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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당사자 목소리 무시한 채 ‘거꾸로 가는 종합조사표’
의학적 평가 강화되고 장애 유형 간 갈등 증폭시켜
7월 도입될 종합조사표 두고 장애계, 농성 돌입 등 강경 투쟁 예고
등록일 [ 2019년05월31일 12시36분 ]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가 올해 7월부터 장애등급제를 대체할 ‘장애인 서비스지원 종합조사표의 내용 및 점수 산정 방법에 관한 고시’ 제정안을 행정예고하고 지난 29일까지 장애계 의견을 수렴한 가운데, 장애계가 강한 반대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하며 강경 투쟁을 예고했다.

 

행정예고된 종합조사표는 지난해 9월 토론회에서 초안이 공개된 후 장애계의 비판에 직면하자 소폭 수정되어 지난 4월 다시 공개된 안과 동일하다.

 

이 종합조사표는 크게 기능제한(X1), 사회활동(x2), 가구환경(X3)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중 기능제한(X1)은 △일상생활동작(13개 항목, 318점) △수단적 일상생활동작(8개 항목, 120점) △인지행동특성(8개 항목, 94점)으로 총 532점을 차지한다. 이어 직장생활과 학교생활 중 하나만 택하는 사회활동(X2), 1인 독거·취약가구 등을 담은 가구 특성과 건물 승강기 유무 등을 담은 주거 특성인 가구환경(X3) 점수까지 합산하여 총 596점을 만점으로 한다. 종합조사표는 이러한 점수 산정과 이용자에 대한 기본적 인적사항, ‘욕구조사 및 급여이용 계획’까지를 포함한다.

 

이 종합조사표에 대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한자협)는 29일 보건복지부에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는 안”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폐기 후 장애계와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새로운 서비스 판정 체계가 도입될 때, 장애인 당사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서비스 수급자의 증가와 서비스양의 증가나, 이러한 부분을 이번 종합조사표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이들은 △장애인 당사자의 주도성의 원칙이 실현될 수 없는 구조 △여전히 의료적 모델을 탈피하지 못함 △장애유형별 고려 항목이 분리되지 않음 △종합조사표에서 산정된 점수가 각 서비스 영역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제시되지 않음 △활동지원서비스 하루 24시간이 보장되지 않음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0일부터 29일까지 ‘장애인 서비스지원 종합조사표의 내용 및 점수 산정 방법에 관한 고시’ 제정안을 행정예고한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의학적 평가 버리고 사회·환경적 특성 반영하랬더니… ‘거꾸로 가는 종합조사표’

 

장애계가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해온 이유 중 하나는 복지서비스 수급 자격이 의료적 모델에 기반을 둔 장애등급제에 전적으로 기대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애계는 줄곧 장애에 대한 의학적 평가보다 당사자의 욕구와 사회·환경적 특성 반영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종합조사표에서는 의학적 관점이 반영된 기능제한에 대한 조사 문항과 점수 비중이 현재의 인정조사표보다 오히려 더 커졌다. 그뿐만 아니라 더욱 우려되는 점은 당사자 욕구를 반영하는 문항 없이 기능제한 평가 점수에 비례해 가구환경 평가점수가 책정되는 것이다. 이때 만약 기능제한이 최솟값(114점) 이하면 가구환경(독거·취약·가족의 사회생활·주거)에 해당하는 항목이 있더라도 점수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이는 기능제한 점수가 현저히 낮더라도 가구환경적 상황이 좋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전장연과 한자협은 비판했다.

 

또한, 복지부는 활동지원급여를 비롯해 장애인 보조기기, 장애인거주시설,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지원 등 제도의 목적과 대상이 다른 4가지 서비스에 대한 평가도구로 종합조사표를 사용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렇게 획일적 평가도구를 적용할 경우, 이는 ‘장애등급제’가 ‘장애점수제’로 바뀌는 것에 불과하게 된다.

 

따라서 전장연과 한자협은 “종합조사 과정에서 당사자가 자신의 필요와 욕구에 근거해 의견을 제시하고, 그것이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종합조사표에 ‘욕구조사 및 급여이용 계획’이 있지만 기존 인정조사표와 유사한 형식임을 고려해볼 때 서비스 사정으로 것은 아닐 것으로 추측한다”고 지적했다.

 

지체·뇌병변장애인, 총점 532점에서 130점 삭감되는 이유는? 

 

복지부가 공시한 기능제한 조사영역에는 장애유형에 따라 문항 자체가 아예 해당하지 않기도 하다. 예를 들면 지체·뇌병변장애인의 경우, 시·청각복합평가(36점)와 환각·환청·망상, 조울상태 등을 확인하는 인지행동특성(8개 항목, 94점) 항목에서 제외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기능제한 총점 532점에서 130점이 삭감된다. 발달장애인 또한 시·청각복합평가뿐만 아니라  일상생활동작, 수단적 일상생활동작 대부분의 문항에서 최고점을 받기 힘들다. 여기서 문제는 점수 삭감이 활동지원시간 삭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종합조사표의 기능제한 항목. 지체·뇌병변장애인의 경우, 시·청각복합평가(36점)와 환각·환청·망상, 조울상태 등을 확인하는 인지행동특성(8개 항목, 94점) 항목에서 제외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전장연과 한자협은 “신설된 ‘인지행동특성’의 조사항목 및 문항은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서비스 사정을 위해 고려될 필요성이 있다”면서도 “다른 조사항목 및 문항들과 동일 선상에서 경합적인 방식으로 제도가 설계되어 있어, 이는 서비스 시간을 둘러싼 장애유형별 갈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전체 파이가 한정된 상태에서 어느 한쪽이 늘면 다른 한쪽이 줄어들게끔 제도가 설계되어 장애 유형 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반면, 현재 활동지원제도 인정조사표는 ‘장애특성 고려영역’을 별도로 두고 △휠체어 사용 △청각기능 △시각기능 △인지기능 △정신기능 중에서 한 개 항목만 산정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활동지원제도의 인정조사표. 장애특성 고려항목은 장애유형끼리 경합하는 게 아닌, 1개 항목 점수만 별도 산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기존 수급자들은 올해 7월 종합조사표가 도입되면 급여가 삭감되거나 수급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공포에 떨고 있다. 이는 실제 복지부의 ‘장애등급제 폐지 3차 시범사업’에서도 확인된 내용이다. 복지부가 2017년 4월부터 10월까지 기존 활동지원급여 수급자 1886명을 대상으로 종합조사표를 모의적용해본 결과, 860명(45.76%)은 급여가 감소했고, 246명(13.52%)은 수급에서 탈락했다. 이를 무마하고자 복지부는 지난 4월 토론회에서 ‘급여가 감소하거나 탈락하는 기존 수급자들은 수급자격 갱신 때까지(기간 3년) 한시적으로 보전하겠다’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전장연과 한자협은 “이는 유사한 환경에 놓인 신규 신청 장애인과 형평성에 있어 문제가 발생한다. 기존 수급자는 3년간 보전되어 서비스를 받지만 신규 신청 장애인은 ‘신규’라는 이유로 서비스를 (충분히) 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라며 근본적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게다가 복지부의 보전 방안 마련은 사실상 ‘종합조사표를 적용하면 급여 하락이 자명하다’는 것을 그 스스로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장애계는 “이 문제는 급여 수급 최저기준을 조정하고 활동지원급여 구간을 하향 조정하면 해결되는 문제”라면서 “현재 중앙정부 예산 기준 월평균 109시간에 불과한 평균 서비스양을 최소한 130시간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지마비+정신적 장애+직장+주거 접근성 미비 등 충족해야 ‘최대 시간’ 받을 수 있어

 

활동지원시간을 하루 24시간 보장하지 않는 점도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복지부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잠자는 8시간’을 제외한 하루 16시간 지원만을 최대 시간으로 잡고 있다. 그러나 16시간을 받으려면 모든 문항에서 최고점을 받아야 하는데, 앞서 지적했듯 이는 불가능하다. 최고점을 받기 위해서는 사지마비 지체·뇌병변장애인이 시·청각장애에 정신적 장애까지 있는 상태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독거가구나 취약가구여야 하며, 주거는 승강기 없는 지하층 또는 2층 이상에 거주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장연과 한자협은 “최고점에 대해서만이 아닌 일정 점수 이상, 혹은 24시간 지원이 필요한 항목에서 최고점을 받은 경우엔 (현재 받을 수 있는 최대 시간인) 16시간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예를 들면, “신체적 영역에서 누운 상태에서 자세 바꾸기(독립적 수면이 안 되는 상태), 또는 음식물 넘기기(삼킴장애 또는 호흡기 장애 등이 있을 경우 안전상의 위험과 독립적 수면이 어려울 수 있음) 항목에서 전적인 도움이 필요한 경우로 확인되는 경우, 24시간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16시간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정부가 최중증 독거 장애인에게 하루 24시간 활동지원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사항”이라고 지적했다.

 

“서비스 필요도 조사 시, 당사자 목소리 반영돼야” …장애계, 농성 돌입 예고 

 

이러한 문제점들과 함께 장애계는 종합조사에서 당사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고도 재차 강조했다. 현재 복지부안 대로라면 국민연금공단의 재활·의료 전문인력들이 장애인 당사자의 서비스 필요도를 측정하게 된다. 그러나 장애계는 “종합조사 도입과 서비스 필요도에 대한 조사 취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서비스 이용이나 일상생활지원 관련 분야의 인력이 종합조사 시에 함께해야 한다”면서 “수급자격심의위원회에도 장애인 이용자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이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아래 발바닥행동)은 종합조사표의 서비스 항목에 장애인 거주시설 입소가 포함된 점을 비판했다. 발바닥행동은 “이는 자립생활이 장애인을 위한 보편적 권리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거주시설의 신규입소를 방지하고 장애인의 탈시설과 지역사회 삶의 권리를 인정하는 종합조사표 구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한, 종합조사표가 특별지원급여 형태로 탈시설 장애인에게 ‘6개월간 월 20시간’의 자립준비 지원 방안을 담고 있으나 이는 현재와 동일한 수준이라고 지적하면서, 별도의 추가 지원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는 “뇌병변장애인은 신체적 장애와 함께 여러 중복장애로 50% 이상이 의사소통장애를 동반하고 있으나, 현재 종합조사표는 이러한 장애 특성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동용(만 19세 미만) 종합조사표에는 의사소통하기(24점)가 있으나 성인용(만 19세 이상)에는 없다면서, 성인용에도 기능제한 일상생활동작영역 안에 의사소통 항목을 추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따라서 전장연과 한자협은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현재의 종합조사표 안은 폐기하고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면서 이러한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오는 6월 4일부터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농성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은 지난 2018년 7월 6일 이후 멈춘 ‘장애등급제 폐지 민관협의체’의 조속한 개회를 복지부에 촉구하며 민관협의체 회의에서 장애계의 목소리를 전하며 압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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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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