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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에서 치러진 장애등급제 ‘가짜’ 폐지 장례식
420공투단,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맞아 1박2일 전국집중투쟁
“기만적인 정부의 장애인정책, 영원히 땅에 묻어버리자” 결의
등록일 [ 2019년04월19일 20시46분 ]

정부가 정한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두고, 장애인들은 기만적이고 허위로 가득 찬 문재인 정부의 장애인 복지 정책에 사망을 선고했다. 420공투단 소속 활동가들이 상복을 입고 장애등급제 때문에 사망한 장애인들의 영정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하루 전인 19일, 서울 한복판에서 노제가 진행됐다. 여섯 사람이 상복을 입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부터 세종대로 사거리까지 관을 끌었다. 관 속에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아래 전장야협) 이사장이 누워 있었다. 그 안에는 그와 함께 문재인 정부의 장애등급제 폐지 정책, 서비스지원종합조사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2·3차 병합 국가보고서, 그리고 발달장애국가책임제가 함께 관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앞에는 상복을 입은 여섯 사람이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맞아 죽고, 활동지원사가 없는 사이 불타 죽은 장애인들의 영정을 들고 섰다. 정부가 정한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들은 기만적이고 허위로 가득 찬 문재인 정부의 장애인 복지 정책에 사망을 선고한 것이다.

 

정부가 정한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두고, 장애인들은 기만적이고 허위로 가득 찬 문재인 정부의 장애인 복지 정책에 사망을 선고하며 장례식을 치렀다. 사진 박승원
정부가 정한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두고, 장애인들은 기만적이고 허위로 가득 찬 문재인 정부의 장애인 복지 정책에 사망을 선고하며 장례식을 치렀다. 사진 강혜민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아래 420공투단)은 정부가 정한 ‘장애인의 날’이 장애인에 대한 수많은 차별과 억압을 은폐시키는 날로 기능한다며 이를 거부하고, 4월 20일을 모든 차별에 맞서 함께 싸워나가는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다시 정의했다. 이러한 뜻에 따라 19일부터 20일까지 1박 2일 전국 집중 투쟁을 광화문광장 및 마로니에공원 등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그리고 19일 오후 2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진행된 “장애등급제 ‘가짜’ 폐지 장례식 및 노제”로 1박 2일 투쟁이 시작됐다.

 

- ‘입관’된 문재인 정부의 장애인 복지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오는 7월부터 장애등급제가 폐지된다. 이후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에 기반해 장애인 활동지원, 보조기기, 응급안전, 거주시설 입소 등 네 가지 돌봄 서비스 수급량이 결정되는데, 420공투단은 이 종합조사표가 ‘장애등급제와 유사한 조작된 조사표’라고 비판했다. 여전히 장애등급제의 패러다임으로 의학적 관점에 입각한 기능 제한 수준만 평가하고, 당사자의 필요와 욕구는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 정책 역시 장애계로부터 기만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한국피플퍼스트, 전국장애인부모연대(아래 부모연대) 등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이 삼보일배, 삭발식, 농성 등 다양한 투쟁으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했고 그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발달장애인 정책을 잘 챙기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성인 발달장애인에게 가장 핵심 서비스인 ‘주간활동지원’이 올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으로 마련되었고, 그마저도 주간활동지원 이용시 기존 활동지원 시간을 줄이도록 하는 지침으로 공분을 샀다.

 

탈시설 정책도 정부의 오래된 약속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탈시설 등 장애인 지역사회 생활환경조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구시립희망원 문제 해결을 시작으로 범죄 시설들에 대한 대책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임기 3년차인 지금까지 탈시설 지원 정부 예산은 0원이다. 그러는 사이 한국 사회에서는 부산 동향원, 경기 성심재활원 등 시설 내 인권침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다.

 

420공투단 소속의 활동가가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맞아 사망한 이아무개 씨의 영정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420공투단은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OECD 평균의 4분의 1에 불과한 장애인복지예산을 가지고 ‘장애등급제가 폐지된다’, ‘탈시설 정책을 이행할 것이다’라고 말잔치만 하고 있다”고 강하게 규탄했다. 420공투단은 “충분한 예산 반영과 장애인 개개인의 필요와 욕구에 맞는 서비스 다양화, 그리고 명확한 탈시설 계획 없는 ‘장애등급제 폐지’는 가짜일 뿐”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아울러 정부가 지난 3월 9일 유엔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 ‘장애인권리협약 2·3차 병합 국가보고서’에 대해서도 “지난해 12월 공개된 초안과 국가인권위원회 의견 등을 종합했을 때, 한국 사회 장애인의 현실과 다른 왜곡된 보고들과 '최저임금 적용 제외 폐지' 등 핵심 쟁점들에 대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방어적 내용만 담겼을 것”이라며 ‘허위’ 국가보고서라고 지적했다.

 

- “살려주십시오, 살고 싶습니다.” 죽음에 내몰린 장애인, 유언장에 남긴 말

 

조현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조직실장은 “내일은 정부가 정한 39번째 '장애인의 날'이자 올해는 31년 만에 변화를 맞이하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원년”이라며 “정부가 대대적으로 등급제 폐지를 홍보하고 있고, 많은 사람이 '이제 장애인들도 살기 좋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바뀌는 것이 없다. 정부는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신애 부모연대 부회장은 "오늘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 새벽같이 울진에서 출발했다"라며 "지금 집에는 고등학교 졸업 후 3년째 집에만 갇혀있는 중증장애인 큰딸, 그리고 내가 없는 사이 큰딸을 돌보기 위해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는 둘째 딸이 와 있다. 아직도 장애인의 돌봄은 가족의 몫이고, 국가는 책임지지 않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김 부회장은 "지난 15년간, 큰아이의 삶에 변화를 만들기 위해 투쟁해왔는데, 아직도 15년 전과 같은 싸움을 하고 있다"며 "여전히 국가는 거짓말을 하고, 말도 안 되는 등급제와 기만적인 서비스로 우리를 농락한다"고 비판했다.

 

김신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날 장례식은 정부가 기만·허위로 구축해가고 있는 각종 장애인 정책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이러한 기만 가운데 죽어가야만 했던 장애인들을 기리는 상징적인 자리로 진행되었다. 박경석 전장야협 이사장은 이러한 장애인의 삶을 알리는 유언장을 낭독했다.

 

“우리에게 장애인 거주시설은 감옥입니다. 죽도록 목놓아 외쳐도, 정부는 중증장애인을 감옥에 수감해놓고 우리를 보호한다고 말하며 기망하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대안이 없어 중증장애인 자녀들을 감옥문 앞에 줄세워 대기시키고 있습니다. (중략) 감옥같은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중증장애인들은 성폭행, 강제노동, 착취, 폭력, 조롱, 협박, 혐오, 차별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갔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법인 운영자들은 꼬리 자르기 수법으로 살아남아 시설 운영권을 세습하고 자산을 사유화했습니다. 정부는 이것을 무책임하게 방관했습니다.

 

(중략) 송국현, 김주영, 박지우, 박지훈, 김순석, 최정환, 이덕인, 최옥란, 박기연, 우동민, 이재진, 권오진. 수많은 동료 중증장애인들이 죽어갔습니다. 거리의 턱 때문에 자살해야 했습니다. 시설에서 맞아 죽었습니다. 장애등급제 때문에, 활동지원 24시간을 보장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불타 죽었습니다. 자살했습니다.

 

2015년 4월 17일, 서울 중랑구에서 한 아버지가 장애인 아들을 망치로 머리를 때려죽였습니다. 2016년 11월 20일에는 전주에서 한 아버지가 장애인 아들을 목 졸라 죽였습니다. 사흘 후인 23일, 경기도 여주에서 한 어머니가 장애인 아들을 목 졸라 죽였습니다. 2018년 11월 28일, 경기도에서 한 어머니가 장애인 아들을 스카프로 목 졸라 죽였습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유언장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죽어간 이들의 이름과 죽음의 이유를 목소리 높여 읽어 내려가던 박 이사장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문장을 읽어내려가며 그의 목소리에는 눈물이 선연했다.

 

“중증장애인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자신의 의무를 회피한 결과로 그 부모에게조차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살고 싶습니다. 나도 마땅히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야 할 소중한 생명이었습니다.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나도,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한 인간입니다.”

 

박 이사장은 “정부의 가짜·허위·조작 앞에 죽어간 동료들의 외롭고 억울한 그 길에 잠깐이나마 함께 하려고 관에 들어간다. 혼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가짜’들을 함께 들고 들어가려고 한다”고 덧붙이며 “앞으로 정부의 ‘가짜’ 정책들을 영원히 묻어버리자”고 외쳤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모조관에 들어가고 있다. 사진 강혜민
420공투단 소속 활동가들이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누워있는 모조관에 장애인을 기만하는 각종 장애인정책들을 넣고 있다. 사진 강혜민
 

유언장 낭독이 끝난 후, 박 이사장은 ‘근조 장애등급제 가짜 폐지’, ‘장애인 거주시설은 감옥이다’ 등의 문구가 적힌 관 안으로 옮겨졌다. 이후 ‘장애등급제 가짜 폐지’, ‘장애인 권리협약 허위 국가보고서’, ‘서비스 지원 조작 종합조사표’, ‘가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가 적힌 천이 한겹 한겹 박 이사장의 몸 위를 덮었다. 활동가들은 관을 들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광화문광장이 끝나는 세종대로 사거리까지 행진하고, 그 자리에서 약 한 시간 가량 노제를 진행했다. 노제에서는 정부의 기만적 정책을 완전히 없애길 기원하고 희생된 장애인들의 넋을 기리는 무용가 이삼헌의 추모굿을 시작으로 탈시설,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및 노동권, 장애여성 권리 보장, 정신장애인 권리 옹호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발언들이 이어졌다.

 

노제를 끝낸 후 420공투단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까지 행진했다. 이들은 마로니에 공원에서 1박 노숙 투쟁을 하고 20일 오전 10시부터 ‘2019년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결의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장애인 거주시설은 감옥이다”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 사진 강혜민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이삼헌 씨가 희생된 장애인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굿을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420공투단이 노제를 하는 동안 세종대로 사거리 교통이 통제됐다. 사진 강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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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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