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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기초생활보장제도,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형벌’의 굴레
과도한 신청서류 요구와 수치심 안기는 방문조사, 신청자 위축될 수밖에
등록일 [ 2019년04월02일 16시55분 ]

빈곤사회연대가 기초생활수급자들이 기초생활보장제도 안에서 복잡한 행정 절차와 엄정한 관리 때문에 복지의 문턱에서 주저앉는 현실에 대해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냈다.

 

빈곤사회연대는 “공공부조의 신청 및 이용과정에서 나타나는 ‘빈곤의 형벌화’ 조치 연구”를 한국도시연구소의 연구 지원을 받아 지난 3월 19일 발표했다.

 

연구를 맡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기초생활수급자 7명과 주거급여 수급자 1명, 기초생활수급신청 등에 동행한 경험이 많은 인권단체 활동가 1명을 대상으로 총 9명을 면접 조사했다”라며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실제로 이용하려는 사람이 이를 권리라고 느끼기는 쉽지 않다. 너무 복잡하고 까다로운 선정기준, 낮은 보장수준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제도 신청과 관리 과정에서 경험하는 낙인감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2011년 유엔이 발간한  ‘극빈과 인권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서(Report of the Special Rapporteur on extreme poverty and human rights)’에 따르면, 빈민이 사회복지에 접근하는 자격 조건의 강화, 조사의 강화를 ‘빈곤의 형벌화’ 조치로 보고 있다.

 

서류 뭉치가 쌓여있는 모습 ⓒ픽사베이
 

- 진땀 흘리게 하는 과도한 신청서류 요구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급여를 신청할 때 필수 제출 서류로 사회보장급여신청(변경)서와 본인 금융정보 등 제공 동의서를 주문한다. 또 부양의무자 금융정보 등 제공 동의서를 요구하며 필요할 때 소득∙재산∙확인서류, 신분확인서류 등 수급신청자에게 요청할 수 있게 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수급신청자들은 통장 거래내역서나 수급신청 사유서 등 더 많은 서류를 요구받는다. 인터뷰 참여자 H 역시 다양한 채무 관계에 얽혀 있는 모든 금융기관을 돌아다니며 과거 거래내역을 받느라 진땀을 흘린 경험에 대해 말했다. 

 

H는 “나는 쌓인 카드만 11개다. 모든 은행을 들러 금융 업무를 해야 하다 보니 여기저기 다니느라 비용이 많이 들었다. 오래된 카드는 내역이 없어 본사까지 가야 했고, 버스가 닿지 않아 택시를 타고 가야 하는 곳도 있었다. 특히 오랜 채무와 가난으로 몸과 정신이 탈진하던 때라 더욱 금융업무를 볼 자신이 없었다”라고 토로했다.

 

- 혼자 힘으로 하기 어려운 서류준비

 

저학력과 고령, 오랜 빈곤 상태에 놓인 사람들은 수급신청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를 읽고 작성하는데 어려움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인터뷰 참가자 C는 “나는 어릴 때부터 국어를 잘 못 해서 서류 작성하는데 꽤 힘들었다. 인권단체 활동가가 도와주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서류 제출도 못 할 뻔했다”라고 말했다. 고령의 인터뷰 참여자 A는 주민등록증이 없는 상황에서 수급신청을 위해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증명사진을 찍을 6천원이 수중에 없어 담당 공무원에게 ‘수급비를 받으면 갚으라’는 소리를 들으며 빌려야 했다”라고 말했다.

 

- 산 넘어 산, 서류 제출하면 방문조사 두 차례… 근거 없는 질문과 의심으로 수치심 안겨

 

수급 신청자가 모든 서류를 제출하면 수급권 보장 여부를 결정하기 이전에 방문조사를 한다. 방문조사는 보통 수급신청자 생활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지자체에서 한 번, 등록한 주소에 실제 거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LH공사에서 또 한 번 진행한다. 각각 목적을 갖는 별개 조사라고 하지만, 실제 조사에서는 비슷한 질문을 반복해 당사자가 존중받지 못하는 감정을 겪는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인터뷰 참여자 A는 “국민연금공단에서 ‘학교는 어디까지 나왔는지’ 질문한 적이 있다. 근로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아픈지 아프지 않은지만 보면 될 문제를 학력은 왜 알아보는지 모르겠다. 그건 내 개인적인 사항인데 왜 계속 물어봐서 수치심을 주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인터뷰 참가자 F는 방문조사에서 "담당공무원들이 '다른 곳에서 지원받는 것 아닌가?'와 같이 근거가 없는 의심을 하고, TV나 소파 등 가구가 새것으로 보이면 ‘어디서 구했느냐?’ 질문하기도 한다”라며 “이러한 질문은 수급자격과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내게 감시와 의심한다는 느낌과 위축감을 준다”라고 말했다.


- 까다로운 수급자격 선정기준과 보장수준, 가난의 굴레 맴돌게 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가 되려면 재산과 소득평가액을 합산한 소득인정액이 선정기준 이하여야 하고, 부양의무자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근로 능력이 있다고 판명하는 경우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조건으로 수급을 받는다.

 

하지만 까다로운 선정 기준과 낮은 보장 수준은 빈민에게 수급자격을 유지하기 어렵게 한다. 또 약간의 소득이 발생하는 것만으로도 급여에 영향을 줘 추가 소득을 부당한 것으로 인식하게끔 한다.

 

인터뷰 참여자 H는 “채무로 오랜 도피 생활을 한 탓에 빈곤과 질병을 겪고 있다. 일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렇게 해서 수급에서 떨어지면 재신청이 어려울 것이 염려되어 시도하지 못한다”라며 “수급으로 진입할 때도 까다로운 심사 끝에 근로 능력 ‘없음’ 판정을 받을 수 있었고, 현재도 일 년에 한 번씩 재조사하고 있다. 근로소득이 발생하면 ‘왜 일할 수 있으면서 하지 않느냐'는 책망이 돌아올까 봐 두렵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설령, 자활사업에 참여한다 해도 3년의 참여기간 제한이 있다. 자활참여자 입장에서 참여기간 제한은 ‘현재 일자리에 머물지 말라’는 신호가 된다. 자활사업 일자리 참여의 대가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탈빈곤 없는 탈수급의 굴레를 씌우는 셈이다. 

 

- 공식적인 정보 접근 한계와 이의신청의 어려움

 

인터뷰 참여자들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알게 된 경로가 저마다 달랐지만, '동주민센터와 같은 보장기관이나 복지업무를 담당하는 복지전달체계로 알게 된 경우는 없었다'고 밝혔다. 인터뷰 참여자 A는 “같이 노숙하던 사람과 동료들이 상담소를 소개해 줬다”라며 비슷한 처지 이웃으로부터 알음알음 찾아갔다고 말했다. 

 

2009년 기초생활수급가구 실태조사에 따르면 수급신청과정에서 서류가 복잡하다는 답변이 47.4%로 가장 많았다. 400페이지가 넘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사업안내서는 ‘기준중위소득’ ‘소득인정액’ ‘소득판정액’ 등 법과 제도 용어들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수급권자와 보장기관 사이의 정보 비대칭을 만들어 내 수급권자가 권리를 찾는데 가로막는다는 지적이다.

 

그런 가운데 이의신청할 권리마저 누리기는 쉽지 않다. 부당한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해도 “법이 이래서 어쩔 수 없어요”라며 거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의신청을 진행하는 기간이라 해도 수급비 삭감이나 수급탈락 통보를 받은 경우 이 결정이 유지된다. 수급비 외에 아무런 소득이 없는 사람은 수급비 삭감이나 중지 상황에서 제대로 이의신청 절차를 밟을 수 있을 리 없다.

 

1999년 제정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법 제1조를 통해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급여를 실시해 이들의 최저 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최저생활을 보장한다는 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생활보호제도와 다른 ‘권리’적 성격을 드러낸다”라면서 “국민기초생활 보장제도가 명시하는 ‘권리’가 실제 제도 이용과정에서 경험하는 적극적 권리로 옹호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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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원 기자 wony@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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