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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화를 넘어서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며
[교차적 관점으로 시설화 비판하기] ①
등록일 [ 2019년03월29일 18시29분 ]

/기획의도/

 

장애여성공감은 [IL과 젠더 포럼]을 통해서 장애인 탈시설 운동의 문제의식을 확장하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삶을 통해 증명하듯이,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지난한 ‘과정’을 의미합니다. 단지 삶의 장소를 옮기는 것뿐만 아니라 시설에 수용된 역사를 재해석하고, 지역사회 안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과 관계 맺기를 해나가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인 조건과 권력의 변화가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시설을 폐쇄해서 더이상 시설에 갈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과도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또한 이 ‘과정’에 참여해야 하는 사람은 등록된 장애인으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부랑인, 홈리스를 비롯해서 정신병원에서 심지어 지역사회와 집에서 사실상 감금된 채로 살아온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함께 드러내고 변화의 주체가 되는 과정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장애인에 대한 억압뿐만 아니라 젠더, 섹슈얼리티, 인종에 대한 억압과 정상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동시에 필요하며 다양한 해방의 관점과 결합되어야 합니다. 장애여성공감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시설화에 저항하는 동료들을 만들고, 누구도 시설에 수용되지 않는 사회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방식과 집단(부랑인, 정신장애인, 소위 요보호 아동, 여성, 성폭력 피해자, 난민,  HIV 감염인 등)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시설화의 양상들을 살펴보고, 이와 관련된 문제점과 대안을 찾아 나가는 시도를 해보고자 합니다.

 

/연재순서/

 

① 시설화를 넘어서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며 : 나영정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②사회복지체계에서 탈시설 운동의 의미: 김지혜(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③탈시설 운동의 확장: 조미경(장애여성공감)

④홈리스 시설: 김윤영(빈곤사회연대) 

⑤한부모 시설: 오진방(한국한부모연합)

⑥입양/미혼모 시설: 김호수(뉴욕시립대학교 사회학과)

⑦(탈가정) 청소년 시설: 변미혜(함께걷는아이들)

⑧정신병원/요양시설: 노다혜(장애여성공감)

⑨성폭력 피해자 쉼터: 여름(장애여성공감)

⑩난민 시설: 고은지(난민인권센터)

요양병원: 권미란(에이즈환자 건강권 보장과 국립요양병원 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

⑫가족: 김순남(가족구성권연구소)

⑬성매매피해자 자활시설: 김주희(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연구소)

*필자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장애여성은 어디에 있는가?[1]

 

최근 몇 년간 장애여성공감은  탈시설, 성과 재생산, 의존과 돌봄에 대한 화두를 가지고 끈질기게 고민하고 있다. 특히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아래 [숨]센터)은 2016년부터 <거주시설 연계 자립생활 지원사업>이라는 활동을 통해서 시설에 방문해 거주인들에게 탈시설을 위한 상담과 교육, 성과 재생산 권리에 대한 교육, 종사자 인권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 지원사업은 서울시에서 처음 탈시설 정책을 실행하면서 만들어졌고, IL 운동이 직접 시설에 방문해서 거주인들과 종사자들을 만날 수 있는 통로로 기능하고 있다.

 

이 활동을 지속하면서 실제로 장애인 시설 내 공간의 배치, 시간의 배치, 관계의 방식 등 시설의 질서와 규범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프라이버시가 어떻게 침해되는지(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는 조건 자체가 박탈되었다), 호칭을 통해서 어떤 권력 관계가 드러나거나 은폐되는지(거주인들은 종사자를 엄마, 아빠라고 불렀다), 정상성과 이성애 중심성, 능력주의가 어떻게 추구되면서 동시에 포기되는지(남녀 간 결혼을 전제로 한 성교육이 이루어지지만, 거주인들이 여기에 사는 한 불가능하다) 등에서도 고민이 깊어졌다.

 

<거주시설 연계 자립생활 지원사업>을 평가하면서 2018년 [IL과 젠더 포럼]을기획할때 우리의 질문은 “왜 장애여성은 시설에서 보이지 않는가?”였다. 등록장애인의 성별 비율은 남성이 58%, 여성이42%(단, 자폐성 장애는 남성이 85%, 여성이 15%로 좀 더 비율의 차이가 큰 장애유형이 있다)(보건복지부, 등록장애인현황, 2017)인데, 거주시설을 방문해보면 장애여성이 이런 통계에 비해서 극명하게 적었기 때문이다. 장애여성들이 시설에 덜 수용된 이유는 무엇일까. 활동가들은 토론을 통해서 다양한 가설을 세웠다.

 

1) 장애영유아시설에서는 장애여아 비율이 장애남아와 비등하게 기록된 것을 근거로 생각해볼 때 장애여아가 더 많이 입양되어 성인 시설에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2].

2) 가족과 함께 살다가 더 이상 가족이 부양과 돌봄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서 시설로 가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장애여성은 경제활동을 하지 못해도 집안에서 돌봄노동을 조금이라도 수행할 수 있다면 필요한 존재가 되지 않을까.

3) 가끔 뉴스를 통해서 수십년간 노예노동을 감수해온 지적장애인의 존재들이 알려지고 있지만 누군가의 사적인 ‘보호’아래 수십년간 가사노동, 성적노동, 돌봄노동을 무급으로 수행하고 있는 장애여성들이 훨씬 많지 않을까. 지역사회에서 살다가 생계가 어려워지거나 누군가의 ‘보호’가 철회된 지적장애여성들은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때로 성판매에 나서기도 한다. 성매매 피해여성 쉼터에서 꽤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경계성) 장애여성들의 존재를 현장은 알고 있다.

 

질문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은 아직 얻지 못했지만, 이 질문은 탈시설에 대한 고민의 폭을 넓히고 방향을 여러갈래로 만들었다. 김윤영은 홈리스 상태에 있는여성들은 거리나 쉼터보다 사설 기도원과 같은 은폐된 ‘보호’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는데, 홈리스 여성은 공적 공간이나 지원체계에서 더욱 불안을 느끼고 배제되지만, 그만큼 은폐된 곳에서 어떤 위험에 처하는지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않는 문제가 있다.[3]

 

지난해 10월 24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교차성의 관점으로 시설화 비판하기, 탈시설 운동을 전망하기”를 주제로 한 'IL과 젠더 포럼'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우리는 장애인 거주시설이 폐쇄되어야 한다는 굳은 믿음과 함께 다양한 ‘비정상인’들을 시설화하는 양상을 함께 살피며 “장애여성들”을 찾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장애여성이 경험하는 것과 같은 사회적 배제와 보호를 가장한 격리, 은폐되는 폭력과 착취의 현장, 그리고 빈곤한 사람들, 무급노동을 하며 은폐되는 존재들, 권리의 주체가 아닌 사람들, 특별히 통제당하는 행위와 정체성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시설화를 역사적으로, 구조적으로, 현재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집단을 떠올리고 만남을 청했다(이 기획연재에 필자로 참여하는 이들 대부분 간담회를 통해 만났다).

 

간담회를 통해서 가장 대규모로,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시설화되고 있는 정신장애인과 한국에 거주하기 위해서 심사를 거치면서 시설화를 경험하는 탈북민과 난민, 추방을 위한 시설보호를 강요당하는 미등록 이주민과 난민, 살 곳과 일할 곳이 마땅치 않아 거리에 있다가 강제로 ‘보호’되면서 사회로부터 격리되었던 부랑인과 노숙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국사회 복지정책의 출발이었던 요보호여성과 요보호아동은 모두 보호자와 가장이 부재하거나 그들에 의해서 내쳐진 이들이었다. ‘윤락’과 ‘비행’을 방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시설들은 입양산업과 연결되면서 외화벌이의 출처가 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국가가 ‘경제안보’를 위한다면서 미군기지에 형성된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의 성병을 관리하고 외화벌이에 최선을 다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성과 재생산 권리, 독립과 의존의 문제를 탈시설 운동의 의제로

 

장애여성공감은 독립생활 운동과 탈시설 운동을 해나가면서 시설과 지역사회라는 이분법에 대해서도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소위 가족들과 함께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가면서도 장애, 성별 정체성, 나이 등을 이유로 자기결정권이 박탈되고 생계를 위해서 누군가에게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며 성적 노동과 폭력의 경계에서 살아가야했던 수많은 존재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탈시설 운동이 단지 시설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의미할 때, 여성과 소수자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겪는 시설화의 문제는 장애인 운동 안에서 의제화되지 못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지적해왔다.[4]

2019년 지금의 탈시설 운동은 시설의 소규모화나 민주화 같은 ‘탈시설화’가 아니라 시설폐쇄를 목표로 한다.<장애인 복지법 제6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 정도가 심하여 자립하기가 매우 곤란한 장애인(이하 “중증장애인”이라 한다)이 필요한 보호 등을 평생 받을 수 있도록 알맞은 정책을 강구하여야한다’는 법조문이 만드는 ‘누군가는 시설에서 살아갈 수(밖에) 있다(없다)’는 전제 자체에 도전해야 한다[5].

 

근대 국가의 출발과 함께 수용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시대 흐름에 따라 사회가 변화하면서 시설에 수용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변했을 뿐이다. 지금 정신병원에서 정신장애인이 퇴원하고, 장애인 시설에서 장애인이 탈시설하면 그 병원과 시설은 어떻게 될까? 한국의사회복지가 상당 부분 시설수용을 모델로 구축되어왔기 때문에 그러한 예산집행과 종사자, 전문가들이 일시에 없어지지 않는다. 북한 이탈 주민의 삶을 연구하는 김화순은 북한 이탈 주민을 위한 시설이 목적을 달리하면서 계속 유지되는 이유가 ‘시설이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 그 자체’라고 지적했듯이 그 장소가 없어지거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이상 그 장소를 채울 사람들은 생산될 것이다. 김은정은 탈시설이 이루어지려면 지금 존재하는 시설의 근본적인 성격 변화를 지금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손으로 이루어내고, 그 이후에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 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시설폐쇄가 결정되기까지, 그리고 폐쇄의 과정에서 그 장소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권력 관계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시설폐쇄는 또 하나의 강제적인 과정, 소외의 과정일 수밖에 없고 탈시설 이후의 삶 또한 인간다움을 보장해주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한편 장애여성공감이 2014년부터 장애/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 의제에 대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2015년에는 성과재생산포럼이 결성되면서 성과 재생산의 이슈를 단지 여성의 임신·출산에 대한 선택/결정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체제 안에서 어떤 생명이 태어나고 미래가 보장되며, 누가 어떤 이유로 성과 재생산 권리를 박탈당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고민을 다양한 단체들과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장애여성공감이 탈시설 운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깊이 가지고 장애인 거주시설에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시설 안에서 성과 재생산 권리가 어떻게 통제되고 박탈되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보건복지부가 만든 [거주시설 인권보장 가이드라인]에는 성생활 보장권과 가족생활 보장권이 포함되어 있는데, “성생활 보장권이라 함은 장애인 스스로가 비장애인과 같이 동등한 성적 권리를 가지며 스스로 성을 표현하고 건전한 성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또한 이용자가 건전한 성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성에 대한 지식 및 정보를 교육받을 권리를 의미한다.” “가족생활보장권은 이용자가 희망하는 경우 결혼을 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부부가 되면 시설 내에서 그들만을 위한 별도의 공간에서 가족으로서 함께 살아갈 권리를 의미한다. 또한 비장애인처럼 결혼한 장애인인 이용자도 자신의 자녀를 양육할 권리가 있으며, 자신의 동의 없이는 자녀를 자신에게서 분리시킬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정의되어 있다[6].

 

하지만 가이드라인의 명시에도 불구하고 ‘건전한 성적 주체가 되기 위한 성교육을 받을 권리’ 이외에 어떤 성생활 보장이 이루어지는지도 알려진 바 없고, 시설 안에서 부부가 함께 양육하는 독립적인(?) 공간을 보장받았다는 사실 또한 알려진 바 없다. 이 가이드라인이 현실에서 작동되려면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불분명할 때 ‘인권가이드라인’은 시설과 전혀 불화하지 않고, 어떤 반인권도 위협하지 않은 채 액자 속의 꽃처럼 시설을 돋보이게 할 뿐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원천적으로 부정되는 시설 안에서 건전한 성교육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가. 시설 내에서 가족 형성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시설에서 살아가는 가족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탈시설한 장애여성들을 인터뷰한 조미경은 시설이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고, 이성애 정상성을 강요하면서도 성적 주체성은 박탈하는 구조이며, 성에 대한 실제적인 정보와 교육이 부재하고, 재생산권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 구조라고 지적하였다. 시설화의 메커니즘은 성과 재생산을 통제하는 인구정책과 한 몸이기 때문에 탈시설의 문제와 성과 재생산권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탈시설 운동의 지평을 확장하기 위해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지점이 ‘의존’이다. 공감은 장애여성운동을 통해서 누가 독립적인가, 독립은 능력인가, 존재의 의존성과 취약성은 왜 인간다움과 존엄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해왔다. “아프고 장애가 있는 몸들은 의존적이고 폐를 끼치는 사람으로 구분되어 골방이나 시설에 가둬졌다. 그러나 장애의 경험은 성장과 개발이 보편인 시대에 저항할 수 있는 남다른 감각이다. 온전히 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누구나 돌봄에 기대 살아간다는 진실을 몸으로 보여주며, 건강하고 젊은 사람이 아프고 늙은 사람을 돌볼 것이라는 믿음에 도전한다. 그러나 독립에 대한 우리의 열망은 번번이 꺾였고 존엄보단 쓸모의 증명을 강요 받아왔다. 우리는 긴 시간 겪어온 부당한 경험이 개인의 불운과 능력의 결과가 아님을 정확히 알고 있다. 권리를 박탈당하고 자원이 없는 이들이 독립에 도달하지 못해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의존과 돌봄없는 독립은 불가능하다.”(장애여성공감 20주년 선언문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

 

이러한 문제의식은 보호받아야한다고 전제되는 청소년, 노인, 환자의 삶을 잇는다. “통제적 돌봄이 아닌, 잘 의존하는 삶”[7]을 상상하면서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노력과 움직임이 불구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라게 된다. 우리는 가족을 떠나서 누구와 돌봄과 의존성을 나눌 수 있는가? 어떠한 조건 때문에 내가 원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갈 것을 꿈꾸지 못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다. 탈 가정 청소년이 사회에 뿌리내리기 어려운 조건에 처하는 것, 요양병원과 요양원밖에 선택지가 없어지면서 삶의 뿌리가 뽑히는 노인들, 가족을 떠나서는 신분 자체가 불안정해지는 결혼이주여성들의 이야기가 시설화를 경험하는 장애여성과 만났다[8].

 

사람들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 ©Pixabay


누구와 함께 무엇에 맞설까

 

의존에 대한 고민은 결국 무력화/불능화하는 권력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와 만난다.  김도현은  “어떤 존재가 ‘장애화/무력화’(disablement)되는 관계를 문제 삼는 운동, 어떤 존재들이 ‘장애화/무력화’되는 관계를 해체하고 평등한 관계를 재구축하기 위한 ‘권한 강화/세력화’(empowerment)하는”[9] 운동을 제안했다. 황지성은 후기 식민과 냉전 안보 위협, ‘저개발’ 상태라는 복합적 상황의 근현대 한국 사회에서  ‘비정상’ ‘열등성’을 가진 집단이라는 꼬리표는 장애인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구에게 언제든 적용될 수 있는 문제였다고 보았다. 또한, 이들을 불능화 하는 데는 국가와 사회에서 인종, 섹슈얼리티, 장애 등과 관련해 형성된 다양한 규범의 폭력이 동시에 작동되었다고 지적한다[10]. 이러한 인식이 탈시설 운동의 주체와 동료가 누구인지를 상상하는데 중요한 영감을 준다.

 

특정한 시민의 역량을 박탈하고 무력화/불능화하는 권력이 시설화를 유지하는(시설을 적극적으로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인식을 포함하여) 핵심이다. 어떤 사람이 살아가기 어렵다고 할 때, 그 사람은 무능력하기 때문에 시설에 수용하면 된다고 상상하는 것, 그 안에 존재하는 권력 관계를 은폐하고 의존성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을 억압받아야 할 이유로 전치 시키는 권력 말이다.

 

시설화를 차별과 지배의 메커니즘이라고 파악할 때, 차별과 낙인의 누적은 예외 없이 빈곤화로 이어지며, 삶의 장소에서 소외되거나 때로 박탈되고,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해치며, 지식과 기술을 익히는 교육에서 제외되고, 단지 소모되는 노동에 내몰리는 도미노를 어렵지 않게 연상하게 된다. 이러한 연결고리를 재차 떠올리고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탈시설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차별과 지배 메커니즘이 계속 도전받지 않는다면 단지 권력의 변형과 새로운 착취의 기술만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장애여성공감은 이런 복잡한 고민을 안고 올해 IL과 젠더 포럼을 준비해나갈 계획이다. 또한 이번 연재를 통해 다양한 현장에서 발생하는 시설화의 양상을 짚어나갈 것이다. 시설화의 억압을 공유하는 여러 운동이 만나 대항의 언어를 함께 만들고 함께 싸우는 동료가 되려고 한다. 각자의 고유한 역사와 경험을 배우고, 각 집단을 격리하고 배제하는 지배 메커니즘에 맞서는 과정이 우리의 미래를 박탈한 권력에 저항함으로써 미래를 만드는 작업이 될 것이다.

 

*       *       *

 

각주

 

[1] 이글은 2018[IL과 젠더 포럼] 에서 발표한 발제문을 수정한 글입니다.
[2]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한국장애인복지현황], 1996. 이 자료는 전국 장애인복지시설의 현황에서 수용자의 연령, 장애 유형, 성별을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료이다.
[3] 송제숙은 [복지의 배신]에서 여성 노숙인들이 비가시화된 이유는 이들 스스로 성폭력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지만, IMF 이후 본격화된 복지정책이 노숙인 여성을 복지의 수혜를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전제하고 체계적으로 배제했다는 분석을 했다. "저는 여성 노숙인이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할 수가 없거든요. 어떻게 자녀가 있는 여성이 아이를 버리고 집을 나올 수가 있겠어요? 어머니라면 그렇게 무책임할 수 없습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수 없죠. 그리고 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정 안될 경우 성매매를 해서라도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성들은 거리로 나올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서울시 요보호여성 정책 담당자)" 송제숙 지음,[복지의 배신], 추선영옮김, 이후, 2016, p176.
[4] 김상희;나영정, ‘탈시설’, [장애여성운동 15년 동안의 사고], 장애여성공감, 2013.
[5] 최나은, ‘탈시설: 보호와 분리라는 차별의 정치를 거부하고 동등한 시민으로 살겠다는 선언’,<2018 서울시 탈시설 정책 제안 토론회>,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 공동주최, 2018.6.26.
[6] 이은지, ‘거주시설인권보장 가이드라인을 중심으로 살펴본 시설 안의 성과 재생산’, [성과재생산포럼×IL과 젠더포럼 –4차 포럼 장애여성 독립생활 운동과 성과 재생산: 탈시설을 중심으로], 2016.11.22. p7~10. 재인용.
[7] 이은지, ‘탈시설: 통제적 돌봄이 아닌, 잘 의존하는 살’, 2017 제1차 IL과 젠더 포럼, 2017.10.18.
[8] 장애여성공감, <독립: 규정된 관계를 넘어 나로 살기>, 2017 제2차 IL과 젠더포럼. 2017.12.18.
[9] 김도현, ‘위험, 장애화, 국가 - 안전할 권리에 대한 관계론적 성찰’, 세계인권선언 70년 연속토론회 <문제적 인권, 운동의 문제> 1강 심화 발제문.
[10] 황지성, ‘비정상신체의 궤적 읽기: 페미니즘, 탈식민주의,장애운동의 교차를 모색하며’, 한국장애학회 2018년 추계학술대회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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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정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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