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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학, 정체성의 학문 넘어 '장애'를 만드는 권력에 대한 도전 되어야
한국장애학회 추계학술대회, '장애 안의 또 다른 분리, 모두의 해방을 향하여' 개최
"장애인/여성/퀴어 이론 역할은 '누가 비정상 범주를 만드는가' 파고드는 것"
등록일 [ 2018년11월09일 21시15분 ]

한국장애학회 추계학술대회 '장애 안의 또 다른 분리, 모두의 해방을 향하여'가 9일 오전 10시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하 1층 대강당에서 진행됐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여성장애인을 주제로 다양한 연구가들의 학문적 논의가 오갔다.

 

서울대 여성학 협동과정 박사과정 중인 황지성 장애여성연구활동가는 '남한의 우생학적 신체들의 궤적 읽기: 탈식민/젠더 정치와 장애정치의 교차를 위하여'를 주제로 '장애 정체성'에 대한 도전적 질문을 제시했다.

 

황 활동가는 "현재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장애학은 주로 서구에서 출발한 것으로, 의료적 모델에 반대해 자기 몸에 대한 자긍심에 이은 '장애정체성'을 확보하고 이에 기반해 사회에서 '장애인'을 배제하는 차별을 철폐해 통합을 추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며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장애정체성은 전쟁, 폭력적 국가 권력, 빈곤, 질병 등 사회적 상황들이 직접적으로 장애를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과 괴리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에 황 활동가는 "오늘 발제할 내용은 하나의 완결된 연구 결과를 보여주기보다 장애와 사회 그 자체의 관계를 다시 질문하는 길을 내는 연구를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목적에 따라 그는 장애-비장애 이분법적 정체성 범주가 갖는 한계와 위험성을 지적하며, 장애연구가 ‘정체성’이 아닌 ‘권력 작동의 역사’를 분석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지성 활동가가 한국장애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제하고 있는 모습.

 

만들어진 ‘비정상’ 인구, 그 이면에는 ‘정상’ 인구의 권력 작동이 있다

 

황 활동가는 몸의 '취약성'과 '불능'은 자연적 상태가 아닌 매우 정치적인 것이라며 장애인, 여성, 그리고 흑인이 공통으로 '이동권'과 '접근성'의 차별을 경험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장애인 인권운동의 가장 대표적인 운동이 '접근성'과 '이동권' 투쟁이었습니다. 여성 역시 오랫동안 젠더 기반 폭력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밤길을 이동할 권리를 요구해왔고, '흑인의 삶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을 통해 볼 수 있듯,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찰에 의해 범죄자 혹은 총기 소지자로 오인 사살되는 등 흑인의 안전한 이동이 제한되는 현실이 있었습니다."

 

그는 생명/삶의 반대편에서 죽음 혹은 취약성과 불능을 할당받는 인구는 당대 규범에 부합하지 못하는 '비정상적' 인구들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비정상적’ 인구들은 출생률, 유병률, 수명, 생산성, 가임률 등 통계적 측량에 기반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비정상적' 인구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정상적' 인구집단, 즉 서구/백인/중산층/비장애/이성애/남성에게 무제한의 자유와 권리를 담보하는 기제라고 황 활동가는 분석했다.

 

장애학, 정체성 규범화 아닌 권력 비판의 도구 되어야

 

이어 그는 “정체성 범주의 규범화는 애초에 이러한 권력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오늘날 이 뿌리에 대한 비판 없이 고정된 피해/가해의 범주로, 초월적 구조의 작동으로 광범위하게 차용되고 있다”라며 “이 때문에 (학문적 논의를 통해) '젠더'는 여성과 남성, '장애'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섹슈얼리티'는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라는 이분법적 정체성을 둘러싼 문제로 납작해질 뿐, 이러한 정체성들을 가로질러 복잡하게 작동하는 근본적 권력은 도전받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페미니즘 논의에서 '여성'의 범주를 특정한 선으로 그었을 때, 이 논의는 흑인 여성과 백인 여성, 레즈비언, 트랜스여성과 이성애자, 비트랜스여성의 다양한 경험을 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어떤 '소수자' 여성들을 '여성'의 범주에서 제외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황 활동가는 "이 때문에 페미니즘 및 퀴어 연구 학자들은 페미니즘, 퀴어 이론이 '정체성(여성=젠더, 레즈비언과 게이=섹슈얼리티)'에 관한 학문이라기보다 권력 작동의 역사를 분석하기 위한 하나의 인식론, 분석 틀로 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라며 "이는 여성 혹은 퀴어라는 범주가 '누구인가'에 강박적으로 몰두하기보다 이 범주가 '무엇을 하는지'가 날카롭게 분석되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황 활동가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장애학에도 적용될 수 있다며, "전 세계 장애인 인구의 5분의 4가 남반구에 거주하는 상황이지만, 이들 장애인 인구를 양산하는 권력이 바로 ‘장애인 인권을 실현한 서구 국가들의 폭력’이라는 사실은 효과적으로 은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5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진 출처 pixabay

 

그러면서 그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무력점령하는 양상을 분석한 퀴어 이론가 자스비르 푸아(Jasbir Puar)의 연구를 소개했다. 그는 "푸아는 이스라엘이 전쟁과 살상에 대한 비난을 면하고 점령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죽이기' 행위보다 '상해하기' 전략을 택하고 있음을 주목한다"며 "이로써 피점령 인구를 곧바로 죽음으로 몰아넣지는 않지만, '불구화', '장애화'된 인구는 그 어떤 사회적 기반 시설이 없는 피점령 상황에서 점차 괴멸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처럼 특정한 ‘장애인’ 인구에게 자유주의적 권리와 역량증진을 할당하는 이면에 다른 ‘비장애인 인구’에게는 죽음이나 상해, 취약함, 불능을 할당함으로써 권력이 유지된다는 비판은 장애/비장애 이분법적 범주화에 대한 근본적 문제를 제기함과 동시에 ‘장애’ 연구의 방법론적 함의를 제시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황 활동가는 “따라서 장애 연구는 고정된 정체성, 장애/비장애 이분법적 구조에 대한 집중에서 탈피해, 다양한 행위자들과 지정학적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구체적인 역사, 실천, 관계들에 대한 탐구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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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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