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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재난 방송에 수어통역 없었다” 농인들, 국가인권위 진정
시각장애인 화면해설도 없어, 시청각 중복장애인은 아예 배제돼
“장애인도 방송 볼 권리 보장하라”… 방송사·방통위·행정안전부 인권위에 진정
등록일 [ 2019년04월09일 18시26분 ]

9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장애벽허물기 등 7개 단체가 ‘장애인 방송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허현덕
 

“며칠 전 강원도 지역 산불로 많은 분들이 놀랐을 것입니다. 저도 놀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이유 때문에 더욱 놀랐습니다. 산불에 대한 재난방송을 보던 4일 밤, 가슴이 타들어 갔습니다. TV에서는 산불 소식이 나오는데, 수어통역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농인과 장애인단체가 재난방송에서 수어와 화면해설 방송이 제공되지 않았다며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방송사와 방송통신위원회, 행정안전부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아래 장애벽허물기)’ 등 7개 단체는 9일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난방송에서 수어통역과 화면해설 제공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장애인의 안전과 생명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재난방송에 반드시 수어통역과 화면해설이 제공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지난 4일부터 5일까지 강원지역에 발생한 화재로 국민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재난방송을 지켜봤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시청각 중복장애인은 상황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어 더욱 불안한 마음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재난방송에서조차 수어통역과 화면해설이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주현 장애벽허물기 대표는 “재난 시 장애인방송에 대한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라며 “방송사들은 ‘국민의 생명은 소중히 여긴다’면서 장애인은 국민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기자회견을 열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농인·난청인·시각장애인·시청각장애인 당사자가 방송에서 느끼는 어려움에 대해 털어놨다.

 

농인인 임영수 장애벽허물기 활동가는 방송에서 수어통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산불이 났을 당시 채널을 이리저리 바꾸어 뉴스를 보았지만 어떤 방송에서도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았다”며 “만일 주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더라면 어땠을까 겁이 났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산불 재난방송을 교훈삼아 앞으로 농인들에게 안전한 재난시스템을 마련하고 재난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수어통역 제공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철환 장애벽허물기 활동가는 “이번 KBS 재난방송은 화면 자막만 제공이 되어 농인들의 불만을 터뜨렸다”며 “미국의 연방재난관리청에서는 홈페이지에 수어 콘텐츠만 볼 수 있는 곳을 마련해 수어로 브리핑을 제공하고 있다”고 자료 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김철환 장애벽허물기 활동가가 우리나라와 미국의 재난방송의 차이점을 자료로 제시하고 있다. 미국은 재난방송 시 수어 콘텐츠를 별도로 제공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난청인인 호예원 한국농교육연대 학생대표는 폐쇄자막방송에서 방송과 내용의 불일치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는 “수어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방송을 자막으로 보는 편인데 대체로 자막이 느리게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집중력이 떨어질 때가 많다”며 “화면에 맞는 실시간 자막이 제공돼 난청인의 정보접근권도 보장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각장애인도 재난방송에서 화면해설이 제공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시각장애인인 곽남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시각장애인도 화면해설이 제공되지 않아 상황 판단에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이번 사건뿐 아니라 세월호 등의 재난사고에서도 자세한 화면해설이 제공되지 않아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수어통역, 화면해설, 자막화면 등이 제공되더라도 시청각 중복장애인의 정보접근은 보장되지 않는다. 시청각장애인의 방송 접근권은 어떤 곳에서도 의무사항으로 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각장애인인 최인옥 씨는 “공영방송만이라도 시청각장애인에게 어떤 지원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보편적 권리에서의 ‘알 권리’를 강조했다. 그는 “누구도 장애라는 신체적·정신적 제약에서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며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뿐 아니라 발달장애인의 알 권리를 위한 방송도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가지는 알 권리를 장애인들은 이 사회와 싸워서 이뤄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개탄스럽다”며 “우리가 이렇게 요구하기 전에 국가가 나서서 사려 깊게 고민하고 행동하길 바란다”고 개선을 촉구했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는 KBS의 무책임함을 성토했다. 지난 3월 14일 농인들이 ‘메인뉴스에 수어통역을 제공하라’는 요구에 KBS는 “어렵다”고 답변했다. 권 활동가는 “당장 어렵다면 검토하겠다는 답변이라도 올 줄 알았는데, KBS는 고민도 하지 않고 어렵다는 답변을 했다”며 “지상파에서 구현되지도 않는 스마트수어를 운운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KBS, MBC 등 공영방송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인권위에서 준엄한 판단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방송사들의 수어통역, 자막방송, 화면해설 의무 시행과 제공 기준 마련 및 재난 상황에서 수어통역 인력풀 마련 △방송통신위원회에는 수어통역과 화면해설, 자막방송 의무 시행을 위한 지침 마련 △행정안전부에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홈페이지 등을 통한 수어 브리핑 제공 등에 대한 요구를 담아 인권위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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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덕 기자 hyundeok@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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