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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보건, 병원 아닌 지역사회에서 답을 찾아야
[기고] 진주 방화•살인 사건 이후 논의들이 '입원'으로 귀결되는 상황 우려
'사법입원'은 해결책 아냐...지역사회 정신보건 인프라 구축 필요
등록일 [ 2019년04월25일 17시08분 ]

최근 진주 방화•살인 사건을 계기로 다시 정신보건 문제가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언론 보도가 계속되고 사회적 논의들도 활발하다. 그런데 무성한 논의 속에 우려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대부분 논의들이 정신질환자들의 범죄 위험성 관련하여 관리와 통제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입원 특히 강제입원 절차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일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사법입원’ 입법화를 밀어붙일 기세이다.


근본적인 원인 진단으로 돌아가 보자. 지역사회 정신보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 최우선으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해법은 ‘어떻게 입원시킬 것인가?’로 귀결되고 있다. 사법입원이 문제 해결책인 듯이 얘기하기도 한다. 현재 정신질환자 강제입원이 의사와 보호자에게 많은 부담을 주고 있어 이를 사법기관으로 이관하자는 논의이다.


선진국에서 많이 채택하고 있는 사법입원은 자의적이고 강제적인 장기 입원을 견제하기 위해 반드시 사법 절차를 밟도록 한 제도이다.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를 알기 때문에 의료진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여기까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사법입원의 역사에 이런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게 아니다. 이탈리아 경우 20세기 중반까지도 정신병원 입원은 모두 사법에 의한 강제입원이었다. 당사자가 원하는 자의입원은 애초 불가능했다. 정신장애에 대한 판단, 강제입원 집행 자체가 사법절차 그 자체였다. 범죄자에 준하는 사법 집행이었고, 강제입원 당한 환자는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그리고 생애 기록에 범죄 기록으로 남았다.


그만큼 사법입원은 사회 상황에 따라 작동 방식이 다르다. 지금 우리 현실에서 사법입원은 정신장애인 격리, 수용을 법적으로 정당화하고 여기에 ‘사법적 낙인’까지 더할 가능성이 높다. 가족에 의한 입원이든, 행정입원이든, 사법입원이든 당사자들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어느 경로이든 결과는 ‘입원’이다. 정신병원 입원 중에 격리, 강박, 통제 등으로 인해 이차적인 트라우마를 경험했던 당사자들에게 입원 절차 논의는 사실 의미가 없다.

 

지난 2월 9일 열린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일명 '임세원법') 공청회에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자유가 치료다’, ‘과거로 회귀하는 반인권법 반대한다’ 등의 손팻말을 들고 개정안에 대한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런 논의에 앞서 지역사회 정신보건 시스템 구축에 대한 논의가 사실 더 시급하다. 지역 정신보건센터 인력을 얼마나 늘릴 것인가? 가정방문 횟수를 얼마나 더 늘려야 하나? 정신장애인 쉼터는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자립을 위한 거주 시설은 어떤 방식으로 마련할 것인가? 직업 교육, 고용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 나갈 것인가? 정신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을 어떻게 육성해 나갈 것인가?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 순응도가 떨어지는 환자는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정신 질환 위기 발생 시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입원한 환자들의 사회 복귀를 위한 절차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반낙인 반차별 캠페인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지역사회 정신보건을 위한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치열하게 토론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지역사회 정신보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야 정신장애인과 가족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서 발생하는 사건이나 사고도 효율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최근 논의의 흐름이 지역사회가 아닌 병원 입원으로 모이는 것은 우리나라 정신보건 체계가 지역사회가 아닌 병원 중심으로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그 병원 치료조차 치유를 위한 것이 아니라 관리, 통제를 우선했기 때문에 당사자에게 병원은 트라우마 원인으로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다. 비대해진 정신병원과 빈약한 지역사회 정신보건 인프라. 우리나라 정신보건의 현 상황이다. 여기서 출발해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현재 정신병상은 지나치게 많다. 어느 정도까지 줄일 수 있을지 면밀하게 검토해 봐야 하겠지만 대폭 줄여도 필요한 입원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급격하게 줄이기는 어렵더라도 기본 방향을 정신병상 축소로 잡고 이를 위해 다양한 정책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말이 있다. 정신병상도 마찬가지이다. 병상이 비면 어떻게든 채워야 병원 입장에서는 유리하다. 그리고 입원 환경은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환자가 힘들면 스스로 찾아가서 자의 입원하고 싶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절대 병상 수는 대폭 줄이고 입원 환경은 개선하여 제대로 된 치료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앞서 얘기했던 지역사회 정신보건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다양한 투자가 병행되어야 한다. 지역사회 정신보건이 중심이고 정신병원이 이를 보완하고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 대부분 선진국의 기본 체계이다. 왜곡된 체계를 그대로 두고 입원 절차만 바꾼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게 너무 명확하다.


이제 정신보건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당사자와 가족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도 안전해지는 길임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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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중 인권의학연구소 이사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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