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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가난한 삶, 애도 위한 ‘홈리스 추모주간’ 선포
밤이 가장 긴 동짓날 맞아, 17~21일까지 홈리스 추모 기간 진행
홈리스추모제기획단, ‘주거·여성·추모’ 주제로 행사 열어
등록일 [ 2018년12월17일 22시30분 ]

‘2018 홈리스 추모제 공동기획단’은 17일 오후 2시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 추모주간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역 광장 앞 계단에 홈리스 추모공간 ‘홈리스 기억의 계단’이 펼쳐져 있고, 그 옆에 비둘기 한 마리가 앉아 있다.

거리와 쪽방, 고시원 등지에서 살다 사망한 홈리스를 추모하고, 홈리스 인권과 복지지원 개선을 요구하는 ‘홈리스 추모주간’이 시작됐다.

 

‘2018 홈리스 추모제 공동기획단(아래 추모제 기획단)은 17일 오후 2시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 추모주간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001년부터 매해 동짓날 ‘홈리스 추모제’를 진행해온 추모제 기획단은 올해엔 17일부터 21일까지를 ‘추모주간’으로 정하고 주거팀, 여성팀, 추모팀으로 나눠 행사를 진행한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추모제 기획단은 홈리스 주거권 보장을 위한 과제를 제시하고, 여성홈리스의 현실과 지원 체계 개선을 요구하며, 홈리스의 존엄한 죽음을 위한 과제를 알렸다.

 

‘2018 홈리스 추모제 공동기획단’은 17일 오후 2시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 추모주간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해 ‘홈리스 주거권’ 보장해야

 

홍정훈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는 “홈리스라는 말이 거리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부는 열악한 주거환경을 시급히 개선해 홈리스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간사는 “화려한 서울역 너머에는 가난한 사람이 밀집한 수많은 쪽방이 있다”라며 “비가 오면 온 건물이 흥건해지고,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땐 삶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다. 바퀴벌레와 쥐를 마주치는 일도 놀랍지 않다. 빈곤이 몸속까지 스미는 주거환경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하루하루 좀먹는 것과 다름없다”고 전했다.

 

홍 간사는 “법으로 정한 최저 주거기준은 가난한 사람에게 허울 좋은 제도일 뿐이다”면서 “정부는 집이 아닌 곳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을 위해 공공임대주택을 늘리고 있다고 말하지만 지난 10년간 공공임대주택은 가난한 사람이 진입할 수 없는 거대한 문턱이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는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처럼 모든 삶이 불타고 나서야 최소한의 시늉만을 보인다”면서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얼굴도, 목소리도 없이 지워지고 죽어가는 가난한 사람들이 더는 생겨나지 않도록 열악한 주거환경을 반드시 개선하고, 공공임대주택을 대폭 늘려서 홈리스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정훈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김도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 (왼쪽부터)

 

- 투명인간 취급하는 여성홈리스, 욕구에 맞게 필요한 지원 해야

 

김도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여성’홈리스가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며 남성과 구별된 별도의 지원 서비스를 요구했다.

김 변호사는 “마치 우리 사회는 여성 홈리스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한국은 여성홈리스를 25% 정도로 집계하는데 이마저도 홈리스시설에 거주하는 여성이 대부분이다. 여성홈리스는 찜질방이나 햄버거 가게에 머물기도 하는데 이는 배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변호사는 여성은 홈리스 상태에 처하게 된 원인뿐만 아니라 홈리스 상태에서 겪는 어려움과 필요한 지원서비스가 남성과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홈리스는 가정폭력이나 가족해체 때문에 거리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일상에서 또 다른 폭력에 노출될 수 있어 머리를 짧게 깎는 등 남장을 하고 남성을 피해 다니기 급급하다”라고 전했다. 이어 “아이가 있는 여성은 안전을 위해 더 안전한 공간을 찾지만, 여성에겐 고시원이나 시설도 결코 안전한 장소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여성홈리스에겐 무엇보다 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기간 거주하는 재활시설이나 요양시설이 95%가 넘는데, 이러한 생활시설을 폐쇄하고 임대주택과 지원주택을 공급해야 한다”면서 “임대주택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머물게 되는 쪽방, 고시원 등을 여성 친화적으로 마련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추모제 기획단에 따르면, 여성홈리스 지원기관이 존재하는 곳은 서울 등 6개 지자체에 불과하며 여성홈리스를 위한 일시보호시설도 오직 서울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이조차도 홈리스 밀집 지역과 멀리 떨어져 있어 접근성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

 

- 무연고사로 ‘처리’되는 홈리스… 존엄한 죽음 위한 ‘사후 자기결정권’ 고민해야

 

이날 기자회견에선 홈리스의 존엄한 삶뿐만이 아니라 ‘존엄한 죽음’을 위한 제도 개선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대다수의 홈리스는 가족과 오랜 단절로 사망 시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되고 있다. 현재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혈연 가족이 아닌 사람은 연고자로 인정되지 않아 살아생전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고인에 대한 장례를 치를 수 없다. 설령 고인이 지인에게 장례를 부탁하며 유언장을 남겼다고 하더라도 인정되지 않는다.

 

“올해 초 결혼까지 약속했다가 파혼한 한 여성이 안타깝게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연인에게 ‘나를 화장해서 마지막에 잘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 유언장을 받아든 연인은 사랑했던 사람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변호사도 만나고 경찰에 부탁도 해보는 등의 여러 노력을 했지만, 결국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여성을 무연고 사망자로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혈연 가족이 아니면 장례를 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박진옥 나눔과나눔 사무국장)

 

현행법에 따르면, 법적 혈연 가족이 없거나/알 수 없거나/시신 인수를 거부한 경우 무연고 사망자가 된다. 무연고 사망자가 되면 장례 없이 안치실에서 화장장으로 바로 옮겨지기 때문에 고인을 애도할 방법이 없다. 쪽방이나 고시원 등에 사는 빈곤층, 홈리스의 죽음은 대부분 이렇게 행정적으로 ‘처리’될 뿐이다.

 

박진옥 나눔과나눔 사무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진옥 나눔과나눔 사무국장은 혈연 가족만을 제한적으로 연고자로 인정할 것이 아니라, 고인이 자신의 연고자를 지정할 경우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사후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와 관련해 최근 헌법재판소는 의미 있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 2015년 헌법재판소는 인수자가 없는 시체를 생전의 본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해부용 시체로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한 ‘시체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 제12조 제1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당시 결정문에서 “만일 자신의 사후에 시체가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처리될 수 있다고 한다면 기본권 주체인 살아있는 자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후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나아가 박 사무국장은 혈연 가족만이 아닌 사람들도 원한다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 친구도 ‘연고자가 없는 시신’의 장례를 할 수 있다”면서 “직계 가족이 아니어도 나와 함께 삶을 공유하고, 절망 속에서 도움을 준 사람이 나의 장례를 하고 싶다면 국가가 거부할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2018 홈리스 추모제를 맞이하여 사후 자기결정권에 대해 이 사회가 함께 고민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한편, 추모제 기획단은 추모 기간을 맞아 17일엔 서울극장에서 ‘여성홈리스 영화특별전’을 상영하고, 19일엔 동자동 새꿈어린이공원 앞에서 ‘비주택 최저주거기준 설문결과 발표 및 홈리스 주거대책 개선 요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연다. 추모기간인 17~21일(오후 2시~5시)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 추모공간 ‘홈리스 기억의 계단’을 운영한다. 동지 전야인 21일 7시엔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 추모문화제와 추모행진을 진행할 예정이다. 지역행사로 21일에는 대구에서, 22일엔 대전에서도 홈리스 추모제가 열린다.

 

서울역 광장 앞 계단에 홈리스 추모공간 ‘홈리스 기억의 계단’이 펼쳐져 있고 그 뒤로 홈리스 한 명이 계단에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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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원 기자 wony@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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