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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탈시설운동에서 이뤄질 ‘불구의 정치’간 연대를 기대하며
[교차적 관점으로 시설화 비판하기] ③
등록일 [ 2019년04월10일 13시09분 ]

/기획의도/

 

장애여성공감은 [IL과 젠더 포럼]을 통해서 장애인 탈시설 운동의 문제의식을 확장하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삶을 통해 증명하듯이,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지난한 ‘과정’을 의미합니다. 단지 삶의 장소를 옮기는 것뿐만 아니라 시설에 수용된 역사를 재해석하고, 지역사회 안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과 관계 맺기를 해나가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인 조건과 권력의 변화가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시설을 폐쇄해서 더이상 시설에 갈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과도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또한 이 ‘과정’에 참여해야 하는 사람은 등록된 장애인으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부랑인, 홈리스를 비롯해서 정신병원에서 심지어 지역사회와 집에서 사실상 감금된 채로 살아온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함께 드러내고 변화의 주체가 되는 과정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장애인에 대한 억압뿐만 아니라 젠더, 섹슈얼리티, 인종에 대한 억압과 정상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동시에 필요하며 다양한 해방의 관점과 결합되어야 합니다. 장애여성공감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시설화에 저항하는 동료들을 만들고, 누구도 시설에 수용되지 않는 사회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방식과 집단(부랑인, 정신장애인, 소위 요보호 아동, 여성, 성폭력 피해자, 난민,  HIV 감염인 등)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시설화의 양상들을 살펴보고, 이와 관련된 문제점과 대안을 찾아 나가는 시도를 해보고자 합니다.

 

/연재순서/

 

시설화를 넘어서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며 : 나영정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사회복지체계에서 탈시설 운동의 의미: 김지혜(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③탈시설 운동의 확장: 조미경(장애여성공감)

④홈리스 시설: 김윤영(빈곤사회연대) 

⑤한부모 시설: 오진방(한국한부모연합)

⑥입양/미혼모 시설: 김호수(뉴욕시립대학교 사회학과)

⑦정신병원/요양시설: 노다혜(장애여성공감)

⑧성폭력 피해자 쉼터: 여름(장애여성공감)

⑨난민 시설: 고은지(난민인권센터)

⑩(탈가정) 청소년 시설: 변미혜(함께걷는아이들)

⑪요양병원: 권미란(에이즈환자 건강권 보장과 국립요양병원 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

⑫가족: 김순남(가족구성권연구소)

⑬성매매피해자 자활시설: 김주희(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연구소)

*필자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2018년 [IL과 젠더 포럼]에서 발표한 발제문을 수정한 글입니다.)

 

시설폐쇄법, 탈시설운동 의미 확장의 기회

 

최근 시회복지법인 성심동원 산하 장애인 거주시설인 성심재활원[1] 직원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거주인 간 폭력을 지시하고, 이를 조롱하며 동영상 촬영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져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 진보적 장애계는 시설에서의 인권침해는 오래전부터 지속된 문제이며, 이러한 사건들을 발생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활 교사 개인의 처벌을 넘어 시설 자체를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2] 현재 장애인 탈시설운동의 주요 쟁점은 장애인 거주시설 전면 폐쇄이다. 따라서 장애인 탈시설운동을 이야기할 때 시설폐쇄가 가지는 의미와 방향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은 젠더적 관점에서 IL(Independent Living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을 실천하고자 했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탈시설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IL운동에서의 탈시설운동은 지속되는 시설 비리와 인권침해의 문제를 바로 잡고자 하는 ‘사회복지시설 민주화 투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석암재단 비리 척결 투쟁을 하던 중 2009년 재단 산하 시설에서 생활하던 8명의 장애인이 탈시설하여 지역사회에서 독립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전과는 또 다른 탈시설-자립생활 권리 확보를 위한 투쟁으로 본격화된 것이다. 이는 탈시설장애인 당사자가 ‘탈시설’은 ‘권리’임을 이야기하며, 탈시설 운동의 주체가 되어 투쟁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이를 계기로 탈시설 운동은 IL운동의 주요 실천 의제가 되었고, 서울 송전원, 대구 희망원 등 전국적으로 문제가 된 시설의 폐쇄와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탈시설을 위한 IL운동이 확산되자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탈시설을 위한 실제적인 계획보다도 체험홈이나 자립생활주택을 시설이 운영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는 등 결국 시설을 소규모화하여 여전히 유지하는 정책을 일관하고 있다. 2011년 대규모 거주시설에 대한 비판적 분위기 속에서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었고, 이에 따라 장애인 거주시설 정원이 30명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되었다. 그러나 한국장애인개발원은 작년 연말 「장애인거주시설 소규모화 실태 및 정책 방안 연구」를 통해 거주시설 소규모화 정책 또한 사실상 ‘실패’하였다고 지적하였다.[3] 2012년 12월 말부터 2017년 12월 말까지 시설 수는 1,348개에서 1,517개로 169개 증가했고, 거주 인원은 30,640명에서 30,693명으로 53명이 증가하였다.[4] 소규모화가 시설을 줄이는 것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거주시설 운영자들은 소규모화 정책에 맞추어 시설에서 운영하는 공동생활가정과 자립주택이나 체험홈을 점차 늘리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마치 탈시설에 앞장서는 것처럼 주장하기도 한다. 시설의 운영 주체, 관리방식이 동일한 상황에서 이러한 시설 소규모화를 탈시설 정책으로 호도하는 것은 문제를 오히려 은폐한다.

 

진보적 장애운동은 탈시설 정책에 대한 비판과 함께 2018년 4월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맞이하여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제정을 촉구하며 2028년까지 장애인수용시설 전면 폐쇄와 이에 따른 계획 수립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임을 선언하였다. 시설폐쇄 선언과 함께 탈시설운동은 또 다른 국면에 돌입하였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문제 있는 자’라고 규정된 이들은 ‘보호/관리되어야 하는 존재’가 되어 시설 수용이 정당화되었으나, 국가 주도하에 장애인을 지역사회와 분리하는 수용시설 정책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며 그에 대한 책임을 묻고 더 이상 시설 수용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투쟁을 선포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점은 탈시설운동이 보다 확장된 의미로 실천전략을 세울 수 있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할 기회이기도 하다.

 

‘모든 수용시설 폐쇄’라는 명확한 목표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시설에서 나오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어렵게 탈시설을 하여도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 안에서 지역사회라는 또 다른 시설에 갇혀 지내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탈시설을 이야기할 때 “무엇으로부터 ‘탈(脫)’ 할 것인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시설화 문제는 장애인만의 의제가 아니기 때문에 탈시설운동이 가지는 의미는 보다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시설화’는 아직 정리된 개념은 아니지만, 작년 ‘IL과 젠더포럼’을 준비하면서 논의되었던 내용을 정리하면, “시설화는 지배 권력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보호/관리’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사회와 분리해 권리와 자원을 차단함으로써 ‘무능화/무력화’ 된 존재로 만들며,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제한하여 주체성을 상실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전제로 할 때 탈시설운동의 목적과 의미는 ‘시설화를 유지하는 지배 권력은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이에 대항하며, 상실되었던 삶에 대한 주체성과 권리를 되찾고, 나아가 시설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정상성중심의 사회에 균열을 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탈시설 운동을 통해 어떻게 정상성에 균열을 낼 것인지에 대한 실천방향과 전략이 필요하다.

 

지난 3월 26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들이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에서 '장애인 거주시설 폐쇄법 제정'을 촉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는 모습. ©장애여성공감

 

정상성 균열, IL운동에서부터 시작

 

탈시설화(Deinstitutionalization)와 함께 IL운동의 배경으로 제기되었던 ‘정상화(Normalization)’ 이념은 장애인이 시설에 수용되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할 것과, 가치절하를 당한 개인이나 집단이 생애주기별로 다양한 경험을 선택할 자유를 가져야 하며, 이를 통해 가치를 인정받은 정상적인 사람들과 정상적인 생활을 하며 사회 통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5] 이는 장애인이 삶의 선택권을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상화 이념은 “정상이란 무엇인가?”, “정상은 누구의 기준에서 나누어지는가?”를 질문하기보다 ‘정상’과‘비정상’을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전제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과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서 원하는 삶의 방식은 다를 수 있음에도 정상화는 ‘특정한 삶’을 ‘정상’이라 규정함으로써 이와 ‘다른 삶’들은 ‘비정상’으로 규정짓게 만든다. 우리는 평등을 추구함에 있어서 정상적인 삶을 상정하고 그 기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삶이든 저마다의 삶에서 필요한 권리들이 보장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시설화는 정상성을 중심으로 사회 구성원을 서열화시킴으로써 유지된다. 거주시설 장애인의 독립을 지원하다 보면 시설 종사들은 반복되는 교육을 통해 ‘독립’이 ‘권리’임을 알고는 있지만, 여전히 독립할 수 ‘있는’ 장애인과 할 수 ‘없는’ 장애인을 나눈다. 또한 대부분 사회구조의 문제보다 장애 정도 등 ‘개인의 능력’에 그 기준을 둔다. 간혹 사회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어도 어떻게 이를 바꾸어 나갈 것인지를 고민하기보다는 사회가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시설이 존재해야 한다고 합리화시킨다. 이는 비단 시설종사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많은 이들의 인식이며, 그렇게 시설은 유지되고 있다. 탈시설운동은 이런 견고한 정상성에 균열을 내기 위한 싸움이다.

 

탈시설운동은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부적격자들을 평가하고 배치해 온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키는 운동이다. 독립은 타인에게 예속되지 않고 나의 삶에 대한 주체성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며, 이는 전 생애를 걸쳐 환경, 관계, 시간에 따라 매 순간 변화되고 시도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독립은 완결이 없으며 실패도 성공도 없다. 그런데도 탈시설 과정에서 ‘성공적인 독립’을 전제로 독립을 할 수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선별된다. 누구나 ‘이번 생은 처음이라’서 실패를 반복하고 이를 통하여 자신의 역량을 키워감에도, 장애인은 애당초 실패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면서도 ‘성공적인 독립’만 요구 받는다. 이에 IL운동은 실패할 기회도 권리임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공적인 독립’이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다. 그리고 나의 삶에 대한 선택은 타인이 아닌 본인이 가져야 하는 권리이다. 그러나 시설화는 독립이 ‘자격이 주어져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착각을 만든다.

 

정상성의 균열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정상성에 도전하고자 일상의 문화를 바꾸고, 자기 안의 정상성을 깰 수 있는 성찰과 일상에서의 긴장감이 필요하다. 어느 활동가의 말처럼 ‘나의 몸 세포 사이사이에 스며있는 정상성’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는 ‘비정상’으로 규정된 소수자들과의 연대와 교류를 통하여 촉각을 예민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IL운동에서부터 일어난 이 균열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또 다른 원동력이 될 것이다.

 

탈시설운동, 함께할 동료는 누구인가

 

탈시설운동에서 시설화에 함께 대항할 동료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IL운동은 ‘장애’를 결함과 무능으로 규정하고 장애인이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비장애 중심 사회구조를 비판하며, 장애인이 독립적인 주체로 자신의 삶을 선택/결정하며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이러한 IL운동은 간혹 잘못 해석되어 ‘장애/비장애’만을 비교・대치시켜 장애인이 경험하는 차별과 억압의 요인을 ‘비장애 중심’에서만 찾거나,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와 권력을 가지는 것’에만 목적을 두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IL운동의 의미를 매우 협소하게 해석하는 것이다. 사회적 차별과 억압은 오로지 하나의 요인만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어느 누구도 하나의 정체성만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 해방’이 된다 하여도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성별에 따른 억압이 존재한다면 ‘장애여성 해방’은 오지 않듯이, ‘장애’라는 범주 안에는 수많은 정체성들이 교차하고 차별 또한 복합적으로 발생한다. IL운동에 젠더적 관점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젠더적 관점에서 IL운동이 가지는 의미는 정상성 중심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주류의 관점이 아닌 비정상이라 규정된 소수자 관점에서 기존의 사회구조를 비판하고 재구성하는 데 있다. 이러한 운동적 지향은 다양한 소수자들의 경험과 언어를 중시함으로써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게 하고, 다양성이 존중되고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게 한다. 나아가 다양한 소수자들과 서로의 교차점을 찾으며 연대해 정상성에 균열을 내기 위한 힘을 키울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연대를 통해 운동을 확장해 나갈 수 있는 IL운동의 의미가 ‘당사자주의’와 만나면서 실제 현장에서 주요 의제로 얼마나 실천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성찰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시작된 IL운동은 전문가와 보호자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빼앗겼던 장애인들이 “장애인의 문제는 장애인 당사자가 가장 잘 안다”를 외치며, 전문가와 보호자가 아닌 장애인 동료 간의 상담과 역량강화를 추구하고, 제공자 중심 복지 시스템을 장애인 당사자중심으로 전환하고자 하였다. 이에 장애인 당사자성과 동료성이 IL센터 운영에 있어서 중요한 활동의 지향점으로 이야기된다.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운동에서 당사자주의는 당사자의 경험과 언어를 가치화하고 우선시 함으로써 기존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비주체가 되기 쉬운 소수자가 주체로서 힘을 가질 수 있게 한다. 특히 일상에서 타인의 도움을받아야 하는 중증장애인이 매 순간 주체성을 확보하기란 어렵기 때문에 중증장애인에게 당사자주의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당사자주의가 ‘생물학적 장애’를 가진 자만을 ‘동료’로 전제하거나, 이익을 위한 특권화의 도구가 되고, 소수자와의 연대보다 장애인만의 세력 확장만을 우선시 한다면 당초 가졌던 의미는 변질될 수 있다.

 

당사자주의가 운동적인 가치를 가지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경험과 언어를 존중하는 ‘타인인 동료’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장애, 젠더, 나이, 이주, 계급, 섹슈얼리티 등에 따른 차별의 문제가 각 당사자의 ‘그들만의 문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운동적 목표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되새겨 보아야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이미 제정되었지만, 우리에게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공동의 목표인 것처럼 말이다.

 

진보적 장애운동을 지향하는 IL운동 진영의 경우 소수자와의 연대를 중요시 하고 있지만, 개별 IL센터 안에서 소수자의 문제에 대하여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활동의 일환으로 삼고 실천되고 있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한국의 협소한 ‘장애’ 범주를 기준으로 ‘동료’를 판가름하기보다는, 서로의 문제에 공감과 분노를 나누고 함께 세상을 바꾸어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과 동료가 되는 것, 그리고 공동의 의제와 목표를 가지고 함께 논의하고 행동하는 연대가 주는 든든함과 가슴 설레는 경험을 IL센터가 주도해서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지난해 10월 20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광화문에서 국회까지 대규모 행진이 진행됐다. 이날 ‘평등행진’에 참여한 여러 사회단체, 정당, 대학 등의 깃발이 길 위에서 펄럭이고 있다. 사진 박승원

 

IL운동, 불구들의 연대로 시설화 대항하기

 

탈시설운동이 장애인만의 운동이 아닌 사회운동으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IL센터가 시설화에 연관되어 있는 이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함께 탈시설운동을 할 수 있는 거점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서 시설화와 연관된 문제들은 무엇이고, 무엇에 대항하며, 탈시설 후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구체적인 그림과 방향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IL센터에서 장애이주민, 장애성매매종사자, 장애노숙인, 장애HIV/AIDS감염인, 장애폭력피해자 등의 독립을 지원할 때 시설화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이러한 연대의 장은 보다 다양한 장애인의 경험과 독립을 지지할 수 있게 만든다.

 

또한 시설화로 인하여 사회와 분리되었던 이들은 탈시설 후에도 여전히 무력화된 존재라는 낙인에서 벗어나 자원과 역량을 쌓는 것이 쉽지 않다. 당사자들 간의 지지와 역량강화도 필요하겠지만, 연대를 통하여 서로의 경험을 나눔으로써 무력화에 어떻게 맞서고 어떤 역량을 키울 것인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연대 안에서 존중을 기반으로 한 동료로서의 다양한 관계 맺기는 자신의 정체성이 고정되지 않고 변화할 수 있음을 경험함으로써 시설화를 통하여 규정되었던 정형화된 관계와 위치에서 벗어나 시설화에 대항하는 주체이자 동료로서 자신의 존재성을 확인할 수 있게 할 것이다.

 

IL운동이 추구하는 탈시설운동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정상성을 거부하고 불구라 규정된 이들의 투쟁과 연대를 통하여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이 제정되고, 이를 시작으로 장애인 거주시설만이 아니라 지역 곳곳에 있는 다양한 형태의 시설들이 폐쇄되고, 시설화가 더 이상 이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도록 다양한 소수자들이 탈시설이라는 의제를 가지고 연대의 깃발을 휘날리며 모여 있는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너무도 가슴이 벅차고 두근거린다. IL운동이 탈시설/시설화라는 의제가 소수자 운동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그 중심에 있기를 바란다.

 

 

*       *        *

 

각주

 

[1]  장애인 거주시설은 수용시설, 재활시설, 생활시설에서 현재 거주시설 등으로 명칭이 변화되었다. 

[2]  “성심재활원 사건이 충격적? 전혀 새로운 일 아냐… 근본적 해결 위해 시설 폐쇄해야”, <비마이너> (2019/02/28)

[3]  “장애인거주시설 소규모화 정책, 사실상 '실패'”, <비마이너> (2019/01/22)

[4]  보건복지통계연도, 장애인 거주시설 현황 참고. 정신요양시설의 경우 2017년 현재 59개소가 운영되고 있으나, 정신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 대상에서 제외되어 장애인거주시설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5]  오해경, 『사회복지리뷰 제 3집』, ‘장애인 자립생활 실천에 관한 연구’ 참고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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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경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소장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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