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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증 - 구멍: 누공의 상상력
[칼럼]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기억을 호출하는 구멍에 대하여
등록일 [ 2019년05월14일 11시56분 ]

베이지색 벽에 검은 구멍이 있다. 사진 제공 안희제
 

오늘은 조금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려 한다. 한편으로 이는 끊임없이 자기 혐오로 빠지기 쉬운 자가면역질환자가 자신의 몸을 어떻게든 새로운 가능성으로 해석해 보고자 하는 절박한 시도일지 모른다. 내 몸의 누공을 만져 보며, 그것을 흉터 대신 하나의 통로 혹은 구멍으로 그려 본다. 나에게 구멍 뚫린 나의 몸은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다. 특히, 계속해서 기억의 문제를 호출하는 흔적이다.


염증은 면역체계가 몸을 지킬 때 생긴다. 환부는 붉게 변하고, 열이 나고, 아프다. 그리고 사회역학에서는 질병이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본다. 나는 여기서 화(火)를 본다. 화가 나면 몸이 빨개지고 열이 나며, 통증이 생기기도 하며, 정동(affect) 이론에 따르면, 감정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고 확산된다. 그래서 나는 약간의 비약을 무릅쓰고, 혐오의 정동을 ‘사회적인 염증’이라 부르고 싶다. 이런 의미에서 혐오는 기존의 사회 질서(면역체계)가 안정적이라고 여기는 상황(건강)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타자(세균)에게 벌이는 전쟁이다. 그리고 전쟁 이후에는 언제나 흔적(구멍)이 남는다.


자가면역질환은 면역이 잘못, 혹은 과도하게 기능하여 내부의 누군가를 타자로 규정하고 이를 제거하려는 상황을 보여준다. 그런데 면역체계가 공격한 대상은 그저 내 몸의 일부다. 자신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이 과도하게 발현될 경우 이렇게 무고한 염증이 생기고, 이를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흔적이 남는다. 통증보다 수능 공부가 중요하다며 참은 항문주위농양을 뒤늦게 제거한 후에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아마 앞으로도 남아 있을 내 항문 누공처럼 말이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강력한 사회적 면역반응인 혐오로 인해 사회 문제가 집약되어 발생한 사건 이후에는 항상 흔적이 남는다. 사람들은 흔적을 외면하거나 회피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이를 덮어 버린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도, 그 사건의 원인도, 그 배후의 사회 문제도.


최근에 서울 소재 여러 대학의 회칙에서 총여학생회가 삭제되었다. 주된 논리는 “이제는 성 평등이 이루어져서 총여학생회가 필요하지 않다.”였다. 퀴어문화축제가 열릴 때마다 반대자들은 노골적으로 의견을 표출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동성애자 차별이 사라졌으니 광장에 나와서 시끄럽게 굴지 마라.”라고도 한다. 이런 말들은 모두 현재 진행형인 문제를 해결되었다고 말함으로써 침묵을 강요한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혐오나 분노는 아니지만, 세월호 참사는 진상 규명도 되기 전에, 시신 수습도 끝나기 전에 “언제까지 세월호를 이야기할 것이냐?”라는 질문 아닌 질문을 맞닥뜨려야 했다. 추모 공간을 만들자고 했을 때도 “다 끝난 일이다.”라는 말이 핵심이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그 기억을 둘러싸고 발생한 사건들은 희생자들에 대한 혐오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기억 교실은 거센 반대 여론 때문에 학교 바깥으로 밀려났고, 결국 추모 공원으로 변경되었다. 나는 기억 교실 보존을 지지했고, 그 이후에는 추모 공원 설치를 지지했다. 당시에는 언제까지고 추모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었지만, 왜 셔츠 칼라에 꽂힌,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으로는 부족한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단지 그 사건과 죽음들을 간편하게 떠올릴 수 있는 팔찌나 배지가 아니라 그 사건 속으로 내동댕이쳐지는 공간임을. 마찬가지로, 성차별이 해소되어 총여학생회가 사라지더라도 총여학생회실은 남아 있어야 하며, 동성애혐오가 사라져도 퀴어문화축제는 계속되어야 한다.


지금의 ‘자랑스러운 민주주의’를 이룩해 낸 민주화 운동과 달리, 이 공간들과 사건들을 사람들은 잊으려 한다.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공간들이 국가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단원고 기억 교실과 세월호 추모 공원은 ‘혐오 시설’이라는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퀴어문화축제 또한 ‘혐오스럽다’라는 이유로 반대되며, 총여학생회실은 이제 필요하지 않다고 반대된다. ‘아름답고 장렬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역사에 오점을 남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탈각된 이들을 기억하려면 티셔츠, 팔찌, 리본으로 충분하지 않다. 민주화운동기념관에 가면 왜 우리가 계속 민주주의를 다시 발명하고 감시하고 성찰해야 하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 생생한 피와 죽음의 흔적들에 둘러싸여서 말이다. 사실 어떤 염증도 완치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나의 면역체계로 인해 생긴 염증은 언제든 다시 부어오를 수 있다. 만약에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매끈한 피부로 염증의 흔적인 구멍을 덮어 버린다면 재발률은 더욱 높아진다. 내 항문주위농양을 제거한 자리는 여전히 구멍이다. 이 구멍의 이름은 누공이다. 누공은 원래 고름이 흘러가서 염증이 쌓이도록 하는 통로였지만, 이를 뚫어 두면 고름이 쌓이지 않도록 함으로써 염증의 재발을 방지한다. 나는 그 구멍을 통해 고통스러운 과거로 내동댕이쳐진다. 우리 사회에는 그런 구멍이 필요하다. 염증의 경로를 되짚고 통증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구멍 말이다. 모든 억압과 차별이 사라지더라도 우리는 언제까지고 이를 기억해야 한다. 이곳에 염증이 있었음을, 우리가 염증을 제때 치료하지 못했음을 상기시키는 염증-구멍을 통해서 말이다.

 

* 제목 “누공의 상상력”은 손희정의 『페미니즘 리부트: 혐오의 시대를 뚫고 나온 목소리들』(나무연필, 2017)에 수록된 「천공穿孔의 상상력과 영화-구멍: 근대적 인식과 영화가 놓친 세계, 그 구멍에 관하여」에서 차용하였다.
 

[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

 

관해기(증상이 일정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거의 없는 시기)의 만성질환자. 장애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고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수업을 들으며 크론병과 통증을 정체성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몸의 경험과 장애학, 문화에 관심이 많고, 앞으로도 그것들을 공부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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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제 dheejeh@nave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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