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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이라는 빛’, 62일 만에 장례치렀다
고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영결식에 3천 명 참여
등록일 [ 2019년02월09일 20시50분 ]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사망한 스물네 살 청년 고 김용균 노동자의 장례가 사망 62일 만에 치러졌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발전소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촉발하며 우리 사회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화두로 만들었다.

 



9일 12시 광화문 광장에서 고 김용균 노동자의 영결식이 열렸다.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진 이번 장례에서 사회원로, 세월호, 삼성백혈병 등 산재 및 재난 피해 유가족을 비롯해 3천여 명이 고인의 가는 길을 마중했다.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는 9일 새벽 고 김용균 노동자의 발인을 마치고 태안과 서울에서 각각 노제를 진행한 후 1시간여를 행진해 광화문광장에 도착했다.

 



유가족 김미숙 씨는 “아직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았다.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고 살인을 저지른 책임자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 길은 우리 아들과 같은 수많은 비정규직을 사회적 타살로부터 살리는 길이다”라며 “지금까지 마음을 함께 하고, 아들 용균이를 위해 추모의 촛불을 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가슴 깊이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고 김용균 노동자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2주간 단식농성에 나선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대표단 6인의 조사도 이어졌다.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고 김용균 동지의 죽음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다. 일터와 노동자 안전에 대한 사회 인식은 놀라울 만큼 향상됐다. 밝은 빛을 만들던 고인은 죽어서 더 밝은 빛이 되어 한국 사회를 변화시켰다. 우리는 고인에게 큰 빚을 졌다. 이제 살아남은 우리가 동지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자”라고 말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은 고인의 죽음을 부른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제자리로 돌리는 투쟁에 나서겠다. 누군가의 희생과 목숨을 담보로 작동하는 사회를 바꾸는 투쟁에 나서겠다”라고 밝혔다.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에 나선 김수억 기아차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죽음과 위험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떠넘기지 않고, 불법파견 사용자가 법대로 처벌받는 사회, 노조하기 쉽고, 비정규직을 맘대로 쓰다 버리지 않는 나라, 일하다 죽지 않고, 일한 만큼 대접받고, 행복을 꿈꿀 수 있는 세상.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위해 매일매일 김용균을 가슴에 안고 싸우겠다”라고 밝혔다.

 

비인간적인 방송 제작 환경을 고발하고 세상을 떠난 고 이한빛 PD의 어머니 김혜영 씨도 무대에 올랐다. 김 씨는 “지금까지 많은 유가족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울음을 삼키며 앞장서 싸워왔다. 용균이의 가족들이 이후 겪어내야 할 고통을 위로하고 함께할 때 이 사회는 존엄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며 “사랑하는 아들 용균이와 한빛아, 죽음의 노동 현장에서 먼저 간 아들딸들아, 더 이상 죽음 없고 청년들이 꿈꿀 수 있는 세상 만들 것을 엄마가 약속할게”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날 영결식에서 송경동 시인은 ‘진상을 규명해야지요’ 시를 낭독했고, 서정숙 씨와 이삼헌 씨는 진혼무를 췄다. 장문희 명창은 김용균 노동자가 듣고 자랐다는 ‘잘자라 우리 아가’를 비롯해 조가를 선보였다.

 

영결식을 마친 장례위원회는 고양시 덕양구 벽제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으로 이동해 고 김용균 노동자의 화장을 진행한다. 이후 마석 모란공원으로 이동해 고 김용균 노동자는 전태일 열사 뒷자리에 묻힐 예정이다.

 

스물네 살 고 김용균 노동자는 1994년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외동아들로 출생해 지난해 9월 한국발전기술에 입사했다.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가 된 그는 4조 2교대로 밤낮으로 일하면서, 최저임금보다 8만 원이 더 많은 임금을 기본급으로 받았다. 서부발전 태안화력본부 트랜스파워에 배치돼 일하다 입사 3개월 만인 12월 11일, 컨베이어벨트에 협착돼 사망했다.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태안화력지회의 조합원이었던 그는 사망 직전인 12월 11일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었는데, 이는 그의 유언이 돼 버렸다.

 

한편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는 136명의 고문, 94명의 장례위원장, 10명의 집행위원장 등 사회 각계각층이 모여 구성됐다. 장례위원으로는 반올림 황상기 아버님, 원진레이온 박민호 위원장, 이한빛 PD 유가족 등 노동재해·사회적 참사의 피해자 및 유가족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총 5,151명이 함께 했다. (기사 제휴=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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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솔 워커스 기자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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