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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안의 삶은 사육당하는 것과 마찬가지
[카드뉴스] 탈시설 이후 10년의 이야기
석암투쟁 마로니에 8인_⑦ 김용남
등록일 [ 2019년05월25일 00시45분 ]
2009년 6월 4일, 석암재단 생활인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는 탈시설-자립생활 쟁취를 위한 노숙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마로니에 8인의 62일간의 농성은 서울시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마로니에 8인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카드뉴스로 연재됩니다. (제작: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진 1] 탈시설 이후 10년의 이야기 #7
용남의 이야기
“시설은 자기들의 이익만 챙기려고 합니다. 시설 안의 삶은 사육당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사진 2] 시설에 들어가다.

 

사진 3]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했는데, 두 달 정도 후 어느 날 병원 업무과장이 와서 병원에 있으면 돈이 더 든다고 했다. 아니면 석암요양원에 가면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서 나가니까 치료도 공짜로 받을 수 있다고 입소를 권유했다. 

 

사진 4] 그렇게 서른두 살 때, 내가 일해서 모은 전 재산 6백만 원을 다 주고 석암에 오게 되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보험회사에서 5백만 원을 병원비로 주고 갔다고 했다. 

 

사진 5] 시설에서의 삶

 

사진 6] 석암에서 20년을 살았는데, 부모님 제사 한번 못 지내고 묘소도 못 갔다. 형제들 번호도 모르고 가족들과 연락도 전혀 못 했다. 가족하고 언론사에 시설에 대한 불만 편지였는데 한 통의 답장도 받지 못했다. 

 

사진 7] 어느 날 보니까 요양병원의 한 선생님이 편지 한 무더기를 다 버리는 모습을 보았다. 아마 거기에 내 편지도 있었을 것이다. 가족들을 보고 싶지만,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진 8] 먼저 원장이 있었을 때는 생활인들을 감금하다시피 했고, 제복만 원장은 밖으로 나가면 사고가 날 수 있으니까 시설 밖으로 나갈 때마다 사인하고 나가라고 했다. 

 

사진 9] 시설을 나오다. 

 

사진 10] 우연히 컴퓨터를 하다가 석암재단에서 벌어진 비리를 알게 되었다. 그게 시설을 나가야겠다는 이유의 시작이었다. 사람들과 논의하여 시설 안에서부터 투쟁을 시작했다. 

 

사진 11] 시설을 나와 오세훈 시장 출퇴근 투쟁을 할 때는 시설을 나가기 위한 시작임을 느꼈다. 자유도 없고, 구속된 상황에서의 탈출구를 향한 투쟁은 설렘을 일으켰다.

 

사진 12] 시설 이후의 안정적인 주거를 찾기까지…. 

 

사진 13] 시설을 나와서의 첫 주거공간은 마로니에 공원 노숙 생활이었다. 힘들었지만 시설을 나와서의 첫걸음이었다. 

 

사진 14] 이후 자립생활 주택을 옮겨 다니며 ‘내 돈’도 모으고, ‘내 물건’들도 샀다. 시설에서는 내 통장도 내가 관리 못 하고 시설직원이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 채 지내야 하는 삶이었다. 그러나, 그때 조금씩 ‘내’ 것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사진 15] 투쟁의 과정

 

사진 16] 경찰서에도 불려가고, 재판도 받고, 벌금도 내고.. 투쟁과정이 힘은 들어도 혼자가 아니고 같이하니까 버틸 수 있었다. 제도적으로 자유를 빼앗겨 싸우고 있는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진 17] 시설 밖의 삶

 

사진 18] 나와서 결혼한 것이 제일 행복하다. 반찬도 직접사고, 산책도 하고.... 나와서 사는 삶은 뭐든지 나의 선택에 집중할 수 있다. 
 
사진 19] 시설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사진 20] 시설 없애야 한다. 왜 장애인들이 시설에 모여서 살아야 할까? 그것은 자유를 뺏는 것이다. 

 

사진 21] 장애인도 그 지역사회에서 똑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시설에 있는 사람들도 투쟁해서라도 나와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사진 22] 꿈

 

사진 23] 나는 공동체를 꿈꾼다. 우리 사회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살 수 있는 공동체 마을을 조성해야 한다. 전국에 장애인 없는 마을이 어디에 가 있을까? 

 

사진 24] 우리 사촌 형도 그렇고, 내 친구도 장애인이다. 어느 한 곳에 모여 격리되어 사는 삶이 아니라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모두가 어우러져 함께 살 수 있는 공동체를 꿈꾼다. 

 

사진 25] 2009004 탈시설 운동의 시작
석암투쟁 10주년 기념행사
20090604는 석암베데스다 요양원의 8명이 마로니에 공원에서 농성을 시작한 날입니다. 

 

사진 26] 탈시설 이후 10년의 이야기
2009년 마로니에, 그리고 지금

 

* 서울시의 장애인인권증진기본계획 전면 수정 환영 및 장애인거주시설폐쇄조례 제정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

 - 6월 4일 오후 2시 / 서울시청 정문 앞

 

* 탈원정대!
 - 6월 4일 오후 3시~5시 / 서울시청->마로니에 공원까지 행진
 - 신청링크: http://bitly.kr/O3rVtP
(*참가비 1만원)

 

*저녁 식사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


*문화제

 - 6월 4일 오후 6시~8시 / 마로니에 공원

 

<후원계좌>
농협 / 301-0168-5108-11 /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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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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