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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 절반이 무직” 저소득, 사회적 배제, 의료제도 미비로 삼중고 겪어
인권위, 정신장애인 지역사회 거주치료 실태조사 결과 발표
대다수 응답자들 “정신병원 입원, 치료에 도움 안 된다” 지적
등록일 [ 2019년02월28일 13시01분 ]

정신장애인들이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병원 입원을 중심으로 하는 제도 때문에 지역사회에서도 철저히 소외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우리나라 정신건강 예산 대부분은 입원 치료에 쓰이고 있지만 ‘정신병원 입원이 치료에 도움 된다’고 응답한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고 임세원 교수 사망 사건으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등 정신장애인의 강제입원과 치료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거주치료에 대한 실태조사가 발표됐다.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는 27일 인권교육센터 별관에서 정신장애인 지역사회 거주치료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이에 대한 정책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장은 최근 정신장애인을 둘러싼 논란과 관심을 증명하듯 발표자, 토론자,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의 참여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행사 시작 전에는 고 임세원 교수에 대한 추모 묵념이 이뤄졌다.

 

- 정신장애인 불안한 고용과 저소득, 사회적 배제, 의료제도 미비로 삼중고 겪어

 

실태조사의 배경 및 연구방법, 결과와 해외 사례 소개는 권오용 예인법률사무소 변호사, 김민 한국정신장애연대 정책자문위원, 오현성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맡았다.

 

실태조사는 지역사회에 거주하고 있는 등록 정신장애인 당사자 375명과 정신장애인 가족 161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7.6%가 무직 상태이며, 직업이 있더라도 보호작업(16%), 계약직(10.1%), 임시취업(3.5%) 등 불안한 고용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정규직은 7.7%에 그쳤다. 평균 가계소득은 50만 원 미만이 30.5%로 가장 많았고, 50~100만 원은 28.2%로, 절반이 100만 원에도 못 미치는 소득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응답자의 50%가 기초생활수급권자고, 차상위계층은 9%로 나타났다.

 

정신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도 배제되고 있었다. 설문에 응한 85.5%가 정신병원 입원 경험이 있었는데, 평균 입원 횟수는 4.8회나 이중 자의입원 횟수는 1.8회에 그쳤다. 대부분이 보호의무자에 의한 강제입원이었다. 수치상으로도 본인이 입원(19.8%)이나 퇴원(20.9%) 결정을 한 것보다 부모, 형제, 배우자 등의 가족에 의한 입원(69.7%), 퇴원(56.4%)이 현저하게 높았다.

 

입원 기간도 길다. 응답자의 52.2%가 입원 총 기간이 1년을 넘었고, 16.6%는 5년을 넘었다고 답했다. 입원이 장기화된 이유에 대해서 ‘퇴원 후 살 곳이 없기 때문에(24.1%)’, ‘혼자서 일상생활 유지가 힘들기 때문에(22.0%)’, ‘가족 갈등이 심해 가족이 퇴원을 원치 않아서(16.2%)’ 순으로 나타났다. ‘병원 밖에서 정신질환 증상관리가 어렵기 때문에(13.3%)’, ‘지역사회에서 회복, 재활을 위해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없기 때문에(8.1%)’라는 답변이 그 뒤를 이었다. 질환 자체보다 환경적 이유로 장기입원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병원 입원은 정신장애인 당사자에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신장애인 당사자 중엔 11.4%만, 가족의 경우 25.6%만 ‘정신병원 입원이 효과적’이라고 답했다. 정신장애인과 가족은 ‘꾸준한 약물치료’가 가장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했다. 병원 치료에 대해서 정신장애인과 가족은 상담 및 회복 서비스 부족, 비용 부담 등을 불편 사항으로 꼽았다.

 

지난 27일 인권위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오현성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사회복지학교 교수가 실태조사 결과와 해외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정신장애인(21명), 가족(20명), 전문가(20명) 총 61명을 대상으로 한 ‘초점집단 면접조사(FGI)’에서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발표를 맡은 오현성 교수는 “그동안은 정신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초점집단 면접조사가 이뤄졌지만, 정신장애인 개개인의 삶이 너무나 다르고 자신이 가진 기능 손상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가족과 전문가의 초점집단 면접을 함께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병원과 지역사회의 정신재활서비스기관 및 정신건강복지센터 간의 연계 미흡 △ 지역의 심리·상담치료서비스 부족 △급성기 증상 발생 시 이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 응급서비스 이용의 어려움 △회복 수준과 증상 수준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 부재 △광역 및 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 역할 미흡으로 퇴원 후 지역사회에서 치료가 연속되지 않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오 교수는 치료의 연속성 강화의 예로 미국 애리조나주 모델을 설명했다. 애리조나주에선 ‘지역행동건강책임국(RBHA)’이 중증정신질환 서비스 체계를 담당하는데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 보장 제도)에 의지해 각종 중증정신질환 서비스들을 기획한다. 현재 애리조나주의 메디케이드는 지역사회에서 회복에 필요한 다양한 정신보건서비스를 의료보장제도로 지속해서 흡수한 결과, 한국의 의료보장서비스에 더하여 각종 지원서비스, 동료지원가서비스, 심리치료, 주거서비스, 위기개입서비스들을 지원하고 있다. 애리조나주는 급성기 증상 시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입원할 경우 80%가 24시간 이내에 퇴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퇴원할 때는 가족뿐 아니라 지역사회 구성원에게도 알려 당사자의 어려움을 지원한다.

 

정신장애인 지역사회서비스 정책의 문제점과 제언을 위해 모인 토론자들.


- 정신장애인을 둘러싼 정책 환경, 어떻게 변해야 할까?

 

실태조사 발표 후엔 정신장애를 둘러싼 정책의 문제점을 짚고 그에 대한 각 분야의 제언이 이어졌다.

 

조윤화 한국장애인개발원 정책연구실 책임연구원은 장애 등급을 받지 못하면 어떠한 복지서비스도 받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었다. 조 연구원은 “장애인복지법에선 국제질병분류표 ICD-10의 진단에 따라 F20(정신분열병), F25(분열형정동장애), F31(양극성 정동애), F33(반복성 우울장애)으로 진단한 때에만 정신장애 판정을 하고, 정신적 능력 상태를 고려해 1~3등급을 준다. 그런데 이 기준에 포함되지 않으면 모든 서비스에서 탈락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신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 제15조에 따라 장애인복지법 적용을 받지 않고 정신건강복지법을 우선 적용받게 되는데, 이는 결국 장애인복지법에 명시된 복지시설 배제로 이어진다. 따라서 조 연구원은 “장애인복지법에서조차 배제된 정신장애인의 복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제도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 예산이 장기입원에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상적인 모델은 ‘장기입원 < 단기입원 < 외래 < 지역사회서비스’지만 현실은 ‘장기입원 > 단기입원 > 외래 > 지역사회서비스’라는 것이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정부는 180억 원 중 4%만 지역사회서비스에 투자하고 있다”며 “돈이 부족하다기보다 현재 예산은 장기입원에 포커스를 맞춰 정신장애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역사회서비스 건강보험 적용 △사회서비스공단 기반 지역정신서비스 제공 △성과 인센티브를 통한 의료의 질과 효율성 향상을 제언했다.

 

정신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가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이상훈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교육과장은 지역사회 정신건강전문가의 수급 부족으로 의료서비스가 약화되는 현실을 짚으며, 영국과 호주처럼 정신건강인력에 대한 중장기수급계획과 교육 체계를 함께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안으로 △지역사회 정신건강 팀 서비스 인력 구성 △정신건강작업치료사 도입 △동료지원가·가족지원활동가 국가적 지원을 촉구했다.

 

이 밖에도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서비스로 ‘지역사회 증거기반 정신건강서비스’와 ‘커뮤니티케어 증거기반서비스’의 실천 사례 등이 소개됐다.

 

홍정익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실태조사 결과와 토론자들의 지적을 정책에 반영하고 예산 확보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정책 과정에서 정신장애인이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답했다. 정신장애인의 경우, 장애 등록을 하지 않아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우선 경제적 인센티브를 도입하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은 “정신장애인과 가족의 의견을 배제한 채 만들어지는 정책은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강제입원에 대해서는 정신장애인과 가족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다. 한 정신장애인 가족은 자신의 사례를 들어 정신장애인 강제입원을 막는 현행 제도를 비판했다. 그는 정신장애인의 살인 범죄에 대한 통계 자료를 근거로 대기도 했는데, 이에 회장에 모인 장애인 당사자와 일부 가족이 항의하는 일도 벌어졌다.

 

오현성 교수는 “임세원 교수 사망 사건으로 정신장애인에게 낙인이 찍힌 것이 아니라 낙인이 원래 존재했던 것”이라며 “이런 낙인을 찍어놓고 정신장애인을 가두는 것은 비논리적”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낙인을 깨는 것은 지역사회에서 치료의 연속성이 존재할 때에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조현병 아들을 둔 아버지는 사회적·환경적 피해자인 정신장애인과 그의 가족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그는 “고 임세원 교수의 묵념으로 시작했는데, 자살한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추모도 당연히 이뤄져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며 “이곳에 모인 토론자들도 이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책토론의 장에서 정신장애인과 가족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있다”는 지속되는 지적에 홍정익 복지부 과장은 “오는 3월에 정신장애인 당사자 포럼이 마련될 예정이며 이를 정례화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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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덕 기자 hyundeok@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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