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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가정 청소년에게 ‘보호’가 아닌 ‘권리’를
[교차적 관점으로 시설화 비판하기] ⑩
등록일 [ 2019년06월06일 14시52분 ]

/기획의도/
 
장애여성공감은 [IL과 젠더 포럼]을 통해서 장애인 탈시설 운동의 문제의식을 확장하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삶을 통해 증명하듯이,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지난한 ‘과정’을 의미합니다. 단지 삶의 장소를 옮기는 것뿐만 아니라 시설에 수용된 역사를 재해석하고, 지역사회 안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과 관계 맺기를 해나가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인 조건과 권력의 변화가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시설을 폐쇄해서 더이상 시설에 갈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과도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또한 이 ‘과정’에 참여해야 하는 사람은 등록된 장애인으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부랑인, 홈리스를 비롯해서 정신병원에서 심지어 지역사회와 집에서 사실상 감금된 채로 살아온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함께 드러내고 변화의 주체가 되는 과정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장애인에 대한 억압뿐만 아니라 젠더, 섹슈얼리티, 인종에 대한 억압과 정상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동시에 필요하며 다양한 해방의 관점과 결합되어야 합니다. 장애여성공감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시설화에 저항하는 동료들을 만들고, 누구도 시설에 수용되지 않는 사회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방식과 집단(부랑인, 정신장애인, 소위 요보호 아동, 여성, 성폭력 피해자, 난민,  HIV 감염인 등)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시설화의 양상들을 살펴보고, 이와 관련된 문제점과 대안을 찾아 나가는 시도를 해보고자 합니다.
 
/연재순서/
 
시설화를 넘어서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며 : 나영정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사회복지체계에서 탈시설 운동의 의미: 김지혜(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탈시설 운동의 확장: 조미경(장애여성공감)
홈리스 시설: 김윤영(빈곤사회연대) 
한부모 시설: 오진방(한국한부모연합)
입양/미혼모 시설: 김호수(뉴욕시립대학교 사회학과)
정신병원/요양시설: 노다혜(장애여성공감)
성폭력 피해자 쉼터: 여름(장애여성공감)
난민 시설: 고은지(난민인권센터)
⑩(탈가정) 청소년 시설: 변미혜(함께걷는아이들)
⑪요양병원: 권미란(에이즈환자 건강권 보장과 국립요양병원 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
⑫가족: 김순남(가족구성권연구소)
⑬성매매피해자 자활시설: 김주희(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연구소)


*필자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청소년 한명이 거리 아웃리치 활동가인 나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이런저런 노력을 해도 다 안 되는데, 내 편이 없다고 느껴지는데, 어떤 공간에도 들어가면 쫓겨나는 인생을 살고 있는데, 나랑 같이 살면 안 되겠냐”고... 이것은, 10살이 되기 전 아버지로부터 보육원에 맡겨졌고, 보육원에서는 형들로부터의 폭력을 견디기 어려워 고통을 호소하는 그를 방관하던 실무자들을 믿을 수가 없어 보육원을 떠나, 5년이 넘도록 쉼터들을 떠돌며 살아가는, 치유되지 않은 고통과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그의 절규 같은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가 요구한 ‘그것’이었을까. 삶을 살아가는 그이의 무력감이 고스란히 내 것이 되는 순간이었다. 탈가정하여 살아가는 청소년의 절망적인 삶 속에서 필요한 건 ‘누군가와 믿고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내 집’이라는 걸, 지금 이런 많은 고통을 끊어내는 데에 ‘그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거리를 밤새 돌아다니며 청소년들과 나름의 일상을 꾸린다고 하는 노력의 방향을 다시 고민하는 순간이 되었다.

 

많은 이들에게 거리는 가정폭력의 일상에서의 ‘탈출’의 공간이 되었고, 비슷한 어려움을 경험했기에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었고, 또 다른 기회들을 만나거나 오롯이 내 것일 수 있는 삶을 꾸려가는 공간이 되었다. 물론 무방비상태의 거리는 또 다른 위험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주거가 불안정한 이들에게 일자리나 소득이 안정적일 리 없고 그러다 보면 당연히 위험한 일들이 이들의 일상을 삼켜버리기도 한다. 외롭고 위험했던 거리에서 친절을 베풀거나 잠자리와 먹거리를 제공하며 가장 힘든 순간 위로가 되었던 사람들(거리의 아저씨들)로부터 겪게 되는 성폭력 피해, 열악한 일상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성매매 폭력, 스무살이 되면서 시작되는 수 천만원의 부채 피해까지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이런 일들이 거리에서는 일상적인 시간이 된다. 그러나 사회는 이들이 겪는 피해를 ‘자발적 선택’이라며 책임에서 발을 뺀다. 청소년들이 겪는 이 끔찍한 고통이 과연 청소년 개인의 책임인지를 되묻고 싶어진다.

 

결국 사회는 이러한 위험한 상황을 겪는 거리를 청소년들이 있어서는 안 되는 공간, 위험하지만 책임져 줄 수 없는 공간이라 규정하며 ‘시설 보호’를 권유한다. 정부가 내놓은 유일한 대안이다. 과연 시설은 청소년에게 ‘살고 싶은 집’이 되고 있는 걸까. 청소년이 집 밖에서, 시설 밖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잘 살 수 있는 삶이란 불가능한 것일까. 과연 ‘주거공간’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필요 없는 것인가?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청소년을 향한 ‘미성숙 담론’

 

이런 답답한 현실은 청소년을 향한 ‘미성숙 담론’에서 다시 시작된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보호’와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정하는 사회. 심지어 보호자가 제 역할을 할 수 없을 때는 청소년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며 ‘우범소년’으로 규정하여 소년원에 ‘강제 보호’ 조치를 하기도 한다. 2019년을 사는 우리에게 1980년대에 일어난 ‘형제복지원’ 사건이 오버랩되어 떠오르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청소년이 머무르는 공간 모든 곳에는 청소년이 아닌 자들이 정해놓은 규칙이 존재하고, 시설에서 지내기를 마음먹기라도 한다면 자신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다 쏟아내어 놓아야 한다. 가족관계, 가족의 연락처, 술은 마시는지, 마시면 얼마나 마시는지, 담배는 피우는지, 애인이 있는지 등등 단 하루를 지내더라도 민감 정보까지 다 작성해야 한다. 이렇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벌어지는 사회적 억압과 규제는 청소년을 향한 모든 공간과 제도, 지원에서 존재한다. 심지어는 체벌이 교육의 한 방법이지 않겠느냐는 시설도 있다. 과연 비청소년이 머무는 공간에도 이런 요구가 가능할까?

 

이러다 보니 당연하게도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만들어 낸 대안은 사회에서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청소년들이 위험한 ‘어른’들의 세상에서 서로를 보호하고 평등하게 소통하며 살아가는 것을 전제로 만든 공동체였던 ‘가출팸’1)은 매스컴을 통해서 위험과 ‘문제’의 온상으로 지목되었다. 이들을 만난 청소년 지원 기관에서는 이들이 이 관계에서 원했던 욕구를 듣고 이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기보다는 뿔뿔이 흩어놓거나 시설로 보내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 청소년들이 시도하는 다양한 주거와 공동체는 지역사회에서 섬처럼 놓여지며 ‘결국’ 위험한 상황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청소년 지원 현장 활동가들의 청소년 주거와 관련된 고민과 바람들. ©함께걷는 아이들


가정폭력의 지속을 부추기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와 이렇게 주거를 고민하게 된 시작점에는 ‘가정폭력’이 있다. 청소년들의 대부분은 가정에서의 학대와 방임으로 탈가정을 시도한다. 탈가정한 청소년에 대한 사회의 입장은 ‘가정으로의 복귀’이다. 어떻게 이런 논리가 가능하게 되었을까?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아직도 자연스럽게 사회가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논리로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폭력 관계에서 청소년은 어떤 위치에 놓이게 될까? ‘정상가족’에 대한 환상은 결국 가부장제를 강화하고 아버지의 권력을 극대화하며 어머니조차 그 과정에서 무력하게 만든다. 오히려 이런 관계 속에서는 약자인 어머니도 이 폭력적 관계에서 가장 강한 위치에 있는 아버지의 편에 서기도 한다. 가장 약한 위치에 있는 청소년이 폭력의 고리를 끊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결국 살기 위해 가정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런데 막상 집 밖을 나서면 사회적 대책이라고는 이들을 잘 설득하여 가족과 화해를 시도하게 하는 것밖에 없고, 결국 다시 그 ‘정상가족’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법적으로도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민법 제914조에 따르면 미성년자의 ‘거소지정권’이 부모에게 있기 때문에 가정을 탈출한 청소년이 도착한 쉼터에서는 청소년의 거취 결정을 부모와 상의해야 하고, 결국 폭력의 관계로 다시 돌아가게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안전을 위해서 가정폭력을 신고하라고? 실제로 가정폭력의 피해를 입증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피해 당사자의 의지가 무척 중요하기에 파생되는 결과에 대해서는 본인이 결국 다 감당해야 한다. 설령 신고한다 하더라도 폭력 가해자인 부모는 몇 시간의 교육만 받고 다시 함께 일상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결국 그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심지어 이런 폭력적 상황에서도 청소년이 가족과 단절되면 가족 단위로 지원하는 모든 사회복지 서비스에서 제외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렇듯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다양한 문제의 책임회피 기제로 작동하며 폭력적 관계에서 청소년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린다.


청소년 시설은 ‘주거’ 지원인가 ‘보호’ 지원인가

 

그럼, 이제 청소년이 머무는 ‘시설’에 대해 생각해 보자. 현재 청소년 주거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회적인 대안이 없으니 ‘보호시설’의 테두리 안에서 살펴볼 수밖에 없다. 청소년이 여러 이유로 탈가정하게 되는 경우, 지낼 수 있는 곳은 현재 청소년쉼터가 거의 유일하다.

 

여가부에서는 연간 ‘가출청소년’ 수를 27만명2) 정도로 추산하고 있는데, 전국 청소년쉼터는 연인원 3만 2천여 명(2018년, 여가부)만이 이용할 수 있다. ‘청소년쉼터 유형별, 퇴소사유별 인원 현황’ 연구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청소년쉼터를 찾은 2만9,256명의 청소년 중 55.9%인 1만6,352명이 무단이탈, 자의퇴소, 무단퇴소 등 제 발로 쉼터를 나간 것으로 나타났다(2017, 박경미 의원실). 이는 청소년 쉼터가 청소년이 원하는 주거의 대안이 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과연 쉼터를 탈가정 청소년의 ‘주거지원’으로 볼 수 있을까. 청소년쉼터의 설치 목적3)을 살펴보면, “가출청소년에 대하여 가정ㆍ학교ㆍ사회로 복귀하여 생활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보호하면서 상담ㆍ주거ㆍ학업ㆍ자립 등을 지원하는 시설”로 되어 있다. 결국 쉼터는 ‘가정 복귀’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각종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거소지정권’ 때문에 청소년의 지낼 곳은 친권자의 권한으로 정해져서 청소년쉼터는 해당 청소년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와 상관없이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해서 쉼터에 지내는 것을 동의받거나, 보호자가 원치 않을 때는 학대와 방임이 여전한 가정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게다가 입소를 위해서는 여러 문서에 자신의 모든 정보(학교, 집, 가족관계, 보호자의 연락처, 종교, 연애 관계, 술이나 담배 경험 등)를 내어놓아야 하며, 정해져 있는 수십 개의 규칙을 지키지 않을 시 퇴소하겠다는 서류에 서명해야 한다. 쉼터에서 지내면서 너무 당당하게 불편함을 호소할 수도 없고, ‘말 잘 듣고 규칙을 잘 지켜야’ 다른 지원들이 연결되기도 한다.

 

우열을 가릴 수도 없을 만큼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또 소수자들이 존재한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노골적으로 ‘출입이 금지’되거나 존재 자체가 ‘퇴소의 사유’가 되기도 한다. 운 좋게 시설에서 지낼 수 있게 되더라도 “넌 결국 벌 받을 거야”,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한다” 등의 ‘저주의 말’들을 쏟아내는 실무자를 만나거나,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함부로 정체성이 공개되는 ‘아웃팅’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러니 이들을 잘 지원하려는 활동가들은 믿고 연계할 수 있는 쉼터는 하나도 없다고 호소하거나 어떤 때는 성소수자임을 밝히지 말라고 조언을 하기도 하는 슬픈 일들이 일어난다. 청소년들은 많은 순간, 여러 장면에서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시설이나 서비스를 평가할 때, 청소년 당사자의 의견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청소년의 인권을 위해 필요했던 서비스이고 공간이었으니 당사자들에게 얼마나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지, 얼마나 편하게 지낼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얼마나 이들이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방식의 ‘자립을 거둬냈는지’만이 평가 기준이 된다. 이는 시설이 청소년의 인권을 보장하는 공간이 되지 못하고, 책임과 의무만을 강조해 청소년이 마음 편히 쉬거나 마음껏 다음을 계획할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리게 만든다. 쉼터를 집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시설은 집이 아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규칙을 반드시 지켜야 지낼 수 있는 공간이며, 이미 청소년 사이에서는 자율성이 보장되거나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는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청소년 주거권을 되찾기 위해서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가)에서 청소년 주거 권리 목록을 만들고, 이와 관련한 현장에서 발견한 어려움과 현실을 나누고 있다. ©함께걷는 아이들

 

청소년 주거와 관련하여 이런 복합적인 문제들에 더이상 머물러 있을 수 없어 몇 명 현장 활동가들과 법률전문가들이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가)’로 모이기 시작했다. 탈시설이 가능해야, 청소년 개개인에게 온전한 주거 지원이 가능해야 시설 또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로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답답한 청소년 ‘보호 체계’ 내에서 ‘좋은’ 답을 찾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고, 좋은 선택지가 없는데 결과 책임은 온전히 청소년 몫으로 다가오는 것을 더이상 곁에서 지켜만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날마다 바뀌는 집’이 더 나은 삶을 찾아 나선 청소년들이 치러야 할 대가(代價)라면, 이는 너무 가혹합니다. 맞바꿔도 되는 인권이란 없으며, 가장 열악한 상황에서도 지켜져야 할 존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청소년 주거권’을 열쇳말 삼아 쉽사리 가려지거나 없는 셈 쳐지는 청소년 주거 불안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함께 대안을 찾고자 합니다. 왜 청소년들이 불안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가족도, 시설도 아닌 황량한 거리를 선택하는지에 주목합니다. 누구나 살고 싶은 집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인권의 원칙을 기억하며, 가족을 떠나거나 여러 시설을 전전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을 외면하지 않으려 합니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가)를 시작하며 발송한 초대장에서)


그동안은 지원 현장에서 ‘청소년시설’의 문제만을 이야기하였지만, 이제는 시설을 넘어 ‘보호’가 아닌 ‘주거’ 보장으로 넘어갈 수 있어야 하겠다. ‘탈시설화’에서 우리의 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게 되었다. 그동안 ‘좀 더 나은 시설’에 대한 기대 때문에 계속 청소년을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 여기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이들이 자신의 삶과 자립의 주체로 위치하기 어렵게 되는 것을 우리는 확인해 왔다. 이젠 보다 다양한 맥락에서 ‘청소년 주거권’을 되찾기 위한 시도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단지 당장 필요해서 연결하는 서비스로서가 아니라 이들이 진정 주거에 대한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넘어가야 할 산이 높기만 하다. 법적으로 부모에게 ‘종속’되어 있는 현재 구조 안에서 청소년 개개인의 주거권을 되찾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어떤 제도나 법이 바뀌면 그게 가능할지에 관해 이제 막 고민이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청소년의 요구가 정책과 서비스에 반영되고, 또 다양한 서비스들을 청소년이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 당사자들이 자기 경험을 나누고, 요구할 기회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며 청소년이 직접 그 변화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청소년들이 겪는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각종 사회문제에서 파생된 어려움을 고스란히 겪고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이 누군가에게 ‘종속’된 존재로서가 아닌 다양한 삶의 방식들을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     *     *

 

각 주 

 

1) ‘가출’한 청소년들이 집단을 이루어서 패밀리로 함께 살아가는 것을 줄여서 부르는 말

2) 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2016년 말 ‘가출 청소년’ 수는 21,852명으로 조사되었다(2016, 경찰청). 그러나 이는 가출신고 및 범죄 등 사건 접수가 된 경우이며, 실제 가출 경험이 있는 청소년 중 약 8~10%만이 이 통계에 해당된다. 여성가족부는 2017년 말 ‘가출 청소년’ 수를 약 27만명으로 발표하였고, 이 중 3만명 정도가 시설이나 기관을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3) 청소년복지 지원법 제31조(청소년복지시설의 종류) 1항 청소년쉼터 : 가출청소년에 대하여 가정ㆍ학교ㆍ사회로 복귀하여 생활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보호하면서 상담ㆍ주거ㆍ학업ㆍ자립 등을 지원하는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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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미혜 함께걷는아이들 팀장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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