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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교육권 둘러싼 사회적 인식 재고 실패의 역사, ‘특수학교 설립반대’의 토양 됐다
2019 한국장애학회 춘계 학술대회 “우리 삶의 기록, 장애 역사를 말한다” 개최
“의무교육 관점 아닌 사회적 조건 속에서 미봉되어온 장애인 교육권...성숙한 논의 필요”
등록일 [ 2019년05월17일 16시50분 ]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 상황이 한국사회에서 반복되고 있다. 아직도 장애아 교육권 보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은 이유를 역사학적으로 검토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2019년 한국장애학회 춘계학술대회가 17일 오후 1시부터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진행됐다. 이번 춘계학술대회 주제는 ‘우리 삶의 기록, 장애 역사를 말한다’로, 장애역사 기록과 발굴의 의미를 학술적으로 논의했다. 

 

춘계학술대회 첫 번째 발표는 소현숙 일본군 ‘위안부’ 문제연구소 연구팀장이 맡았다. 소 팀장은 한국 의무교육제도 도입과 장애교육의 발전 역사를 분석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장애아 교육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게 된 경로를 분석했다. 

 

17일 오후,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한국장애학회 춘계학술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최한별
 

의무교육 제도 확대로 국민학교는 다녔지만...중학 입시부터 '차별적 인식', '체능검사'에 가로막힌 장애학생들

 

한국에서 의무교육 제도 도입 노력이 본격화된 것은 해방 직후 미군정 하에서부터였다고 소 팀장은 전했다. 이에 따라 헌법과 1949년 공포된 교육법에 초등 의무교육이 조문으로 명시되었다. 문교부는 1950년 의무교육 6개년 계획을 세우고 의무교육 보급에 착수했다. 전쟁 직후, 교육 재정 부족과 인프라 미비 등으로 상황은 열악했지만, 취학률은 급격히 증가해갔다. 1945년 해방 당시 초등학교 취학률은 64%였는데, 의무교육이 실시된 지 10년도 되지 않은 1959년에는 93.6%를 기록했다. 

 

한국에서 근대적 의미의 장애아 교육은 일제 식민지 시대 맹·농교육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시 맹·농교육을 담당했던 평양맹학교나 제생원은 교육부가 아닌 보건부 소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장애아 교육은 의무교육 제도 도입 과정에서 진전을 맞이해 교육법 143~145조에 특수교육 대상자와 특수학교 설립에 대한 규정을 명시하게 되었고, 맹·농학교 역시 보건부에서 교육부로 이관되었다. 

 

그러나 장애아 취학률은 비장애아 취학률보다 현저히 낮았다. 1960년 한국아동복리위원회 조사 통계에 따르면, 전체 장애아동 중 특수학교에 취학한 아동은 전체의 1.4%, 일반 국민학교 취학률은 28.6%에 불과했다. 전쟁과 1950~60년대에 한국에서 유행했던 소아마비로 인해 장애아 수가 늘어남에 따라, 한국전쟁 직후부터 1960년대까지 장애아 교육 문제가 사회적으로 가시화되었다. 

 

소 팀장은 “그러나 의무교육의 확대와 더불어 지체장애를 가진 자녀를 매일 업어 6년간 한 번도 학교 수업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게 지원한 부모들의 미담이 다수 보도되면서, ‘어려움을 이겨내면서라도 장애아 역시 교육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대중에 유포시키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하는 장애아가 증가하기 시작했고, 장애아 교육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장애아들이 중학교 문을 두드리게 되자 1950년대 후반부터 장애아의 중학교 입학 문제가 사회 문제로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소 팀장은 대표적인 사례로 1964년, 배문중학교에 응시한 조아무개 학생이 ‘발을 저는 탓’으로 면접에서 입학을 거부당해 결국 불합격 판정을 받은 사건을 들었다. 당시 배문중학교 모집정원은 480명이었으나 지원자는 1/3에 미달하는 136명에 불과했음에도, 조아무개 학생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불합격한 것이다. 

 

당시 장애학생 입학 허용 여부는 중학교 교장 재량권에 달려 있었다. 1961년 10월~11월 사이 경향신문에서 연재한 기사에서는 장애학생 입학허용 여부에 대한 각 중학교의 입장이 나타난다. 소 팀장은 “이 내용들을 보면, 적지 않은 학교들이 장애학생 입학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장애아를 차별하지 않고 입학을 허용하겠다’고 밝힌 경우는 전체 30개 학교 중 다섯 학교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대다수의 중학교들이 장애아 입학 거부 근거로 든 것은 ‘수학 상 지장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어떤 장애가 ‘수학 상 지장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이 ‘애꾸눈’, ‘색맹’, ‘곰보’ 등도 입학 불허 대상자가 되기도 했다. 

 

2019년 한국장애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학교의 문턱, 의무교육제도의 도입과 장애아 교육'을 주제로 소현숙 팀장이 발제하고 있다. 사진 최한별
 

장애학생의 중학교 입학 배제는 중학교 입시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당시 중학 입시 경쟁은 고교나 대학보다도 치열했다.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과외를 받거나, 재수를 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이런 경쟁 속에서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던 ‘체능검사’가 당락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가 되기 시작했고, 이는 장애학생들이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는 결정적 사유가 되었다. 

 

소 팀장은 “1967년, 부산중학교에 응시해 학과시험에서는 만점을 받았지만 소아마비로 체능점수를 받지 못해 결국 불합격한 김원철과 윤철은 자신들의 난처한 입장을 살펴달라며 대통령에게 호소문을 보내 동정적 여론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박정희는 1967년 연두순시에서 ‘불구아들에게 취학의 특혜를 주라’고 특별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문교부는 장애 아동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체능 특혜를 주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장애학생이나 학부모들은 문교부가 내놓은 ‘가산점’이라는 소극적 방식에 대해 만족하지 않고, 학과시험 성적에 따라 아예 체능검사 없이 합격시키도록 하는 등의 적극적 방안을 요구했다. 그러나 가산점마저도 문교부 장관이 교체되면서 백지화되어 버린다. 권오병 당시 문교부 장관은 “지금같은 자유경쟁 시대에 불구아동이라고 특혜를 줄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하고, “중고등학교는 의무교육이 아니므로 완전 자유경쟁에 따라 입학해야 하며 일부 아동에 대한 특혜는 일반학생 학부형들의 반발 등 부작용이 클 것”이라며 백지화 이유를 들었다. 

 

'무시험 추첨배정제' 도입으로 장애인 중학교 입학 문제 미봉됐지만

'장애인 교육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 없었기에 근본적 해결엔 실패

 

소 팀장은 “이렇게 꽉 막혀있던 장애학생 중학교 입학 문제가 물꼬를 트게 된 것은 1969년 중학교 무시험 추첨배정제 도입에서부터였다”며 “이로써 장애아 입시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자동적’ 해결이 ‘원천적’ 해결은 아니었다. 여전히 ‘지능이 월등한 어린이'와 ‘저능아, 특수아’를 한 교실에 몰아넣는 것이 “너무나 비교육적인 처사”라는 비판이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교육부는 “‘저능아’ 등 중학에 들어갈 수 없는 학생”에게는 해당 초등학교 교장 재량으로 추첨권을 주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강구했다. 소 팀장은 “그러나 이 ‘중학에 들어갈 수 없는 학생’의 범주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었다”며 “당시에도 교육부 지침은 교육 이념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제한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전했다. 

 

신체장애아들의 입학 문제도 여전히 있었다. 체능검사를 둘러싼 중학교 입학은 무시험제도 도입으로 해결되었으나, 동일한 문제는 몇 년 뒤 고교입시에서 재현되었다. 그러나 이 역시 1972년, 문교부가 고교입시에서 장애학생의 체능검사를 면제키로 하면서, 문제는 또다시 대학입시로 넘어갔다. 소 팀장은 “결국 1960년대 장애학생들의 중학 입학거부 문제는 심도깊은 논쟁과 합의를 통해 장애아 교육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재고하는 계기가 되지 못한 채, 무시험제도 도입이라는 입시문제 해결을 통해 미봉되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처럼 1950~60년대 장애인 교육의 현실을 살펴보면 이들의 교육권이 의무교육제도 도입으로 자연스럽게 획득된 게 아니라 사회 역사적 조건 속에서 부단한 부침을 겪으며 형성되어 온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며 “장애인 교육을 둘러싼 ‘권리와 특혜’라는 시각차는 심도 깊은 논쟁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장하는 계기로 기능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소 팀장은 “이러한 역사적 한계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늘날 벌어지는 특수학교 설립 문제 등 장애인 교육권 논의를 장애인 인식 확장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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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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