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07월16일tue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기고ㆍ칼럼 > 기고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바다에 포위된 소년, 그들이 우리 옆집에 산다면?
[서평]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구술기록집
감춰진 역사, 살아있는 사람들
등록일 [ 2019년04월15일 15시01분 ]

2017년 4월 27일, 선감도에서 열린 선감학원 희생자 위령제

 

뭐라도 보탤 마음에 덥석 쓰겠다고 한 게 화근이었다. 마감은 다가오는데 책 읽기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몇 장을 읽다 덥고, 밑줄을 긋다 상념에 빠졌다. 다시 펼칠 때면 어김없이 바다에 포위된 소년들과 눈이 마주쳐 한참을 서성였다. 눈, 코, 입과 얼굴 모두 점, 선에 불과한 단순한 그림, 그리고 표지였다. 하지만 그 얼굴이 너무 많은 말을 걸어왔다. 온몸이 귀가 되어 들어도 잘 들리지 않는 말들이었으므로, 나는 말들을 복기하다 응답할 때를 놓치곤 했다. 사실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증언을 들은 이들도 있었다. 비마이너 연재는 물론 관련한 증언 자료들도 챙겨 읽었던 터라 익숙한 이야기도 많았다. 하지만 책이 되어 마주한 소년들의 이야기는 마치 처음인 것 마냥 다른 질감으로, 또 다른 묵직함과 질문들로 나를 오랜 시간 붙잡아 두었다.

 

소년이 운다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구술기록집』은 부제에서 확인되듯 일제강점기 부랑인 감화정책의 일환으로 1942년 설립돼 1982년까지 운영됐던 부랑아 수용소 선감학원을 경험한 소년들에 대한 기록이다. 책에는 열 살 안팎의 코흘리개 아이들이 환갑이 넘어 증언하는 그때, 그곳의 시간들이 빼곡히 담겨있다.

 

소년들은 옷차림이 꾀죄죄하다는 이유로, 고아라는 이유로, 잠시 길거리를 배회했다는 이유로 납치되듯 끌려가 고아원, 아동보호소 그리고 종국엔 선감학원에 수용된다. 게 중에는 동네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다, 친척집에 가는 길에, 혹은 잠시 길을 배회했다는 이유로 포획된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마주한 운명은 동일했다. 선감도라는 인천 앞 바다 섬에 갇혀 성과 이름이 바뀌거나 생일을 빼앗기고, 신체와 자유를 박탈당한 뒤 잔혹한 폭력과 학대, 지독한 착취와 굶주림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이다. 국가는 이를 불량소년 단속, 선도라고 했고, 선감학원은 교육과 훈련이라 했다.

 

“맞는 건 일상이었어요. 어느 날은 빠다를 하루 종일 맞은 적도 있어요. 뭘 훔쳐 먹었다고 맞고, 뭘 잘못했다고 또 맞고, 조금 쉬었다가 또 맞고. 이유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때리는 거죠.”(현정선, 205쪽)

 

“애들은 밭일하면서, 양배추, 무, 배추, 고추 이런 걸 엄청 심었고요. 밭도 얼마나 큰지. 죄수들에게도 그렇게는 안할 거야. 거기서 일한다고 해서 돈을 줘요?… 그냥 부려먹은 거 아니야. 완전 노예지.”(이대준, 98쪽)

 

살아남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기에 누군가는 공포에 도망칠 엄두조차 못 냈고, 또 누군가는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맨발로 갯벌을 건너고, 질흙 같은 밤바다를 헤엄쳤다. 선감학원이 존속된 40년간 무수한 소년들이 맞아 죽고 굶어주고 병들어 죽고 탈출하다 죽었다. 하지만 사회는 책임을 묻기보단 살아남은 소년들을 다시 추격했다. 탈출에 성공한 소년들은 섬 인근 주민들에게 붙잡혀 다시 기약 없는 종살이를 했고, 누군가는 형제복지원, 삼청교육대와 같은 다른 수용소로 끌려갔다. 세상과 불화하며 세상을 배운 소년들이었기에 부랑아가 되거나 전과자가 된 이들도 많았다. 누구도 예외 없이 보통의 삶을 꿈꿨으나 단 한명도 부랑아라는 낙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눈초리들의 감옥”은 넘어설 수 없는 경계였다. 삶은 표류했고 때때로 난파됐다. 하여 소년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것은 평생에 걸친 함구와 망각이었다.

 

“선감학원에 있었던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고 살았습니다. 선감도 나오면서 이제 선감도는 나하고 완전 끝이다. 내 인생에 없다 그랬습니다.(중략) 형제원 식구들(피해자모임)한테도 얘기 안했어요. 그게… 쟤는 뭐하는 놈인데 선감학원도 가고 형제원도 갔냐고 할까 봐.”(김창호, 249쪽)

 

“하루하루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한테는 마음의 상처 이런 거 사치예요. 살아가는 자체가 고달프잖아요. … 국가가 그건 기가 막히게 해놨어. 아주 빈곤하게 만들어서 이런 거 저런 거 생각 못하게 한 거예요.… 그렇다고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까, 나는?”(한일영, 83쪽)

 

용기로 소문을 사실로 바꾸어 진실의 문을 연 9명의 증언을 읽으며, 나는 잊고 있던 인간의 잔인함, 섬뜩한 국가 폭력을 새삼 반추한다. 더불어 여전히 반성 없는 사회를 목도한다. 선감학원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맞서 여전히 이를 비극적인 개인사, 오래된 과거지사로 축소하려는 이들은 망각과 부인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폐와 침묵은 문제를 축소하는 최선의 방책이며, 평범한 이들이 이에 동조하기란 매우 쉽다. 불편한 진실, 또는 현실을 보고 듣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보편적인 바람에 편승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책의 의미는, 기억을 기록으로 만들어 진실을 밝히는데 있다. 또한 동시에 우리에겐 소년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세상만사를 망각할 만큼 순수하고 천박해질 수 있을 권리가 전혀 없”(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167쪽)음을 환기하며 일깨운다. 불편함에도 책을 통해 소년들과 마주해야할 이유다.

 

책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표지, 하금철·홍은전·강혜민·김유미 글 ⓒ도서출판 오월의봄
 

그들이 우리 옆집에 산다면?

 

한편 많은 구술기록집에서 기록자들은 구술자의 그림자로 존재했다. 구술기록은 무엇을 묻느냐, 어떻게 듣느냐,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전혀 새로운 글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록자는 구술자의 입말 뒤에 웅크렸다. 허나 이 책의 기록자들은 존재를 감추기보단 드러낸다. 단순히 자료의 부실이나 서사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구술자와 증언을 마주하는 자신의 서걱거림과 의문을 봉합하기보다는 거리와 격차를 보여주며 스스로 치열한 사유의 전장에 나선다. ‘무고한 피해자’와 ‘범죄자’란 간극에서, 입을 닫으려는 자와 입을 열려는 자의 줄다리기에서, 소년들의 증언을 배신하는 기록들 앞에서 멈칫하다 뒷걸음질 치고 도망친 모습조차 솔직히 고백한다. 구술자와 기록자의 증언과 사유, 태도가 씨줄과 날줄로 엮인 이 책에서 기록자는 ‘행인’이 아닌 비중 있는 ‘조연’이자 때론 ‘공동주연’이기도 하다. 이러한 글쓰기는 자칫 대상화되기 쉬운 선감학원의 문제, 소년들의 고통을 독자들이 자기 문제로 사유할 자연스러운 기회를 제공한다. 책 읽기의 매력을 배가시킴과 함께 기록자의 자리에 불려 나와 “나라면 어떠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서로 다른 시공간을 살아온 이들의 경험과 삶을 이해하고 공통의 언어 기반을 만드는 것이 결코 녹록하지 않음을 확인한다. 이는 공동이 부재한 사회에서 공동을 만들려는 시도이자 사회를 재건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주례사 서평을 넘어 진심 어린 일독을 권하는 이유다.

 

백발이 된 소년들이, 기록에서조차 부인된 기억들이 현재의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우리는 무엇이라 응답할 것인가?

올려 0 내려 0
유해정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hjsaram@gmail.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신간소개]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구술 기록집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경기도가 운영한 ‘부랑아 시설’ 선감학원, 이것은 국가폭력이다
인권위 “선감학원은 국가 폭력… 해결 위한 특별법 제정 필요”
선감학원, "복지・갱생 가장한 '빈곤의 분리수거'"에 불과했다
가족에게도 못 다한 이야기, '선감도 소년들'의 수십년 묵은 원통함을 듣다
제8회 미디어공공성포럼 언론상, 비마이너 '선감학원 보도' 수상
소년, 섬에 갇히다-선감학원 피해자의 이야기
죽음의 섬 선감도를 탈출한 소년들, 국회에서 ‘진상규명’을 외치다
경기도의회, 부랑아 강제수용소 '선감학원' 사건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촉구
‘소년은 왜 그곳에 끌려갔나’ …선감학원, 진상규명 위한 첫 발걸음 떼다
소년수용소 ‘선감학원’ 아픔 기억하는 ‘역사박물관’ 설립된다
20년간 잠들어 있던 ‘부랑아 강제수용’ 선감학원의 진실, 이제 깨어날 때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경계를 넘나드는 여성들 (2019-04-16 12:47:11)
“우선 네가 행복해야 돼”, <안녕하세요>의 조언이 반가운 이유 (2019-04-06 12:3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