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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가 운영한 ‘부랑아 시설’ 선감학원, 이것은 국가폭력이다
인권위, ‘선감학원 특별법 제정’ 촉구하는 토론회 개최
특별법 제정 전에 정부와 지자체는 ‘피해자 지원’ 적극 나서야
등록일 [ 2018년12월19일 00시21분 ]

국가인권위원회는 17일 오후 2시 ‘선감학원 사건 특별법 제정 및 피해자 지원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인권위 인권교육센터별관에서 열었다.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한일영 씨가 발언하고 있다.


“선감학원 피해자 중엔 지독한 가난으로 가정이 무너져 내리기도 합니다. 저만하더라도 지난 5일…, 이혼……했습니다.”

 

미리 준비해 온 글을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가던 한일영 씨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그의 목소리는 이미 울음에 잠겨 있었으나 그는 그것을 침묵으로 꾹 누르며 애써 삼켰다. 한일영 씨는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다. 그는 열세 살에 파출소의 순경에게 붙잡혀 아동보호소를 거쳐 선감학원에 수용됐다. 반장 험담을 했다는 이유로 곡괭이자루로 무진장 두들겨 맞고, 농사일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허구한 날 흠씬 두들겨 맞으며 오직 ‘집에 가고 싶다’는 꿈만을 꾸며 그 어린 날의 시간을 버텼다. 그 아이는 올해 예순이 되었다.

 

- 인권위, 선감학원 특별법 제정 촉구하는 토론회 개최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는 17일 오후 2시 ‘선감학원 사건 특별법 제정 및 피해자 지원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인권위 인권교육센터별관에서 열었다. 지난 2017년 8월,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50여 명은 인권위에 선감학원에서의 강제수용, 폭행과 구타, 강제노동 등에 관한 조사를 원한다며 진정을 접수했다. 이후 인권위는 이를 국가폭력에 의한 과거사 사건으로 판단하고 이듬해인 올해 6월 ‘선감학원 아동인권침해사건 보고서’를 발간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7일 오후 2시 ‘선감학원 사건 특별법 제정 및 피해자 지원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인권위 인권교육센터별관에서 열었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 선감도에 만들어진 부랑아 수용소다. 해방 이후엔 경기도가 운영권을 이어받아 폐쇄되는 1982년까지 직접 운영했다. 당시 경찰과 공무원들은 서울, 경기, 인천지역 아동들을 거리에서 잡아들여 선감학원에 인계했다. 사실상 강제 납치인 셈이다. 선감학원은 이들을 ‘부랑아’라고 했으나 사실은 거주지가 명확하고 부모, 가족이 있는 경우에도 가족에게 돌려보내지 않은 채 무조건 수용했다. 수용 대상은 18세 이하 남성이었는데 대부분은 12세 이하 남자아이들이었다.

 

이들은 기본적인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선감학원 안에서 강제노동에 동원됐으며 갖은 폭행과 기합에 시달렸다. 강제노동이 특히 극심했는데 선감학원은 어린 원생들에게 퇴비 만들기, 누에치기, 야산 개간, 농사 등의 일을 시켰다. 먹을 것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고, 60년대 초엔 칫솔이 없어 모래로 이를 닦기도 했다. 겨울엔 양말 없이 맨발에 검정고무신을 신어서 발이 동상에 걸려 썩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한 채 지내야 했다. 선감학원은 힘센 원생이 원생들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구조로 운영됐다. 이로 인해 일부 관리자급의 원생들은 그 또한 잡혀 들어온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가 되기도 했다. 사면이 바다인 섬이라 탈출도 쉽지 않았다. 탈출을 시도하다가 갯벌에 빠지거나 바다에 휩쓸려 사망하는 원생들이 적지 않았는데, 시신이 발견되면 같은 원생들이 인근 야산에 암매장했다.

 

성인이 되어 선감학원에서 나갈 때도 보상은 일체 한 푼 없었다. 이들은 빈손으로 인근 농가에 무보수 머슴으로 들어가거나 상점의 무보수 심부름꾼으로 가게 됐고, 어떠한 배움과 기술도 없이 사회에 나가게 된 이들은 이후에도 도시 하층민으로 생활을 전전했다. 이들은 어린 시절 납치와 극심한 폭행에 대한 트라우마와 후유증으로 제대로 된 생활을 꾸려나가기 힘들어 현재에도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지난 14일 인권위는 마침내 선감학원 진상규명과 관련한 두 가지 의견을 공식 표명했다. 첫째는 국회의장에게 선감학원 사건 특별법 제정이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아래 진화위법)'에 선감학원 아동인권침해사건을 명시하여 조속히 개정하라는 것이다. 이어 행정안전부 장관과 경기도지사에겐 피해생존자 대부분이 고령이며 질병과 경제적 빈곤 등에 시달리고 있으므로, 관련 법안을 마련하기 전이라도 이들을 지원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태원 경기도지사(재임기간 1964 ~ 1968)가 선감학원을 방문해 원생들이 식사하는 식당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제공 : 정진각 안산지역사연구소 소장)
 

- 특별법 제정 전에 정부와 지자체는 ‘피해자 지원’ 적극 나서야

 

이날 토론회에서 윤채완 인권위 아동청소년인권과장은 “선감학원 운영에 대한 경기도조례와 원생대장의 관리, 선감학원 특별감사 보고서, 선감학원 폐쇄 결정 등을 볼 때 국가가 직·간접적으로 운영에 관여했음은 충분히 확인된다”면서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 보장 의무를 방기한 채 오히려 스스로 아동에 대한 인권침해를 가한 행위자가 되었다는 점에서 인권위는 선감학원 사건에 관한 국가 책임이 넉넉히 추정된다고 보았다”고 밝혔다.

 

선감학원 사건 해결을 위해선 무엇보다 특별법 제정이 최선이나, 피해자 대부분이 고령인 것을 감안하면 특별법 제정을 마냥 기다릴 순 없다고 했다. ‘선감학원 아동인권침해사건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응한 28명의 응답자 중 전체 약 21.4%가 기초생활수급자였으며, 약 40%는 월 100만 원 이하의 소득으로 생활하고 있었고, 응답자 중 57%는 ‘장애가 있다’고 답했다. 따라서 윤 과장은 “당장이라도 중앙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가능한 다양한 방법을 찾아내서 피해자들을 지원해야 한다”면서 거주시설이나 쉼터 제공, 생계 및 의료보장 지원, 트라우마 치유 지원, 위령제 실시 등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영배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장은 “어린 시절 납치로 인한 심한 트라우마로 지금도 불안에 떨고 있으며 오랜 감금생활로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독거노인이 된 원생이 상당수”라면서 “한 원생은 강제수용 당시 다리 피부 표면에 굴 껍데기가 박혔는데 성장 과정에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여 몇 번의 수술을 받던 중 결국 다리를 절단하고 현재는 요양원에서 살고 있다”면서 피해자 지원의 시급성을 알렸다.

 

김 회장은 생존자에 대한 대책으로 △국가 차원의 조사와 사과에 의한 명예 회복 △노후 대책 △트라우마 치료 △폭력에 의한 상해 치료 △가족 상봉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원미정 경기도의회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 경기도, 조례 개정해 피해자 지원 나섰지만 한계에 부딪혀

 

현재 경기도에선 선감학원 진상조사와 피해자 지원 대책을 위한 여러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16년 2월, 경기도는 ‘선감학원 아동·청소년 인권유린사건 피해조사 및 위령사업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올해 10월엔 위령사업 뿐만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피해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조례를 일부 개정했다. 피해자 지원 내용으로는 생활 안정, 심리치료 및 의료 지원, 보금자리 쉼터 조성 등이 포함됐으며 현재 이를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원미정 경기도의회 의원은 최근 오거돈 부산시장이 부산 형제복지원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피해생존자 지원 계획을 수립한 것을 언급하면서 “형제복지원은 민간 위탁 사업임에도 관리·감독의 책무가 있는 부산시가 공식 사과했다. 반면 선감학원은 경기도가 직접 운영한 시설이기에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경기도의 당연한 책무”라면서 “앞으로 특별법 제정 노력과 함께 경기도 차원의 지원 대책 마련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원 의원은 국가 차원의 특별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원 의원은 “경기도 차원에서 여러 노력을 하고는 있으나 당사자로서의 비적극성이 있다”면서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지원하게 되면 본인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이라 현재 집행부 입장에선 과거 일어난 사건을 조사하고 규명하기가 쉽지 않다. 국회가 특별법을 제정하고 그 과정에서 경기도의 역할을 찾는 것이 피해자 지원 대책을 마련하는데 수월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 동정받는 피해자 아닌 ‘피해생존자’로서 당당히 증언해야

 

특별법 제정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당사자인 피해생존자들이 나서서 당시 상황을 적극 증언하며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야 한다. 이와 관련해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 대표는 ‘피해생존자’로서의 의미를 짚으며 선감학원 피해자들이 어떻게 피해자가 아닌 ‘피해생존자’로서 국가에 진심 어린 사과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낼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사건에서 살아남았다고 해서 ‘생존자’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감학원이나 형제복지원이나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짐승의 공간이었지 않습니까. 거기서 풀려났다고 해서 갑자기 사람으로 돌아갈까요? 짐승으로 살았던 사람이? 짐승이 우리에서 벗어나면 들짐승이 되죠. 그 들짐승이 온전히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겠느냐,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주변에서 이 사람이 왜 짐승이 됐는지 알아주고,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끔 지원과 연대와 함께하는 의지가 있어야만 사람이 될 수 있는데 사회는 이 사람은 피해자야, 하면서 방치해버리죠. 그래서 전 피해자분들이 생존자라는 의미와 의지를 갖고 버텨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임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버티고 발버둥 치고 자기 목소리를 낼 때, 그것이 민주사회의 보수적 부분에 균열을 내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피해당사자 운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한 대표는 피해 사실을 알리는 과정에서 피해자로서 알리느냐, 생존자로서 알리느냐가 매우 큰 차이를 가진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피해자는 남이 나를 위로해주고 ‘동정받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이는 자기 스스로의 자존감을 깎는다”면서 “그러나 ‘생존자로서’ 증언하면 스스로가 당당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아가 그는 “진상규명과 함께 내가 국가를 용서할 마음이 생길 때까지 가해자인 국가는 반성을 통해 계속 사과해야 한다”면서 물질적 보상이 아닌 국가의 진심 어린 공식 사과만이 용서로 나아가는 길임을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7일 오후 2시 ‘선감학원 사건 특별법 제정 및 피해자 지원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인권위 인권교육센터별관에서 열었다. 이날 토론회엔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이 대거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 국가 책임뿐만 아니라 ‘사회 책임’ 묻고 ‘우리의 모습’도 기억해야

 

이날 토론회에선 국가 책임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 즉 동시대를 살았던 ‘우리에 대한 책임’ 또한 물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김민환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는 특별법 제정 혹은 진화위법 개정이 분명 중요하지만 이는 진상규명에 대한 시작에 불과할뿐더러, 이러한 시설이 존재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고 눈감은 ‘우리에 대한 책임’은 물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가가 잘못했어’라고 하면 피해자 아닌 사람들은 굉장히 편하게 개입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재발 방지와 함께 이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의미화할 것인지로 토론의 수위가 올라간다”면서 “‘왜 가만히 있었어?’, ‘왜 몰랐어?’라는 질문을 통해 국가 책임뿐만 아니라 사회의 책임, 즉 우리의 책임도 함께 물어야 선감학원 바깥에 있었던 사람들도 역사와 연루되어 있음을 깨닫고 자신의 책임에 대해 성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피해자를 기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모른 척했던 우리의 모습, 더불어 피해자들이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사람들의 모습, 이러한 ‘우리의 모습들’까지 기억되어야 하며 이러한 부분도 진상규명의 영역에 들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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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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