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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고에서 살다가 일곱 사람이 사망했다
27일 종로 국일고시원 참사현장에서 49재 추모제 올려
참사 근본 원인은 ‘화재’ 아닌, ‘열악한 주거환경’
등록일 [ 2018년12월28일 16시54분 ]

27일 2018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과 주거권네트워크 주최로 종로 국일고시원 참사 현장인 종로구 관수동 청계천로 109에서 희생자를 위한 사십구재를 지내고 추모문화제를 열었다. 류금신 노동가수가 국일고시원을 올려다보며 노래하고 있는 모습.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가 일어난 지 49일이 지난 27일, 여전히 까맣게 그을린 국일고시원 건물 앞에서 희생자를 애도하고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추모제가 열렸다.

 

2018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아래 공동기획단)과 주거권네트워크는 참사 현장인 종로구 관수동 청계천로 109에서 오후 6시 30분부터 국일고시원 희생자 49재를 진행하고 오후 7부터 추모문화제를 열었다. 전국에 한파가 몰아친 추운 날씨에도 이날 추모제에는 제천 화재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 피해생존자들이 함께했다. 

 

지난 11월 9일, 종로 국일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로 7명이 숨졌다. 당시 이 고시원에 있던 이들은 대부분 40~60대 일용직 노동자로, 고시원을 집 삼아 지내던 빈곤계층이었다. 

 

국일고시원에서 희생한 망자의 영혼을 위해 사십구재를 올리고 있다.
 

국일고시원 희생자 49재에 참여한 해찬 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부처님께서는 더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지옥고’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지옥고가 멀리 있는 게 아니더라”라면서 “언제부터인가 이 땅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하, ‘옥’탑방, ‘고’시촌이라는 지옥고에서 살다가 일곱 분이 사망했다”고 입을 뗐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항상 ‘사람이 먼저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말한다”라면서 “이 땅의 많은 이들이 반지하, 옥탑방, 고시촌 등에서 벗어나는 날이 정말 사람이 먼저이고 노동이 존중받는 날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저녁 7시에는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이날 사회를 맡은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2018년 대한민국 현주소, 가난한 이들의 주거권이 사장된 이 자리에서 '죽어간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다시는 이 죽음을 방치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자리를 갖고자 이번 추모문화제를 연다”고 밝혔다.

 

이 활동가는 “국일 고시원 참사를 만든 근본 원인은 ‘화재’가 아니라, 열악한 곳에 사람이 살도록 용인한 우리 주거 현실이다. 화재로 인한 사망처럼 눈에 띄지 않을 뿐 바람도 빛도 스미지 않는 네모난 독방에서 가난한 이들은 여전히 병들고 죽어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안전과 주거 문제는 공존할 수밖에 없다”라며 “바깥으로 난 창 하나 없는 방에서 탁한 공기만 마시며 살던 이들이 화재 시 유독 가스를 피할 수도, 탈출할 수도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국일고시원 화재 현장 앞에 '하루 분향소'가 설치된 모습.
 

국일고시원 피해생존자 양문식 씨는 사고 이후 정부 기관의 무관심한 대처로 사망자에 대한 추모는커녕 피해자들끼리도 만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양 씨는 “이런 화재사고가 나면 구청 같은 곳에서 합동분향소를 차려주는데 우린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없이 살아서 그런가”라며 애통해했다.  

 

양 씨는 “합동분향소만 있었어도 구청, 경찰서, 소방서 등을 돌아다니며 힘들 게 유가족을 찾아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유가족 연락처를 물어보면 매번 개인정보법이라며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면서 “피해자와 유가족끼리 만나서 서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거냐. 정부는 왜 이렇게 우리를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 거냐”며 답답해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면서 “이런 일이 다신 발생하지 않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우리 피해생존자들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삼헌 무용가가 국일고시원에서 돌아간 넋을 위로하기 위해 위용무를 하고 있다.
 

이날 송경동 시인은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추모시를 낭독했다.  

 

“문 하나를 열고 들어가면 2층에 스물세 개의 방이 있었지. 3층엔 스물아홉 개의 방이 있었지. 쪽방이라기도 하고 고시원이라기도 하고 저렴주택이라기도 했지. 창문이 없는 그곳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다다른 마지막 막다른 방이었지.

 

우린 사는 내내 투명인간이었지. 사는 내내 갈 곳이 없었지. 문패를 걸 집이 없었지. 취약계층이 우리 이름이었고 빈곤층이 우리 이름이었고 비정규직이 우리 이름이었고 사각지대가 우리 이름이었지. 죽어라 적응하고 싶었지만 사회부적응자가 끝내 우리 이름이었지. 우리들의 이름으로 수많은 복지가 이야기되고 대안과 대책이 이야기되었지만 정작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소외와 멸시와 무관심뿐이었지. 우리는 가끔 복지부 통계로만 뭉뚱그려져 호명되었지. 가족도 빼앗았지. 친구라고는 고독밖에 없었지. 우리도 사람이 아니었기에 빈소도 없었지. 그렇게 우리는 이 세계에서 어느 날 갑자기 검게 그을린 채 추방당했지”

 

김선미 종로주거복지센터장은 고시원을 전전하다 국일고시원에 왔으나 화재참사로 더는 갈 곳이 없어진 홈리스 이야기를 전했다. 김선미 센터장은 “그분은 중구에 있는 고시원에 살다가 임대인이 재개발한다며 퇴거를 요청해 퇴거당했다. 병원에 입원 중이었지만, 개복 수술을 한 배를 움켜잡고 가까운 국일고시원으로 옮겨왔다. 하지만 2개월 만에 불이나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고시원으로 옮기면서 ‘내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막막해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김 센터장은 “여기 계신 분들이 ‘주택’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정부는 비주택에 관해 제대로 된 기준을 마련하라”며 “살아계신 분들 힘내서 여기보다 더 좋은 곳 가서 꼭 함께 지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국일고시원 화재 희생자 추모문화제에 모인 참가자들이 영정 앞에서 헌화하는 모습.
 

이날 공동기획단은 피해생존자의 회복 지원이 여전히 까마득하다고 지적했다. 공동기획단은 “참사 발생 뒤 국토부, 행안부, 복지부 등 관련 부처와 종로구는 저마다 ‘화재로 거처를 잃은 피해생존자들에 대한 단계별 주거를 제공하고,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등 피해자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32명 피해생존자 가운데 임대주택에 입주한 이들은 열 명 남짓에 불과하다”면서 “국토부 발표와 달리 종로구는 최장 20년 입주 가능한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을 안내하지 않은 채, 6개월을 기한으로 하는 ‘이재민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만을 물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고시원과 달리 임대주택에 들어가기 위해선 냉장고, 세탁기 등 세간살이를 모두 구매해야 하는데 고작 6개월을 살기 위해 이를 구매할 사람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국회는 지난 6일과 18일, 안전시설 설치를 소급적용하도록 하는 ‘다중이용업소법 개정안’과 준주택의 건축기준을 법률에 명시하도록 한 ‘건축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이후를 기약하긴 힘든 상황이다. 

 

이러한 부분을 지적하며 공동기획단은 “국일고시원 화재 희생자의 49재를 맞는 오늘까지 우리 사회는 집이 없어, 집답지 못한 곳에 살아 생기는 죽음을 막을 장치를 아무것도 갖추지 못했다. 삶의 터전이어야 할 집이 죽음의 이유가 되어야 하는 비극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라며 “희생자들의 넋이 더는 좁고 답답한 고시원에 매이지 않도록, 오늘을 기점으로 비주택 거주자의 주거권을 되찾는 싸움에 나설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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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원 기자 wony@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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