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05월22일wed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기고ㆍ칼럼 > 칼럼 > [나눔과나눔]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마지막 순간, 배웅하지 못하는 아픔
[나눔과나눔]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3월 장례이야기
등록일 [ 2019년04월12일 12시10분 ]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생각하는 것.

애도의 행위를 통해 완성되는 기억,

나와 나 아닌 누구일지라도

인연을 맺었던 시간을 뛰어 넘어

모두가 간절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

‘그리다’

 

무연고자가 된 40년지기의 장례에 참석한 친구분들. 사진 나눔과나눔
 

친구의 장례

 

운구가 진행되려던 차에 전화기가 울렸습니다. 평소 같으면 운구가 다 진행되고 장례가 끝나고 나면 다시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날따라 운구진행을 코앞에 두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를 주신 분은 무연고 사망자 ㄱ님 지인인데, 언제 화장예약이 되는지 물으셨습니다. 장례가 시작되어 관이 화로로 이동중이라 전화 받을 상황이 아니라고 설명 드렸지만 끊을 기미가 안 보여 억지로 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어 장례의식이 진행되는 중에도 전화기는 계속 울렸고, 종교의식이 진행되는 도중 기어이 전화를 받게 만들었습니다.

 

ㄱ님은 가족 없이 홀로 사셨고, 숙박업체에서 함께 일하는 지인들과 각별한 관계로 지내셨습니다. 하지만 올해 초 출근하지 않는 날이 이어졌고, ㄱ님은 지난 1월 30일 지내시던 월세방에서 돌아가신 채 발견되었습니다. 고인의 나이 겨우 마흔여덟 살이었습니다. 화장일이 일요일이라 참석하기 편하실 줄 알고 안내를 드렸더니 지인분은 참석이 불가하다고 합니다. 차선으로 토요일 오후 6시 입관 참석을 안내해드렸더니 조퇴가 어렵다며 8시 이후로 부탁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장례식장의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 입관마저 보기 힘들어진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가족도 없이 혼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데. 화장하는 날도 못 가고 입관도 못 보면 어떡해요.”

 

결국 지인분들은 숙박업체에 막무가내로 조퇴를 감행해 입관에 참관했고, 오열하며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습니다.

 

3월 말 무연고 사망자 ㄴ님의 장례에 40년지기 친구분이 참석하셨습니다. ㄴ님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혼자서 사는 동안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사셨습니다. 친구분은 20대 후반 ㄴ님을 만났을 때 풍채가 좋고 얼굴도 호감형이라 한 번 보면 꼭 다시 돌아보게 되는 외모를 가졌다고 기억했습니다. 하지만 고아로 자라다보니 교육의 기회를 가지기 힘들어서 일을 구할 때마다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고 그 영향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2010년 ㄴ님은 뇌출혈로 요양병원에서 5년간 입원치료를 받다가 상황이 어려워져 퇴원 후 친구분 집에 옮겨와 지내게 되었습니다. 친구분은 ㄴ님의 모든 수발을 들며 각별히 간호했지만 결국 2월 말 돌아가셨고, 가족이 아니라서 장례를 치르지도 못했습니다. 친구분은 구청 담당자를 찾아가 꼭 참석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고, 무연고자가 확정되어 사망한 지 한 달이 지나서야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비슷한 사연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만나게 됩니다. 3월 말 ㄷ님의 장례를 친구분이 치를 수 있는지 구청 담당자로부터 문의가 왔습니다. 치매를 앓고 있는 누님과 함께 지방에 살고 있는 조카분이 있었는데, 장례를 치를 처지가 안 되어 무연고자로 확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ㄷ님의 오랜 친구분이 구청으로 찾아와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해달라고 눈물로 호소를 했고, 어찌할 바를 몰라 나눔과나눔에 문의를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결국 ㄷ님은 무연고자로 확정되었고, 친구분은 장례 때 참석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구청들로부터 이미 받은 무연고 사망자 장례의뢰가 먼저 진행되면서 ㄷ님의 화장 예약은 조금씩 날짜가 밀려 3월말에야 확정이 되었습니다. 다시 전화를 드렸을 때 친구분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습니다. “아내가 죽고 이 친구밖에 없다 생각해서 정말 의지했는데, 이제 나 혼자밖에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나이가 팔십이 넘어 그런지 몸이 너무 아픕니다. 제 친구 장례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친구분은 몇 분 후 울음 섞인 목소리로 “정말 미안합니다. 제 친구 잘 보내주세요.”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새터민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에서 운구를 하고 있는 지인들. 사진 나눔과나눔

 

가족에게 사망사실을 알리려 장례를 멈추다

 

2015년부터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치러 오면서 많지는 않지만 탈북민(새터민)의 장례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북한을 탈출하여 온갖 고생을 하고 한국에 오셨다가 정착이 힘들어서 스스로 안타까운 선택을 하거나 혹은 병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은 연고자가 없기 때문에 무연고자로 장례를 치릅니다. 그분들에겐 지인들이 있긴 하지만 무연고 장례가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3월엔 새터민 ㄹ님의 장례가 있었습니다. 공문을 받으니 사실혼 관계의 부인과 자녀가 있지만 거주불명상황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장례(화장) 하루 전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새터민을 담당하시는 경찰분, 그리고 고인이 생전에 다녔던 교회 지인분이 장례에 참석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교회 지인분께서 장례를 진행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장례 당일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교회 지인분들이 서울시립승화원 무연고 전용빈소 앞으로 와계셨습니다. 지인분들은 고인이 생전에 자녀와 전화를 통해 자주 안부를 확인한 사실이 있으니, 고인의 휴대전화를 조회하여 자녀에게 연락을 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문제는 휴대전화의 명의가 고인이 아니기 때문에 열어볼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담당 경찰분도 법적인 문제가 걸려 있으니 함부로 열어볼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의전업체도 화장을 진행해야 하는지 난감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해당구청 담당자분이 장례에 참석하셨습니다. 고인이 병원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경찰수사 과정이 없었고, 구청에서도 가족을 찾아보고 거주불명을 이유로 무연고자로 확정은 했지만, 지인분들의 증언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다행스럽게도 휴대전화의 명의자 연락처를 알게 되었고, 그분이 사실혼 관계 아내분의 친구이며, 아내분과 자녀는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청 담당자분은 가족에게 사망사실을 알리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화로로 운구를 몇 분 앞두고 화장이 중단되었습니다. ㄹ님의 장례는 이틀 후에 다시 진행되었습니다. 해외에 거주하는 가족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시신인수를 포기했고, ㄹ님은 결국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화장이 중단되기까지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상황에서 담당주무관의 결정으로 가족들에게 사망사실을 알릴 수 있었던 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연고 사망자 중 연고자와 연락이 닿지 않아 장례를 치른 사실도 몰랐다가 나눔과나눔 홈페이지 글을 통해 생사확인을 하는 분들이 가끔 계십니다. 행방불명된 가족이나 지인의 생사가 궁금하지만 딱히 어디로 문의해야 하는지 몰랐다가 인터넷에 이름을 검색해보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공공의 영역에서 무연고 사망자의 생사확인이 가능하도록 통합된 시스템이 갖춰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연고자가 있지만 시신인수를 거부하여 산골을 앞두고 있습니다. 사진 나눔과나눔

 

시신인수 포기했지만 마지막 정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연고 사망자의 약 80%는 연고자가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시신인수를 거부, 포기하는 경우입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40년이 넘도록 단절되어 살아 왔거나, 시신인수에 따른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 혹은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 때문에, 서류상 가족이라는 이유로 가족을 포기한다는 의사표시를 한 결과입니다. 이런 이유들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가족이 가족을 포기할 수가 있냐며 비난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연고장례를 통해 만난 연고자들은 모두 그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평생 죄의식을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장례에 참석한 이들도 그러한데, 참석조차 못한 이들의 마음은 또 오죽할까 싶습니다.

 

3월 말 장례를 치른 무연고 사망자 ㅁ님은 1970년생이었고, 서울과 거리가 꽤 떨어진 지방에 거주하는 형제자매가 있었습니다. 서로의 생사확인도 없이 헤어져 산 지 20년이 넘었고, 시신을 인수할 능력이 되지 않아 무연고자가 되었습니다. 장례를 치르기 하루 전 ㅁ님의 누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비록 장례에 참석하지는 못하지만 언제 화장이 되는지 알고 싶어 하셨습니다. 장례를 치른 후 누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장례절차 잘 마쳤고, 서울시립승화원 유택동산에 산골(유골을 뿌림)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누님은 이내 울음이 터졌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과 함께 꼭 형제들이랑 같이 산골한 장소로 가서 동생에게 인사하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ㅂ님은 주민등록상 주소가 지방의 한 요양병원이었고, 사망진단서에 기재된 주소는 서울의 한 노숙인시설이었습니다. 일정한 주소가 없이 노숙을 하신 정황이 서류를 통해서도 확인이 되었던 ㅂ님은 지난 2월 말 서울의 한 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해당구청 담당자는 ㅂ님의 딸이 장례에 참석을 원한다고 전했습니다. 사망한 지 한 달여 만에 ㅂ님의 장례일정이 확정되었고, 그 사실을 안내했을 때 딸은 난색을 표했습니다.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주말이 아니면 참석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결국 장례에 딸은 참석하지 못했고, 주중에 시간을 낼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득 집안에 상을 당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 참석을 부탁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통념에서, 딸은 주위 사람들에게 아버지가 무연고자로 장례를 치른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을 것 같았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순간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짐을 느끼게 될 것이고, 무연고자로 가족을 보냈다는 사실은 낙인이 되어 딸의 삶에 깊은 상처를 주게 될 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오랫동안 헤어져 살았던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한 딸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볼 수 있었던 장례였습니다.

 

무연고 사망자가 생전에 돌아가신 부모님께 쓴 편지. 사진 나눔과나눔
 

부모님 전상서

 

3월 중순 서울 남부지역 경찰지구대 주차장 벤치에서 쓰러진 ㅅ님은 병원에 이송하던 중 사망했습니다. 무연고장례에는 생전에 ㅅ님을 돌봐주셨던 한 지인분이 참석했습니다. ㅅ님과는 3년 전에 처음 만났고, 직업이 공인중개사라 고시원을 마련해주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며 친분을 쌓았습니다. 지인분의 말씀에 따르면 ㅅ님은 사회부적응자로 알콜중독자였지만 정작 본인은 인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번씩 고시원을 방문하면 방이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는데, 알고 보니 1년간 ㅅ님이 자신을 속인 거였다고 합니다. 고시원 월세를 지인분이 내면 ㅅ님은 월세 중 반을 돌려받아 술을 마셨고 평소에는 방안이 엉망이었는데, 지인분이 방문하는 날이면 미리 방을 청소해놓고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지인분에게 ㅅ님은 좋은 모습을 보이려 했던 것 같습니다.

 

“사고를 많이 쳐서 제가 해결하느라 무지 힘들었어요. 왜 그렇게 사고를 치냐고 물으니 구치소 들어가면 길에서 안 자도 된다고 하더군요.”

 

ㅅ님의 기행이 계속될수록 지인분의 걱정은 커져 갔지만 한번 맺은 인연은 그냥 모른 척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구청 담당자로부터 누나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더니 지인분은 금시초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려서부터 가난해서 고생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이미 예전에 돌아가셨는데, 얼마 전에는 부모님한테 쓴 편지를 보여주더라고요.”

 

어린 나이에 서울에 올라와 곧바로 시작한 노숙생활은 사망하기까지 계속되었고,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없이 술에 의존하고 구치소 생활을 반복하던 ㅅ님의 인생에 지인분은 아마 희망의 빛이었을 것 같습니다. ㅅ님은 마지막으로 구치소를 나와 자신을 돌봐주던 교회에 들러 지인분을 꼭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벤치에서 노숙을 하다 쓰러져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이 친구를 보낼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아, 잘 가라. 좋은 곳으로 가라.”

 

무연고 및 저소득시민 장례의전 수행업체로 정담의전이 선정되었습니다. 한 구청 무연고담당자가 무연고장례에 참석하여 고인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사진 나눔과나눔

 

서울형 추모서비스 ‘그리다’, 공영장례지원에 걸맞은 새로운 의전업체 선정

 

서울시는 서울형 추모서비스 ‘그리다’를 안정적으로 운영해 나가기 위해 지난 3월 6일 나눔과나눔과 서울시 공영장례지원 통합 콜 상담센터 협약을 맺고 장례를 치르기 어려운 저소득시민들에게 공공이 지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2019년 3월부터 무연고 및 저소득시민 장례의전 및 시신운구를 통합 수행할 수 있는 업체로 정담의전을 선정했습니다.

 

정담의전은 무연고 사망자 시신 입관 시 염습과 수의를 입히고, 입관이 끝난 후 성복제를 지내는 등 기존에 진행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고인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정성스러운 의전절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바뀐 입관절차에 아직은 장례식장과의 협의가 아쉬워 입관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등 번거로움이 있지만 3월 한 달 동안 서른 네 분의 무연고 사망자 장례의전을 수행했습니다. 모쪼록 새롭게 바뀐,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위한 변화에 걸림돌이 조금씩 사라져 가길 바랍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이름들

 

4월 기초생활수급자

김애리

 

3월 무연고사망자

최대규, 김준길, 서명석, 황상재, 노진영, 박승용, 신칠성, 오홍만, 이훈동, 허민섭, 이준성, 조강설, 박희영, 임동만, 이도경, 김우영, 윤봉현, 정응, 김연순, 정명섭, 김경락, 곽명철, 박성준, 정진세, 최성길, 김태조, 변우권, 이철중, 안승용, 신양임, 이원석, 한순길, 김재규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서른네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출처 : 마리몬드)

 

*이 글은 프레시안에 공동 게재됩니다.

올려 0 내려 0
부용구 나눔과나눔 장례지원실장 nanum@goodnanum.or.kr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갑작스러운 이별, 깊은 절망에도 봄이 찾아오다 (2019-05-09 23:22:53)
살아가던 모습 그대로 삶이 정지되다 (2019-03-08 18:0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