식의 강한 규율문화가 작동한다.

 

수습기자가 끝나고 정식 기자사회에 들어가서는 출입처 중심으로 짜인 폐쇄적인 기자단을 접하게 된다. 주요 정부 기관 중심으로 기자단이 형성되어 있는데 각 언론사는 이에 속해야만 손쉽게 보도자료를 받아보고 정부 취재원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그만큼 관과 유착되어 폐쇄적으로 운영된다. 기자단 가입 조건을 기자단이 정하여 신규 언론사 진입을 가로막고, 엠바고를 어길 시 해당 언론사에 출입정지와 같은 징계를 내리는 것도 기자단이다. 기자단 그 자체가 권력인 것이다.

 

이러한 언론사에 도전하는 이들 대다수가 엘리트 출신(이른바 ‘서연고’)으로, 이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어렵사리 기자가 되어 사쓰마와리 돌고, 출입처 중심으로 기사를 쓴다. 이것이 현재 한국사회 주류 언론의 기자 시스템이다. 주류 언론 그 자체가 이미 사회의 주류성을 획득한 집단으로 권력화되어 있으며, 그들은 그 스스로 주류를 형성해낼 힘까지 쥐고 있다. 그러므로 서울 여의도 중심의 보도를 기본값으로 삼는 주류 언론에 장애와 같은 비주류 이슈는 당연히 포함되지 않으며, 전방위적인 ‘시사·상식’을 공부하는 언론고시생들의 공부 대상에조차 포함되지 않는다.

 

- 공부 없이 편견에 기댄 보도만 하는 언론, 피해자 위치에 있는 장애인만 다룰 줄 알아

 

그런 이들에게 어느 날 문득 ‘취재 대상’으로 마주할 중증장애인의 삶, 지적장애여성의 삶, 홈리스의 삶, 쪽방 노인의 삶이 어떻게 다가올까. 여느 이슈가 그렇듯, 장애 이슈도 공부가 필요하다. ‘장애가 있는 한 사람’의 삶을 입체적으로 담기 위해선 그 삶의 행간을 읽어내야 하는데 그에 대한 독해력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그 삶은 장애, 빈곤, 노동, 교육, 젠더, 건강, 제도, 문화 등이 뒤엉켜 있는 고차함수다. 공부하고 고민하고 사유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 기자들에게 장애와 빈곤, 그에 대한 복지제도를 이토록 깊게 공부하고 고민할 시간이, 계기가 있던가.

 

고민하지 않고 사유하지 않을 때, 언론은 사회 편견에 기댄 보도를 하게 된다. 편견(prejudice)은 이미 사회적으로 주어져 있는 통념으로, 무의식중에 습득한 언어들로 눈앞의 현상을 사유 없이 판단하여 오독해낸다.

 

지난 22일, 특수학교 폭력 사태에 대해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기자회견했을 당시의 언론 보도 모습.
 

언론은 부모들이 장애인 자녀를 양육하며 겪는 어려움에 대해 호소하는 뉴스는 ‘잘’ 다룬다. 이러한 맥락에서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부모가 무릎 꿇거나,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눈물 흘리며 삭발하는 현장은 큰 뉴스가 된다. 그 이유는 이러한 행위가 사회정서에 반(反)하지 않기 때문은 아닌가. 반하기는커녕,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약자’이기에 이 사회가 ‘품어주어야 하는’ 존재라는 기존 사회 통념과 일치하지 않는가. 비슷한 맥락에서 특수학교에서 발달장애인이 폭행당한 사건도 큰 뉴스가 된다. 이 사건에서 장애인과 그의 부모는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류 언론이 다루는 것은 딱 거기까지만이다. 사회적 통념에 접착된 면만을 충실히 다룰 뿐 ‘그 이상’은 다루지 않는다. 이를테면, 장애인 교육권 차원에서 특수학교 설립 요구가 적절한지에 대해, “엄마가 목숨 걸고 지켜줄게”라는 구호의 불편함에 대해, 특수학교 내 폭력 사건이 수십 년째 발생하고 있는데 대체 왜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은 던지지 않는 것이다.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이 자신의 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 주체로 나서 싸울 때의 언론의 태도 역시 비판받을 수 있다. 지난 4월 19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장애인 활동가 70여 명이 오체투지를 했을 당시 언론 보도를 보자. 뉴시스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라는 제목의 사진기사들을 내보냈다. 그날의 현장은 서로 다른 신체를 가진 수십 명의 사람이, 이제껏 차별받아왔던 신체 그 자체로 이 세계에 싸움을 걸었던 ‘스펙타클한 투쟁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그 현장을 설명해낼 ‘언어를 갖지 못한’ 기성 언론들은 참담하게도 기존에 갖고 있던 사회적 통념(장애인은 불편한 몸을 가지고 있다)에 사건을 욱여넣어 버렸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투쟁하는 주체로서의 장애인이란 존재를 지워버리고, 장애인들이 그토록 타파하려고 했던 편견을 언론이 강화하는데 복무한다.

 

장애인을 ‘불편한 신체를 가진 존재’로 담아내고, 장애를 ‘부정’하는 언어들이 왜 문제인가. 이것이 단지 ‘언어 표현’의 문제인가. 그렇다면 언론은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 Correctness)’ 표현을 조심히 골라서만 쓰면 되는가. 언어 표현의 부적절성은 그 자체로 문제이긴 하나, 언어 표현의 ‘피씨함만을’ 문제 삼을 때 그 너머 소수자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억압 구조를 봉쇄하기도 한다.

 

주류 언론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언론은 현장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한정적인 언어 내에서 현장을 편집하여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언론에서 장애인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주체가 아닌 주로 피해자의 위치에서만 조명되는 것은 언론이 그러한 언어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이러한 언론 보도는 이 사회에 다시 흘러들어와 장애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제도를 만드는 데 기여하며,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강화시킨다. 주류 언론은 결코 그 자체로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다.

 

- 각주

1) 언론인을 꿈꾸는 카페-아랑 (http://cafe.daum.net/forjournalists)
2) 언론사 병영문화, ‘사쓰마와리’ 가 저널리즘 망친다 (조수경·정철운 기자, 2015년 2월 5일, 미디어오늘)
3) 과거엔 수습기자 한 사람이 이 일정을 다 소화해냈으나, 지난 7월 주 52시간제가 도입된 후엔 두 타임으로 나뉘어 돌아간다고 한다. 비인간적이라고 오랜 시간 질타받아온 수습기자의 노동환경에 드디어 변화가 생긴 것이다. 지난 9월, 미디어오늘이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의 수습기자의 하루에 대해 취재했다. ① 중부라인 경찰서 도는 ‘날다람쥐’ 수습, 희형의 12시간 (박서연 기자, 2018년 9월 3일, 미디어오늘) ②주52시간 도입, 연합 수습기자 하루 얼마나 달라졌나 (박서연 기자, 2018년 9월 8일,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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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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